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7일 노만석 군검합동수사단장이 서울동부지방검찰청에서 기무사 계엄령문건 관련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1월 7일 노만석 군검합동수사단장이 서울동부지방검찰청에서 기무사 계엄령문건 관련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가정보원, 경찰, 기무사 등 안보수사(대공수사) 기관에서는 간첩을 단 한 명 검거했다. 올해 들어서는 한 명도 검거하지 못했다. 올해 국가보안법 위반사범 검거도 최근 4년간에 비해 6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그 많은 간첩과 안보위해세력들이 다 사라져버렸다는 것인가? 아니면 활동 중지를 선언하고 다 북한으로 복귀라도 했다는 것인가?

지난 국회 국정감사에서 여당 모 의원은 최근의 국가보안법 위반자 입건 통계를 들이대며 경찰 보안수사대의 인력은 그 목적에 비해 효율성이 낮으므로 다른 부서로 인력을 재배치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남북 평화체제의 사회 분위기와 조직 운영의 효율성을 고려하여 보안수사대를 축소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기염(?)을 토했다. 살인사건 등 강력사건이 줄어들면 당장 경찰 인력을 줄여야 하냐고 되묻고 싶다. 그러다가 살인, 강도 등이 급증하면 누가 이를 막나?

국가의 안보수사 기능은 현재의 안보위협뿐만 아니라 미래 안보위협에 대한 사전대비의 기능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김정은의 (위장) 평화공세로 남북 간에 일시적인 유화국면이 조성되고 있지만, 북핵 폐기 및 대남 적화전략이 폐기된 것도 아닌 상태에서 이를 제어해야 할 안보수사 인력을 줄이라는 것은 자유민주체제 수호장치의 해체나 다름없는 망국(亡國)의 지름길임을 지적한다.

국정원 개혁안의 핵심이 대공수사권 폐지

대한민국의 핵심 안보수사기관(중앙기관)은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국, 경찰청의 보안국 및 보안수사대, 구(舊) 기무사의 방첩처 외에 공안 수사지휘 및 기소를 담당하는 검찰의 공안부로 대별된다. 그러나 이들 기관들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적폐시되어 인력과 조직, 예산 등이 급격히 감축되며 무력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권력기관을 개혁한다는 명분으로 국정원의 개혁안을 내놨는데, 핵심 내용은 대공수사권의 폐지이다. 우리나라에서 안보수사기관의 제1의 임무는 남북분단 상황에서 현존하는 북한의 대남 적화위협을 막아내고 국민의 생명과 안보를 지켜내는 일이다. 따라서 국가정보목표우선순위(PNIO·Priority of National Intelligence Objectives)에서 북한의 대남 간첩공작을 막아낼 대공수사 업무가 최우선일 것이다. 그런데 국정원은 진짜 개혁의 대상인 ‘정보의 정치화(politicized intelligence)’는 뒷전으로 밀어버리고 마치 대공수사권이 원흉인 양 규정하고 이를 희생양으로 삼아 대공수사권을 폐지하겠다고 공표하고 있다.

문 정부는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을 주장하지만, 경찰 대공수사 역량의 현주소를 감안한다면 성급한 일이다. 북한의 대남 간첩공작이 해외를 통한 우회침투공작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 정보와 대북 방첩망을 운영하지 않는 경찰에서 제대로 대공수사력을 발휘할 수 없다. 이외에도 경찰의 대북 정보수집 역량 미약, 안보수사 관련 과학정보 역량 부재, 합법조직인 경찰의 속성상 비합법 안보수사공작 수행 금지, 정치권력의 압력으로부터 취약 등의 사유로 경찰 단독의 대공수사권 수행이 의문시된다.

문 정부 출범 직후 대공수사권의 폐지 방침이라는 직격탄을 맞은 국정원 대공수사국은 실제 수사실적이 전무하다. 이 글에 제시된 통계도 대부분 보안경찰의 실적이다. 대공수사권이 이관되기도 전에 개점휴업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전임 원장과 간부들이 적폐수사로 사법처리되고 대공수사요원들이 자체 적폐청산 감찰부서에 불려다니며 조사받는 상황에서 간첩을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사기를 먹고사는 안보수사요원들이 정체성(identity)의 위기에 직면해버린 것이다. 국정원 개혁작업을 지휘하고 있는 문 정부의 청와대 참모들이 바로 이를 노리고 ‘대공수사권 폐지’ 카드를 날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최근 정부와 여당은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하는 내용이 담긴 국정원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조속히 처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경찰은 기존의 보안경찰 조직을 확대하고 인원을 증원시키며 대공수사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공수사권 이관 정비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나 경찰청 역시 이에 역행하여 보안경찰 인력과 부서를 대폭 축소시키고 있다.

올해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580명이던 경찰의 보안수사대 인력은 올해 8월 기준 479명으로 101명을 대폭 감축했다. 엄청난 규모이다. 보안상 다 밝힐 수 없지만 전국 보안경찰 인력도 10% 수준으로 감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전국 27개의 보안수사대 청사(분실)를 ‘인권탄압의 상징’으로 매도하고 이를 경찰청과 지방경찰청 청사로 이전토록 결정했다. 보안수사대의 분실(별관) 운용은 안보수사에서의 고도의 보안 유지 특성과 효율성을 감안한 것인데, 이를 도외시하고 안보수사의 전 과정을 공개하라는 조치와 다름없다. 또한 상당수 경찰서의 정보과와 보안과를 통합하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보안경찰은 반(反)개혁세력으로 몰려 50% 이상의 인력을 감축당하는 대학살(?)을 당한 바 있다. 한때 5000여명에 달하던 보안경찰이 2000명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치안수요의 확대로 매년 경찰의 숫자는 늘어나지만 보안경찰 인력은 여기서 예외였다. 탈북민 급증, 사이버 안보위협의 증대, 간첩공작의 정교화 등의 보안수요가 넘치는데도 보안경찰 인력은 매년 축소되어왔다. 우파정부라는 이명박 시절 도리어 1800명 수준으로 축소된 보안경찰이 박근혜 정부 시절에 와서 겨우 2100여명 수준으로 조금 회복되는 중이었는데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다시 철퇴를 맞은 것이다.

보안경찰 정체성의 위기

그러나 인력, 조직 및 예산의 감축보다 더 심각한 것은 보안경찰의 정체성 위기이다. 국가안보를 책임진다는 사명감으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업무를 수행하는 보안경찰이 도리어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의 걸림돌로 치부되고 있고 ‘인권탄압’ ‘하는 일 없이 놀고 먹는 부서’로 매도되는 것이 문제다. 비(非)보안 경력자들이 보안경찰의 지휘부를 구성하고 있어, 경찰 내부에서도 보안경찰을 옹호, 대변해줄 간부들이 부재한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보안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점령군식으로 아무런 저항 없이 보안 축소화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경찰 내에서는 아예 보안과를 해체하고 수사나 정보 부서에 보안수사를 맡기자는 보안경찰 무용론(無用論)까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3대 안보수사기관 중 가장 초토화되어버린 기관이 구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이다. 올 7월, 기무사에서 작성한 계엄대비문건이 군인권단체에 의해 공개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 정부와 집권 여당은 이를 쿠데타 음모, 내란 음모 등으로 몰며 마녀사냥식 공세를 펼쳤다. 특히 국방부와 검찰 합동수사단의 수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내란음모를 기정사실화하고 아예 기무사를 해체한 다음, ‘군사안보지원사령부’를 창설하였다. 이 과정에서 기무사 인력이 4200여명에서 2900여명으로 축소됐다. 특히 안보수사 업무를 수행한 방첩처는 직격탄을 맞아버렸다. 문제가 된 계엄대비문건을 방첩처가 주관하여 작성하는 바람에 방첩 기능이 죄악시되고 방첩요원들이 대거 일반 부대로 원복된 것이다. 그 바람에 간첩 검거 등 군의 안보수사 기능이 거의 무력화된 지경에 이르렀다.

4200명에서 2900명으로 축소된 기무사

신설된 군사안보지원사령부도 방첩 기능을 유지하고 있으나 수십 년 축적된 방첩수사 역량이 와해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프로는 사라지고 아마추어들이 방첩 업무를 전담하게 되었다는 전직 기무사 방첩요원의 지적이 빈말은 아닌 것 같다. 지난 11월 7일 발표된 ‘계엄령 문건 관련 의혹사건’ 중간 수사결과를 보면 내란 예비, 음모 등의 혐의는 전혀 찾을 수 없고 기무사 장교 3명을 허위공문서 작성죄로 불구속한 것이 전부였다.

검찰의 공안부는 간첩 및 국가보안법 수사지휘 등 대공사건과 대테러 및 학원·노동·문화계의 안보위해사건 등을 전담하고 있는 부서이다. 그런데 최근 검찰 공안부에서는 간첩 및 국가보안법 사건 지휘 자체를 포기했다는 말이 들릴 정도로 안보수사 지휘에 소극적이다. 경찰 등이 지휘신청을 해도 묵묵부답이며 제대로 지휘하지 않는 실태가 일반화되어버렸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안보수사 지휘에 주력해야 할 공안검사들이 이른바 적폐수사에 진력하고 있다. 전직 국정원장 4명을 비롯해 국정원 직원을 사법처리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국정원에 대한 수사 의지만 앞섰지 안보수사 부문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꼴이다. 심각한 안보수사 기능의 훼손행위가 각 안보수사기관에서 저항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국정원 수사에 전념하는 공안검사들

문 정부 출범 이후 안보수사기관들의 개혁 및 업무 수행 행태를 보면 북한의 ‘반혁명역량 약화 공작’이 상기된다. 북한이 말하는 반혁명역량이란 주한미군, 국군, 안보수사기관, 국가보안법 등을 지칭한다. 이른바 남한혁명을 방해하는 이들 역량을 거세하고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국정원, 기무사, 경찰 보안수사대 등 안보수사기관을 ‘파쇼폭압기관’으로 매도하고 이의 해체투쟁을 선동해왔다. 이들 부서만 없으면 마음놓고 간첩활동을 하고 혁명투쟁을 전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혁명역량 약화 공작은 대한민국의 안보시스템을 거세 및 무력화하여 적화혁명을 앞당기려는 전형적인 술책이다.

따라서 우리는 안보역량을 총동원하여 북한의 반혁명역량 약화 공작을 차단하여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안보수사기관 개혁을 보면 결과적으로 북한의 반혁명역량의 약화 공작에 부응하고 있는 꼴이다. 대한민국의 3대 안보수사기관이 모두 적폐부서로 몰려 실질적으로 무력화되는 위기에 처해 정상적인 안보수사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북한은 정권수립 이전인 광복 직후부터 대남 적화혁명 전략의 일환으로 전술적 차원의 대남 간첩공작을 전개해오며 이른바 ‘남조선혁명의 주객관적 상황’ 조성에 주력해왔다. 6·25 남침전쟁 이후 2018년 9월 말까지 북한의 대남 침투와 간첩사건은 2000회가 넘는다. 이러한 북한의 대남 간첩침투 공작을 국정원, 기무사, 경찰 대공수사관들이 막아낸 것이다. 1948년만 해도 전 세계에서 최빈국 중 하나였던 신생 대한민국이 오늘날 세계 12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북한의 간단없는 대남 간첩공작을 막아내고 튼튼한 안보와 사회안정을 이룬 덕택이다. 그 과정에서 국정원 대공수사관(경찰과 군 대공수사요원 포함)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최근 백주 대낮에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북한 추종 단체들이 ‘김정은 위원장 서울 방문 환영 백두칭송위원회’ 결성을 선포하고 김정은을 연호하며 찬양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실정법인 국가보안법이 명백히 존재하는데도 이를 위배하는 행위에 대해 수사해야 할 경찰, 검찰, 국정원 등은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행위는 명백한 국가보안법 제11조(특수 직무유기)의 위반이다. 이들 기관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되묻고 싶다. 국정원장(대공수사국장), 경찰청장(보안국장), 검찰총장(공안부장), 군사안보지원사령관(방첩처장)에게 당부한다. 안보수사기관은 집권자 개인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과 국가이념에 헌신하고 충성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키워드

#포커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국가정보학회 수석부회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