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2일 남중국해에서 중국군 사상 최대 규모의 해상열병식이 열리고 있다. 중국 군함들이 항공모함 랴오닝호 주변에서 함께 항행 중이다. ⓒphoto 뉴시스
지난 4월 12일 남중국해에서 중국군 사상 최대 규모의 해상열병식이 열리고 있다. 중국 군함들이 항공모함 랴오닝호 주변에서 함께 항행 중이다. ⓒphoto 뉴시스

지난 6월 4일 미국의 전략폭격기 B-52H 스트래토포트리스 2대가 미국령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를 이륙했다. 서쪽으로 기수를 잡은 두 폭격기는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난사군도(스프래틀리군도)에서 20마일(약 32㎞)가량 떨어진 지점을 비행하면서 남중국해를 관통해 인도양에 있는 영국령 디에고 가르시아섬에 착륙했다. 중국과 필리핀이 영유권 갈등을 빚고 있고 지금은 중국이 점유한 스카버러섬(중국명 황옌다오·黃巖島) 근처도 지났다. 이튿날인 5일에는 이 항로를 역으로 날아 괌 공군기지로 돌아왔다. B-52H 전략폭격기가 남중국해를 비행한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틀 연속으로 비행한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었다.

이번 비행은 지난 6월 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대화)에 참석한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기지화는 이웃 국가를 겁주고 협박하려는 의도”라면서 “미국은 계속 이 지역에 머무를 것”이라고 밝힌 직후에 나왔다. 미 국방부는 “이번 비행 훈련은 태평양 사령부의 ‘폭격기 지속 배치(CBP)’ 임무 수행 작전”이라면서 “이 지역 내 미군의 준비 태세 유지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핵 무기 탑재가 가능한 전략폭격기의 남중국해 훈련 비행에 중국 외교부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화춘잉 대변인은 6월 6일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이 이런 공격형 전략폭격기를 남중국해에 보내는 것은 군사화가 아니냐. 이것도 항행과 비행의 자유를 위한 것이냐”고 했다.

미·중이 치열한 무역전쟁을 치르는 것과 동시에 남중국해를 둘러싸고도 군사적 긴장 상태로 치닫고 있다. 과거와 달라진 것은 미군의 대응 수위가 이전보다 높아졌고 발언도 격해졌다는 점이다.

미국의 달라진 대응 태세는 케네스 맥킨지 합참 합동참모본부장(중장)의 지난 5월 31일 발언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중국이 남중국해에 만든 인공섬을 산산조각 낼 능력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미군은 서태평양에서 작은 섬들을 허물어본 경험이 풍부하다”고 했다.

그 나흘 전인 5월 27일 남중국해 시사군도(파라셀군도) 일대에서 실시한 미 해군 미사일구축함 히긴스호와 미사일순양함 앤티담호의 ‘항행의 자유 작전’도 평소와 달랐다. 이 작전은 그동안 주로 난사군도에서 실시했지만 이번에는 중국 하이난성 남단에서 불과 300㎞ 떨어진 시사군도에서 감행했고, 중국이 공들여 군사기지로 구축한 우디섬(중국명 융싱다오·永興島)에도 접근했다. 평소 1척이었던 투입 함정도 2척으로 늘렸다. 미국은 2015년부터 군함을 보내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 도서지역을 항해하는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펼쳐왔다.

앞서 5월 23일에는 중국군의 환태평양합동군사훈련(림팩·RIMPAC) 초청도 취소한다는 미 국방부의 발표가 나왔다. 이 역시 남중국해 군사기지화를 둘러싼 갈등과 관련이 깊다. 미국이 이렇게 남중국해 대응을 강화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역전쟁 와중에 남중국해에 미사일 배치

미·중 무역전쟁의 전운이 고조되고 있던 지난 4월 초, 중국은 첫 항모인 랴오닝호 전단을 동원해 1주일 동안 남중국해에서 실탄 훈련을 진행했다. 랴오닝호 외에 40여척의 해군 함정과 잠수함, 70여대의 전투기, 해군 1만여명이 동원된 대규모 훈련이었다. 이 훈련을 즈음해 중국군이 군사기지로 조성한 난사군도의 수비암초(중국명 주비자오·渚碧礁), 미스치프암초(중국명 메이지자오·美濟礁), 피어리크로스암초(중국명 융수자오·永暑礁)에는 잉지(鷹擊)-12(YJ-12) 대함미사일과 훙치(紅旗)-9(HQ-9) 지대공 미사일이 설치됐다. 미 CNBC방송은 지난 5월 3일 정보 소식통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하면서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중국이 난사군도에 처음으로 미사일을 설치한 것이 된다”고 보도했다. 전 세계가 온통 미·중 무역전쟁과 북·미 정상회담에 집중하고 있을 때 슬그머니 난사군도에 미사일 배치를 감행한 것이다. 이 인공섬들에는 레이더 설비와 레이더 전파방해장치, 미사일 격납시설 등도 설치됐다고 한다.

미국 비영리기구인 미사일방어지지연맹(MDAA)에 따르면 YJ-12 대함미사일은 사정거리가 545㎞에 이르며, 최고 마하 3의 속도를 낸다. 미 항모전단이 갖추고 있는 이지스 시스템과 SM-2 방공미사일로 요격이 쉽지 않다고 한다. HQ-9 지대공 미사일은 사정거리 300㎞에 최고 고도는 27㎞이며, 마하 4.2의 속도로 날아간다.

워싱턴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5월 24일 위성사진을 토대로 시사군도 내 중국의 최대 군사기지인 우디섬에 HQ-9 지대공 미사일과 발사 차량, 레이더 등이 새로 설치됐다고 밝혔다.

중국의 행보는 미사일 배치에 그치지 않고 있다. 중국이 군사기지화한 시사군도와 난사군도의 암초 4곳에는 2.6~3㎞ 길이의 활주로와 항공기 격납고 등이 설치돼 있다. 최근에는 중국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J-11, 대형 수송기인 윈-8 등이 배치돼 있는 모습도 발견되고 있다. 지난 5월 중순 중국 공군의 전략폭격기인 H-6K가 우디섬 등 남중국해 인공섬 군사기지에서 이착륙 훈련을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중국이 남중국해 거점 암초의 군사기지화를 사실상 완료하고 필요한 시설 배치 등에 들어갔음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남중국해 인공섬으로 불침항모 구축

중국 내 군사 전문가들은 남중국해 암초에 조성된 4곳의 인공섬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응하는 불침항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공섬 내에 방어를 위한 대함미사일과 대공미사일 등을 배치하고, 전투기와 폭격기 등 군용기도 대거 들어가면 그 자체로 항모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미 항모를 겨냥해 개발해 ‘항모 킬러’로 불리는 대함탄도미사일 둥펑 21-D 등을 남중국해 인공섬에 설치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 대륙과 가장 가까운 우디섬은 하이난성에서 300㎞가량 떨어져 있다. 우디섬에서 수비암초까지는 700㎞가량이고, 미스치프암초와 피어리크로스암초는 수비암초에서 각각 200㎞ 거리에 있다. 4곳의 군사기지는 인도양에서 태평양으로 가는 길목에 점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에 배치된 전투기와 폭격기, 미사일 등이 유사시 인도양에서 서태평양으로 들어오는 미국 항공모함과 함정 등을 차단하는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중국 내부의 분석이다. 서태평양의 주요 전장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인데, 동중국해에서 미·일 연합군과 중국군이 충돌했을 때 인도양 미군 함대가 신속하게 동중국해로 이동하는 걸 막거나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전략가들이 오래전부터 꿈꿔온 남중국해의 내해화도 현실이 될 수 있다.

미국은 유사시 중국의 남중국해 인공섬 군사기지를 쉽게 타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군사적으로 큰 위협으로 보지는 않지만, 이제는 직접적인 통제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지난 3월 보도했다. “멕시코 크기 해역 통제권, 중국에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 취임 이후 군사기지화 속도가 점점 빨라져, 그대로 놔두면 멕시코 크기의 남중국해 해역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권이 중국에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남중국해는 한 해 3조4000달러의 상품이 오가는 글로벌 무역로이다. 중동에서 한국, 일본 등으로 들어오는 원유 등도 이곳을 통과한다. 필립 데이비슨 미국 태평양함대 신임 사령관은 지난 5월 상원에 낸 서면 증언에서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력 증강은 이 해역 미군 작전에 대한 도전 과제”라면서 “조만간 중국이 미국과 전쟁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상황에서 남중국해를 통제할 능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워싱턴의 한 관리는 뉴욕타임스에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군사력을 몰아내려면 아직 멀었지만, 군사기지화로 인해 미국 해군이 방위 능력이 약한 필리핀 같은 나라를 신속하게 지원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고 했다.

우디섬에 설치된 중국 미사일을 촬영한 위성사진. ⓒphoto CSIS/AMTI
우디섬에 설치된 중국 미사일을 촬영한 위성사진. ⓒphoto CSIS/AMTI

대만 카드도 남중국해 견제용

미국은 남중국해 군사화에 나선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대만 카드도 활용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미국과 대만 고위 공무원들의 상호 방문을 허용하는 대만여행법에 서명하면서 중국을 자극했다.

중국은 그 직후 대만 인근 해역에서 대대적인 실탄 사격 훈련을 실시했고, 전략폭격기 H-6K와 최신예 전투기 수호이-35 등을 보내 대만을 선회 비행했다. 이에 맞서 미국도 지난 4월 24일 전략폭격기 B-52 두 대를 남중국해 둥사군도 부근까지 출격시켰다. 중국 광둥성 해안에서 250㎞가량 떨어진 곳까지 근접한 지점이었다. 미국 전략폭격기 편대는 중국 내 주요 목표물을 대상으로 토마호크순항미사일과 장거리공대지미사일 JASSM 모의 발사 훈련을 한 것으로 추정됐다.

미국은 이후에도 압박을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하순 미 하원을 통과한 ‘2019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은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 강화 등을 포함한 군사교류 확대 방안이 포함됐다. 로이터는 지난 6월 4일 미국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미국이 올해 한 차례 항공모함을 보내 대만해협을 항해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항모가 가장 최근 대만해협을 항해한 것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인 2007년이었다.

중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대만 문제를 건드리는 미국의 속내는 남중국해 견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위위구조(圍魏救趙)의 전법이라는 것이다. 위위구조는 전국시대 제나라가 위나라의 침공을 받은 조나라가 구원을 요청하자, 구원병을 조나라에 직접 보내지 않고 위나라 수도를 포위하는 방식으로 조나라를 구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중국이 더 급하게 여기는 대만 문제를 건드려 중국의 남중국해 확장 전략을 견제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최유식 조선일보 중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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