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2월 1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수도권 3기 신도시 입지와 2기 신도시 광역교통개선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2월 1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수도권 3기 신도시 입지와 2기 신도시 광역교통개선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국토교통부가 지난 12월 19일 제3기 신도시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노선을 따라 남양주, 하남, 인천 계양, 과천에 신도시를 만든다는 내용이다. GTX B노선이 지나가는 남양주에 6만6000호(면적 1134만㎡), GTX C노선이 통과하는 과천에 7000호(155만㎡), 하남과 인천 계양에는 S-BRT(간선급행버스체계) 신설과 지하철 연장을 통해 각각 3만2000가구(649만㎡), 1만7000가구(335만㎡)를 공급할 계획이다. 3기 신도시 조성은 결국 서울 집값을 잡겠다는 계획이지만, 정부가 발표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미흡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강남 집값을 막을 물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과천은 집값 급등의 근원인 강남에서 가깝기 때문에 4개 신도시 후보지 중에서 그나마 입지여건이 좋은 편이지만 공급물량이 7000가구에 불과해 역부족이다. 게다가 남태령 등 서울 진입 구간의 교통 체증이 더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

둘째, GTX 노선 주변과 GTX 노선에서 떨어진 지역의 격차가 더 심해질 전망이다. GTX 노선 주변을 개발하는 3기 신도시는, 3기 신도시 입주자와 인근 거주자들의 서울 접근성을 개선하겠지만 모두가 GTX 노선 부근의 3기 신도시로 이사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이사하려면 기존 주택을 처분해야 하는데, 강화된 대출규제 때문에 신규 아파트로 옮기려는 사람은 기존 주택의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아 처분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셋째, 서울시 자체의 주택공급이 예상보다 너무 적다. 서울 집값을 잡으려면 서울시 내부 공급이 많아야 하는데 이번 발표에 포함된 서울 32개 지역에 신축되는 1만9000가구는 한 해 서울에서 멸실 철거되는 2만가구보다도 적다. 그리고 발표에 포함된 준주거지역 및 상업지역 등의 용적률 완화 등 상당 부분은 지난 9월 주택가격 안정대책의 재탕에 불과하다.

넷째, 서울의 장기적인 주택공급 전략이 빠져 있다. 서울의 변두리에 집을 두고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주택 수요를 해소하려면 도시재생이든 재개발이든 장기 주택공급 계획이 포함됐어야 했다. 3기 신도시 개발은 아직도 미분양이 많은 2기 신도시와 서울 외 지역의 부동산 가격 하락을 초래할 가능성도 크다. 내년 시행 예정인 강화된 부동산 세제는 부동산 거래절벽을 불러올 것이다. 여기에 3기 신도시 조성 계획까지 발표되면서 공실 투성이인 1기 신도시의 상가와 가뜩이나 미분양이 많은 2기 신도시 주택, 상가의 가격 하락은 불 보듯 뻔하다. 지난 정부의 경기부양책으로 시작된 강남권 재건축 활성화와 금리인하가 초래한 부동산 경기 과열, ‘부동산 불패 신화’를 학습한 베이비부머들의 부동산 ‘올인’이 낳은 후유증은 고려하지 않은 채 개발계획을 발표해버린 것이다. 특히 자영업에 종사하는 중산층의 펀더멘털(경제력)이 심각하게 낮아진 상황에서 보유 부동산 가치의 하락은 이들을 한계상황으로 내몰 수 있다.

3기 신도시 개발은 2014년 OECD가 정부에 제시한 ‘한국 압축도시정책 보고서(Compact City Policies Korea 2014)’와도 배치된다. 보고서는 도심의 고밀 개발을 통해 도시 문제(경제성·효율성)를 해소하고 도시 외곽 개발은 억제할 것을 권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는 서울 주택 가격 상승에 휘둘려 신도시 개발을 너무 급하게 준비하고 발표해왔다. 이는 우리의 신도시 개발사를 돌이켜보면 알 수 있다.

한국의 신도시 개발사

1960년대 서울 인구는 매년 평균 30만명씩 증가해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주택 및 기반시설이 턱없이 부족했다. 정부는 1965년 현재 강남의 일부 지역을 서울로 편입한 뒤 강북 40%, 강남 60%의 인구 비율을 목표로 1970년부터 강남 개발을 본격화했다. 강남 개발의 목적은 강북 도심으로 몰려드는 인구 분산에 있었다. 그 뒤 10여년이 지난 1980년대 초 ‘도시 내 신도시(new town in town)’의 개념으로 목동 신시가지를 조성했다. 현재의 목동 신시가지는 저지대의 상습 침수지대이거나 공장폐수로 인한 토양오염이 심해 ‘신도시급’ 개발이 필요한 곳이었다. 같은 시기 과천시를 건설해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 있던 기획재정부 등의 12개 부처를 이전했다. 서울 과밀화 해소가 목적이었다. 그러므로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의 1기 신도시는 사실상 최초의 신도시가 아닌 셈이다.

어쨌든 공식적인 1기 신도시 개발은 과천시 입주가 시작되고 7년이 지난 1989년에 개시됐다. 단군 이래 최대의 주택 건설 프로젝트인 200만호 개발이 시작됐는데 수도권 1기 신도시에 30만호가 배정됐다. ‘88올림픽’이 끝난 뒤 우리나라는 저유가, 저달러, 저금리 등의 3저 호황 덕분에 수출이 잘돼 통화량이 급증했다. 넘쳐나는 부동자금은 토지 및 주택 가격의 급등을 초래해 엄청난 사회적 갈등을 일으켰다. 위기의식을 느낀 정부는 강남 개발의 성공 신화를 밑천 삼아 서둘러 전국에 200만호 공급 계획을 발표했다. 이 무렵 골재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바다 모래를 채취해 만든 ‘불량 레미콘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단기간에 많은 주택을 공급하려는 무리한 일정에서 발생한 해프닝이었다.

1기 신도시 완공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일단 수도권의 수평적 팽창과 신도시 건설은 자동차 의존도를 심화시켰다. 1기 신도시를 착공한 1989년 승용차 등록대수는 155만대에 불과했으나 완공된 1997년에는 758만대를 돌파했다. 신도시 개발 기간 8년에 자동차 등록대수가 4배 증가한 셈이다. 미국의 로스앤젤레스도 ‘자동차 보급을 염두에 두고, 혹은 자동차 보급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도시를 개발했다’는 주장이 있다. 1기 신도시 개발도 ‘마이카 시대’가 열린 덕분에 가능했다.

참여정부 시절의 주택 정책은 주로 강남의 아파트 가격과 관련이 깊었다. 정부가 집값 급등을 억제하려고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강남 집값이 올라서다. 정부는 2005년 서울의 인구분산과 집값을 낮추기 위해 2기 신도시(위례·판교·김포·동탄·광교·파주·평택) 개발을 시작했다. 1기 신도시가 완공된 지 8년 뒤의 일이다. 정부는 1기 신도시가 베드타운, 고밀도 개발, 자가용 위주로 조성됐다는 비판을 의식해 2기 신도시는 테마가 있는 저밀도의 대중교통 중심 개발을 생각했다. 각각의 도시를 벤처(판교), 첨단·도농복합(동탄), 친환경·대중교통(김포), 친환경·생태(파주)도시로 특성화하겠다는 취지였다.

1기 신도시와 2기 신도시는 입지조건부터 달랐다. 1기 신도시는 서울에서 반경 20㎞ 권역에 개발된 반면 2기 신도시는 40㎞ 전후에 위치한다. 대규모의 가용택지를 찾다 보니 서울에서 더 멀어진 셈이다. 2기 신도시는 테크노밸리가 있어 자족기능을 갖춘 판교를 제외하면 1기보다 서울에서 더 먼 곳에 있는 또 하나의 베드타운이 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경기·인천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사람은 하루 147만명이고, 수도권 거주 근로자의 21.2%는 통근에 1시간 이상을 쓴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데이터에 의하면 한국의 출퇴근시간은 58분으로 OECD 평균인 28분의 2배다. 이처럼 수도권에서 서울 통근에 1시간 이상 걸리는 이유는 2기 신도시를 계획할 때 약속했던 광역교통망 확충 계획이 실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통노선 및 재원분담을 놓고 나타난 지자체들의 갈등이 걸림돌이었다. 이 갈등은 현재도 진행형인데 그렇다면 그 갈등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광역교통 계획을 제대로 수립하지 않은 채 신도시 개발에 착수한 정부의 몫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강남 개발에서 시작해 2기 신도시 개발까지 시기별 신도시 개발에 과연 차별성이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이 질문에 대해 건축학자 유현준 교수는 “강남에 적용된 개발 방식을 반복하는 것은 강남을 더욱 키워주는 꼴”이라면서 “신도시가 강남 방식으로 양산되면 지역별로 줄 세우기가 될 뿐”이라고 답했다. 지역 특성을 살려 신도시를 조성하지 않으면 서울 도심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주택가격이 형성된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신도시 개발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은 도시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산업혁명이 일어나 세계에서 가장 먼저 도시화를 경험한 영국의 도시 개발 사례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모델로 삼고 있다.

영국의 신도시 조성 역사

신도시(New Town)라는 단어는 영국의 도시계획학자 에버니저 하워드(Ebnezer Howard)가 1898년 처음 사용한 ‘전원도시론(Garden City Theory)’에서 나온다. 전원도시는 산업사회 도시의 장점과 전통적 농촌생활의 장점을 융합한 개념이다. 영국은 그의 이론에 따라 2차 세계대전 전후 복구 차원에서 신도시 건설을 본격화했다. 하워드가 ‘현대 도시계획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다.

영국은 1945년 신도시 건설을 목적으로 ‘신도시법’을 제정했는데 초기의 신도시는 하워드의 논리에 충실하게 직주(직장과 주거의 거리) 근접의 자족성을 갖춰 개발했다. 초기 신도시는 6만명 규모로 건설했지만 나중에 개발된 밀턴 케인스(Milton Keynes) 등의 도시는 25만명을 수용할 정도로 확대됐다.

영국은 전후 29개 신도시를 조성해 현재 이곳에 200만명이 넘는 인구가 거주 중이다.

영국의 신도시는 당초 주변 대도시에 의존하지 않는 자급도시 성격을 띠었으나 나중에는 대도시 인구 집중과 산업 집중화를 억제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그 결과 런던(Greater London) 인구는 2차 세계대전 직전인 1939년 860만명에서 1980년대 680만명으로 감소했다.

신도시 개발에 집중하던 영국 정부는 1980년대 들어 도시재생 차원에서 런던을 재개발하기로 방향을 튼다. 이에 따라 노후화된 항구인 ‘런던 도클랜즈’를 워터프런트로 재개발하고, 세계적인 국제금융 중심지 ‘카나리 워프’를 건설했다. 대형 엔터테인먼트 시설인 ‘밀레니엄 돔’과 거대 회전관람차인 ‘런던 아이(London Eye)’, ‘밀레니엄 다리’ 같은 랜드마크 조형물도 만들었다. 그 결과 런던은 2008년 뉴욕, 홍콩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도시로 선정됐다. 런던 인구 역시 2015년 기준 역대 최다(863만명)로 증가했다. 도시를 현대적으로 재생해 글로벌 톱클래스에 오르자 국내외 기업들이 다시 몰려든 것이다.

우리가 신도시 모델로 선택한 런던은 아직도 주택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2015년에 발간된 ‘주택공급의 장애물 제거(Removing Barriers to Housing Delivery)’ 보고서는 향후 20년간 매년 4만9000가구의 분양주택을 공급해야 주택수요가 충족된다고 충고했다. 보고서는 긴급히 해결할 문제로 인허가를 받은 26만1000호가 미착공 상태라는 점을 지적했다. 시 당국이 매년 5만건의 건축 승인을 내주지만 평균 2만7000호만 공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주택 공급에 가장 영향력이 큰 택지 가격을 비롯해 수익성을 관리하려는 시행사의 공급 조절, 건축비 상승, 건축 자재 및 인력 확보의 어려움, 기차, 도로 등의 기반시설 건설비 부족 등이 주택 공급 부족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주목할 것은 ‘대중교통수단 접근성(PTAL·Publci Transport Accessibility Level)’이 낮은 지역의 주택 밀도를 제한할 수 있다는 정부의 제약규정이다. 이것 때문인지 런던시장이 2016년 발간한 ‘런던계획(The London Plan 2016)’ 보고서는 런던 주택 부족의 원인이 런던 도시계획 당국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부가 더 많은 주택을 공급해야 함에도 더 많은 주택을 짓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향후의 도시 개발 방향

지금까지 우리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강남 집값을 잡는 것에 초점을 맞춰왔다. 강남 집값이 오르면 전국 집값이 함께 상승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남과 서울 집값 상승을 차단하고 안정화시키려면 신도시 조성이 아니라 서울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그의 저서 ‘도시의 승리’에서 “건물 신축을 막는 것이 기존 거주자에게는 좋은 생각일 수 있으나 새 주택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비용을 부과하는 것”이라며 “건축 제한은 도시를 과거에 묶어놓으면서 도시의 미래 잠재력을 제한한다”고 주장했다.

주택산업연구원은 2018년 4월 발표한 ‘서울시 주택노후도 현황 분석 및 시사점’에서 서울의 노후주택 현황을 분석한 바 있다. 노후주택은 건물 사용 승인을 받은 뒤 30년이 지난 주택을 뜻한다. 2017년 기준 서울에는 총 44만9064동(棟)의 주택이 있다. 이 중에서 단독주택의 47.4%, 공동주택의 12.3%가 노후주택인 것으로 조사됐다. 20~30년 된 주택도 전체의 37%에 달했다. 노후 단독주택은 강북구와 성북구에 많고, 노후화된 공동주택은 대부분 5층 미만의 연립·다세대 주택으로 양천구, 관악구, 은평구, 금천구 등에 분포했다. 특히 강북구 수유동과 금천구 시흥동 등은 노후 진행 정도가 심하지만 시행 중인 정비정책이 없다. 중랑구 면목동, 강서구 화곡동, 서초구 방배동은 단독주택의 재건축을 진행하지만 연립·다세대의 정비 정책은 없다.

국가통계포털(KOSIS)의 서울 분양 아파트 자료에 따르면 아파트 착공물량은 13만9894가구(2015년), 8만114가구(2016년), 7만5749가구(2017년) 등으로 해마다 줄었다. 2018년의 경우 10월까지 5만6353가구에 불과했다. 착공 후 입주 때까지 약 3년이 필요한 것을 고려하면 2018~2019년의 입주물량은 많지만 2020~2021년 준공주택이 적을 전망이다. 매년 최소 2만가구가 철거되는 상황에서 올해 주택 인허가는 예년 대비 절반으로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3기 신도시는 2021년 이후 신축 아파트 공급 감소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최근 취임한 경제부총리는 “주택 공급이 가장 중요한 집값 안정 수단”이라고 말했는데 어느 곳에 집을 짓느냐가 중요하다. 얼마 전 청와대를 떠난 장하성 전 정책실장은 “모두가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라고 말해서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서울에서 강남만 한 ‘계획도시’가 없는데 강남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는 사람들을 무조건 서울 바깥으로 밀어내려고만 하지 말고 서울 곳곳을 강남 수준의 편의성을 갖춘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과거에는 강북의 인구 집중을 막으려고 강남을 개발했으니 강남의 주거 수요를 분산하려면 강북을 개발해야 한다. 강북의 노후화된 단독, 연립 및 다가구 주택 등을 지역 상황에 맞춰 도시재생이나 재개발을 하고 이를 위해 건폐율 및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매력적인 도시를 재개발하지 않을 경우 초래될 최악의 상황은 ‘건물 높이를 낮추고, 건물 신축을 제한하고, 주택 가격을 끌어올림으로써’ 부자들을 제외하고는 도시에서 살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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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중 부동산학 박사·건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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