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청와대 만찬에서 한·미동맹을 강조하며 건배를 제의하고 있다. ⓒphoto 백악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청와대 만찬에서 한·미동맹을 강조하며 건배를 제의하고 있다. ⓒphoto 백악관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형상화한 평화광장이 있다. 평화광장 중앙의 조형물에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기억하라(IF YOU WANT PEACE, REMEMBER WAR)’라는 문구가 한글과 영어로 새겨져 있다. 태극무공훈장은 전시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에서 전투에 참여해 뚜렷한 무공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되는 최고의 훈장이다. 태극무공훈장 제1호는 국군이 아닌 미군이 받았다. 주인공은 바로 미군 원수(元帥)인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이었다. 맥아더 장군은 6·25전쟁 때 초대 유엔군 총사령관에 임명돼 국군과 유엔군을 지휘했다. 맥아더 장군이 태극무공훈장을 받게 된 결정적인 전공은 인천상륙작전이었다. 1950년 9월 15일 실시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6·25전쟁의 전세는 역전됐다. 당시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남쪽으로 진격했고, 국군과 미군은 낙동강까지 밀리면서 자칫하면 적화통일이 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맥아더 장관은 북한군의 보급로를 끊고 낙동강 전선의 북한군 주력부대를 붕괴시키기 위해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다. 미 해병 1사단과 국군 해병대가 선봉이 된 유엔군은 1950년 9월 28일 서울을 탈환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유엔군이 서울을 수복한 다음날 중앙청에서 거행된 환도식(還都式) 행사에서 맥아더 장군에게 태극무공훈장(당시는 1등 무공훈장) 제1호를 수여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photo 국가기록원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photo 국가기록원

맥아더 장군은 이처럼 한·미동맹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1957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7주년을 맞아 인천 중구 송학동 자유공원에는 국민들의 성금 등으로 맥아더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맥아더 동상’이 세워졌다. 하지만 맥아더 동상은 그동안 상당한 수난을 당해왔다. 매년 인천상륙작전을 했던 때가 되면 어김없이 반미(反美) 성향의 단체들이 맥아더 동상의 철거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여왔다. 이들은 “맥아더는 한반도 분단을 부추긴 점령군 괴수이고, 6·25전쟁 때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전쟁범죄자”라며 “맥아더 동상은 제국주의의 상징물이므로 마땅히 철거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심지어 이들은 “당시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지 않았더라면 우리 민족은 통일됐을 것”이라는 망발도 서슴지 않는다. 최근에는 맥아더 동상 방화기도 사건까지 벌어졌다. 인천 중부경찰서에 따르면 반미 성향 단체인 ‘평화협정운동본부’ 의 상임대표인 이모 목사 등 3명이 지난 7월 27일 4m 높이의 맥아더 동상에 올라가 “미군 추방하라! 세계 비핵화! 점령군 우상 철거!” 등의 구호를 외치고, 사전에 준비한 이불로 맥아더 동상 다리 부분을 감싼 뒤 방화했다. 이들은 일부 언론에 보낸 글에서 “맥아더는 이 땅을 분단시킨 원흉이며 만주와 우리 땅에 핵폭탄 사용까지 계획했던 장본인임에도 우리에겐 공산화를 막아준 우상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성과 없이 돌아온 대북 특사단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는 데 기여한 맥아더 장군에 대해 이런 극단적인 행동까지 벌이고 있다는 것은 피로 맺어진 한·미동맹이 깨질 수 있다는 ‘조짐’이라고 볼 수 있다. 한·미동맹은 1953년 10월 1일 한국과 미국이 서명하고 1954년 11월 18일 발효된 상호방위조약을 바탕으로 유지해온 우호·협력 체제를 말한다. 한국이 지금까지 경제 발전과 평화를 유지해온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미국과의 동맹 체제를 견고히 구축해왔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국과 미국이 최근 들어 대북정책을 놓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어 자칫하면 한·미동맹 관계가 금이 갈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양국은 무엇보다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판문점선언 이행 문제를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종전선언과 북한 비핵화의 선후(先後) 문제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9월 5일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을 대표로 하는 대북 특사단을 파견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북·미 교착 상황을 풀 수 있는 해법을 논의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대북 특사단이 김 위원장에게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의 리스트 신고 등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이행할 것을 강하게 압박해야 했었지만 종선선언과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 등 남북관계 개선에 무게중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북 특사단은 종전선언에 매달리고 있다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정 실장은 지난 9월 6일 방북 결과 브리핑에서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고 관련국 간 신뢰를 쌓기 위한 첫 번째 단계라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북한도 우리의 이런 판단에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 실장은 “김 위원장이 미국과 우리나라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우려, ‘종전선언을 하면 한·미동맹이 약화된다’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한다’는 것들은 종전선언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 아니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이런 발언은 문재인 정부와 사전에 짜맞춘 듯한 인상까지 준다. 문재인 대통령은 “종전선언은 남북 상호 적대 관계를 끝내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관계로 나아가겠다는 정치적 선언”이라며 “올 연말까지 종전선언을 실현시키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대북 특별사절단 단장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9월 5일 오후 평양 노동당 본관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문재인 대통령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photo 청와대
대북 특별사절단 단장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9월 5일 오후 평양 노동당 본관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문재인 대통령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photo 청와대

특히 문재인 정부의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는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지난 9월 5일 ‘동북아의 중심에서 미래를 보다’를 주제로 열린 ‘미래콘퍼런스 2018’ 기조연설을 통해 “얼마 전 미국에 갔더니 종전선언을 하면 주한미군을 빼는 것은 아닌지 상당히 우려하더라”라며 “종전선언은 한반도에 지속됐던 전쟁이 끝난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고, 평화협정이 만들어질 때까지 정전협정과 유엔군사령부, 군사분계선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 특보는 종전선언과 관련해 최근 “일부 미국 전문가와 한국 보수주의자들은 평화협정 체결 전까지 기존 정전협정이 유지된다는 내용을 모른 채 종전선언이 비가역적 조치이며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질 것이라고 비난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따로 가는 한·미

그렇다면 김 위원장과 문 특보의 주장대로 종전선언이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동맹 문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까. 종전선언은 단순한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일종의 준(準)평화협정이라고 볼 수 있다. 종전선언은 전 세계에서 최후의 냉전지역인 한반도의 전쟁 상태를 종료시킬 정치·외교·군사적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전협정이 전쟁 재발을 방지해온 상황에서, 게다가 북한이 비핵화를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한국이 종전선언을 선포할 수는 없다. 실제로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최근 발표한 연차보고서에서 북한은 지난 1년간 영변의 5㎿ 원자로와 재처리공장의 설비를 가동하는 등 핵 개발을 계속 진전시킨 흔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런 보고서의 내용으로 볼 때 북한은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에 합의한 이후에도 일부 핵시설의 가동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핵 개발 능력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국무부는 IAEA의 이런 보고서 내용이 정확하다면서 북한의 핵 활동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종전선언은 북한의 핵을 동결하고 불능화 과정을 거쳐 마지막으로 핵을 폐기하도록 하는 데 미국과 한국이 지렛대로 사용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이행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을 취소시킨 것도 이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정부와 달리 종전선언부터 우선적으로 하자는 입장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북한에 대해 핵시설 가동 등에 아무런 해명 요구조차 하지 않고 있다. 대북 특사단은 김 위원장의 입장을 그대로 전한다면서 사실상 ‘녹음기’ 역할을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풍계리는 갱도의 3분의 2가 완전히 붕락해서 핵실험이 영구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실험장을 해체한 것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가 인색하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북한의 선제적 조치들에 대한 상응조치가 이뤄지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조치들을 계속해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미국이 종전선언 등 상응 조치를 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미국의 조치가 있으면 북한도 적극적 조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북한이 더 이상 핵 실험을 실시할 필요가 없을 만큼 핵 능력을 고도화했을 뿐만 아니라 미사일 엔진 실험도 언제든지 재개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북한의 조치가 실질적인 비핵화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해왔다. 이와 관련, 마이클 그린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은 “종전선언의 순서가 문제가 아니라 북한이 비핵화할 의도가 없다는 게 핵심”이라며 “북한은 여전히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대북제재 완화와 주한미군 철수의 구실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노림수

종전선언을 통한 북한의 노림수는 주한미군 철수와 유엔사령부 해체다. 판문점선언 1조1항에 적시된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다’는 내용만 보더라도 북한은 앞으로 ‘우리 민족끼리’라는 명분을 내세워 주한미군 철수와 유엔사령부 해체를 주장할 수 있다. 물론 주한미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한 한·미동맹 차원에서 주둔하고 있어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과는 무관하다. 유엔사령부 해체도 미국의 소관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는 종전선언을 하면 주한미군과 유엔사의 존속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북한의 선전·선동과 반미 여론까지 확산되면 한·미동맹이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종전선언을 하면 한·미 연합훈련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 남·북·미·중이 전쟁 종료를 선언한 마당에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한·미 연합훈련을 할 명분은 없어지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이 한국군과 훈련을 하지 않으면 주둔 자체가 어렵게 된다. 한·미동맹에서 주한미군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주한미군 없는 한·미동맹은 별 의미가 없다. 동·서독이 통일됐는데도 미군이 독일에 주둔하고 있는 것처럼 주한미군의 존재는 한국의 국가 안보에서 최후의 보루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유사시 미군의 자동개입을 보장하지 않고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허점을 주한미군이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한반도에는 거대한 힘의 공백이 생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통일 과정을 지원할 세력 없이 한국이 단독으로 이를 주도할 역량은 없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지원이 있었던 것처럼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남북의 무력충돌을 방지할 국제기구와 이를 지원할 군사력이 없다면 자칫하면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 그런데도 문 특보는 “우리는 북한의 위협이 있다면 미국과 같이 갈 수밖에 없지만,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특정 블록의 편에 설 필요가 없다”면서 한·미동맹 파기까지 주장했다. 문 특보의 이런 발언은 장기적으로 한·미동맹을 다자안보협력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지만, 이는 동북아 국제정세의 패권 경쟁을 고려하지 않은 ‘공상(空想)’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이 과연 다자안보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까.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국가들이 다자안보협력체제를 구축한 사례는 지금까지 없다. 유럽 국가들은 냉전 종식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러시아의 위협에 대비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유지하고 있다.

한·미동맹이 흔들리는 또 다른 이유는 문재인 정부의 지나친 대북 접근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월 15일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 수립 70주년 기념사에서 “남북 관계 발전은 북·미 관계 진전의 부수적 효과가 아니다”라고 밝혀 남북 협력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문재인 정부는 이번 대북 특사단을 통해 남북 연락사무소 설치, 남북 철도와 도로 연결, 3차 남북 정상회담 등을 미국의 묵시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밀고 나가고 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대한 제재 조치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면서 미국과 유엔에 예외조치 인정 등을 요구하며 해제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문 특보는 “북핵에 모든 것을 걸면 남북 관계가 잘 안 된다”면서 “북·미 관계가 잘 안 된다면 남북 관계를 진전시켜 북·미 관계가 잘 되도록 하는 혁신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의 이런 대북 유화정책이 한·미동맹을 와해시키는 단초가 될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이런 대북 접근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국무부는 이번 대북 특사단의 방북 결과에 대해 “남북 관계 개선과 북한 핵문제 해결은 별개로 진전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데니스 와일더 전 백악관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남북 협력의 방법과 속도가 미·한 관계를 분열시킬 위험성이 있다”고 밝혔다. 대니얼 스나이더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부소장도 “문재인 정부는 대북 협력의 길로 나아가길 원하겠지만, 미국과 동시에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가능할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벤 카딘 민주당 상원의원은 “북한은 비핵화 의도가 없으며 국제사회의 제재 완화를 위해 대화에 나선 것”이라면서 “남북 정상회담이 비핵화를 진전시키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아무튼 맥아더 장군이 미군과 한국군의 협력으로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탈환을 했듯이 한·미동맹은 그 어느 때보다 한·미연합사의 구호인 ‘같이 갑시다(WE GO TOGETHER)’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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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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