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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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은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두 번의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100석 넘는 의석을 가진 정당이 이렇게 짧은 기간 내에 두 차례 비대위 체제를 가동한 것은 헌정 사상 전례를 찾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그럼에도 이렇다 할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데에 있다. 대안을 찾고자 비대위 조직강화특위 위원으로 영입했던 전원책 변호사를 해촉한 사건은 당의 해묵은 논쟁들을 소환했다. 계파갈등, 기득권 지키기 같은 것들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김병준 비대위의 구심력이 약해지면서 전당대회의 조기개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자연스럽게 커졌다. 전당대회를 하루라도 빨리 개최하자고 주장하는 대표적 인사는 정우택 의원이다. 2017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지낸 그는 내년 초로 예정된 전당대회에 사실상 출사표를 던졌다. 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했다고 하지는 않지만, 출마를 전제로 각종 대외활동을 하고 있다. 언론 인터뷰도 부쩍 늘었다.

그는 오랜 기간 공직생활을 해서인지 무색무취하고 계파색이 비교적 뚜렷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 정치인이다. 정 의원의 최근 인터뷰를 보면 약간의 변화가 엿보인다. 언론을 통해 던지는 메시지는 거의 천편일률적이지만, 당내 문제에 각을 세우는 것이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느낌을 준다. 주간조선은 11월 19일 오후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 의원과 인터뷰했다. 그는 현 자유한국당의 문제에 대해 TV나 라디오 인터뷰에서 말한 것보다 훨씬 거침없는 발언들을 쏟아냈고, 이 과정에서 당내 몇몇 인사들의 실명까지 거론해가며 직격탄을 날렸다.

- 당대표 출마는 결심했나. “대표 출마 권유는 많이 받고 있다. 잘 알다시피 이번 당대표는 다음 총선을 치르는 당의 얼굴이 되니까 의원들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 현실적으로 전당대회는 언제가 적당하다고 보나. “비대위 체제가 길어질수록 당 지지율이 올라갈 계기가 마련되기 어렵다. 아무것도 진행되는 게 없다. 10월 1일부터 우리 당은 당협위원장이 없다. 당의 기본 조직은 253개의 당협이다. 전국의 당협위원장을 4개월을 공백 상태로 만들어놓는 것은 잘못됐다. 비대위가 구태여 253개 전체를 손을 댈 필요가 있었나 싶다. 비대위원장이 처음 들어오자마자 인적쇄신 하겠다고 하면 탄력을 받았을 텐데 100일이 지나서 인적쇄신을 한다고 하니 김이 빠졌다. 더군다나 ‘전원책 사태’ 이후로 동력을 잃어가는 상태에서 한다는 것은 힘들다. 전대를 통해서 당원들이 선출한 당대표 체제로 빨리 전환해야 한다.”

- 언론 인터뷰를 보니 ‘사수파’란 표현을 강조해 사용하고 있다. “제가 느끼기엔 김성태 원내대표나 탈당파 쪽에서는 이번 원내대표 선거나 당대표 선거를 친박과 비박의 구도로 몰고 가는데 내가 생각하기엔 친박은 최경환, 서청원이 그렇게(당원권 정지) 된 이후로 거의 없어졌다. 친박 대 비박 구도가 아니라 사수파와 탈당파의 대결이라는 것에 공감하는 의원들이 많다. 소위 탈당파가 당의 얼굴이 되어서는 선거 치르기가 어렵다.”

정 의원은 계파색이 옅다는 평가를 받긴 하지만 사실상 친박계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이번 당대표 선거가 친박 대 비박으로 가는 것을 상당히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는 친박·비박 구도가 아니라 자신처럼 자유한국당을 한 번도 떠나지 않고 지켜온 사수파와 당을 떠났다가 돌아온 탈당파로 대결 구도를 몰아가려는 것 같았다.

- 계파 갈등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 아닌가. “다시 한 번 계파 싸움을 하면 당이 유지될 수 없다. 김병준 비대위가 이것을 지혜롭게 넘겨야 하는데, 성급하게 칼을 들이댔다가는 위험해질 수 있다. 지금 잘못하면 내분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나는 ‘친박’과 ‘진박(진한 박근혜계)’을 구분한다. 친박은 박근혜 대통령이 여의도에 있을 때 그 주변에서 정치를 한 사람들이다. 진박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후에 국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청와대와 함께 의사결정을 한 사람들을 말한다. 적어도 진박들은 이번에 자제했으면 좋겠다. 김무성·유승민 같은 보수 분열을 주동했던 사람들, 양쪽 극단에 있는 사람들도 좀 빠져달라. 탈당파들이 얼굴로 나서면 차기 지역구에서 당선되기 어렵다. 총선에서 우리 당이 이겨야 우리가 뭘 해보는데 탈당파들이 자기만 살겠다고 당의 얼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이번만 좀 참아달라.”

- 계파 갈등이 없다고 하지만 결국 이번에 선출되는 당대표가 공천권을 가질 수밖에 없으니 계파 입장에서는 생존권이 걸린 문제 아닌가. “총선을 치르기 위해서는 소위 참아야 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너는 안 돼, 공천 탈락이야’ 이 얘기가 아니다. 분당 원인을 제공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불출마 선언을 했고(김무성 전 대표를 지칭) 다른 한 사람은 나가 있기 때문에 (유승민 바른미래당 전 대표를 지칭) 제가 할 말이 없다. 두 사람은 자연히 정리될 거라고 본다. 그런데 탄핵에 찬성했느냐 안 했느냐가 공천 기준은 아니다. 공천 때까지는 서로 융합해서 가는데 그때 가서 국민의 눈높이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본다.”

- 김무성 전 대표가 물밑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 같다. “H모씨하고 K모씨는 TV에 자주 나오지 않는 것이 당에 도움이 된다. 당원들 만나보면 가슴에 멍울이 져 있다. 지난 총선 때 180석까지 갈 수 있었는데 공천갈등으로 인해 대패한 것에서부터 자유한국당이 망가진 원인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김무성 전 대표는 부산에 가지 못한다. 분위기가 좋지 않다. 그런데 중앙에서는 언론에 자꾸 나온다. 만약 내가 불출마 선언을 했으면 의정활동만 열심히 할 것 같다. 이해를 못 하겠다. 이렇게 얘기하면 내가 무슨 사감이 있는 것 같지만 하늘에 맹세코 그런 건 없다. 불출마 선언을 했으면 본인이 먼저, 당은 젊은 세대들에 맡기고 어른으로서 앉아 있었으면 좋겠다. 요번에는 당이 화합과 융합으로 가야 한다. 그러려면 양쪽 극단에 있는 사람은 안 된다.”

앞서 언급했지만 자유한국당은 최근 2년 내 두 번의 비대위 체제를 겪었고 두 번의 비대위원장을 영입했다. 한 사람은 인명진 목사이고 다른 한 사람은 현 김병준 위원장이다. 그런 면에서 두 번의 비대위에 대한 비교·평가가 당내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인 목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영입됐는데, 인 목사를 위원장으로 앉힌 사람이 정 의원이다. 인 목사는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으로 대표되는 친박 3인방의 당원권을 정지한 바 있다.

- 2016년 12월 박 전 대통령 탄핵 직후에 원내대표가 됐다. 그때 상황이 어땠나. “대통령 탄핵이 12월 9일날 이뤄졌다. 내가 원내대표가 된 게 12월 16일 꼭 1주일 후였다. 얼떨결에 원내대표가 됐다. 원내대표실에 갔는데, 큰방에 아무도 없고 심지어 연필 한 개도 없는 거다. 그래서 ‘다 어디 갔나’ 물어보니, 사무처 직원들이 ‘새누리당 망했다’며 당무를 거부했다. 당 사무처가 마비가 된 상황이었다. 이미 의원들 한두 명이 탈당한 후였다. 언론에서는 연일 새누리당 언제 망하나는 기사가 나왔던 시점에서 원내대표가 되니까 앞이 깜깜했다. 그런데 당원들이 지켜주고 하늘이 도와줘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 인명진 목사를 비대위원장으로 직접 영입했는데, 당시 비대위를 어떻게 평가하나. “탄핵 후 바른정당으로 갈라져 나간 의원들이 29명이었다. 당초 쟤네(바른정당)들이 공식 발표한 것은 35명이었는데 결국 29명으로 정리됐다. 많은 사람들이 인명진 체제에 대해 찬반이 있지만, 잘한 것은 탈당을 막은 것이다. 인명진 위원장은 ‘탈당 의원 수의 앞자리가 3자이면 안 된다. 2자여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었다. 그렇게 설득한 결과 결국 29명이 갔다. 인 위원장이 그만둘 때까지 3명이 더 나가긴 했지만 도미노현상이 벌어졌으면 이 당은 무너졌다. 지금 생각해도 인 위원장이 안 왔으면 아찔하다. 그때는 죽느냐 사느냐는 순간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심폐소생술을 해서 살려내는 것이 인 위원장과 나의 소명이었다. 그 다음에 전당대회를 준비해 7월 3일 홍준표에게 당권을 넘겼다. 홍준표는 당을 재건하는 게 역할이었는데 6월 지방선거에서 폭삭 망했다. 그 이후로 지금의 비대위 체제가 이어진 것이다.”

- 당이 20% 지지율 언저리에 머물고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전열정비를 못 했기 때문이다. 삼국지를 보더라도 패하면 사상자를 추슬러서 다시 한 번 전열을 가다듬는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전열정비, 체제정비가 제대로 안 됐다. 재건 임무를 띤 홍준표 전 대표가 결과적으로 당을 폭망시켰다. 그 후에 비대위가 들어와서도 아직도 체제정비가 안 됐다. 이게 되어야만 싸울 수 있고, 여기서 야당다운 야당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비대위 체제를 마무리 짓고 당원들 손에 의해서 뽑힌 당대표가 당을 끌고 가야 한다.”

- 체제가 미비된 것이 원인이라면 김성태 원내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보나. “당연하다. 비대위 제1의 기능은 어떻게든지 당을 잘 추슬러서 당원들 손에 의한 지도부를 출범시키는 것이다. 지금 비대위는 비상한 체제가 아니라 오히려 평시 때처럼 행동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지방선거 참패 후 홍준표와 김성태 책임론이 똑같이 제기됐어도 결국 (김성태 원내대표는) 그냥 넘어간 셈인데, 이미 그때 한계에 온 것이 아니었나 싶다. 원내대표가 바뀌기만 해도 당 지지율이 5%가 올라간다.”

정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대선까지 약 6개월간 당을 지킨 것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이 있어 보였다. 그 역시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탈당했다 돌아온 사람들이 당시 상황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저런 언사를 쏟아낸다고 얘기하는 부분에서는 약간 감정이 북받치는 듯했다.

- 탈당파들이 당권을 쥐려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진짜 건방 떠는 의원들은 ‘나가 보니 자유한국당이 진짜 망할 것 같아서 들어왔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점심 먹을 때 그런 얘기를 들으면 속이 터진다. 지금은 웃으면서 말하지만 그때 당 지키느라고 말도 못 하게 힘들었다. 그런데 나갔던 사람들은 그런 것도 모르면서 엉뚱한 얘기를 해대니….”

- 김병준 비대위나 전원책 변호사에 대해 평가해달라. “한 분은 천상 교수, 한 분은 평론가다. 전원책 변호사는 누가 보든 평론가인데, 평론가는 입으로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정치는 같이하는 사람들과 화합해야 하고 당과의 융합 등도 잘 생각해야 한다. 평론가는 말이 앞서기 때문에 말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평론가는 아무 때나 자기 하고 싶은 얘기를 놓치지 않고 말하면 되지만 정치는 그렇지 않다.”

- 결국 신중치 못한 말이 당내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 아닌가 싶다. “자기가 뭐라고 ‘국회의원 30%를 자른다’고 하나. 필요하다고 해도 시점이 중요한 것이다. 왜 말이 앞서느냐 이거다. 30%가 중요한 게 아니라 조강특위 위원장으로 어떠한 잣대를 가지고 있는지, 공명정대한 잣대의 기준을 제시했어야 했다. 30%를 자르니 50%를 자르니 평론가는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만 정치는 그런 게 아니다.”

전원책 변호사가 해촉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전당대회 시기와 당협위원장 교체 문제가 당내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이 원인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전 변호사가 전당대회를 내년 6월이나 7월에 개최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충돌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 결국 자유한국당의 전당대회는 내년 3월이나 4월 정도 개최하는 것이 유력해졌다. 정 의원은 유력 당권 주자 중 가장 먼저 출마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 차기 당대표의 조건은 무엇이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일단은 누가 봐도 명분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배가 침몰할 때 먼저 살겠다고 바다에 뛰어든 사람이 배가 원상복구되니까 제일 먼저 올라와서 선장이 되겠다고 하면 누가 이해하겠나. 소위 탈당파들은 이번에는 자제했으면 좋겠다. 이번에 탈당파가 당의 얼굴이 돼서 선거를 치르는 것은 난망하다. 그래서 이번 선거만큼은 어려울 때 당을 끝까지 지킨 사수파가 당대표가 되어야 한다.

자질로 따지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야당다운 야당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사람, 보수대연합·반문연합을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제가 말하는 보수대통합은 당을 뛰쳐나간 사람을 단순히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제도권 바깥의 건전한 시민단체들과 네트워킹을 통해서 다음 총선 전에 반문연대를 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의미의 보수대통합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마지막은 공천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다.”

- 아직 여당이 지지율에서 우세한데 지금의 정치 지형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른 건 다 참아도 배고픈 건 못 참는다. 배고픔을 몰고 오는 경제파탄이 내년 총선 전에 반드시 온다. 또 우리 국민은 위대한 국민이기 때문에 ‘이상한 나라’로 가는 것을 찬성하지 않는다. 2020년 총선 무렵이 되면 20%대로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내부 여건이 좋아지느냐는 것인데 우리 당이 체제 정비를 제대로 해서 야당다운 야당으로 갈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지방선거 끝나고 비대위가 들어와서도 아무것도 안 되어 있으니 우리가 무슨 싸움을 할 수 있겠나. 당원들이 뽑은 당대표가 중심이 돼 구심점이 생기면 반등할 수 있는 분위기가 다시 한 번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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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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