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8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왼쪽부터)·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국회운영위원장실에서 현안을 두고 논의했지만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했다. ⓒphoto 이덕훈 조선일보 기자
지난 2월 18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왼쪽부터)·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국회운영위원장실에서 현안을 두고 논의했지만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했다. ⓒphoto 이덕훈 조선일보 기자

새해 인상된 세비를 수령한 국회의원들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따갑다. 지난해 세비를 ‘셀프 인상’ 해놓고 올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국회의 개점 휴업 상태가 이어지자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국회는 지난 2월 8일 국회의원 수당에 관한 국회운영규정 부칙을 개정했다. 활동비는 그대로지만 수당이 182만원(1.8%) 늘었다. 1.8% 인상은 공무원 임금 인상률에 따른 것이라고 하는데, 전체적으로는 세비가 1억4994만원에서 1억5176만원으로 올랐다.

국회의원들은 지난 2월 20일 1월분 소급치를 포함한 두 달치 인상분이 포함된 세비를 받았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1월분 소급치까지 해서 2월 20일에 세비가 입금됐다”며 “정의당은 반납 신청하겠다고 오늘 사무처에 얘기해왔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월급날은 매달 20일이다. 올해 첫 월급날이었던 지난 1월 20일에는 인상분이 반영되지 않았다. 그때까지 국회의원 수당에 관한 국회운영규정 부칙이 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2월 부칙이 개정되면서 1월분까지 소급 지급됐다는 것이 국회사무처의 설명이다. 세비에는 국회의원 수당과 상여금, 활동비 등이 포함된다.

반납·기부… 한국당은 ‘미정’

이번 세비 인상 폭이 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난히 비판 여론이 들끓는 것은 여야 의원들이 470조원 예산안 통과를 둘러싸고 싸우다가도 자신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사안에 대해서는 재빨리 합의하고 조용히 처리했기 때문이다.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국회의원 세비 셀프 인상 중단’ 청원 글에는 20만명 안팎의 인원이 참여하면서 성난 목소리가 쇄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비판 여론이 크게 일자 일부 정당은 일찌감치 인상분을 반납하거나 기부하겠다고 밝혀 왔다. 정의당은 “세비 인상을 전혀 인정하지 않겠다”며 “전원 사무처에 인상분을 반납하겠다”고 했다. 정의당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2월 안으로 국회사무처에 인상분을 직접 반납할 예정”이라며 “이는 세비 인상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1월 것까지 2월 20일에 지금 한꺼번에 나왔는데 원내 5명분을 모두 모아 2월 중으로 반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와 달리 바른미래당은 인상분을 국회 사무처에 반납하는 게 아니라 스타트업 등에 기부했다. 바른미래당은 지난 2월 17일 당 창설 1주년 기념식을 맞아 스타트업을 포함한 3곳의 업체에 소속 의원들의 세비 인상분에 해당하는 4195만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민주평화당도 세비 인상분을 기부하기로 정했다. 평화당 당직자는 전화통화에서 “의원들 모두 세비 인상분을 전액 한국여성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며 “확인차 방마다 돌아다니면서 서명도 받아왔다. 이거라도 해야 지지율이 좀 높아지지 않겠냐”고 말했다.

민주당도 기부 의사를 밝혔다. 지난 2월 20일 권미혁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올해 국회의원 세비 인상분을 기부하기로 하고, 방식과 기부단체 선정 등은 홍영표 원내대표에게 위임하기로 했다”며 “일괄로 해서 할 것인지, 매월 해당 금액을 나눠서 할지, 어떤 기부단체에 할지는 모두 원내대표에게 위임하기로 했다”고 했다. 국회의원들의 세비 인상분 기부 움직임에 대해서는 “국민 세금으로 생색 낸다”는 비판도 가해지고 있다.

113석의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아직까지 세비 인상분을 어떻게 할지 당론을 내놓지 않았다. 한국당 공보실은 2월 20일 전화통화에서 “아직까지 원내대표실에서 아무런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다”고 했고,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실 관계자 역시 전화통화에서 “세비 인상분과 관련해 원내대표가 별 달리 말씀하신 바는 없다”고 했다.

문희상 의장 “이게 국회냐”

올해 들어 국회 본회의는 하루도 열리지 못했다. 사실상 두 달 넘게 국회가 멈춰 선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31일 청와대 특감반 사태를 계기로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가 마지막이었다. 1월 임시국회는 지난 2월 17일 종료됐고, 2월 임시국회는 아직까지 일정도 잡히지 않았다. 국회법 제5조 2항에 따르면 총선이 있는 해를 제외하면 매년 2·4·6·8월에는 임시회가 열려야 한다. 여기에 2월 말에는 대형 이슈가 연달아 기다리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2월 27일에는 한국당 전당대회가, 27일과 28일에는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문희상 국회의장은 여야 5당 원내대표를 소집해 “이게 국회냐”라며 전례 없이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고 전해졌다. 문 의장은 지난 2월 19일 원내대표들과의 비공개 회동에서 “국회가 뭐 하나 한 게 있냐”며 “커다란 (역사의) 물줄기 앞에서 국회가 하는 것 없이 서로 치고받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문 의장의 말처럼 두 달째 국회가 공전하면서 각 상임위·소위마다 갖가지 법안들이 밀려 있다. 굵직한 법안만 따져도 소상공인 지원 근거를 규정하는 소상공인기본법 개정,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 등이 논의를 기다리고 있다. 당장 개회를 하더라도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올 연말까지로 보면 10개월 남짓이다.

현재 국회가 공전하는 상황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연동제) 도입과 맞물려 있다. 현재까지 연동제 도입은 완전히 결론이 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야 3당에 비해 민주당과 한국당이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야 3당 대표는 단식과 시위를 불사하며 연동형 비례대표제 개혁을 외쳤다.

야 3당이 일찍부터 인상된 세비 반납 혹은 기부 의사를 밝힌 배경에도 연동제가 있다. 연동제를 도입하려면 국회의원 숫자가 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도 의석수 증가를 곱지 않게 보는 시각이 많은 상황에서 세비 인상이 기름을 부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증원의 정당성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세비 인상분을 가져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연동제를 도입하려면 현실적으로 국회의원 숫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의원 증원 없이 지역구 2, 비례 1 비율을 맞추려면 지역구 의석수를 현행 253석에서 200석으로 줄여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야 3당의 당론은 의석수를 330석으로 맞춘다는 것이고, 민주당도 이에 동의한 상황이다. 반면 한국당은 아직까지 확실한 당론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야 3당은 의원 정수 확대에 부정적인 여론을 감안해 “의석수를 늘리더라도 국회의원 세비 감축 등을 통해 국회 전체 예산은 동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선거제 개혁이 표류하면서 한국당을 제외한 야 3당과 여당은 “선거제 개편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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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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