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험프리스 전경 ⓒphoto 조선일보
캠프 험프리스 전경 ⓒphoto 조선일보

주한미군이 제2의 창군에 가까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병력 수는 예전 같지 않고 안보환경도 급변하고 있지만 선택과 집중을 통하여 한곳에 모였다. 바로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Humphreys)다. 캠프 험프리스는 무려 1438만여㎡(435만여평)의 부지를 자랑한다. 쉽게 말해 여의도의 5배 크기이다. 크기로만 보면 세계 최대의 해외 미군 기지다. 주한미군은 지난 6월 29일 평택사령부 신청사 개관식을 열면서 용산시대 폐막과 평택시대의 개막을 공식화했다. 어떤 변화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기 마련이다. 주한미군이 평택으로 옮긴 것과 세계 최대의 기지가 된 데에는 어떤 함의가 있을까?

지난 6월 29일 송영무 국방장관(오른쪽 다섯 번째)과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오른쪽 네 번째)이 평택사령부 신청사 개관식 테이프커팅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6월 29일 송영무 국방장관(오른쪽 다섯 번째)과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오른쪽 네 번째)이 평택사령부 신청사 개관식 테이프커팅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해외 기지로 만들어진 제국

미군은 세계 150여개국에 17만여명을 파견하고 있다. 유엔 회원국이 193개국이니 전 세계에 미군이 없는 곳이 없다는 말이다. 각국에 파견된 무관이나 대사관 경비인원(해병)을 제외하고 실제 해외 기지를 둔 나라는 이 가운데 80여개국이다. 이들 국가의 미군 기지 숫자만 800여곳에 이른다. 미국 이외의 군사강대국인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해외 기지들은 모두 합해봤자 30여곳에 불과하다. ‘제국의 슬픔’의 저자인 찰머스 존슨 교수는 미국을 ‘기지의 제국’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인 1938년만 해도 미군의 해외 기지는 14곳에 불과했다. 그러나 2차대전을 수행하면서 미국은 100여개국에 3만개의 크고 작은 기지들을 만들었다. 2차대전 이후에도 서유럽의 안정화와 공산권의 봉쇄와 견제를 위해 많은 미군 기지들이 존치됐다.

냉전이 끝난 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된 미국에 해외 기지는 더욱 중요해졌다. 걸프전의 사례에서 보듯이 미국이 개입하지 않으면 세계질서 자체가 망가질 수도 있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익 차원에서는 주요 시장과 에너지 공급처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위협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세계의 주요 길목에 해외 기지를 유지해왔다. 또 해외에 병력을 전진배치함으로써 잠재적 적국들을 억제하고 동맹국과 협력국가들에는 안전을 담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단점도 없지 않다. 병력을 전진배치시키면 즉각적이고도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지만, 외국 군대가 주둔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주재국 국민들이 수치로 여기고 미국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9·11테러를 일으킨 빈 라덴이다. 북한이나 이란의 경우처럼 탄도미사일이나 장사정포 등 대량살상무기를 다량 보유하고 첨단 정밀유도기술에 핵탄두까지 결합함으로써 더 이상 미군 기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엄청난 비용도 문제다. 미군의 기지당 해외주둔 비용은 연간 5000만달러에서 2억달러까지 다양하다. 해외주둔에 소요되는 관련 경비도 장병 1인당 1만달러에서 4만달러까지 다양하다. 해외주둔과 전비까지 합치면 미국은 연간 2000억달러 가까운 비용을 사용하고 있다. 미국의 2019년 국방예산이 6860억달러였으므로 무려 30%에 가까운 비용이 소요되는 셈이다. 왜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미군의 해외주둔 비용을 문제삼았는지 알 수 있는 지점이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의 세계전략에 따르면 가장 중요한 길목에 있는 국가는 영국,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다. 영국은 미국 입장에서 대서양으로 나오는 유라시아 세력을 견제하는 관문이자 서유럽 진출을 위한 교두보다. 그러나 서유럽의 안전이 확보되고 NATO가 동유럽으로까지 확대하면서 영국의 전략적 위상은 떨어져가고 있다. 그래서 현재 영국에 주둔하는 미군 병력은 9000명 미만이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러시아나 중국 등 유라시아 세력의 진출을 견제하는 교두보로서 충분한 위상을 갖는다. 한때 미군은 일본과 그 점령지에 최대 3800여곳에 이르는 기지와 시설을 갖추기도 했다. 심지어 오키나와는 1972년까지 미국이 영유권을 가졌다. 현재 주일미군의 핵심 기지는 7곳으로 모두 유엔군사령부의 후방기지로 한반도 유사시 지원임무를 수행한다. 특히 요코스카 해군 기지는 인도양부터 동태평양까지를 담당하는 미 7함대의 근거지로 로널드 레이건 항모가 전진배치된 곳이기도 하다. 현재 미군이 가장 많이 파견된 곳도 일본이다. 무려 5만2000여명의 병력이 전개해 있다.

독일은 냉전이 절정에 이르던 1960 ~1970년대에는 미군이 무려 38만여명까지 주둔하면서 명실공히 유럽 주둔 미군의 허브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동서독이 통일되고 1991년 걸프전이 발발하면서 병력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해외 공군 기지 중에 최대 규모라고 할 수 있는 람슈타인 공군 기지를 중심으로 활발히 작전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미군의 아프리카 사령부가 위치하는 곳도 독일이어서 전략적 가치가 여전하다. 현재 약 3만5000여명이 주둔하고 있다. 현재 트럼프 정부는 안보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려는 메르켈 정부에 대하여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주독미군을 본토로 철수하거나 미군 유치에 적극적인 폴란드로 이전하는 방안까지 검토되고 있다.

냉전 종식 후 수백여 곳의 유럽 내 미군 기지들이 폐쇄되었지만 이탈리아의 미군 기지들은 굳건히 위치를 지켰다. 중동은 물론 발칸반도와 북아프리카 등을 견제하기에 최적의 위치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는 병력이 증가하기도 했다. 미군뿐만 아니라 NATO 기지들까지 합치면 이탈리아의 기지는 100여개에 이르며, 심지어는 핵공유 형식으로 전술핵을 전진배치시켜 놓은 곳도 있다. 특히 아비아노 공군 기지는 NATO 남부지역을 방어하는 핵심요충지로 1991년 걸프전을 거치면서 전력이 대폭 증강되었다. 코소보 항공전, 리비아 공습 등에서도 핵심역할을 수행했다. 게다가 미 해군의 유럽 사령부도 영국에서 나폴리항으로 옮겨왔고, 시고넬라에 해군 항공기지가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그래서 이탈리아에는 1만1000여명의 미군 병력이 주둔하는데 냉전시절 주둔하던 병력 수와 거의 유사하다.

미군 기지의 정치경제학

사실 2000년대까지 가장 규모가 컸던 미군의 해외 기지는 카타르의 알 우데이드 공군 기지였다. 빈 라덴의 9·11테러 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철수한 미군이 비밀리에 뿌리를 내리고 대테러전쟁의 전초로 삼은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러나 이라크전과 ISIS전쟁이 가열되면서 중동 내 미군 상당수가 쿠웨이트로 이전했으며, 최근에는 UAE 등의 중동국가들이 카타르와 관계가 악화되면서 미군의 집중도도 약해졌다. 현재 카타르는 미군 가족을 위한 신축가옥 200채를 추가로 지으면서 미군 유치에 나서고 있다.

미군의 해외 기지는 구분이 있다. 과거 미군의 재배치전략(GPR·Global Defense Posture Review)에서는 전력투사근거지, 주요작전기지, 전진작전거점, 안보협력지역 등 4가지로 구분되었지만, 실제 주둔과 관련해서는 결국 주요 기지가 되느냐 전진거점이 되느냐의 차이가 관건이다. 전진거점은 터키의 인시를릭 공군 기지처럼 장비만 전개되고 소수의 관리인원이 있다가 유사시 병력이 증강되는 기지이고, 주요 기지는 일본의 가데나 공군 기지나 독일의 람슈타인 공군 기지처럼 충분한 시설을 갖춰놓고 가족까지 데려와서 영구 배치한다.

이런 와중에 등장한 것이 바로 캠프 험프리스, 즉 주한미군 평택 기지이다. 캠프 험프리스는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졌던 평택비행장을 6·25전쟁 시절부터 미군이 활용하던 곳으로,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주한미군 기지로 꾸며졌다. 특히 이곳은 미 육군의 전자전 수집기가 배치되어 대북감시를 수행하는 주한미군의 눈과 귀 역할을 해왔다.

사실 용산과 동두천 기지의 이전은 이미 1990년부터 계획되었다. 북한이 장사정포와 방사포를 실전배치하면서 위협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미군도 기동화와 함께 원거리 정밀타격으로 교리가 바뀌면서 더 이상 ‘인계철선’ 방식의 소모적 방어전략이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냉전 종식과 1991년 걸프전이라는 새로운 전쟁 형태는 이러한 사고의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미군부대의 통폐합과 이전에 들어갈 막대한 비용부담 문제로 실마리를 찾지 못하다가 1차 북핵위기를 맞으면서 계획 자체가 흐지부지 되었다.

그러나 2003년 노무현 정부와 부시 정부가 전국에 산개한 173개의 미군 기지들을 통폐합하기로 결정하면서 캠프 험프리스가 통폐합의 거점으로 지목되었다. 이에 따라 용산과 동두천·의정부에서 주한미군사령부, 8군사령부, 제2보병사단 본부, 순환배치 기보여단 등이 이전하게 되었다. 부지 확보 과정에서 대추리 사태 등과 같은 갈등도 있었지만 미군 기지의 건설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전에 소요된 비용은 무려 108억달러(약 12조원)로 비용의 90%를 우리 정부가 부담했다. 세계 최대의 미군 해외 기지를 우리 정부가 만들어준 것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애초 캠프 험프리스가 미군의 최대 해외 기지가 된 것은 펜타곤의 엄밀한 계획과 전략에 따른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카타르나 폴란드의 경우처럼 역대 한국 정부가 미군이 머무를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들어 미군을 유치한 셈이다.

관건은 우리의 대중 전략

평택 기지로의 통합시대가 열리면서 이제 주한미군은 최전선의 인계철선이 아니라 전략적 전구 증원부대로서 역할이 바뀌었다. 캠프 험프리스 이외에도 오산의 미 공군 기지가 있고, 우리 해군의 2함대도 평택항에 사령부를 두고 있다. 한마디로 육해공의 합동전력 패키지가 갖춰진 셈이다. 유사시 미군 전력이 곧바로 평택으로 모이면 전략적 반격이 가능하다. 반면에 주한미군을 손쉽게 해외로 돌릴 수도 있다. 원래 삼위일체이던 3개의 사령부 가운데 주한미군사와 유엔사는 평택으로 옮겨왔지만 한미연합사는 여전히 서울에 남아 있는 것도 여태까지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 정부가 세계전략의 측면에서 앞으로 평택을 어떻게 활용할지도 미지수이다.

관건은 우리 정부의 대중전략이다. 주일미군보다도 주한미군이 위치상 중국에 가깝다. 심지어 평택 기지는 서해에 접해 있어 곧바로 칭다오의 북해함대사령부와 랴오닝항모를 견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번 사드(THAAD) 도입 당시처럼 중국의 눈치를 볼 요량이라면, 기껏 만들어놓은 평택 기지는 미군의 허브는커녕 오히려 한국의 외교적 부담이 된다. 당연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미 양국은 안보동맹이라는 점이다. 만의 하나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주한미군 기지는 거의 확실하게 중국의 공격대상이 될 것이다. 평택 기지가 아무리 넓다한들 한국의 대중전략이 어정쩡한 가운데 미군이 이곳에 전력을 집중시킬 이유가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의 국가안보전략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어떻게 매칭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물론 그전에 과연 전작권 전환과 북핵타결 이후의 한·미 동맹관계에 어떤 전략적 이익이 있을지 한·미 양국이 서로 합치된 견해를 갖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래서 평택 기지의 출범은 전술적으로는 옳은 판단이지만 전략적 방향성은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 있다.

키워드

#포커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