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미 정의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와 야3당 의원들이 지난 11월 2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결단 촉구대회를 갖고 있다. photo 뉴시스
선거제도 개편을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기존 여야 구도의 싸움이 아니라 거대 여당과 제1야당을 향해 중소 정당들이 도전하는 형국이라 더 혼란스럽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출국하면서 선거제도 개편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지며 여권의 진심이 무엇인지에 대한 추측도 난무하는 상황이다.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지난 11월 28일 오전 국회 본관 로텐더홀에서 소속 국회의원·보좌진·당직자들이 대거 운집한 가운데 합동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문 대통령과 이해찬 민주당 대표 모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지만 피하고 있고, 자유한국당은 의원 정수를 핑계로 선거제도 개혁을 피하고 있다”며 “민심을 따라야 하는데 이래선 안 된다”고 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도 “문 대통령은 노예해방을 위해 어떤 정치적 수도 마다하지 않았던 에이브러햄 링컨의 길을 가야 한다”며 “은산분리 완화를 위해 여당 의원들을 밤낮으로 만났던 것처럼, 선거제 개혁을 위해 문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고 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야3당의 선거제도 개혁안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통일돼 있다”며 “집권정당이 대통령의 공약을 뒤집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고 했다.
   
   
   야3당 “대통령 공약 파기”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현재 야3당이 요구하는 형태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아니었지만 사실상 이 제도를 기반으로 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약속했었다. 비례대표 후보를 서울·경기·영남·호남 등 각 권역별로 배정한 후 각 권역별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 “대통령 공약 파기”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선거에서 각 정당이 얻는 득표율을 의석수와 정확하게 맞춰주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다. 총 의석수가 100석인 상황에서 한 정당이 정당 득표율로 30%를 얻는다면 지역구 당선자 숫자와 비례대표 숫자를 합쳐서 30석을 확보하게 해주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가정하면 정당득표율이 30%이지만 지역구 선거에서는 한 곳에서만 승리했다면 29석의 비례대표와 1석의 지역구를 합쳐서 30석이 되는 셈이다. 과거에 비해 많이 약해졌다고 해도 여전히 민주당이 호남, 자유한국당이 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하고 있는 한국 정치의 현실을 감안하면 기존 여야로서는 불편한 제도인 셈이다.
   
   의원 수를 300명으로 고정한다는 가정하에 2016년 20대 총선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으면, 더불어민주당은 123석에서 110석, 새누리당은 122석에서 105석으로 의석수가 10석 이상 줄어든다. 반면 국민의당은 38석에서 62석으로, 정의당은 6석에서 12석으로 2배 안팎으로 늘어나게 된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연동형 비례대표 논의에 소극적인 이유는 이런 현실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 안팎에서는 민의를 효과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연동형 비례대표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방식으로 선거제도가 개혁돼야 한다는 의견이 늘어나고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최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연동형 비례대표 이상 가는 선거 개혁은 없다”며 “당을 찍은 비율대로 의석을 배분해야 표심의 왜곡을 바로잡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을 하려면 의원 숫자가 일정 부분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라며 “다만 현 의석의 10%, 30석가량 늘리는 것은 국민이 양해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문 의장은 “그래서 국회가 뼈를 깎는 혁신 작업부터 해야 하며 지금 조용히 해나가고 있다”며 “국회 예산부터 팍팍 깎아야 하고 국회의원 특권도 줄여야 한다”고 했다.
   
   
   불 지른 이해찬 대표
   
   야3당이 최근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시발점은 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발언이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민주당 대표가 이에 대해 뚜렷하게 선을 긋는 언급을 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 11월 16일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현재 지지율로 볼 때 민주당이 지역구 의석을 다수 확보해 비례대표 의석을 얻기 어렵다”며 “그렇게 되면 비례의석을 통해 직능대표나 전문가들을 영입할 기회를 민주당이 갖기 어렵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어 11월 23일 기자간담회에서도 이 대표는 “그동안 민주당이 공약한 것은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라며 “현재의 선거제도에서 비례성이 약화되는 것을 보정하는 방안으로 어느 정도 양보할 수 있다는 것이지 100% 비례대표를 몰아준다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이후 손학규 대표가 지난 11월 21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표가 지난 11월 16일 국회의장 공관에서 열린 여야 5당 대표 부부 동반 만찬에서 연동형 비례제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발언했으며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밝히자 야3당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손 대표는 “이 대표는 ‘지금 논의되는 연동형 비례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취지였으며 이는 선거제를 개혁할 의지가 없는 민주당의 본심을 보여준 발언”이라고도 했다. 또 “연동형 비례제 도입은 촛불의 명령이며,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민주당 자신의 공약이었다”며 “이를 도입하지 않겠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고 자기모순”이라고 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곧바로 반박했다.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연동형 비례제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홍 대변인은 “우리 당은 지난 총선·대선 당시 권역별 비례제를 주장한 바 있고 이후 연동형 비례제를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은 대표성과 비례성에 기초한 선거제도라는 방향 아래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도 적극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도 했다.
   
   야3당의 연동형 비례대표 공세가 집중되면서 민주당은 선거제도 개편 비공식 태스크포스를 가동하기로 했다. 윤호중 사무총장 주도로 실무 조직을 가동하고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당론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연말까지는 당론을 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현안에 대응해나간다는 입장이다. 윤 총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까지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원내대표가 지휘했는데, 선거제도 개혁이 중요한 문제니 당에서 총괄해 직접 챙기기로 한 것”이라며 “야당의 안을 어디까지 수용할지를 논의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나 당 내부에서도 자신의 지역구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연동형 비례대표에 대한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는 상황이라 당론화 과정에서 내부 논란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유한국당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서는 사실상 반대 입장이지만 야3당의 공세가 민주당에 집중돼 있어 상대적으로 한발 물러서 있는 형국이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1월 26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당이 선거제도 개편에 소극적이다’라는 질문을 받자 “우리가 소극적인가. 여당에서 변화 조짐 있는 거 아닌가. 이런 문제는 우리는 우리대로 안을 내겠지만 여당도 확고한 안을 내줘야 하는데 여당도 분명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들이 나서지 않고 민주당과 야3당의 논쟁을 지켜보겠다는 태도다.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경우 결국 의원 정수를 확대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민심을 거스르는 것’이라는 논리로 이에 대해 간접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국회 정치개혁특위 자유한국당 간사인 김학용 의원은 최근 “국회의원 300명은 일종의 마지노선”이라며 “의원 정수 확대를 국민이 용인할 것인지가 가장 큰 현실적 제약”이라고 했다.
   
   
   의원 정수 확대도 걸림돌
   
   만약 정치권이 어렵게 연동형 비례대표의 취지에 합의를 하고 실질적 도입을 추진한다고 해도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한 국민들의 뿌리 깊은 반감은 마지막 변수가 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본래 의미대로 작동하려면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 비율이 최소한 2 대 1은 돼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지역구 의원을 줄이고 비례대표 의원을 늘리는 방식은 각 당 모두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 때문에 불가능한 상황이다. 결국 비례대표 의원 숫자를 늘려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 2 대 1 비율을 맞춘다고 하면 전체 의원 숫자가 360명이 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 입장이 더 높다. 선거구 획정 시한(내년 4월 15일)을 감안하면 선거제 개편은 내년 2월까지는 이뤄져야 하는데 각 정당 간 합의에도 난관이 많은 상황이고 의원 정수 확대를 반대하는 민심의 벽까지 넘어야 하니 첩첩산중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제도 개편을 강조하고 나서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지난 11월 2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출국하면서 선거제도 개편을 이번에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했다. 홍 원내대표는 “지난 11월 5일 여야정 협의체에서도 대통령이 오히려 선거제도 개편을 강조했고 민주당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며 이렇게 밝혔다. 홍 원내대표는 “제1여당인 민주당이 손해 볼 수밖에 없지만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구제 개편을 반드시 하겠다”며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있고 여당 내에서도 분위기가 형성돼 있는 만큼 이번이 선거제도를 개편할 좋은 기회”라고도 했다. 그러나 “의원 정수를 늘릴 건지 여부와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어떻게 반영할지 문제 등 암초가 많이 있다”며 “올해 말까지인 정치개혁특위 활동 시한을 연장해서라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는 범여권으로 분류됐던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이 거세게 반발하는 상황이라 청와대도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문제를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며 “대통령이 저렇게까지 말씀하셨으면 당에서 어떤 식으로든 상대가 납득할 만한 대안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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