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 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미ㆍ중 정상회담. photo 뉴시스
최근 이루어진 2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는 한국과 미국이 기다려온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전환점이 될 것인가.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는 먼저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1967년 프랑스 파리에서 북베트남 공산주의자들과 가진 평화협상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때의 협상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북한 비핵화 협상과 닮았기 때문이다. 당시 43세였던 키신저는 파리에서 북베트남 정부 특사 마이 반 보(Bo)와 비공개 평화협상을 벌였다. 하지만 키신저는 보가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을 때가 많아 혼자 오래 앉아 있기 일쑤였다. 그 결과 키신저의 협상은 처절한 실패로 막을 내렸다. 이 때문에 미 국제정치학자 니얼 퍼거슨은 2016년에 출간된 그의 책 ‘키신저(Kissinger)’에서 당시 키신저에게는 협상파트너인 보가, 아니 북베트남과의 평화협상 타결 자체가 사뮈엘 베케트의 작품 ‘고도(Godot)를 기다리며’에 나오는 고도처럼 누군지도 모르고 정말 올 것인지도 모르는 대상처럼 여겨졌을 것이라고 묘사한다.
   
   
   키신저ㆍ반 보의 협상과 닮은꼴
   
   당시 키신저는 인내심을 갖고 보와의 협상을 계속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부정직하고 식언을 일삼은 보와 그의 동료들을 당해내지 못했다. 훗날 밝혀진 바에 의하면 북베트남 정부가 키신저와의 비공식 협상을 통해 얻고자 했던 목표는 미국과의 평화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전쟁을 유리한 상황에서 끝내기 위한 대규모 공습 계획 등을 위장하려는 목적의 대미 심리전이었다. 존슨 행정부 내 강경파와 온건파 간 균열을 조성하기 위해 대화를 위한 대화를 지루하게 벌이는 것이 북베트남의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키신저의 이 같은 협상 실패는 북한의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무엇보다 공산주의자와의 협상이 갖는 위험성을 인식해야만 키신저처럼 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키신저는 보에게 농락당한 지 6년이 지난 1973년 닉슨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서 파리에서 북베트남과 공식 평화협상을 벌였다. 하지만 훗날 그는 “노회한 공산주의자 레둑토에게 휘둘렸다”고 술회했다. 평화협정 공로로 노벨평화상이 주어졌을 때 키신저와 달리 레둑토는 거절했다. 그 이유는 평화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는 트럼프도 공산주의자들인 김정은과 시진핑과의 비핵화 협상에 신중하게 나서야 한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다. 김정은도 레둑토처럼 평화는 비핵화가 아니라 핵보유국 지위 확보를 통한 한반도 공산화라고 여전히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퍼거슨의 ‘경고’를 되돌아보게 되는 것은 현재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는 비핵화 협상 정세가 중국과 북한에 의해 사실상 주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초까지 미·북 간 비핵화 협상은 교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 논의도 진전이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북한의 비핵화는 ‘고도’처럼 영영 오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이 지배했다. 그러던 정세가 지난해 12월 1일 트럼프와 시진핑 간 미·중 정상회담을 고비로 다시금 미국과 중국, 북한 간 정상외교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김정은은 지난 1월 8일 시진핑의 초청으로 베이징을 방문해 다음날 북·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 후 미·북 관계가 갑자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북한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1월 18일 워싱턴을 방문해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만나 2차 미·북 정상회담의 2월 말 개최 합의에 도달한 것이다.
   
   
   한국만 모르는 ‘위험한 주고받기’?
   
   이 때문에 미국과 중국과 북한 사이에 우리 한국만 모르는 석연치 않은 ‘위험한 주고받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만큼 트럼프와 시진핑과 김정은 간 정상외교가 잘 짜인 극본에 따라 연출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의 협상이 교착된 것이 시진핑과 김정은의 전략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즉 트럼프가 북한의 비핵화를 ‘고도’처럼 기다리다 지치게 만듦으로써 자신들이 원하는 목표에 대한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전략 아니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명탐정 포와로 경감처럼 2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 성사 과정에 감춰진 진실을 추적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위험한 진실’의 전모를 추적할 수 있는 단초는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인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북한의 비핵화 협상은 우리의 지정학적 운명에 결정적 영향력을 갖는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 간 게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2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는 지난해 12월 1일의 미·중 정상회담에서 어떤 빅딜이 이루어졌는지를 우선 밝혀야만 한다. 그래야만 중국과 북한에 농락당하지 않을 수 있다. 잠바티스타 비코는 그의 책 ‘신과학(New Science)’에서 “진실은 구성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중과 중·북, 미·북 사이에서 진행되어온 사안들을 하나의 관점으로 꿰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2차 미·북 정상회담 합의의 산파 역할을 한 12·1 미·중 정상회담과 1·9 중·북 정상회담을 새로 ‘발굴’해야 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현장은 역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렸던 12·1 미·중 정상회담이다. 이 회담에서는 지난해 8월 발발한 양국 간 무역전쟁의 3개월 휴전이 합의됐다. 하지만 또 다른 중대 합의가 있었다. 그것은 김정은과의 2차 회담이 성사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트럼프의 요청을 시진핑이 수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보도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미국이 공개한 것은 트럼프가 귀국 비행기에서 “중국이 북한과의 협상을 도와줄 확률은 100퍼센트”라고 말했다는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미·중 정상 간 북한 관련 합의 내용은 중국 관영 신화사의 2018년 12월 2일자 보도에서 가늠해볼 수 있다. 보도는 “중국은 미·조(미·북) (2차) 정상회담을 지지하고, 양측이 서로를 마주보고 양측의 합리적 입장을 배려해 조선반도의 완벽한 비핵화와 반도 평화기제 수립을 병행 추진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보도는 이어 “미국은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중국과 이를 놓고 소통과 협조를 이어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 내용이 외교적 언어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정학적 관점에 따라 정밀한 해석이 필요하다. 첫 번째 단락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시진핑이 트럼프로부터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개최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적극 돕겠다고 대답한 뒤 미국이 북한의 입장을 잘 배려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협정을 함께 추진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 단락 중 중요한 대목은 시진핑이 트럼프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는 ‘마법은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영화 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고도’ 전략을 펴는 김정은을 기다리다 지친 트럼프가 ‘마법사’ 시진핑에게 부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다자간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미·북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삼는 데 동의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2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를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을 보여주는 대목은 무엇인가. 그것은 두 번째 단락에 있다. 두 번째 단락에 있는 두 문장의 외교적 표현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첫 번째 문장인 ‘미국은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는 ‘시진핑이 적극 돕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트럼프는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고’라는 의미를 갖는다. 다음 문장인 ‘중국과 이를 놓고 소통과 협조를 이어가길 희망한다’는 것도 트럼프가 시진핑에게 ‘2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 성사 등 김정은이 비핵화에 나서도록 도와주면 협상에서 중국 입장을 반영하는 등 협력을 해나겠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 지난 1월 8일 열린 4차 북ㆍ중 정상회담. photo 뉴시스

   북·중 정상회담의 의미심장한 대목들
   
   지난해 12월 7일 시진핑은 전날 방중한 리용호 북한 외무상에게 2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에 조속히 응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김정은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김정은이 지난 1월 8일 시진핑의 초청으로 베이징을 방문해 4차 북·중 정상회담을 가진 데는 이 같은 배경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날 시진핑이 김정은과의 회담에서 트럼프와의 2차 미·북 정상회담에 대한 중·북의 어떤 공동 전략에 합의했느냐는 것이다. 북한의 중앙통신은 지난 1월 10일 “비핵화 협상을 공동으로 연구·조종해나가는 문제와 관련해 심도 있고 솔직한 의사소통을 했다”고 전했다. 중·북의 공동 전략이 합의됐다면 그 방향과 관련해 주목해야 하는 것은 시진핑과 김정은 간 회담 결과에 대해 1월 10일 나온 신화사 보도 내용이다. 주목되는 대목은 두 개다. 하나는 두 사람이 “조선반도(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간다는 데 합의했다”는 대목이다. 다른 하나는 “조선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드문 역사적 기회를 맞았다”는 시진핑의 언급이다. 이 두 대목이 관심을 끄는 까닭은 시진핑이 그동안 거의 언급한 적이 없는 표현인 ‘정치적 해결’이란 것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말한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드문 기회를 맞았다’는 말의 의미를 살펴봐야 한다.
   
   먼저 ‘정치적 해결’이라는 것은 어떤 방식의 비핵화를 가리키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북한과 미국이 타협하기를(meet each other halfway) 희망한다”는 시진핑의 언급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즉 정치적으로 타협해 해결하라는 의미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미국과 북한 모두 어느 한쪽이 ‘완전한 승리(full victory)’를 거두는 방식의 비핵화가 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정치적 타협을 통한 해결’은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 번째 의미는 북한의 비핵화는 공학적인 의미가 아닌 정치적 의미의 해결이라는 것이다. 이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가 아니라 ‘PPCD(정치적으로 완벽하게 타협한 비핵화)’라는 새로운 비핵화 방식으로 명명할 수 있다.
   
   두 번째 의미는 각자 국내 정치적 목표에 따라 ‘타협해야 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의 정치적 목표는 자신의 정치 권력 기반의 안정이다. 이를 위해선 그가 CVID를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대신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약속을 유지하고 미사일 엔진 실험장 폐쇄 약속을 실천하는 것으로 안보리 제재 완화를 이끌어내고자 할 가능성이 크다. 그로서는 권력 기반인 당정군의 핵심 500만여명을 먹고살게 해줌으로써 그들의 충성을 계속 유지케 하는 것이 급선무다. 트럼프의 타협 지점도 다르지 않다. 김정은이 2차 회담에서도 CVID나 FFVD(완전하고 최종적으로 검증된 비핵화)를 수용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회담 목표로 CVID 또는 FFVD를 선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그는 2020년 재선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성과를 얻는 데만 주력할 가능성이 크다. 미 국민이 우려하는 북한의 핵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 위협부터 해소하는 것이 그의 목표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이다. 1월 13일 폼페이오는 비핵화 협상의 최종 목표는 미 국민의 안전이라고 말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한반도 문제’라는 표현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것은 한반도 비핵화 또는 북한의 비핵화를 넘어선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과 주한미군의 철수에 따른 한반도 중립화일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북한과 함께 주한미군과 미군의 핵 전략자산 전개 모두를 포함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해왔다. 중국은 그 같은 한반도 비핵화는 한국·미국·북한·중국 4개국 간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역내 질서가 중국과 북한 모두에 유리하게 바뀐다. 중국이 역내 군사 패권을 차지하는 데 큰 부담이 되어온 주한미군의 철수가 불가피하다. 그렇게 되면 중국은 패권을 차지할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북한은 통일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 같은 분석들을 종합하면 시진핑이 김정은과 합의한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드문 기회를 맞았다’는 말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즉 ‘북한의 비핵화와 함께 주한미군 철수와 미군의 핵전략자산 전개 중단을 모두 아우르는 한반도 비핵화를 다자간 한반도 평화 체제 수립으로 완성할 드문 기회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시진핑과 트럼프 빅딜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즉 비핵화 1단계로 김정은이 핵무기 동결과 함께 ICBM 폐기와 생산능력 폐쇄에 동의하면 트럼프는 제재 완화와 함께 다자간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에 적극 나서는 것으로 합의한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문제를 강조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왼쪽)이 지난 1월 18일 미국 워싱턴DC의 듀폰서클호텔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가운데)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 photo 뉴시스

   정치적으로 완벽하게 타협한 비핵화?
   
   문제는 트럼프가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질 수 있는 이 같은 내용의 빅딜에 합의해준 것이 맞는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트럼프 스스로 주한미군의 주둔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가 지난해 출간한 저서 ‘공포(Fear)’에서 공개한 바와 같이 트럼프는 취임 첫해인 2017년에 매티스 국방장관과 틸러슨 국무장관, 맥매스터 안보보좌관 등과의 회의에서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면서 주한미군을 한국에 주둔시켜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답해보라’고 다그쳤다. 당시 매티스만이 겨우 ‘3차 대전을 막기 위해서’라고 답했으나 트럼프는 전혀 수긍할 수 없다는 모습을 한 채 회의장을 떠났다는 것이 우드워드의 전언이다. 트럼프는 지난해 2월에도 트위터로 주한미군 철수를 공표하려다 켈리 당시 비서실장의 만류로 포기하기도 했었다. 그는 지난해 6월 12일 김정은과의 1차 정상회담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싶지만 당장 어렵기 때문에 이 문제를 나중에 북한과 주요 의제로 협의하고 싶다’고 언급했던 것이다.
   
   미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로버트 케이건은 2018년 출간한 책 ‘정글의 귀환(The Jungle Grows Back)’에서 미 국민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적 민족주의’라는 새로운 현실주의를 받아들여왔다고 말한다. 트럼프가 지난해 12월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를 결정함으로써 자유주의 패권(liberal hegemony) 전략을 폐기하고 미국의 국익 우선주의를 중심으로 한 현실주의로 이행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대중국 의제는 경제적 국익을 최대화하는 데 있다. 그가 군사 패권을 본격적으로 추구하는 중국에 대해 군사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는 주한미군이 중국을 군사적으로 견제하는 데 없어선 안 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의 관심은 미 본토 국민들의 안전 확보와 경제적 이익 증대에만 있다. 따라서 미 국민에게 최대 위협이 된 북한의 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 폐기와 생산능력 제거에 한반도 평화협정이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 주한미군 철수를 불러오더라도 그로서는 반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시진핑이 12·1 미·중 정상회담에서 빅딜의 핵심 조건으로 다자간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수용을 제시한 것은 그가 트럼프의 이 같은 대중 전략과 주한미군 관련 입장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가 이 조건을 수용했다고 한다면 우리가 풀어야 할 의문은 시진핑이 북한 비핵화를 FFVD 방식에 기반해 단계적으로 이행하자는 방안을 놓고 김정은과 확실히 합의했느냐 여부다. 시진핑이 북핵 비핵화에 동의했다면 그같이 볼 수 있는 근거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트럼프가 자유주의 패권 전략을 폐기함으로써 북한의 친미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키신저가 ‘중국론(On China)’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이 중국과 접경한 국가들로 하여금 핵 도미노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BBC 저널리스트 험프리 헉슬리는 2018년 출간한 ‘아시아의 바다(Asian Waters)’에서 북핵 위기의 핵심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달성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핵 도미노 발생이라고 지적한다. 세 번째는 중국도 북한의 핵과 ICBM 보유를 위협으로 보기에 이를 미국과 함께 해결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필리핀의 미·중 관계 전문가 리처드 J. 헤이다리안은 2015년 발간한 ‘아시아의 새로운 전쟁터(Asia’s New Battlefield)’에서 2005년 미국이 불법 자금 세탁을 이유로 마카오 BDA은행의 북한 계좌를 동결할 때 중국이 적극 협력한 것은 북한의 핵확산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만약 시진핑이 이 같은 세 가지 인식에 따라 트럼프와 협력해 북한의 비핵화 방안을 뒷받침한다면 우리가 우려해야 하는 것은 한 가지다. 다자간 한반도 평화협정에 대한 트럼프와 김정은 간 합의가 주한미군 철수를 현실화시킬 가능성과 그로 인해 우리가 중국의 속국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다시 말해 동아시아에서 비자유주의 질서가 부상하는 상황이다. 상황은 더 악화할 가능성도 크다. 시진핑이 끝까지 비핵화를 하도록 설득하더라도 김정은이 비핵화를 할 것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더구나 시진핑이 그렇게까지 설득하고 압박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결국 거짓말과 식언으로 미국을 속인 끝에 남베트남을 공산화시킨 반 보와 레둑토 등 북베트남 공산주의자들처럼 김정은이 비핵화를 할 것처럼 온갖 거짓말과 식언으로 주한미군을 철수하게 만든 다음 핵보유국 지위를 굳힐 가능성이 여전히 크다고 볼 수 있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개최되면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할지,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할지를 가름할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대응 전략은 보이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이 진짜 비핵화를 할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검증되지 않은 희망을 퍼뜨리고 있을 뿐이다. 베케트의 작품에서 막 중간에 등장해 오지도 않는 ‘고도’가 꼭 올 것이라고 말한 뒤 사라지는 소년과도 같다. 관객들은 작품의 주인공인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왜 ‘고도’를 기다리는지 끝날 때까지 알지 못한다. 우리 국민도 진보 정권과 보수 야당이 정말 북한의 비핵화를 바라고 있는지, 그렇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진정으로 노력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가장 큰 위기는 진보 정권과 보수 야당이 위와 같은 안보 위기를 극복할 비전과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일 수 있다. 북한의 비핵화는 끝내 오지 않는 ‘고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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