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간 레이더 갈등과 관련해 국방부가 지난 1월 4일 공개한 사진. 광개토대왕함이 표류 중인 북한 조난 선박에 대해 구조작전을 하는 가운데 일본 초계기(노란 원)가 저고도로 진입하는 모습이다. ⓒphoto 뉴시스
한·일 간 레이더 갈등과 관련해 국방부가 지난 1월 4일 공개한 사진. 광개토대왕함이 표류 중인 북한 조난 선박에 대해 구조작전을 하는 가운데 일본 초계기(노란 원)가 저고도로 진입하는 모습이다. ⓒphoto 뉴시스

“1함대 기함인 광개토대왕함이 왜 북한 어선을 구조하겠다고 수백㎞ 이상을 달려가 일본 코앞에까지 갔을까?”

최근 한·일 간에 가열되고 있는 ‘일 초계기 레이더 조준’과 관련해 사회 일각, 특히 보수 진영 일각을 중심으로 이런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의문의 핵심은 북한 어선 조난 당시 해경 경비함인 삼봉호도 출동했었는데 군 본연의 임무에 바쁜 광개토대왕함까지 왜 일본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일 인근 해역으로 이례적으로 출동했느냐는 것이다. 일각에선 ‘청와대 출동 지시설’ ‘북 선박이 어선이 아닌 다른 임무를 띤 선박이었을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이런 의문은 광개토대왕함이 일본 본토 가까운 해역에 출동했다는 데 대해 국방부와 군이 적극적으로 부인하지 않고 구체적인 출동 위치를 밝히지 않은 데 따른 영향도 컸다. 지금까지 광개토대왕함이 출동을 시작한 수역과 이번 사건이 발생한 수역의 구체적인 위치, 광개토대왕함의 구체적인 이동 시간과 거리 등은 공개되지 않았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광개토대왕함은 알려진 것보다 먼 거리를 이동하지 않았고, 일본 본토에서 제법 먼 곳에서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사건이 발생한 2018년 12월 20일 광개토대왕함은 울릉도 동북쪽 170여㎞ 수역에서 초계 임무를 수행하다가 오전 10시32분쯤 해경 등으로부터 북 조난 어선 수색 및 구조 요청을 받았다. 당시 해경 경비함보다 광개토대왕함이 북 어선 조난 사건이 발생한 해역에서 가까워 곧바로 사건 해역으로 향했다고 한다. 광개토대왕함은 약 2시간을 항해해 오전 12시25분쯤 현장에 도착했다. 최대 속력으로 이동했어도 100㎞ 이상을 이동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현장에 도착한 뒤 일본 최신예 P-1 초계기와 조우했고 문제의 레이더 조준 논란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해역은 일본 본토(노토반도)에서 300여㎞, 오키섬에서 220여㎞ 떨어져 있었다.

우리 독도로부터는 180여㎞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섬을 기준으로 하면 일본보다 우리 쪽에 더 가까웠던 셈이다. 다만 사건이 발생한 수역은 대화퇴 어장 인근으로 평소 우리 함정·항공기보다는 일본 함정·항공기들의 초계수역에 들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이런 상황에 대해 국방부나 해군에서 적극적으로 설명하지 않아 의혹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선 해당 수역이 일본 해상자위대의 초계수역에 들어 있고 지난 수년간 북한을 탈출한 선박들이 자주 출현한 곳으로, 대북제재의 일환으로 대북감시 활동이 강화된 곳이어서 일본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한 한·일 간 핵심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광개토대왕함이 일 초계기를 향해 사격통제(화기관제) 레이더를 가동했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 초계기가 광개토대왕함을 향해 위협비행을 했느냐이다.

일본은 우리 광개토대왕함이 추적 레이더(STIR-180)를 조준했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고, 우리 측은 탐색 레이더(MW-08)는 가동했지만 추적 레이더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광개토대왕함의 사격통제 레이더는 목표물(항공기)의 개략적인 위치를 파악하는 탐색 레이더와, 목표물 위치·고도·속도 등을 정밀하게 파악해 미사일을 유도하는 추적 레이더 등 두 종류가 있다. 보통 추적 레이더의 가동은 공격 의사가 있는 것으로 간주돼 상대방의 예민한 반응을 초래하곤 한다.

일 P-1 초계기가 확보한 광개토대왕함 레이더의 주파수를 공개하면 누가 거짓말을 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이다. 광개토대왕함 MW-08 레이더의 주파수는 4~6GHz(기가헤르츠)인 반면, STIR-180 레이더의 주파수는 8~12GHz로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국방부도 일본 측에 주파수 정보를 공개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일본의 일부 언론도 주파수 공개 가능성을 보도했지만 1월 10일 현재까지 일본 정부의 주파수 공개는 이뤄지지 않았다.

또 다른 논란은 일본 초계기의 광개토대왕함 150m 위 근접 ‘위협비행’ 여부다. 국방부는 지난 1월 4일 공개한 일 주장 반박 영상을 통해 일 초계기가 ‘고도 150m, 거리 500m’까지 근접해 위협비행을 했다고 밝혔다.

일본 측은 민항기 관련 규정을 근거로 “150m 위로 비행할 수 있다”고 했지만, 국방부는 “일본 측이 언급한 규정은 군용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초계기는 근접 위협비행을 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당초 군 당국은 비공식적으로 “일 초계기가 광개토대왕함에 ‘온 톱(On Top)’했다. 함정의 광학카메라(EOTS)가 찍은 영상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온 톱’은 초계기가 배 위로 지나갔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개된 영상을 보면 일 초계기가 광개토대왕함 가까이 근접비행을 했지만 배 위로 지나가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당시 광학카메라로 일 초계기의 접근을 감시하고는 있었지만 이것이 기록으로 남아 있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당시 광개토대왕함의 광학카메라는 북 어선 구조 상황 감시 및 기록에 주력하고 있던 상황이어서 일 초계기는 접근을 감시만 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한·일 양국의 군사적인 ‘레이더 조준’ 갈등이 정치적인 갈등으로 악화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우려했다. 이번 사안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는 아베 총리도 문제지만 우리가 ‘맞불작전’으로 나가는 것도 우려된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12월 28일 방위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상 공개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지지율 저하를 만회하기 위해 한·일 갈등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국방부 차원에서 대응하던 우리 정부는 지난 1월 1일 아베 총리가 신년 인터뷰를 통해 우리 측에 ‘재발 방지책’을 공개 요구한 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이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군 당국 차원에서 최고지도부 차원으로 대응 수위를 대폭 끌어올린 것이다.

우리 정부는 영어·일어·중국어 등 6개 국어로 된 반박 영상을 차례로 올리며 국제적인 여론전을 펴고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맞불작전’은 독도 인근 분쟁수역 문제가 부각되는 등 일본에 끌려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책기관의 한 전문가는 “이번 사안으로 인한 한·일 갈등 확대와 한·미·일 안보 협력 약화는 유사시 유엔사 후방기지 등을 통해 일본의 간접 지원을 받아야 하는 우리 입장에선 잃는 게 더 많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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