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대선에서 재선될 것인가는 워싱턴 사람들이 밥 먹다 화제가 떨어지면 꺼내는 단골 주제이다. 웬만큼 인기가 없지 않고는 현직 대통령이 재선 도전에서 패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트럼프도 핵심 지지층이 탄탄하게 버텨주는 한 재선에 문제가 없을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트럼프 시대를 4년으로 끝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한 전직 외교관과 점심을 먹었는데, 그는 트럼프 재선은 어려울 것이란 입장이었다. 민주당 사람이니까 트럼프가 재선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절한 건 말할 것도 없다. 그가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이유는 지난해 중간선거 때 민주당 성향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높았다는 점이었다. 다음 대선에서도 민주당 지지자들과 반트럼프 세력들이 대거 투표장으로 나와 민주당 후보를 당선시키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에서 트럼프에 대적할 만한 후보는 아직 없다. “그렇긴 하지.” 그의 트럼프 재선 불가론은 거기서 한숨과 함께 힘 없이 막을 내렸다. 민주당의 이런 희망과 기대를 반영하듯 요즘 미국에선 자고 일어날 때마다 차기 대선 도전을 선언하는 정치인들이 줄을 잇고 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차기 대선에 대한 이야기는 대통령 선거가 끝난 다음날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가 좀 눈에 띈다 싶으면 언론에서 여지 없이 ‘차기 대선 후보감’이라고 치켜세운다. 유명한 공직자가 갑자기 자리에서 물러나면 ‘차기 대선 준비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한다.

차기 대선 시즌은 내년 1월이나 돼야 본격적으로 막이 오를 것이다. 아이오와주를 필두로 각 주별로 경선이 시작된다. 2020년 11월 대선까지는 거의 600일이 남았다. 한 시사주간지는 최근 연방선관위에 등록한 후보가 이미 450명이 넘는다고 보도했다. 지금까지 2020년 대선 도전을 선언한 후보들 중엔 여성과 흑인 등 미국의 소수세력들이 많다. 2016년 대선 때 미국 사회에서 주류의 지위를 잃을까 우려하던 많은 백인 남성들이 대거 트럼프를 지지했던 것과는 다른 흐름이다. 이번엔 트럼프 치하(?)에서 설움받았던 소수세력들이 들고일어나는 분위기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코리 부커 상원의원, 카멜라 해리스 상원의원을 비롯해서 하워드 슐츠 전 스타벅스 CEO도 출사표를 던졌다. 10명이 넘어가고부터는 몇 명인지 세기도 어려워졌다. 수십 명이 나올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아직 위협적인 후보는 보지 못했다”고 한마디 했다. 트럼프도 아마 자신이 올챙이였던 시절은 잊었을 것이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엔 힐러리 클린턴이란 거물 정치인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지만, 공화당은 도토리 키재기 식으로 10여명의 후보가 난립해 혼란스러웠다. 그해 초만 해도 공화당이 어쩌다 저렇게 됐느냐고 어이없어 하던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 혼란을 뚫고 트럼프가 부상하는 데는 몇 달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 트럼프에 맞서 대선에 뛰어드는 정치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는 “나는 더 잘할 수 있고 더 나은 시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트럼프보단 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를 이기기 위해선 트럼프보다 더한 ‘아웃사이더’형이 나을지, 아니면 전통적인 지도자상이 좋을지, 그 점이 나의 관전 포인트다.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