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9월 20일 백두산 천지를 등반하자 중국 일부 네티즌들이 거친 반응을 보이고 있다. 9월 25일 중국 최대 검색엔진 바이두(百度)에 달린 댓글들은 이랬다.

“영토를 요구한다는 뜻이 있는 것이다. 동북지방에 주둔하는 군대를 증가시켜야 한다. 왜 토론들을 안 벌이냐?”(닉네임 ‘삼국살v부운·三國殺v浮雲’)

“스스로 재수 없는 걸 찾아다니면, 재수 없게 살아야 하는 법이다.”(닉네임 ‘li864’)

“조선인 더하기 한국인 해봤자 장쑤(江蘇)성 인구도 안 된다. 중국이 접수하는 건 어떨까.”(닉네임 ‘초급·超級 ZHENGYUEAN’)

“남북 쌍방이 직접 이야기한다지만, 미국이 곁에서 간장을 치고 있네.”(닉네임 ‘boss2099’)

“문재음(文在淫)은 결국 노무현과 유사해질 것이다.”(닉네임 ‘늘 눈물이 고여 있는 눈동자·常含泪水的眼睛’)

“(문·김은) 두 마리의 파리.”(닉네임 ‘란저우 쇠고기 칼국수 88·蘭州牛肉拉麵 88’)

“조선 신화에 보면 백두산은 옛날 조선 민족의 발원 성지(聖地)다. 서방의 예루살렘에 해당한다.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닉네임 ‘중국·아프리카 우호의 사자·中非友好使者’)

중국의 메이저 온라인 네트워크인 텅쉰(騰迅·Tencent)에는 9월 19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발표를 인용해서 “파천황(破天荒·전례 없던 놀라운 일): 한국 총통 문재인이 20일 처음으로 창바이산(長白山·백두산을 중국 측이 부르는 이름)을 등정한다고 한다”는 예고 기사가 올라오기도 했다. 그 기사의 한 대목이다.

“중국인들은 모두 알고 있다. 한국 측이 백두산을 말할 때 무슨 뜻인가를. 백두산이 한민족의 마음속에서 무엇을 대표하는가를 중국인들은 모두 알고 있다. 남북 영도인들이 백두산을 등정한다는 것은 남북 민족의 통일을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미리 판단을 내려본다면, 반도의 남북이 만약 통일을 한다면 첫째, 창바이산 문제가 폭뢰(爆雷)가 될 것이다. 둘째, 동북지역의 출해구(出海口) 문제는 해결 전망이 없어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 이틀 동안의 한국 매체 보도를 보면 가장 많이 제기되는 용어가 한민족이라는 말이며, 민족에서 민족주의 사이의 거리는 한 걸음밖에 안 된다.”

경제뉴스를 주로 전하는 ‘중국경제 네트워크(中國經濟網)’도 9월 18일 한국 매체의 보도를 인용해서 “문재인 대통령은 등반 애호가로, 조선 측이 창바이산 등반 일정을 준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하면서 “문재인은 왜 백두산을 오르려고 하는가, 그 배후에는 대단히 깊은 정치적 함의가 깔려 있다”는 제목의 논평을 띄우기도 했다.

“백두산, 즉 광의의 창바이산은 중국 랴오닝(遼寧),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3개 성과 러시아 원동(遠東) 지역과 조선반도에 걸쳐 있는 산맥의 총칭이다. 협의의 창바이산은 바이산(白山)시 동남부 지역에 있는 중·조(中朝) 양국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사실상 금년 4월 문재인과 김정은이 판문점에서 제1차 회담을 개최할 때부터 ‘백두산’은 둘 사이의 화제였다.… 동북아 지역의 명산으로서 창바이산은 옛날부터 그 지역 각 민족의 숭배를 받아왔다. 만주족과 조선족 등 많은 민족들이 모두 민족의 기원을 이 산의 전설에 두고 있다. 그러나 어떤 학설에 따르면, 조선민족의 신화에 나오는 소위 ‘태백산’과 ‘백두산’은 지금의 조선 경내 묘향산을 가리키는 산이라고 한다.… 경계해야 할 것은 한국이 백두산에 대해 과분한 강조를 한다는 점이며, 한국 국내에 극단적 민족주의가 다시 대두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오랫동안 한국 내에는 일단의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은 조선에 대해 우호적인 군중들과 중복된다는 점이다. 문재인이 최근 조·한 회담 중에 민감한 백두산 문제를 빈번하게 제기하는 것은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의 신경을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 부득불 이 가능성을 방지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영화 ‘안시성’의 한 장면.
영화 ‘안시성’의 한 장면.

“광망협애한 민족주의” 비난

일부 중국인들은 9월 19일로 한국에서 관객수 210만을 넘어선 영화 ‘안시성’에 대해서도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의 메이저 문화 콘텐츠인 ‘더우반(豆瓣·콩꽃잎)’은 ‘안시성’을 겨냥해 “일부 영화가 일으키는 잡감(雜感)”이라는 장문의 평을 올렸다.

“모국(某國)의 광망협애(狂妄狹隘·미치고 망녕되며 협소하기 짝이 없는)한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모국 사람들의 실제 감정은 비교적 복잡해서, 일부의 민중들에게는 (중국에 대한) 우호의 감정도 있지만, 모국의 일부 사람들의 뼛속에 흐르는 광망협애하고 일말의 근거도 없는 무법적인 감상적 태도에는 (우리가) 본능적으로 반감을 가지게 된다. 이런 종류의 광망(狂妄)함은 심지어는 무지와 역사에 대한 혼란에 이르고 있다.… 근본적으로 말해서 모국의 항일(抗日) 드라마들은 열혈적인 민족주의가 만들어낸 것들로, 우리(중국인들)에게는 웃음거리일 뿐이다. 그런데도 모국의 지식분자와 사학자들은 민족의 우월감으로 두 눈을 가리고, 방문좌도(旁門左道·정당한 길이 아닌 잘못된 길)를 취해 자신들의 깊은 믿음을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

그런가 하면, 중국 최대의 검색엔진 바이두(百度)는 안시성 성주 양만춘(楊萬春)에 대해서도 이상한 주장을 폈다. “원래는 ‘梁萬春’이었으나 ‘梁’의 한국어 발음 ‘양’과 ‘楊’의 한국어 발음 ‘양’이 같아서 잘못 전해진 것이다. 양만춘은 전설의 고구려 안시성 성주였으나 근대 애국 계몽운동 과정에서 신채호 등의 선전에 따라 조선반도의 민족영웅으로 바뀌었고, 최근 들어서는 한국의 구축함 이름에까지 쓰이게 됐다.” 바이두(百度) 쯔다오(知道·지식백과)의 주장에 따르면 “안시성 성주가 양만춘이라는 주장은 1553년 푸젠(福建) 사람 슝다무(熊大木)가 쓴 ‘당서지전통속연의(唐書志傳通俗演義)’에 나오는 양만춘(梁萬春)이라는 이름이 원래 조선에 전해 내려오던 ‘당 태종이 화살에 맞아 눈을 잃다’라는 전설과 결합돼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양만춘 논란의 진실

양만춘이 실제 인물이 아니라 명대 중국 소설에 나오는 이름이며, 이것이 조선왕조 말에 한반도로 전해졌다는 바이두 지식백과의 주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놀랍게도 2013년 명지대학교 국문과 모 교수가 교내연구비 지원사업에 따라 작성한 논문 ‘안시성 성주 성명 양만춘 고증(Ⅰ)’이라는 논문의 일부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중국 검색엔진 바이두 주장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교수의 양만춘 성명 고증은 “조선 중·후기의 다양한 문헌들을 검토해보면 조선의 지식인 중에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5년 전부터 중국에 다녀온 사신들을 통해 안시성주의 성명이 ‘양만춘’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경우가 있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논문은 중국 검색엔진 바이두의 주장과는 달리 양만춘이라는 안시성 성주 이름이 ‘당서연의’라는 소설에서 먼저 유래한 것이 아니라 “임란 발발 이후인 1593년 선조 26년부터 조선에 출정을 온 명나라 장수들을 통해 안시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라는 사실이 폭넓게 알려지게 됐으며, 그 과정에서 ‘당서연의’에 안시성주의 이름이 양만춘(梁萬春)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아울러 알려지게 됐다”고 고증하고 있다.

조선일보 2008년 8월 6일자에 실린 ‘이덕일 사랑(舍廊)’의 필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당 태종의 눈을 쏘아 맞힌 안시성주가 양만춘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으나 정작 ‘삼국사기’나 중국의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등에는 그 이름이 전하지 않는다”고 소개하고, “조선의 윤기(尹耆·1741~1826)가 ‘무명자집(無名子集)’에서 ‘당시의 사관들이 중국을 위해서 휘(諱·꺼려서 쓰지 않음)했을 것’이라고 추측한 것이 맞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덕일 소장에 따르면 양만춘이라는 이름은 안정복(安鼎福)의 ‘동사강목(東史綱目)’을 비롯한 많은 조선시대 문적들에 나온다. 특히 이익(李瀷)은 ‘성호사설’에서 “내가 명나라 학자 하맹춘(何孟春)의 ‘여동서록(餘冬序錄)’을 상고해보니 안시성 장수를 양만춘이라고 썼다”고 적었다고 한다. 이덕일 소장은 “당 태종의 눈이 양만춘의 화살에 떨어진 사실은 고려 말에도 알려져 있었다”고 강조하면서 김창흡(金昌翕·1653~1722)이라는 사람은 ‘천추에 대담한 양만춘이 용의 수염 눈동자를 화살 한 대에 떨어뜨렸네’라는 한시를 남겼다고 전했다.

문·김의 천지 등정도 비난

당 태종의 공격으로 시작된 안시성전투는 서기 645년 고구려 보장왕 4년에 일어난 전쟁이다. 당시 태종 이세민(李世民)이 50만 이상의 병력을 동원해서 88일간 안시성을 공격하다가 패전하고 철군했다는 사실은 중국 측 기록들도 인정하고 있다. 다만 불과 23년 후 고구려가 멸망하고, 그 뒤를 이은 고려와 조선왕조, 특히 중국의 유교를 국가철학으로 삼은 조선의 문화사대주의 속에서 당 황제의 눈을 쏘아 맞힌 안시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라는 기록은 유지하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다가 조선 말 고증을 바탕으로 하는 실학의 흥기와 함께 양만춘의 이름이 되살아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번에 올라간 백두산 천지는 북한과 중국이 1964년 3월 20일 베이징(北京)에서 체결한 ‘중·조변계의정서(中朝邊界議定書)’에 따라 중국이 전체 면적의 54.5%를 북한의 영토로 인정한 곳이다. 정당한 국제법에 따라 획정된 한반도의 일부인 천지에 남북한 정치 지도자가 등정한 데 대해 중국인들이 민족주의를 걸어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우리 해군이 양만춘의 이름을 국산 구축함에 사용했다고도 시비를 걸고 있다. 중국인들의 편협한 민족주의야말로 실로 문제이며, 동아시아 평화 안정에 커다란 장애물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박승준 아시아 리스크 모니터 중국전략분석가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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