지난 5월 말 북한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만나러 뉴욕에 온다기에 잠시 뉴욕에 다녀왔다. 기자들은 이틀 내내 이들 동선을 따라 뛰었다.

그날 오후 폼페이오 장관이 언론 브리핑을 할 예정이었다. 언론의 최대 관심은 김영철이 워싱턴으로 가서 김정은의 친서를 직접 전달할 것인가였다. 그런데 그날 아침 트럼프 대통령이 불쑥 기자들에게 “김영철이 친서를 전달하러 워싱턴으로 올 것”이라고 말해버렸다. 폼페이오 장관의 오후 브리핑은 자연스럽게 김이 새버렸다.

트럼프는 늘 자신이 주인공이어야 한다. 잡지 표지 인물이어야 하고, 신문 헤드라인이어야 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누구나 궁금해하는 일이라면 트럼프는 장관 브리핑 일정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직접 말해버린다.

사실은 늘 그래왔다. 최근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취소했을 때도, 다시 할지도 모른다고 했을 때도, 늘 트럼프가 직접 이야기했다. 트럼프는 국정의 제1 관심사는 늘 자신이 자신의 언어로 관장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오는 반응을 즐긴다.

트럼프는 대변인이 별로 필요 없는 대통령이다. 칭찬은 칭찬대로 소화하고, 비판은 비판대로 받아치면서, 중심에 서서 모두의 시선을 붙들고 싶어한다.

타고난 성품도 그랬지만 오랜 TV 스타의 경험도 영향이 컸다. 트럼프는 젊어서 이미 사업가로 유명했지만 그를 전국적인 유명인사로 만든 계기는 ‘어프렌티스’란 TV 리얼리티쇼였다. 2004년부터 2015년까지 15개 시즌, 192편이 만들어졌다. “너는 해고야(You’re fired)”라는 말로 유명해진 이 프로그램에서 트럼프는 모든 결정을 좌우하는 주인공이었다.

최근 워싱턴에서 만난 전직 관리에게 현안이 됐던 외교정책을 트럼프가 추진할 것이라고 보느냐고 물었다. 그는 “트럼프를 중심으로, 트럼프가 주도하는 모양새로 추진한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트럼프 정부 출범 후 500일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트럼프 행정부에 발탁됐다 중도하차한 상당수의 사람들은 ‘트럼프 세계에선 트럼프가 주인공이다’란 원칙을 잠깐 잊었던 사람들이다. 그 자신 대단한 기업인이었던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은 종종 트럼프와 다른 목소리를 내다가 결국 떠나야 했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맥마스터는 대통령에게 ‘강의’했다는 게 문제가 됐다고 한다. 대통령은 결코 긴 설명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매티스 국방장관이나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자기 색채를 내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일한다는 태도가 확고하다. 그런 사람들이 이 정부에서 장수하고 있다.

트럼프 시대의 외교도 결국 그런 식으로 자리가 잡혔다. 정상 간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 양국관계를 다지려면 트럼프 대통령을 인정하고 칭찬해야 한다. 거의 모든 외국 정상들이, 어쩌면 북한까지도 이런 방식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해보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트럼프의 ‘예측불가능성’은 다른 모든 특성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최고 리더십의 강렬한 자기중심적 태도에 예측불가능성이 더해지면 불확실성의 시대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처럼.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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