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드슨인스티튜트는 미래학자이자 군사전략 분석가인 허만 칸이 1961년 뉴욕에서 설립한 싱크탱크다. 정치적으로 보수를 지향하는 허드슨인스티튜트는 현재는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있다. 미 공군을 위한 정책 개발을 하고 있는 RAND연구소도 지원하고 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지난 10월 4일(현지시각) 허드슨인스티튜트에 나가 ‘미 행정부의 중국 정책’이라는 제목의 연설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부통령이 중국에 대한 미 행정부의 기본 시각을 정리해서 발표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펜스 부통령은 이 연설에서 중국에 대해 “도둑질(theft)”이라는 표현을 구사해가며 강력한 내용의 연설을 했다. 펜스 부통령은 연설 앞부분에서 미국과 중국의 전함이 지난 9월 30일 남중국해에서 거의 충돌할 뻔했던 사건을 상세하게 언급했다.

“베이징 당국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힘을 사용하고 있다. 중국 함정들은 정기적으로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주위를 순찰하고 있다. 센카쿠열도는 일본이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섬들이다. 2015년 백악관 로즈가든에 섰던 중국 지도자는 중국이 남중국해를 군사화할 의도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베이징은 더욱 발전한 대함(對艦)미사일과 대공(對空)미사일을 장착한 군함들을 남중국해의 인공섬에 건설한 중국 군사기지들에 이미 배치했다.… 중국의 공격적인 태도는 이번주에 잘 나타났다.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수행 중이던 미국의 구축함 디케이터(Decatur)함 45야드 거리로 중국 해군의 구축함이 다가왔다. 우리의 디케이터함은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긴급 기동을 해야 했다. 미 해군 함정은 중국 해군의 그런 공격행위에도 국제법이 허용하는 항행을 계속했다. 우리는 우리의 국익을 지킬 것이며 결코 위축되지 않을 것이다.”

미 해군이 제공한, 디케이터함과 중국의 구축함 란저우(蘭州)함의 대치 사진을 보면 길이 150여m의 최신 미사일 구축함 두 척이 초근접하는 장면과, 디케이터함이 충돌을 막기 위해 회피 기동하는 장면이 잘 나타나 있다. 미 해군은 란저우함이 선미로 디케이터함의 뱃머리 쪽을 가로막아 충돌 일보직전이었으며, 두 군함의 거리는 41m에 불과해서 충돌을 피하기 위해 디케이터함이 오른쪽으로 선수를 돌렸다고 주장했다. 펜스 부통령은 두 구축함 사이의 거리를 ‘45야드’라고 표현했는데 골프가 생활화되어 있는 미국인들에게 45야드라는 거리는 그린 주변에서 웨지 클럽으로 짧은 어프로치를 하는 거리로 인식되고 있다.

디케이터함은 당시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스프래틀리제도(중국명 난사군도·南沙群島)의 게이븐(중국명 난쉰자오·南薰礁), 존슨(중국명 츠과자오·赤瓜礁) 암초 12해리(약 22㎞) 이내 해역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수행 중이었다. 미국은 2015년 10월 구축한 라센함의 스프래틀리제도 진입을 시작으로 1개월에서 7개월 단위로 총 12차례 항행의 자유 작전을 수행했다. 디케이터함은 2016년 10월 21일에도 스프래틀리제도의 게이븐·존슨 암초에서 지그재그 기동을 수행한 바 있다.

펜스 부통령은 이번 연설에서 지난해 4월 6일과 11월 8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했다. 4월 6일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소유의 마라라고 골프장에서 서로 친근감을 과시한 때이고, 11월 8일은 트럼프가 베이징을 방문해서 황제 대접을 받던 날이다.

“지난 2년간 우리 대통령은 중화인민공화국 주석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서로 긴밀히 협조해왔다. 그러나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이런 연설을 하게 된 것은 미국 국민들이 왜 베이징 당국이 정치, 경제, 군사적, 그리고 선전 수단을 모두 동원해서 미국 내 자신들의 영향력과 이익을 확대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전보다 훨씬 적극적인 방식으로 우리 미국의 국내 정책과 정치에 간섭하려고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 행정부로서는 중국의 그런 행동에 결단력 있는 반응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원칙과 정책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펜스는 중국의 현대사와 자신의 개인적인 배경을 들어가며 연설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2차 대전이 시작됐을 때 우리 미국과 중국은 (독일·이탈리아·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항해서 싸우는 같은 편에 서 있었다. 전쟁 후반부까지도 우리 미국은 중국이 유엔의 일원이 될 뿐만 아니라 전후 세계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국가임을 확신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이 1949년 권력을 잡은 뒤 그들은 독재체제를 확산시키려는 노력을 시작했고, 불과 5년 뒤에 (펜스의 착각, 실제로는 1년 뒤 1950년) 우리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의 산과 계곡에서 서로 싸웠다. 나의 아버지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최전선에서 전투를 목격했다. 잔인한 한국전쟁은 미국과 중국의 상호관계를 멀어지게 만들었고, 그런 관계는 1972년에야 끝났다. 우리는 외교관계를 다시 수립했고, 경제를 서로 개방했고, 미국의 대학들은 중국의 새로운 세대와 엔지니어, 기업인, 학자, 관리들을 교육하기 시작했다. 소련이 붕괴되자 우리에게는 보다 자유로운 중국이 필요했다. 21세기로 들어오면서 미국은 낙관적인 생각에 따라 중국이 우리 경제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했고, 중국을 WTO(세계무역기구)로 안내했다.”

이어 펜스의 연설은 이런 내용으로 이어졌다.

“우리의 이전 정부들은 중국 내에서 어떤 형태로든 자유가 확산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희망은 경제적으로는 이루어지는 듯했으나 정치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다. 사유재산, 종교의 자유, 그리고 온 가족이 누리는 인권 자유가 잘 자리 잡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런 희망은 제대로 채워지지 않은 채 사라졌다. 자유의 꿈은 중국 국민들과는 아직도 거리가 멀다. 베이징 당국은 여전히 ‘개혁과 개방’을 할 것이라고 립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덩샤오핑(鄧小平)이 제시한 개혁개방 정책은 요즘에는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지난 10월 4일 허드슨인스티튜트에서 ‘미 행정부의 중국 정책’이라는 제목의 연설을 하고 있는 펜스 미 부통령. ⓒphoto 뉴시스
지난 10월 4일 허드슨인스티튜트에서 ‘미 행정부의 중국 정책’이라는 제목의 연설을 하고 있는 펜스 미 부통령. ⓒphoto 뉴시스

25년 만에 중국 재건축하겠다

“지난 17년간 중국의 GDP는 9배로 커져서 세계 2위의 경제 규모를 갖게 됐다. 이런 성공의 대부분은 중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투자로 이루어진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 관세와 환율 조작, 강제적인 기술이전, 지적재산권에 대한 절도행위, 그리고 산업 보조금 지급 등의 정책들을 마치 캔디를 뿌리듯이 사용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이런 정책들은 베이징에 산업기지를 만들었고, 주로 미국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중국의 그런 행동들은 미국에 무역적자를 안겨주었다. 지난해 미국의 중국에 대한 무역적자는 3750억달러에 달했다. 그 규모는 우리 미국의 전 세계에 대한 무역적자의 절반에 가까운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주에 ‘25년 만에 중국을 재건축(rebuild)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지금 중국공산당은 ‘메이드 인 차이나 2025(中國製造 2025)’라는 계획을 세우고, 전 세계 선진기술의 90%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로봇산업, 생명공학, 인공지능이 모두 포함돼 있다. 중국은 21세기의 경제 수준 확보를 위해 관리와 기업인들을 총동원하고,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 미국의 지적재산을 획득하려고 하고 있다. 베이징 당국은 많은 미국 기업인에게 중국 내에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대가로 미국 기업의 비밀을 넘겨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미국 기업을 사들이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악의 상황은 중국 정보기관들이 미국의 최첨단 군사 청사진들을 대규모로 도둑질(theft)해왔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아시아 곳곳에서 미국의 군사적 이점들을 잠식하려고 시도하고 있고, 그런 시도들은 육지에서, 바다에서, 그리고 우주에서 진행되고 있다. 중국이 원하는 것은 미국을 태평양 서쪽 지역에서 밀어내는 것이고, 미국이 이 지역의 동맹국들을 돕지 못하도록 차단하려고 하고 있다.”

중국의 ‘도둑질’ 공개 비판

펜스 부통령이 말한 ‘태평양 서쪽 지역’과 관련해 7년 전 오바마 행정부 당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이 지역의 우리의 전통적인 친구들, 일본과 한국, 필리핀, 태국, 오스트레일리아 등과 힘을 합해 자유로운 시장경제가 잘 발전하는 지대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은 2011년 10월 하와이 이스트웨스트센터에서 한 ‘21세기는 미국의 태평양 세기’라는 연설을 통해 그렇게 선언했다.

그로부터 7년이 흐른 시점에서 이뤄진 펜스 부통령의 이번 연설 내용으로 보면 오바마 행정부의 서태평양 중국 저지 정책은 제대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트럼프 행정부로 넘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국정 전반의 부족한 곳을 메우는 것이 주임무인 펜스 부통령이 직접 나서 중국에 대한 정책을 종합적으로 재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이번 연설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로서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이처럼 심상치 않은 대결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점을 잘 관찰해야 한다. 북한 핵 문제 해결과 대외정책 수립에 이러한 미·중 관계부터 심각하게 참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진행 중인 미·중 관계 흐름과는 동떨어진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구축 방안은 실효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많다. 혹시라도 우리 정부가 미국보다는 중국 쪽에 기울어지고 있다는 판단을 미국이 하게 될 경우 우리는 혹독한 부담을 떠안지 않을 수 없게 될 전망이다. 펜스 부통령의 연설뿐만 아니라 미국의 이스터블리시먼트(기성체제)에서 진행되는 중국에 대한 정책 변화의 흐름을 놓치지 말고 잘 지켜보아야 할 때다.

박승준 아시아 리스크 모니터 중국전략분석가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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