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을 수행하고 있는 김여정. ⓒphoto 뉴시스
지난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을 수행하고 있는 김여정. ⓒphoto 뉴시스

지난 6월 30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에서 작년 10월경 숙청된 것으로 알려진 황병서 전 북한군 총정치국장이 김정은의 현지지도 행사에 ‘당 중앙위원회 간부’라고 호명되며 모습을 드러내 복권되었음이 확인되었다. 황병서는 김정은 통치 시대에 들어 가장 잘나가는 인사였다. 김정일 시대부터 오랫동안 당 조직지도부에서 군사담당 책임지도원, 부부장(중장)으로 재직하였고, 김정은에 의해 발탁되어 상장 진급 후 2014년 4월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군사담당, 대장→차수)으로 승진하였다. 이후 한 달도 안 되어 북한군을 정치사상적으로 검열·감독하는 핵심 직책인 총정치국장(차수)에 임명되었다. 이후 당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당 부위원장 등의 직책을 겸임하며 승승장구하다가 작년 10월경에 철직되었다.

강등→복직→철직→혁명화교육→복권의 반복

각종 공식행사 시 예우서열인 김영남(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박봉주(내각 총리)에 이어 3번째로 호명될 정도로 이전까지 황병서는 김정은이 가장 신임하는 최측근이었으나 김정은의 말 한마디에 불손한 해당행위자로 몰려 철직 당하고 혁명화교육 후 다시 등용된 것이다. 이른바 ‘직책(계급) 강등→복직→철직→혁명화교육→복권’의 반복을 통한 권력 공고화라는 김정은식 통치술을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이다.

국내외 언론들은 최룡해, 김영철, 황병서 등을 ‘실세’ 또는 ‘2인자’라고 표현하나, 수령절대주의 폭압체제인 북한에서 김정은 외에 실세가 존재할 수 없다. 북한 체제에서는 의미 있는 인물은 오직 수령인 김정은뿐이다. 김정은은 공식적으로 당 위원장, 당 군사위원장, 당 정치국 상무위원장, 국무위원장, 공화국 원수, 최고사령관 등의 직책을 맡고 있으나, 더 의미 있는 직함은 ‘수령’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선대(先代) 수령이다. 이른바 ‘최고 존엄’ ‘혁명의 뇌수’라고도 불린다. 북한에서 수령의 위상은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2013년 6월 19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령의 방침을 결사관철해야 하고 수령은 권위의 절대성, 무오류성의 존재로 신(神)보다 높은 위상에 있다.

일부에서는 북한을 당 조직지도부 또는 군부가 움직이고 김정은은 얼굴마담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펼치지만, 이는 북한의 권력작동 행태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한 잘못된 분석이다. 조직지도부가 북한 전당, 전역을 정치사상적으로 지도하고 사찰, 감독하는 핵심 부서이며 저승사자처럼 무서운 존재로 북한 간부들에게 각인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직지도부는 김정은의 지침 범위 내에서 권한을 집행하는 것이지 김정은 앞에서는 ‘바람 앞에 촛불’에 불과한 미미한 존재이다. 또한 북한군도 같은 신세이다. 군부의 누가 김정은 위에 있다는 것인가?

북한군 서열 1위로 통칭되는 총정치국장이 김정은 말 한마디에 집권 이후에만 ‘최룡해→황병서→김정각→김수길’로 4번 바뀌었다. 총참모장은 ‘리영호→현영철→김격식→리영길→리명수→리영길’로 6번, 인민무력상은 ‘김영춘→김정각→김격식→장정남→현영철→박영식→노광철’로 7번이나 교체되었다. 또한 북한군 고위 인사치고 계급강등을 안 당해본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계급강등과 복직을 수시로 단행하고 있는 실정인데, 군부인사 누가 김정은 위에 있다는 것인가? 북한의 권력작동 시스템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북한에는 김정은 외 실세나 2인자는 없고, 측근만 존재할 뿐이다.

김여정 사석에선 “오빠야”

김정은의 최측근은 친여동생인 김여정이다. 김여정은 현재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과 서기실 부실장(추정) 및 당 정치국 후보위원을 맡고 있지만 직책에 관계없이 모든 영역에 관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김여정은 공개석상이 아닌 자리에서는 배석한 당 간부들을 의식하지 않고 김정은에게 ‘오빠야’라고 호칭할 정도이다. 발언할 때 일어나서 하는 다른 당 간부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앉아서 발언을 하는 인물이다. 올 초 김정은의 특사 자격으로 방남을 했을 때 나이가 90세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명목상 북한 수반)이 손녀뻘인 김여정에게 자리를 권하며 서 있는 모습을 상기하기 바란다. 김여정의 영향력은 두 차례의 문재인·김정은 회담과 시진핑과의 회담, 트럼프와의 싱가포르 회담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북한에서 모든 사업 전반을 관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김정은 서기실 실장 김창선(왼쪽)과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 ⓒphoto 뉴시스
김정은 서기실 실장 김창선(왼쪽)과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 ⓒphoto 뉴시스

그 다음 측근은 김정은 서기실 실장인 김창선(1944년생)이다. 김창선은 공식적으로 국무위원회 부장으로 되어 있는데, 김정일-김정은 2대에 걸쳐 서기실장을 맡고 있으면서도 전혀 자기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최측근 인사이다. 김창선이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전혀 받지 않고 그의 존재를 모르는 상태에서 올 2월 초 방남대표단으로 김여정을 보좌하며 내려왔을 때 필자가 그의 존재와 영향력을 모 언론사에 제보하여 단독 보도됨으로써 김정은 서기실장의 존재가 국내외 언론에 주목을 받았다.

김창선은 김일성 집권 후반부터 호위총국, 서기실 등에 줄곧 근무하였고, 2000년대 중반부터는 김정일의 서기실장을 맡았다. 김정은 통치시대에도 대를 이어 서기실장을 맡고 있다. 김창선은 김일성 일가와 특별한 관계에 있다. 김창선은 빨치산의 일원인 류경수 105 탱크여단장(6·25전쟁 시 서울 최초 입성 부대장)의 사위이다. 그의 장모는 100세 나이에도 조선혁명박물관장(1990~현재)을 맡고 있는 황순희(1919년생)이다. 황순희는 김일성의 처이자 김정일의 어머니인 김정숙과 아주 친했으며 김정숙 사망 후 어린 김정일과 김경희를 돌봐주었다. 이런 관계로 황순희의 딸 류춘옥과 김경희는 절친이다. 김창선이 류춘옥과 결혼하자 이러한 인연으로 김창선은 김일성-김정일의 집사 역할을 맡게 되었다.

김창선의 존재와 위상은 이번 남북 회담, 북·중 회담, 미·북 회담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판문점회담 시 김정은을 뒤따라가는 김영철을 손으로 잡아당겨 방향을 틀 정도로 힘 있는 인물이다. 또한 북한 조평통 위원장 리선권을 손짓 하나로 불러들이고 김여정도 손으로 잡아당기는 인물이다. 김정일과 김정은의 지시사항을 총괄하여 하달하고 이의 집행상황을 철저히 챙기고 시정지시를 내릴 뿐 자기 권력을 형성하지 않고 자기 존재를 외부에 드러내지 않는 것이 그만의 장수 비결로 보인다. 현재까지는 김정은 측근 중 유일하게 혁명화교육을 받지 않은 인물이나, 국내외 언론에서 김창선을 숨은 실세라고 평가함에 따라 언제든 김정은의 마음이 바뀌면 이른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것이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도 최근 발간한 ‘3층 서기실의 암호’라는 증언록에서 서기실과 김창선 실장의 영향력에 대해 증언한 바 있다.

당 부위원장(조직지도담당)이자 부장인 최룡해(1950년생)도 측근으로 꼽을 수 있다. 최룡해는 빨치산 출신으로 인민무력부장을 역임한 최현의 둘째 아들이다. 북한군 총정치국장을 역임했고, 현재 당 부위원장(조직지도담당), 당 중앙군사위원, 당 정치국 상무위원, 당 조직지도부장(추정),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직책으로만 보면, 김정은 다음가는 실력자로 보여진다. 그러나 김정은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 꼴이다. 최룡해도 제2인자로 불리며 잘나가다가 2015년 11월 철직되어 함경도 소재 협동농장에서 ‘혁명화교육’을 거친 다음, 2016년 12월 복권된 바 있다. 현재 당에서 조직지도 업무를 총괄하고 있으나, 김정은이 신임하는 제1부부장, 부부장들이 직보하는 상황에서 그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표1>은 당(조선노동당)·정(국무위원회, 최고인민회의, 내각)·군(조선인민군)에 포진되어 있는 김정은의 측근들이다. 하지만 혈육인 김여정을 제외하고는 김정은의 신임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숙청, 철직당할 처지에 있는 ‘시한부 측근’들이라 할 수 있다.

당에서는 선전선동업무를 총괄 지휘하는 박광호 선전선동부장, 외교업무를 전담하는 리수용 국제부장 등의 측근들이 있다. 특히 리수용은 김정일이 스위스 유학 시 스위스 대사(1998~2010, 리철 가명)로 김정은을 돌봐준 인연으로 장성택 계열(행정부 제1부부장) 숙청 시 살아 남은 유일한 인물이다. 군에서는 북한군을 검열, 통제하며 조직지도하는 김수길 총정치국장, 군령권을 담당하는 리영길 총참모장, 군정권을 담당하는 노광철 인민무력상, 군 사찰업무를 담당하는 조경철 보위국장(구 보위사령관), 윤정린 호위사령관, 서홍찬 후방총국장 등이 있다. 대남 부문에서는 현재 남북 및 미·북 회담을 전담하고 있는 김영철 당 부위원장과 대남공작을 총괄하고 있는 장길성 정찰총국장 등이 있다. 공안 부문에서는 비밀경찰을 지휘하는 정경택 국가보위상, 북한 경찰의 수장인 최부일 인민보안상 등이 있다. 내각에서는 박봉주 총리, 리용호 외무상 등이 있다. 또한 혁명의 선배를 존대하라는 김정일의 방침에 따라 명목상 우대하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1928년생) 등 원로그룹이 있다.

김정은에 직보하는 부부장들

특히 북한의 당, 군, 내각 부서에서 주목해야 할 직책은 제1부부장(제1부상)이나 부부장(부상)들이다. 이들은 자기 상급자인 부장(상)하에 있으나, 김정은에게 직보하는 위치에 있어 실제 부서 내 영향력이 상급자보다 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어 조용원 조직지도부 부부장(본부당 담당)은 김정은의 공개활동 시 수행하는 빈도가 가장 많은 인물로 이의 영향력은 실제 당 부장들보다 훨씬 위에 있다. 김정은의 수행빈도가 2016년에 총 47회, 2017년에 34회, 2018년 상반기 11회로 매년 1위이다. 최측근이라 할 수 있다. 2017년 7월 화성-14형 1차, 2차 시험발사와 11월 화성-15형 발사 시에도 김정은을 수행했다. 2018년 남북 회담 및 시진핑과의 회담 시에도 수행할 정도로 김정은의 신임을 받고 있다. 북한에서 최측근들의 실질 신임도로 보면 ‘김여정-김창선-조용원-최룡해’ 순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은이 평안북도 신도군을 현지지도했다며 지난 6월 30일 노동신문이 보도한 사진. 오른쪽 인물이 조용원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이다. ⓒphoto 뉴시스
김정은이 평안북도 신도군을 현지지도했다며 지난 6월 30일 노동신문이 보도한 사진. 오른쪽 인물이 조용원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이다. ⓒphoto 뉴시스

올해로 북한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지 7년 차를 맞이한다. 지난 6년간의 김정은 정권을 한마디로 평가하면 ‘안정 속의 불안정’이라 표현할 수 있다. 여기에서 안정이란 나이 어린 김정은이 일부의 우려와는 달리 김정일 사망정국을 신속하게 마무리하며 북한의 3대 권력기둥인 당·군·정을 확실히 장악, 정권을 공고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불안정이란 현재의 안정이 간부들이나 주민들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형성된 충성이 아니라, 강력한 공포정치 때문에 살기 위해 김정은에게 충성을 다하는 구도이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권력의 질(質), 즉 권력 토대가 취약하다는 의미다. 또한 김정은은 미국과 남한이 북침전쟁을 획책하고 있다고 선전하면서 지속적인 전쟁분위기, 즉 안보위기를 조성하며 정권안정을 도모하고 있다.

김정은 통치 시대에 측근이라는 고위 간부들도 공포정치에 숨을 죽이며 떨고 있다.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의 후계 집권을 앞장서서 지원했던 인물은 김정일 영결식에서 운구차를 호위했던 7인방(장성택, 김기남, 최태복, 리영호, 김정각, 김영춘, 우동측)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야심이나 영향력 행사 없이 김씨 일가에 충성을 다하는 김기남(전 당비서)과 최태복(전 당비서) 외에 나머지 5명은 모두 처형 및 숙청을 당했다. 김정일에 의해 북한군 총참모장으로 발탁되어 최지근거리에서 김정은의 안정적 집권을 도왔던 리영호를 2012년 7월 반혁명분자로 몰아 숙청하였다. 혈족도 예외는 아니다. 김정은은 3대 세습체제의 출범과 공고화에 기여했던 고모부 장성택마저 반당종파분자, 국가전복 혐의를 씌워 무참하게 처형하였다. 또한 이복형 김정남도 2017년 2월 독살당하였다.

2015년 4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도 반혁명분자로 몰려 처참하게 처형당했다. 그동안 실세로 알려졌던 최룡해 당 부위원장, 김영철 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김원홍 국가보위상, 황병서 총정치국장, 최휘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등도 숙청되었다가 혁명화교육을 받고 복직되는 수모를 겪었다. 김정은의 각종 대형 건축물 공사현장을 빠짐없이 수행했던 마원춘 국방위(현 국무위) 설계국장도 건설공사 부진 등의 이유로 2014년 철직되어 혁명화교육을 받고 복직했다. 2015년에는 최영건 내각 부총리, 조영남 국가계획위 부위원장, 2016년에는 김용진 내각 부총리가 자세불량 등을 이유로 처형당했다.

미·북 회담 실패 땐 김영철 숙청 0순위

군 간부들도 계급강등 및 복직 등을 반복하며 충성을 강요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작년 말까지 처형된 간부만 해도 200여명에 달한다. 이들의 죄목은 숙청 구실에 불과할 뿐 실제는 김정은의 심기에 의해 측근들의 생사여탈권이 행사되고 있는 것이다. 충성을 극대화하기 하기 위한 수단으로 숙청이라는 공포정치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김정은식 권력유지 기법인 것이다.

김영철 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도 올 들어 연이은 남북 회담, 북·중 회담, 미·북 회담 과정에서 최선봉에 서서 비핵화 문제 등을 조율하고 있어 최측근으로 크게 부각되고 있으나, 비핵화 회담이 뒤틀리면 0순위 숙청행을 예약해 놓은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정은의 지침과 지시에 따라 협상을 하고 있지만 실패하면 ‘수령의 무오류성’이란 대원칙 앞에서 책임질 희생양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체제하의 북한에서는 ‘실세’가 아닌 ‘시한부 측근’들만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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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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