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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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7일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이 된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는 곰처럼 우직한 면이 있다. 가치와 목표를 설정하면 좀처럼 뒤를 돌아보지 않는 성격이다. 그래서 종종 여의도의 시각과 그의 행보가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전 국무총리 지명을 수락한 것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것도 맥락이 크게 다르지 않다. ‘마이크’를 잡고 국가의 미래를 논의하고 싶어하는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6·13 지방선거 이후 추락하던 한국당이 선거 참패 이후 한 달이 지나서야 지난 7월 17일 열린 전국위원회에서 가까스로 비대위를 출범시켰다. 만약 김 위원장이 ‘비대위원장 불가’ 입장을 밝혔다면 한국당은 비대위 구성에 실패했을지 모른다는 분석이 나올 만큼 그의 한국당행(行)은 주목을 받아왔다. 사실 김 위원장도 비대위 구성 과정을 지켜보면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비대위원장 후보로 최장집·유시민·도올(김용옥)·이국종 등의 인물이 거론되며 한때 한국당 비대위가 조롱거리가 되자, 주변에서 ‘나서지 말라’고 만류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김 위원장 또한 자신의 이름을 비대위원장 명단에서 제외해달라고 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마이크’를 잡기 위해 우직하게 기다렸고 결국 한국당의 운전대를 잡았다.

김 위원장에게 주어진 과제는 결코 간단치 않다. 친박 대 비박의 당내 대결구도를 혁파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과정에서 인적쇄신도 단행해야 한다. 여론의 강력한 지지를 확보한 문재인 대통령, 50% 안팎의 지지율을 유지 중인 더불어민주당과 경쟁하며 당의 존재감을 확립해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무엇보다 자유한국당의 보수적 이념을 새롭게 바꾸는 체질 변화는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고 구조적 반발도 예상된다. 당내 일각에서 “김 위원장의 혁신이 최악의 경우 실패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김병준식 대국민 소통 예고

김 위원장의 첫 번째 과제는 비대위 구성 과정에서 당 주도권을 확실하게 장악할 수 있느냐 여부에 있다. 이른바 전권형 비대위원장으로 가려면 당을 확실하게 장악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은 7월 24일까지 비대위 구성을 마무리짓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당 안팎에서도 비대위원 추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당내 주요 인사들은 물론이고 친박계로 분류되는 인사들도 계파의 입장을 대변할 만한 인물이 비대위원에 중용되기를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결국 김 위원장이 당내 친박과 비박 진영 인사들을 고루 기용해 통합형 비대위로 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이렇게 구성된 비대위에서 김 위원장은 주도권을 행사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혁신안에 대해 이해관계가 엇갈리면 친박 대 비박의 대결이 비대위에서 재연될 수 있다. 그래서 김 위원장이 김성태 원내대표와 함진규 정책위원장 등 당내 당연직 비대위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비대위원을 외부 인사로 채울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한국당 소속 모 인사는 “비대위에서 의결과정을 거칠 때 김 위원장이 구상한 방안이 온전하게 처리되려면 적어도 비대위원의 절반은 위원장과 생각이 같아야 한다. 다만 친박의 반발을 의식해 친박 성향의 인사를 포함시킬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혁신 어젠다를 다룰 비대위와 달리 주요 당직은 친박과 비박계 인사들을 균등하게 기용할 것으로 보인다. 당 사무를 책임지고 비대위원장을 보좌할 사무총장과 김대식 원장이 물러나 공석이 된 여의도연구원장, 사무부총장 등 당직을 인선하는 과정에서 계파를 고려한 인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 사무총장에는 복당파인 김용태 의원이 임명됐고 여의도연구원장에는 친박의 김선동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한국당의 청산 가치보다 존속 가치가 더 크다고 보고 있다. 김 위원장이 “시대 요구에 부합하는 보수의 새로운 가치를 정립하겠다”고 힘주어 말하는 것도 존속 가치에 무게를 둔 발언이다. 그러나 당내에는 이른바 박정희 보수, 영남 보수, 강남 보수를 대변해온 인사들도 적지 않다. 현역 국회의원뿐 아니라 당원과 대의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가진 보수세력이다. 이들은 김 위원장을 ‘좌편향적 인물’ ‘노무현의 사람’으로 평가하며 팔짱을 낀 채 관망 중이다. 과연 김 위원장은 이런 구조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김 위원장은 내부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대중과 소통하는 우회로를 선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득권이 된 내부를 손보기에 앞서 자율과 시장경제, 새로운 안보관을 보수의 가치로 내걸고 대중의 지지를 확보한 뒤 그 힘을 바탕으로 내부를 변화시킨다는 복안이다. 비대위 구성이 완료되면 전국을 돌며 ‘김병준식 대국민 소통’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중요하게 여겨온 지방자치와 개헌 문제도 논의 주제가 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 보수를 지향하는 세력은 정리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일부 기득권 세력과의 노선 투쟁은 불가피해 보인다.

당협위원장 전원 교체 대상?

김 위원장은 국민적 지지를 회복하기 위해 친박 대 비박 식의 진영논리에 천착해온 인사들의 인적쇄신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지역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인사도 교체 대상으로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과거처럼 당 지도부가 일방적으로 사람을 쳐내는 식의 물갈이는 하지 않겠다는 게 김 위원장의 생각이다.

김 위원장은 2020년 총선 공천권도 본인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아니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그 대신 253개 국회의원 지역구를 책임지는 당협위원장을 교체하면서 차기 총선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인물이 당에 유입되는 기반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지역구 당협위원장은 현역 국회의원이 맡는 구조다. 그러나 앞으로 현역 국회의원일지라도 당협위원장직에서 배제되면 차기 총선에서 공천 가능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현재 당내 지역구 국회의원은 95명, 비례대표는 17명이다. 일부 비례대표 의원이 지역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 100명 이상의 당협위원장이 있다. 이들을 어떤 기준으로, 어느 정도 규모로 교체할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 없다. 다선(多選)·친박·친이의 대표성을 가진 인사들과 각종 비리 혐의로 구속 또는 수사 대상인 인사 등이 교체 대상이 된다면 적어도 절반 이상의 당협위원장 교체 논의가 진행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새로운 이념과 지향점을 통해 교체 지역을 선별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당내 현역 의원들과 충돌이 예상된다. 특히 친박 진영의 경우 어떤 식으로든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생존투쟁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당내에서는 “인적쇄신이 비대위의 핵심 임무인데, 이 지점에서 김 위원장은 가장 큰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집권여당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장담해왔다. 김 위원장은 특히 노무현 정부의 정책실장을 지냈기 때문에 현 정부와 민주당을 향한 견제구에 무게가 실릴 수 있다. 그래서 여당은 김 위원장의 행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 전재수 의원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노무현 대통령을 입에 올리지 말라”면서 김 위원장에 대한 포문을 연 바 있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은 현 정부가 여론의 지지를 기반으로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을 이른바 국가주의로 치부하고 있다. 국가주의에 맞서 시장과 자율이라는 키워드로 정책적 대안을 만들어나간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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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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