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훈련소의 훈련병들. ⓒphoto 뉴시스
논산훈련소의 훈련병들. ⓒphoto 뉴시스

국방개혁 2.0의 세부안이 발표된 지 2개월. 우리 군에는 강한 전투력이나 독자적 작전능력이 주어지는 대신 엄청난 폭탄이 떨어졌다. 병력감축과 병역기간 단축이다. 이에 대해 우리 군은 첨단무기의 개발과 구매, 간부의 충원으로 대응하겠다며 개혁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과연 이게 옳은 처방일까?

징병제의 명암

사실 징병제에 기반하는 군대는 통상 병력의 부족 때문에 고생할 일이 없어야 정상이다. 무한정으로 병력을 끌어다쓰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 이후 나폴레옹 군대가 유럽을 휩쓸었던 이유도 징병제 덕분이었다. 전제군주정 국가들은 용병이나 전문군인에게만 의존하여 전쟁을 수행하였기에 병력이 소진되면 이를 충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민주정을 수립한 프랑스는 뜨거운 애국심을 바탕으로 국민들이 기꺼이 군대에 합류하면서 전투로 병력이 손실되어도 곧바로 보충이 되었다. 요즘말로 치면 소위 ‘치트키’를 사용한 셈이다.

물론 징병제의 가장 큰 문제는 병력의 전문성이다. 민간인을 짧은 시간 내에 군인으로 만들어서 전쟁터로 내보내야만 했기 때문에 다소 강압적이더라도 신속하게 ‘군인화’시키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이런 시스템을 잘 활용한 것은 미국이었다. 1차 대전에 참전을 결정할 당시만 해도 미군은 그다지 강한 군대가 아니었다. 1917년 미 육군의 병력수는 20만명 정도였는데, 그나마 8만명은 주 방위군이었다.

1차대전으로 병력을 모을 당시 미군의 징집 대상자는 2400만명 정도. 이 중 전시 징집으로 미 육군에 약 270만명이 공급되었다. 여기에 더해진 자원 입대자는 30만명이 조금 넘는 수준. 여기다 육군의 간부들까지 충원되면서 미 육군은 삽시간에 400만명까지 증강되었다. 이 가운데 약 절반가량이 전쟁터로 파병됐다. 당시 전쟁성 장관인 뉴턴 베이커의 말에 따르면 18세부터 31세 사이의 미국 남성인구 가운데 25%가 군복무를 했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양성하여 투입하다 보니 병사들의 숙련도는 4년간 싸워온 유럽의 병사들에 비해 형편없었다. 미군은 1917년 후반부터 전선에 투입되기 시작하여 1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불과 2년도 싸우지 못했지만, 전사자는 무려 10만명에 이르렀다. 이런 패턴은 2차대전 때도 반복되었다. 전쟁을 시작하기 전의 미군 병력은 50만명으로 형편없었지만, 종전에 다가와서는 무려 1000만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병력의 숙련도는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첨단무기만 있으면 백전백승?

현대전은 첨단무기의 경연장이라고 말한다. ‘스텔스 전투기와 폭격기, 그리고 크루즈미사일들이 개전 초에 적 방공망을 침투해 들어가 적 지휘구조와 산업시설을 무력화하고, 이후 엄청난 항공전력이 투입되어 적진을 초토화시킨다. 엄청난 공습으로 적 병력을 모두 붕괴시켜 놓은 다음에 지상군은 폐허가 된 적진을 어슬렁거리고 지나가다가 혹시라도 살아남은 적 병력이 있으면 그냥 쓰레기 줍듯이 처리한다.’

이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대전에 대해서 갖는 선입견이다. 실제 1991년 걸프전에서는 무려 38일간 공습만 지속하다가 지상전을 시작한 지 불과 100시간 만에 전투를 종결시켰다. 미군은 다국적군 75만명 가운데 2만~3만명의 사상자가 나올 수도 있다며 걱정을 했지만, 실제 전사자는 147명에 불과했다. 제2의 베트남전쟁을 걱정했던 이라크전이 기적적으로 속전속결로 끝나자 세계 각국은 “전쟁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며 첨단과학기술에 바탕한 무기체계들을 극찬했다.

걸프전의 결과, 최신예 무기만 잔뜩 배치하면 이제 지상군 따위는 없어도 된다는 무기체계 만능주의가 세계 각국을 유혹했다. 전략이나 전술, 리더십보다는 무기체계만 있으면 된다는 극단적 사고까지 등장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애초에 국방개혁 2.0의 원판인 국방개혁 2020도 사실은 첨단무기만 있으면 병력쯤이야 줄여도 된다는 사고에 바탕하고 있다.

미국은 2003년 이라크 침공에서도 이전의 성과를 반복했다. 이라크군을 쿠웨이트에서 몰아내는 것이 목표였던 1991년과는 달리 미군은 이라크 영토로 진격해야만 했다. 그래서 수도인 바그다드를 점령하기까지 지상전은 무려 21일이나 소요되었다. 작전규모가 커졌음에도 다국적군 병력은 불과 30만명이었다. 치열한 전투에도 전사자는 172명에 그쳤다. 만족한 부시 대통령은 2003년 5월 1일 이라크전에서 승리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였다. 2010년 이라크에서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무려 4000명이 넘는 전사자를 기록했다. 안정화 작전을 가볍게 여기고 충분한 병력을 파견하지 못하여 피해를 더 키웠다. 여전히 병력 수가 중요하다는 교훈이 새롭게 도출된 것이다.

여전히 병력은 전쟁의 승리를 좌우하는 관건이 된다. 군사학의 고전 ‘전쟁론’으로 전쟁의 본질을 파헤친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3가지로 얘기한다. 첫째 적의 병력을 섬멸하는 것, 둘째 적의 수도를 점령하는 것, 셋째 적의 동맹관계를 끊게 만드는 것 등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이야말로 그 3가지 조건에 불리하게 다가가고 있다. 우선 수도인 서울이 군사분계선과 가까우니 수도를 점령당하거나 파괴당하기 쉬운 거리에 있다. 그래서 북한이 1994년 서울 불바다와 같은 협박을 하면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6·25전쟁 당시에도 3일 만에 서울을 빼앗겼던 역사가 있다.

동맹관계도 위태롭다. 비록 현 정부는 한·미 안보동맹은 확고하다고 하고 있지만, 전작권 전환 이슈로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연합작전이 얼마나 효율적이 될지 걱정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예측불가능한 트럼프 정권은 정치적 위기의 타계를 위하여 북한과 협상에 목을 매고 있다. 성과가 나온다면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서슴지 않고 할 태세다.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가 없음에도 한·미연합훈련을 중단시킨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트럼프 정권의 행태가 오죽 걱정스러웠으면 얼마 전 작고한 매케인 상원국방위원장은 주한미군 감축이 불가능하도록 국방수권법에 병력수를 못 박았다. 동맹의 견고함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대체복무까지 설상가상

그리고 남은 것이 이제 병력의 섬멸이다. 현재 우리 군 병력은 61만8000여명이다. 국방부는 국방백서를 통해 북한군의 병력을 128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인구수는 대한민국이 5000만명을 넘고 북한은 그 절반인 2500만명 수준인데, 병력수는 우리가 오히려 2분의 1 수준이다. 이는 북한이 병영국가인 데다가 병력수를 유지하기 위해 기존에 10년의 복무기간을 채운 인원들을 전역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비군의 숫자에서 심각한 차이는 개전 초에 우리 군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요컨대 클라우제비츠가 지적한 3가지 승리의 요건에 있어서 북한이 유리한 상황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리가 국방개혁을 통하여 2022년까지 병력 11만8000여명을 더 감축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애초에 인구가 자연적으로 감소함에 따라 2023년부터 병력자원이 급격히 감소하는 점을 감안한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는 하다. 문제는 병력 부족으로 인한 불리함이다. 기존에는 병사 한 명이 2명의 적과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제는 한 명이 적 3명과 싸워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물론 우리가 인구수가 많기 때문에 예비군 동원에 전시징집까지 합친다면 결코 적지 않은 병력을 보유할 수 있지만, 여성도 복무할 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가 병영인 북한에 비한다면 압도할 만한 숫자는 아니다.

이렇게 병력이 부족한데도 정부는 국방개혁 2.0을 통해서 징집병의 복무기간을 3개월이나 감축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21개월을 복무하는 병사들이 이제 18개월만 복무하면 된다. 문제는 복무기간은 병력수와 연계된다는 데 있다. 즉 현재 병력규모에서 의무복무자의 복무기간을 1개월 감축할 때마다 약 1만여명의 병력이 감축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3개월을 줄이니 무려 3만여명이 줄어드는 효과를 가져온다. 기존의 11만8000여명의 감축안을 감안한다면 실제로는 약 15만명의 병력이 줄어드는 셈이다.

게다가 현역복무 병력이 줄어들 위험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이다. 현 정부는 종교나 신념에 바탕한 병역거부에 대하여 대체복무제도를 인정하는 방침을 확정했다. 지난 6월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 없는 병역법 조항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데 따른 대응이다. 이에 따라 군복무를 대신하여 소방서, 교도소, 국공립병원,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27개월(현역복무의 1.5배)이나 36개월(현역복무의 2배)을 복무하는 대체복무 방안을 병역법에 포함시키는 것을 국회에서 검토 중이다. 하지만 병역 의무에서 예외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그동안 존재하지 않던 병역거부 풍토가 만들어질 것이 우려된다.

간부와 군무원 증원으로 버틴다

이러한 병력 감축에 대한 해결책으로 우리 군은 이전부터 군 간부, 즉 하사 이상의 직업군인을 늘리겠다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 국방개혁안의 개요 이외에는 구체적인 방안이 나온 것이 없지만, 이전 정부의 개혁안에서 힌트를 찾아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방개혁 14-30’에 의하면 간부 비율은 2012년 28.9%에서 2025년에는 40%까지 늘어날 예정이었다. 장교는 7만1000명에서 7만명으로 조정되는 대신, 부사관은 11만6000명에서 15만2000명으로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현재도 그러한 기조가 이어지는 경우 대략 3만명 내외 수준에서 부사관이 늘어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로써는 실질적으로 15만명 가량 줄어드는 병력 감축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사단병력을 약 1만명으로 산정하면 대략 11개의 사단에 해당하는 병력이 줄어드는 셈이기 때문이다. 줄어드는 병력을 대신하여 국방부는 민간인 채용을 늘리겠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국방인력 대비 민간인력은 5% 수준이지만 이를 1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한다. 그 결과 약 1만명 정도의 군무원이 추가채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것이 과연 적절한 대안이냐는 것이다. 우선 민간인 증원의 기조도 걱정이다. 국방부는 증원된 민간인(즉 군무원)을 전문성과 연속성을 필요로 하는 비전투 분야의 군인 직위를 대체하는 데 투입한다고 말한다. 대신 군인을 보병이나 기계화 보병 부대 등 전투부대로 보내 전투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얘기지만 실상은 다르다. 소위 비전투부대라고 해서 민간인으로 채워도 되는 게 아니다. 전선에서 싸우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필요한 물자와 탄약을 끊임없이 전투장소로 보급하는 일인데, 이는 당연히 군인의 몫이다. 특히 첨단장비가 늘어날수록 기술지원은 핵심이다. 전시가 되면 총알이 빗발치는 속에서도 이런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또한 군무원 증원 이외에도 부대 환경미화와 같은 사역에 해당하는 행위를 더 이상 병사에게 부담시키지 않고 외부 용역으로 돌리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미군의 경우처럼 부대의 경비임무를 민간경비업체에 맡기는 일도 있을 수 있다. 분명 이러한 변화는 군대가 전투 이외의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나, 현실의 적용가능성은 생각해보지 않은 듯하다. 미국처럼 대규모 부대가 한 개의 주둔지에 모여 있다면 모를까, 우리 군부대는 전국 수백여 곳에 흩어져 있어서 부대마다 일일이 이러한 용역을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실상 반모병제로 향하는 정책들

부사관 증원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올해 하사 1호봉의 기본급은 145만8800원이다. 올해 월 최저임금인 157만3770원(주 40시간·월 209시간 기준, 유급 주휴 포함)보다도 낮은 금액이다. 물론 기본급 외에도 추가수당으로 어느 정도 보충이 된다. 게다가 호봉제도가 있어 연차가 쌓이면 월급도 인상된다. 그러나 기본급은 중사 10호봉이나 되어야 201만7700원으로 200만원이 넘는다. 물론 직업군인은 복지혜택도 있고 안정적인 직업이니까 어느 정도 불이익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러한 혜택이 미치려면 장기복무자로 인정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10명 중 4명만이 장기복무자가 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육군의 경우 2012년 임관부사관은 장기복무지원자 가운데 무려 80%가 선발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부사관 수를 늘리는 만큼 실제 장기복무자가 늘어나지 않으면 비정규직의 숫자만 늘리는 셈이 된다. 물론 청년취업난으로 부사관 지원율이 높아진다고는 하지만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다면 그저 ‘아르바이트 솔저’를 늘리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 병력 확보를 위해서 전문하사제도 같은 어중간한 제도들이 생겨났다. 자신이 근무하던 부대에서 하사로 신분을 전환하여 최소 6개월에서 최대 18개월까지 복무하는 것이다. 전차조종수 등 특수한 임무의 경우에는 유급지원병제도가 있어 의무복무 후 하사로 15개월을 추가근무한다. 특히 15개월 동안 근무하는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 하사 3호봉에 장려수당까지 합쳐 월 242만원까지 지급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유인책에도 불구하고 전문하사제도는 그다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애초에 부대의 근무환경과 병영문화가 중요하기에 조건이 맞지 않으면 전문하사직도 지원을 잘 하지 않는다.

결국 간부의 확충은 그만큼 많은 비용의 상승을 의미한다. 월급뿐만 아니라 연금과 다양한 복지재원을 생각하면 실제 들어가는 비용은 월급의 수배에 이른다. 게다가 의무복무자의 월급도 올라 올해부터 병장은 월급이 40만5700원으로 인상되었고 2022년까지 67만6100원으로 인상된다. 물론 이 또한 최저임금에 미치지도 못하는 비용이지만 고스란히 국방예산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인건비의 고비용 구조가 가속되면 아무리 국방예산이 올라도 실제 무기체계를 구매하고 유지·운용하기 위한 비용은 오히려 줄어들 수밖에 없다. 병력은 줄어드는데 인건비는 더욱 증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일까? 언젠가는 우리 군도 모병제를 채택해야만 할 것이다. 다만 안보위협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모병제는 답이 될 수 없다. 결국 징병제를 채택하더라도 직업군인 수를 늘려 대응해야 한다. 이 기조가 바뀔 수는 없다. 우수한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서 고비용구조가 되는 것도 막기 어렵다. 결국 병력수의 문제는 전시 병력동원 문제로 해결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의 경우, 현역은 전쟁 초기에 증원이 도착할 때까지 적의 진격을 저지하는 임무를 수행하며, 예비군이 실제 주력병력이 되어 전쟁을 수행한다. 미군도 부족한 현역병력을 주방위군이나 예비군으로 보충한다.

다만 지금처럼 1년에 며칠 모여 병 기본훈련만을 반복하는 수준의 예비군으로는 제대로 된 전력이 될 수 없다. 평시에 호흡을 맞추어 부대로서 통합된 능력을 갖춰야 전시에 재빨리 동원하여 싸울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실제 전쟁에 싸울 수 있는 예비군을 키워야 한다. 이 역시 치장장비와 물자를 늘리고 인건비를 더 들여 실전적인 부대로 편성할 수 있도록 자주 모여야 한다. 기존처럼 연차별로 전역자를 동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원자 위주로 예비군을 구성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만하다. 국가방어의 의지를 가지고 충분한 체력과 전투기술을 갖춘 인원이라면 파트타임이라도 훌륭한 전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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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WMD대응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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