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지현아씨가 지난해 12월 11일 유엔에서 중국에서의 탈북자 인신매매와 강제북송 과정을 증언하고 있다. ⓒphoto 유엔
탈북자 지현아씨가 지난해 12월 11일 유엔에서 중국에서의 탈북자 인신매매와 강제북송 과정을 증언하고 있다. ⓒphoto 유엔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이야?” “아빠는 중국 사람이고 엄마는 북한 사람이니까 짝퉁 아닐까?” “엄마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해서 저를 낳았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다큐멘터리 ‘경계에 선 아이들(Children on the edge)’에서 중국으로 넘어간 탈북여성들이 한족 또는 조선족에게 팔려가 낳은 21살 동갑내기인 주인공 조유나와 김예림이 진솔하게 털어놓은 자신들의 이야기 중 한 대목이다. 중국에서 태어나 현재 한국의 대안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두 여성은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묻는다. 이들은 용어조차 이상한 ‘중도입국 탈북자 청소년’이다. 중국에서 인신매매로 팔려간 탈북여성과 중국 남성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에 들어와 국적을 취득한 미성년자를 말한다. 사단법인 세이브 NK(Save North Korea·대표 김범수)가 제작한 30분짜리 이 다큐멘터리는 10월 17일부터 25일까지 미국의 조지타운대, 조지워싱턴대, 하버드대, 유펜대, 뉴욕대 등 주요 대학들에서 상영됐다. 이 다큐멘터리는 또 세계 인권선언 70주년을 맞아 10월 24일 ‘유엔의 날’ 때 뉴욕 유엔본부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 3만2000여명 가운데 3000여명은 미성년이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중국에서 태어나 무국적자로 살다 한국에 온 중도입국 탈북자 청소년들이다. 이들은 북한 출생 학생들이나 주민들과 달리 국내 입국 때 탈북자들에게 주어지는 정착지원과 입시지원 혜택에서 제한을 받고 있다. 중국에서 무국적자로서 각종 차별을 받아야 했던 이들은 한국에 들어와서도 역시 차별을 받고 있는 셈이다. 미국 의회 산하 의회·행정부 중국위원회(CECC·Congressional-Executive Commission on China)의 ‘2018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남성과 탈북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중국 내 무국적 아동의 수는 2만명에서 3만명으로 추산된다. 보고서는 이들은 교육과 어떤 공공 혜택도 받지 못하는 등 각종 차별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 주민들이 오늘도 식량과 자유를 찾아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가고 있지만, 이들은 대부분 또 다른 고통과 위험을 겪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10만〜20만명의 탈북자들이 중국 곳곳을 떠돌고 있거나 숨어 살고 있다. 탈북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곳은 헤이룽장성, 지린성, 랴오닝성 등 중국 동북 3성이다. 탈북자들 중 여성은 70~80%이며, 특히 동북 3성에 살고 있는 탈북자 가운데 90%가 여성이다. 탈북여성들은 인신매매를 통해 한족 농촌 총각이나 홀아비들과 마지못해 강제로 결혼해 살아가고 있다. 실제로 탈북여성들 상당수는 몇 차례의 인신매매를 거친 뒤에야 탈출에 성공해 국내에 들어올 수 있다고 한다.

“20대 4000달러, 40대 2000달러”

탈북자의 인권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경계에 선 아이들’ 포스터.
탈북자의 인권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경계에 선 아이들’ 포스터.

영국 텔레그래프는 최근 중국을 거쳐 한국에 넘어온 탈북여성 박모(41)씨 자매 사례를 중심으로 중국 내 탈북여성들의 실태를 집중 조명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박씨는 중국으로 탈출한 뒤 여러 차례 인신매매를 당했으며 결국 중국 공안에 “고향으로 보내달라”고 애원해 북한으로 강제북송됐다는 것이다. 박씨의 언니(44)도 인신매매로 중국인 남성과의 사이에 15살 된 딸과 9살 된 아들을 뒀지만 언제 닥칠지 모르는 강제북송의 위험 속에 불안하게 살아야만 했다고 한다. 이 신문은 탈북여성들이 중국에서 낳은 자녀들은 국적도 없어 의료나 교육 혜택을 받을 수 없다면서 일부 탈북여성들은 중국인 남성과 사이에 낳은 자녀들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건너가기도 한다고 전했다. 중국에 체류하고 있는 탈북여성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돕고 있는 민간단체인 헬핑 핸즈 코리아 카타콤의 팀 피터스 대표는 “탈북여성들은 대부분 인신매매를 당한 후, 사회적으로 어렵거나 신체의 장애가 있는 중국인 남성들의 아내가 되거나 여성 노리개가 된다”면서 “탈북여성들이 강제북송을 피하기 위해 자녀들을 놔두고 도망갈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피터스 대표는 “어떤 아이의 경우 엄마가 북송되어 북한 교도소에 있고, 중국인 아버지는 다른 범죄로 교도소에 갔기 때문에 노숙자처럼 쓰레기를 먹고 다녔다”면서 “중국 정부와 중국 가족은 이런 아이들을 지원해주는 것을 싫어할 뿐만 아니라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에는 김정은의 지시로 북한 정권의 국경 감시가 강화된 이후 탈북여성이 줄어들자 인신매매 조직들이 몸값이 높아진 탈북여성에 더욱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한다. 한 탈북 브로커는 “최근에는 내몽골에서도 조선 여자를 찾는 남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브로커 입장에서는 최대한 값을 많이 받기 위해 몸값이 배로 뛰는 중국 내륙지방 먼 곳으로 조선 여자들을 넘기려고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탈북여성들 중에서도 나이가 어리고 팔려가는 거리가 멀수록 몸값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소연 한국 뉴코리아여성연합 대표는 유엔 여성지위위원회(UNCSW)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많은 탈북여성들이 중국 내 인신매매 조직을 통해 남성들에게 팔리고 있다”며 “20대 여성은 4000달러, 40대 여성은 2000달러에 거래되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렇게 팔린 탈북여성들은 중국인 집에서 24시간 감시당하면서 ‘성노예’ 생활을 하게 된다.

탈북여성들은 중국인 남편의 폭행 등 온갖 폭력 행위에 항거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 자칫하면 강제북송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 겸 부산하나센터장은 “중국에서 인신매매된 탈북여성들은 강제 결혼, 성폭행, 원치 않는 임신, 부인과 질병, 노동착취, 유흥가 매춘 강요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며 “특히 결혼한 여성 대부분은 남편과 시댁 식구의 무시와 구타, 경제적 어려움, 북한에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불법체류 신고 협박 등에 시달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동북 3성 등 중국 농촌에는 지난 30년간 시행해온 ‘한 자녀 정책’ 때문에 성비 불균형으로 결혼할 여성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혼기를 넘긴 농촌 청년(?)들은 인신매매로 팔려온 베트남 등 주변국들의 여성과 결혼하고 있는데, 탈북여성을 가장 선호한다고 한다. 탈북여성들은 강제송환을 우려해 도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인신매매 조직들은 일부 브로커를 비롯해 심지어 북한 국경경비대 등과 결탁해 탈북여성들을 유인하거나 납치해 농촌 등으로 팔아넘기고 있다. 실제로 양강도 김정숙군에선 11월 중순 중국 인신매매 조직과 결탁해 여성들을 팔아넘긴 주민 4명에 대한 공개재판이 열리기도 했다. 중국 인신매매 조직들은 또 일부 탈북여성들을 도심지역 유흥업소 등에 매춘부로 팔아넘기기도 한다. 크리스 스미스 미국 하원의원은 “중국에서 인신매매가 폭발적으로 늘어 북한을 포함한 다른 나라 여성들을 상품처럼 취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인권단체 회원들이 워싱턴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 강제송환 중단 요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photo VOA
미국의 인권단체 회원들이 워싱턴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 강제송환 중단 요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photo VOA

강제송환 탈북자 최대 10만여명

탈북자들은 중국 공안에 체포되면 북송되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고 초조한 생활을 하고 있다. 강제북송 규모는 연간 5000여명으로 추정된다. 북한 정권은 송환된 탈북자를 노동교화소 또는 정치범수용소 등에 수용하거나 공개처형한다. 지난해 탈북 일가족 5명이 중국 윈난성 쿤밍에서 공안에 체포돼 북한으로 압송되던 중 청산가리를 마시고 음독자살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으로 끌려가 처형될 바에야 차라리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지금까지 중국에서 강제송환된 탈북자는 최대 10만여명인 것으로 추산된다. CECC는 김정은이 지난 3월 중국을 방문한 이후 중국 정부가 탈북자 신고 보상금을 올리면서 수많은 탈북자가 억류되고 일부 탈북자는 북한에 강제송환됐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중국 공안은 탈북자를 신고하는 주민들에게 300위안을 주던 포상금을 최근에는 3000위안까지 인상했다. CECC는 또 중국 정부가 지난해 말부터 탈북자 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한국 선교사와 교회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의 탈북자 강제북송은 엄연히 국제법 위반이다. 중국은 ‘난민지위에 관한 협약’(난민협약·1951년)과 ‘난민지위에 관한 의정서’(난민의정서·1967년) 및 ‘유엔고문방지협약’(1984년)에 가입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난민협약의 제33조 1항을 보면 “체약국은 난민을 어떠한 방법으로도 인종, 종교, 국적, 특정사회 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그 생명이나 자유가 위협받을 우려가 있는 영역의 국경으로 추방하거나 송환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농 르플르망 원칙(Principle of Non-Refoulement)’이라고 부른다. 유엔고문방지협약 제3조 1항에도 “어떠한 당사국도 고문받을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는 다른 나라로 개인을 추방·송환 또는 인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1982년 난민협약과 난민의정서에, 1988년 유엔 고문방지협약에 각각 가입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탈북자를 강제북송하면서 지금까지 이 조약들을 한 번도 지킨 적이 없다.

중국 정부는 탈북자를 경제적 이유로 월경한 불법체류자라면서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는 북한 정권과 1960년 체결한 ‘중·조 탈주자 및 범죄인 상호 인도 협정’과 1986년 체결한 ‘변경지역의 국가안전과 사회질서 유지업무를 위한 상호협력 의정서’에 따라 탈북자를 색출·체포해 북한으로 강제송환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외교문제와 관련, 국내법·국제법·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관련 문제를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해왔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북한과 맺은 각종 조약들은 엄연한 국제법인 만큼 이를 어길 수 없다면서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난민들이 대량으로 발생할 경우 북한 정권이 붕괴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북한 주민들이 국경을 넘어 동북 3성으로 대거 탈출할 경우 중국 정부는 자국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엔을 비롯해 국제사회는 탈북자를 난민으로 보고 있다. 유엔 인권위원회, 유엔 난민기구(UNHCR) 등은 중국 내 탈북자를 난민이라고 인정해왔다. 유엔 인권이사회와 유엔 총회에서도 중국에 탈북자들을 강제송환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 산하 실무그룹은 지난 12월 12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에서 체포돼 북송된 탈북자 4명을 자의적 구금의 피해자로 판정했다고 밝혔다. 자의적 구금이란 개인이 법률에 반하는 범죄를 자행했다는 증거 없이, 혹은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체포나 구금되는 것을 뜻한다. 보고서는 중국 정부에 농 르플르망 원칙을 준수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도 “탈북자들은 학대를 피해 탈출한 난민이나 현장 난민(refugees sur place)으로, 국제적 차원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면서 “중국 정부가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제인권단체들도 그동안 중국 정부에 대해 범법자를 제외한 탈북자들을 강제로 북송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왔다. 미국 인권단체인 북한자유연합의 수잔 숄티 대표는 “중국 정부의 강제북송 정책은 비인도적이고 잔인할 뿐 아니라 국제법에 위반된다”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탈북자에 대한 비인도적 범죄 행위를 중단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 정부, 중국 인권문제 압박

특히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UNHCR 대표 시절 중국의 탈북자 강제송환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탈북자들은 북한에 끌려갈 경우 형사처벌이나 비인도적 대우 등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큰 만큼 난민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토머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은 “중국 정부가 지금까지 계속 탈북자들을 체포해 북한으로 강제송환하고 있다”면서 “중국 정부는 탈북자들의 강제송환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도 탈북자 강제송환 문제를 놓고 중국 정부를 강력하게 압박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 12월 6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중국 인권에 관한 보편적 정례검토(UPR)에 앞서 중국 정부에 제시한 질의서에서 “대다수가 여성과 어린이들인 탈북 난민들이 중국에서 북한으로 강제송환돼 고문과 강제노동, 심지어는 처형과 같은 인권침해와 심각한 처벌에 직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 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1월 29일 대통령 결정문(memorandum)을 통해 인신매매희생자보호법(Trafficking Victims Protection Act of 2000)에 따라 북한을 비롯해 중국, 이란, 러시아 등 18개국을 2019년 회계연도 특정자금지원 금지대상으로 지정했다. 미국 국무부는 ‘2018년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북한과 중국을 국가 인신매매 감시 및 단속 수준 1단계부터 3단계까지 중 가장 낮은 3등급(Tier 3) 국가로 분류했다. 미국 국무부는 탈북자 강제북송을 중국 정부에 책임이 있는 가장 중대한 인권문제 가운데 하나로 지적했다. CECC는 최근 들어 중국 내 탈북자들의 여건이 더 악화됐다면서 탈북자 강제북송과 관련한 중국 정부 기관과 개인을 제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 12월 12일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아 발간한 인권백서를 통해 자국 인권이 크게 개선됐다고 주장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경제대국인 중국 정부가 인신매매로 팔려가는 탈북여성들의 고통을 외면하면서도 이런 백서를 발간한 것은 정말 후안무치(厚顔無恥)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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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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