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다른 주에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이 외진 지역을 돌아다니다 ‘진짜 트럼프 지지자’를 마주쳤다고 한다. 턱수염이 더부룩한 이 중년 남자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언급하면서 “지난번 대통령, 이름이 뭐더라? 케냐에서 온…” 이런 식으로 얼버무렸다고 한다. 오바마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거나 아예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90%가 넘는 워싱턴에선 자신이 트럼프 지지자라고 떠벌이는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 그래서 일상에서 진짜 트럼프 지지자의 생각을 들어볼 기회는 드물다. 동시에 그들이 오바마나 기득권층에 대해 갖는 반감에 대해 솔직하게 들어볼 기회도 별로 없다.

2016년 대선 때부터 화제를 모았던 책 ‘힐빌리의 노래(Hillbilly Elegy)’를 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 책은 미국 백인 노동자 계층의 실상을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이 책이 지금도 베스트셀러인 이유는 미국 안의 어떤 지역이 경제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허물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같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에서 미국 중부 가난한 마을 사람들이 오바마에게서 받는 느낌을 언급한 부분을 읽다가 내심 놀랐다. 먼저 저자에 대해 조금 소개하자면, 그는 쇠락해가는 ‘러스트벨트’에 속하는, 가난한 애팔래치아 지역인 오하이오주에서 자랐다. 그는 자신이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백인 노동자 계층의 자손’이며, 어린 시절을 보낸 집안 환경은 ‘가난이 가풍이나 다름없었다’고 했다. 미국에선 이런 사람들을 ‘힐빌리’ ‘레드넥(rednecks)’ ‘화이트 트래시(white trash)’라고 부른다.

저자는 그가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 사람들이 오바마에 대해 편견을 갖게 되는 것은 피부색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대신 아이비리그 명문학교를 나온, 화려한 스펙을 가진 초엘리트의 느낌 때문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가난한 지역 사람들 눈에 완벽한 발음과 논리를 가진 오바마는 너무 낯설어서 오히려 거리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직장도 없고 가정은 파괴되고 약물에 중독된 미국 중부 노동자 계층의 눈에 법학교수처럼 논리적이고 우아한 오바마는 연대감을 느끼기 힘든 지도자일 수 있다. 거꾸로 자신들과 비교할 수 없이 큰 재산을 가졌으되 겉으로는 어쩐지 막 사는 것 같은 트럼프에게서 오히려 더 친근감을 느낄 수도 있다.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중간선거가 가까이 오면 모든 현안들이 ‘중간선거’란 렌즈를 통해 재해석된다. 이번 중간선거에선 하원의원 435명 전원, 상원의원은 3분의 1이 조금 넘는 35명, 그리고 주지사는 36명을 다시 뽑는다. 대통령 임기 딱 중간지점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현직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도 갖고 있다.

요즘 트럼프 대통령은 마치 대선 유세 때처럼 유세장을 돌고 있다. 펜스 부통령도 트럼프 정부의 경제 성과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짜 뉴스’라고 맹공격하는 주류 미디어가 아무리 트럼프를 공격해도 지지층은 여전히 그에게 열광한다. 중간선거는 정당 간의 균형을 재조정하는 선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간선거는 여당에 불리하다는 게 상식처럼 돼 있다. 국민들은 야당에 힘을 실어주어 여당을 견제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언제나 예외는 있다. 어찌 됐든 트럼프는 이번 선거에서 집권 2년에 대한 성적표를 받을 것이다.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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