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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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중앙회가 대주주로 있는 홈쇼핑업체인 홈앤쇼핑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홈앤쇼핑의 채용비리와 신사옥 입찰 비리 의혹이 제기된 이후 강도 높은 경찰 수사가 이어졌고 결국 강남훈 전 대표는 지난 3월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강 전 대표는 2012년 개국 초기부터 홈앤쇼핑의 경영을 책임져왔고 2014년 4월과 2017년 5월 두 차례 연임에 성공해 2020년까지 임기가 연장됐다. 하지만 직원 채용비리, 입찰비리 등 각종 의혹의 중심에 서면서 결국 불명예 퇴진의 길을 밟게 됐다.

강남훈 전 대표의 급작스러운 사퇴를 두고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했다. 홈앤쇼핑이 각종 비리 의혹을 사게 되자 지난 3월 강 전 대표의 해임 안건을 다루기 위한 홈앤쇼핑 임시 이사회가 열렸다.

이 이사회가 중소기업유통센터와 농협경제지주 등에서 추천을 받은 사외이사들의 요구로 열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소벤처기업부의 홈앤쇼핑에 대한 인사·경영 개입 논란이 불거졌다. 강 전 대표는 지난 3월 21일 열린 홈앤쇼핑 임시 이사회 개회에 앞서 “주주들과 이사들 간 불필요한 오해를 막고 부담을 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스스로 대표이사 및 이사 사임계를 제출한다”고 밝히며 사퇴했다.

강남훈 전 대표 정권 표적?

업계에서는 “강 전 대표가 현 정권의 표적이 됐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강 전 대표의 ‘인간관계’ 때문이다. 강 전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담당자이자 노 전 대통령을 자살로 몰고 갔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인규 전 대검 중앙수사부장과 서울 경동고 동창이다. 여기에 강 전 대표 체제에서 이인규 변호사(전 중수부장)가 중소기업중앙회 자문위원, 홈앤쇼핑 사외이사, 중소기업연구원 이사로 재직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강 전 대표의 사퇴 배경에 대한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강 전 대표와 이인규 변호사의 관계는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됐다. 2017년 10월 16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국감 증인으로 참석한 강 전 대표와의 질의를 통해 강 전 대표와 이인규 변호사 간 인사청탁 등 부당행위가 오갔음을 확인했다. 당시 이 변호사의 처조카 김모씨가 홈앤쇼핑에 근무 중인 것으로 밝혀졌고 이에 대해 강 전 대표는 “인사청탁은 아니지만 이 변호사 소개로 들어온 것은 맞다”고 답해 문제를 일부 인정했다.

강 전 대표의 사퇴 이후 홈앤쇼핑은 정통 LG맨 출신인 최종삼 현 대표를 구원투수로 영입했다. 최종삼 대표는 GS홈쇼핑의 전신인 LG홈쇼핑에서 경영지원을 총괄하는 등 업계 경력이 풍부해 난국을 돌파할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수장이 바뀌었지만 홈앤쇼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새로운 대표 체제에서도 그동안 숨겨져 있던 인사 관련 의혹들이 속속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현 정권 낙하산 인사들이 홈앤쇼핑 안팎을 장악하고 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홈앤쇼핑 내부에서는 ‘홈앤쇼핑은 민간기업이지만 정권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온다.

사실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건 문재인 정부에서도 ‘낙하산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야당은 연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낙하산 인사가 공공기관을 장악하고 있다’며 거센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바른미래당이 지난 9월 4일 발표한 ‘공공기관 친문 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1년4개월 동안 340개 공공기관에서 새로 임명된 임원은 1651명이다. 바른미래당은 이들 중 365명(22%)이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라고 주장했다.

산술적으로 따져보면 지난 1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낙하산 인사를 투입한 셈이다. 전문성 없이 문재인 대선캠프나 시민단체 근무 이력만으로 공공기관 요직을 차지한 이들이 상당수라는 지적도 나왔다.

민간기업인 홈앤쇼핑의 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소기업 제품의 판로확장을 위해 설립된 홈앤쇼핑의 최대주주는 중소기업중앙회로 지분 32.93%를 갖고 있다. 이밖에 농협경제지주 15.0%, 중소기업은행 15.0%, 중소기업유통센터 15.0% 등이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중기유통센터와 기업은행은 공공기관이지만 이들의 보유지분이 총 30%에 불과해 홈앤쇼핑은 공공기관 지정요건에 미달하는 민간기업이다.(공공기관으로 지정되려면 위탁사업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율이 50%를 넘어야 한다.)

하지만 홈앤쇼핑은 중기회 지분을 포함해 공공 성격의 지분이 78%에 달해 그동안 공공기관 성격이 강한 기업으로 분류돼왔다. 강남훈 전 대표의 퇴진 과정에서도 드러나듯 중기벤처부의 입김 역시 상당하다. 기자와 만난 홈앤쇼핑 관계자들은 “홈앤쇼핑이 정권의 외풍에 휘둘리는 건 한두 해 겪는 일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홈앤쇼핑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정권 낙하산으로는 이인규 전 중수부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며 “이 전 중수부장이 중소기업연구원, 홈앤쇼핑 사외이사로 일할 수 있었던 배경에 ‘친이명박계 기업인’으로 알려진 김기문 전 중기회 회장이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 김기문 전 회장이 이 전 중수부장을 중소기업연구원 사외이사로 적극 추천한 것은 지난해 국감을 통해서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인사는 이어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 (홈앤쇼핑) 사외이사로 있을 때에도 이를 계기로 (홈앤쇼핑 내부가) 정권에 가까운 이들로 채워지긴 했다”면서 “하지만 정권교체 이후에 낙하산 인사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홈앤쇼핑 사정에 밝은 인사들에 따르면 현재 홈앤쇼핑은 외풍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고 한다. 지난 8월 신영선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공정위 퇴직 간부들을 대기업 등에 ‘특혜 채용’시켰다는 혐의로 구속되는 등 중기회가 혼란에 빠지면서다. 현직 상근부회장이 구속된 것은 중기회 설립 이래 처음이다.

일각에서는 홈앤쇼핑의 대주주인 중기회가 휘청거리고 있는 틈을 타 중기벤처부와 정권 낙하산 인사가 홈앤쇼핑을 장악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홈앤쇼핑의 한 관계자는 “벤처부와 중기회 인사들이 홈앤쇼핑을 주무르고 있는데 그들의 손에서 만들어진 (홈앤쇼핑) 대표도 그들과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구조 아니겠는가”라며 “홈앤쇼핑 요직을 차지한 구성원을 잘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올해 들어 홈앤쇼핑 요직을 정부 여당 관련 인사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캠프·민평련계 출신 사외이사로

실제 주간조선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홈앤쇼핑 대표가 바뀐 뒤 지난 6월 새롭게 꾸려진 홈앤쇼핑 이사회에 특이점이 발견됐다.

정유섭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지난 6월 새롭게 홈앤쇼핑 사외이사로 임명된 이들 중에는 정권 낙하산으로 의심가는 이들이 많다. 가령 노승재씨는 2012년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대선 외곽조직으로 출범한 담쟁이포럼의 발기인으로 대선캠프 활동 이력이 있다. 또 최상명 우석대 교수는 김근태 민주주의연구소 소장을 역임했고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이끌던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계 주요 인사로 꼽힌다”고 밝혔다.

민간기업의 사외이사 자리에 특정 정당에 가까운 인사가 몰려 있는 것이 그저 우연일 뿐일까. 최근 홈앤쇼핑은 여당 출신 인사를 고문직으로 영입한 뒤 내부 규정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혜까지 제공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자유한국당 이철규 원내부대표는 지난 9월 2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홈앤쇼핑이 중소기업계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소수의 경영진들이 그 이익을 독점하고 급기야 집권여당의 당직자들을 고액의 연봉으로 낙하산 임용하는 추태까지 보였다”고 비판했다.

이철규 의원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김승남 전 의원, 김정호 전 정책위 부의장은 지난 2월부터 2개월여간 홈앤쇼핑의 비상임 고문으로 재직했다. 이들은 월급 2500만원, 법인카드(월 1000만원 한도), 차량(제네시스 EQ900), 운전기사 등을 제공받았다. 김 전 의원은 지난 3월 말, 김 전 부의장은 4월 초 고문직을 그만뒀다.

월급 2500만원에 법인카드까지 ‘펑펑’

주간조선은 이들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입수해 면밀히 들여다봤다. 정유섭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김승남 전 의원은 지난 3월 한 달 동안 총 480만원에 달하는 금액을 사용했다. 주로 서울 여의도 국회 일대 식당에서 사용한 내역이었다. 금액은 114만원(주점), 59만2000원(식당), 1만2200원(여의도 커피전문점) 등 다양했다.

김정호 전 부의장의 법인카드 사용내역(2월 28일~4월 12일)도 문제는 마찬가지다. 김 전 부의장은 이 기간 총 1076만원을 결제했다. 특히 3월 한 달 동안 사용한 법인카드 금액은 814만원에 달했다. 김 전 부의장 역시 서울 여의도와 마포구 일대 식당에서 사용한 내역이 많았다. 금액도 1200원(공항)에서 35만1000원(마트), 69만원(주점) 등 다양했다.

홈앤쇼핑은 2012년 영업 개시 이후 2016년 말 우선 주문 매출 2조원을 달성했고 지난해 매출액은 약 4200억원, 영업이익은 470억원을 기록했다.

비상근으로 일하고 있었던 홈앤쇼핑의 두 고문은 월급 2500만원에 월 1000만원 한도의 법인카드까지 챙겼지만 아무도 이를 문제 삼지 못했다. 실제로 이들에게 주어진 혜택은 이전 비상임고문에 비하면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2017년 홈앤쇼핑에서 비상임 고문으로 재직한 채모씨의 경우 월 급여로 1000만원을 받았고 차량 지원 등은 없었다. 홈앤쇼핑의 임원보수 및 처우규정에 따르면 고문 또는 자문역에 대한 급여 및 기타 복리후생 등은 위촉 시 별도로 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지나친 대우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두 ‘황제 고문’은 그리 오래 자리를 지키지는 못했다. 홈앤쇼핑 내부에서 이들의 과도한 법인카드 사용 문제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자 두 고문이 스스로 물러났다는 후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홈앤쇼핑의 관계자는 “비상임고문에게 고급 차량을 지원하고 월 1000만원 한도의 법인카드까지 제공한 것은 홈앤쇼핑 규정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혜다. 과도한 법인카드 사용내역에 대한 내부 문제제기가 생기자 (두 고문이) 자진 사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그동안 어떤 활동을 했던 것일까. 이들의 과도한 법인카드 사용내역에 비해 활동은 미미했다. 정유섭 의원실 관계자는 “고문 활동 내역 자료를 요청했지만 특별한 활동 내역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홈앤쇼핑 ‘황제 고문’ 논란과 사퇴 배경에 대해 김승남 전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홈앤쇼핑 고문직은 강 전 대표가 프랜차이즈 사업 영역 확대에 따른 자문 등을 요청해 수락하게 된 것이다”라며 “강 전 대표의 사퇴 이후 고문활동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판단으로 바로 그만둔 것”이라고 밝혔다.

홈쇼핑업계에서 낙하산 인사 논란이 홈앤쇼핑만의 일은 아니다. 홈쇼핑업계에서는 “정권교체 이후 정치권의 간섭이 지나치게 심해지고 있다”는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3월 취임한 조순용 한국TV홈쇼핑협회 회장도 김대중 정권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정치인 출신으로,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정책자문단 ‘10년의 힘 위원회’에 이름을 올렸었다. 전임 회장이 모두 관련 기관에 종사했던, 정권과는 무관한 전문가들이었던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중기벤처부 산하 기타공공기관인 공영홈쇼핑도 지난 7월 문재인 캠프 출신인 광고인 최창희씨를 새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최씨는 TBWA코리아 대표를 지낸 광고인으로, 유통·홈쇼핑 관련 이력은 없다. 이 때문에 전형적인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을 샀다.

야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은 “적폐청산을 기치로 들어선 정권이지만 현 정부의 적폐청산이 ‘내로남불’이 아닌가 우려된다. 정권 낙하산이 공공기관, 단체장 등을 장악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 민간기업까지 침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 의원은 “지난해 정권 교체 이후 홈앤쇼핑의 고문, 사외이사 자리를 민주당 관련 인사들이 꿰차고 있는 게 과연 우연의 결과일까”라며 “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 자리에 오게 됐는지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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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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