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12일 첫 미·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6월 12일 첫 미·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photo 뉴시스

오는 2월 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2차 미·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의 비핵화 협상 무대가 동아시아 질서를 재편하는 ‘새로운 전쟁터’로 떠오르고 있다. 하노이 회담은 외견상 북한의 핵 포기 여부를 확정하는 미·북 간 ‘전투’로, 또 다른 당사국인 우리가 미국을 대표로 내보낸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전투는 역내 패권을 노리는 중국과 일본이 당사국들 이상으로 관여하는 다자간 전투로 확전되고 있다. 따라서 전투의 결과가 어떻게 나든 간에 그것은 북한의 비핵화를 넘어 역내 질서에 큰 변수로 등장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이미 우리 안보에 위협이 될 것으로 우려되는 구도가 등장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회담이 북한의 핵 포기와 핵 동결 중 어느 쪽으로 확정되느냐에 따라 미국의 역내 잔류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미국이 회담에서 한반도평화협정에 합의하면 주한미군 철수는 불가피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최근 들어 일본이 군사적 몸집을 더욱 키우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미국이 떠날 경우 그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군사력을 키우고 있다. 이렇게 되면 역내 패권 경쟁 구도가 미국과 중국 간 대결에서 중국과 일본 간 대결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

이번 미·북 회담 결과로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트럼프 미 행정부가 협상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 프로세스가 그간의 숱한 부정적 비판과 전망을 잠재우고 본격적인 비핵화 이행과 미·북 평화협정 단계로 넘어가는 전환점을 하노이에서 마련한다는 시나리오다. 두 번째는 미 본토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중단과 함께 영변 등지의 핵시설 사찰과 더 이상의 핵실험 중단 요구를 북한이 수용하는 선에서 대북 경제 제재가 해제되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의 지위를 얻는다.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한국, 미국, 북한, 중국, 그리고 일본 등 5개국은 이 두 시나리오 중 어느 것이 적중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 첫 번째 시나리오가 맞으면 한국과 미국, 중국에 유리한 반면 두 번째가 실현되면 북한과 일본이 내심 환호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첫 번째 시나리오가 적중하더라도 우리에겐 평화협정이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지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숙제가 남는다.

또 다른 빅딜 나올까

지금으로선 이 두 시나리오 중 어느 쪽이 실현 가능성이 더 높은지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하노이 회담을 성사시킨 12·1 미·중 정상회담과 1·9 중·북 정상회담의 합의 내용이 회담 결과에 반영된다면 첫 번째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더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20일 백악관에서 “(대북) 제재는 전부 유지되고 있고 나는 제재를 풀지 않았다”며 “(제재를) 풀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려면 우리는 다른 쪽에서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김정은에게 구체적인 비핵화 이행 로드맵을 들고나오면 제재 해제를 해줄 수 있다는 메시지일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지난 2월 14일 폭스(Fox)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대북 제재 완화를 대가로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 게 우리의 목표”라면서 “비핵화와 함께 한반도 평화체제 창설 문제를 논의해왔고 미·북 양국 정상이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내는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트럼프와 폼페이오의 이 같은 언급들은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스티븐 비건과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 특별대표 김혁철 간의 실무 협상에서 빅딜에 상당한 의견 접근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북한 측의 빅딜 조치는 △영변 등지의 핵시설 사찰 허용 △과거에 생산한 핵물질과 핵무기 리스트 제출 △동창리 탄도미사일 엔진실험장 폐쇄 등 핵과 미사일 폐기를 위한 3대 조치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측의 빅딜 조치는 △유엔 안보리 제재 완화 또는 해제 △한반도평화협정 체결 △평양 미국 이익대표부 설치 등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익대표부의 의미와 관련해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는 그의 책 ‘공포’에서 “오바마 때 제임스 클래퍼 전 국가정보국장이 평양을 다녀와서 북한과의 협상은 평양 이익대표부 설치로 시작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만약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폼페이오가 폭스뉴스 회견에서 밝힌 대로 빅딜이 발표된다면 이는 지난해 12월 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G20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미·중 정상회담 덕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당시 미·중 빅딜 내용은 이튿날 중국 관영 신화사가 보도했는데,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도 신화사의 보도를 바탕으로 해외판에 이를 전제했다. 당시의 미·중 빅딜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시진핑이 김정은으로 하여금 트럼프의 2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 제안을 받아들여 북한의 비핵화가 이루어지도록 돕는 조건으로 트럼프는 북한에 대한 안보리 제재 완화 또는 단계적 해제와 함께 한반도평화협정 체결을 들어준다.’

미국과 북한이 이번 하노이 회담에서 12·1 미·중 빅딜 내용을 반영한 또 다른 빅딜에 합의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1월 9일 베이징에서 열린 4차 중·북 정상회담 결과를 주목해야 한다. 여기서 시진핑은 비핵화 문제의 정치적 해결에 나설 것을 북한에 요청했는데 이를 중국 외교부가 공식 발표했다는 것은 김정은이 이를 수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정은이 미·중 빅딜에 따라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수용해 위에서 언급한 첫 번째 시나리오에 동의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쁜 합의에 대한 유혹

그럼에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나쁜 합의, 즉 북핵 동결 시나리오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까닭은 북한이 2017년 11월 말 사정거리 1만3000㎞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화성15호 시험발사에 성공해 미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투사(projection) 능력을 갖췄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한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 1월 11일 아프리카 순방 중에 가진 언론 회견에서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의 궁극적인 목표는 미국 국민의 안전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한국계 전문가 수미 테리는 “최근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 비핵화’ 대신 ‘미국에 대한 위협 제거’란 표현을 쓰고 있다”면서 “달성하기 어려운 비핵화 목표 대신 ICBM 제거 쪽으로 대북 정책이 수정된 것일 수 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미국이 올해 들어 대(大)전략을 바꾸고 있는 것도 나쁜 합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12월 시리아와 아프간 미군 철수 결정을 시발로 자유주의 패권 전략을 폐기하고 경제 이익 우선주의라는 ‘트럼프식 현실주의’로 후퇴하고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가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쉽지 않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위험을 무릅써야 할 명분도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미 국민의 안전도 지키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동맹들의 안전까지 보장해야 한다는 책임감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하노이 회담에서 ‘대륙간 탄도미사일 능력 폐기’를 ‘핵 동결을 통한 핵보유국 지위 인정’과 맞바꿀지 모른다는 우려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배경으로서 전략적 요인도 있다. 그것은 미국의 현실주의자들이 한국의 군사적 중요성을 낮게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 예일대 역사학자인 존 루이스 개디스는 2012년에 출간한 그의 역저 ‘조지 F. 케넌’에서 1950년 1월 당시 국무장관 애치슨이 한국을 미국의 방어선에서 제외시킨 이유에 대해 케넌이 생전에 한국의 군사 전략적 중요성이 낮기 때문이라고 증언했다고 전한다. 봉쇄정책을 고안한 냉전의 아버지로 알려진 케넌은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외교관이다. 개디스의 저서에 따르면, 당시 미국은 중국, 소련과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이들 강대국 가까이 위치한 한국을 미국의 방어선에 포함시킬 수 없었다는 것이다.

케넌을 잇는 헨리 키신저나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등 미 현실주의자들도 요즘 미국이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실질적인 영향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강대국들의 위협을 전쟁이 아닌 외교 중심의 관여 전략으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특히 대중 전략이 그래야 한다는 것이 키신저의 지론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큰 모욕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우려다. 그래서 미국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것이 행여 중국과의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되면 핵 동결 선에서 타협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이다.

현실주의자들의 대중 전략이 미칠 영향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대륙간 탄도미사일 능력 제거를 대가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주는 시나리오를 노골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미국의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바와 같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핵 동결 시나리오는 외견상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가 추진되는 것처럼 하면서 사실상 핵 동결로 이어지는 형태다. 여기서 가장 우려되는 상황은 북한이 과거에 생산한 것이라고 신고한 핵물질과 핵무기가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핵물질과 핵무기가 아닐 때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북한이 신고하지 않고 빼놓은 핵물질과 핵무기를 찾아낼 방법이 없다. 즉 북한이 신고한 것만 검증하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다. 이때 미국이 어떤 스탠스를 취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180도 달라진다. 만약 미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모든 핵시설과 물질, 무기를 다 신고하게 만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 제재 강화를 통한 압박 강도를 높이면 된다. 현재 북한은 안보리 제재로 인해 경화 수입이 크게 줄어들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향후 1년 더 지속되면 김정은은 정치적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대북 제재를 더 오래하고 강화하면 북한의 거짓 신고 가능성은 줄어들 수 있다.

북핵에 대한 중국의 우려들

하지만 하노이 회담이 핵 동결 시나리오로 막을 내리는 것을 억제하는 중요한 지정학적 요인이 하나 있다. 중국의 역할이 그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중국은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과 북한이 서로 ‘제재 완화나 해제와 함께 한반도평화협정 체결’과 ‘비핵화의 구체적인 이행 로드맵과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폐쇄 등 대륙간 탄도미사일 능력 폐기’를 교환함으로써 비핵화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했다. 시진핑이 트럼프와 김정은을 연이어 만나면서 하노이 회담에서 위와 같은 내용의 빅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반을 다졌던 것이다.

시진핑의 지원 배경으로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은 미·중 무역전쟁이다. 중국 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을 트럼프가 하루라도 빨리 끝내도록 만들기 위해서 도왔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분석은 트럼프로 하여금 한반도평화협정 체결을 받아들이도록 함으로써 중국이 추구하고 있는 역내 군사 패권 확보에 큰 장애가 되고 있는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도록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요인이 있다. 북한이 비핵화 거부에 의해서건, 공식 핵 동결 또는 비밀 핵 동결에 의해서건 간에 핵보유국이 되는 것을 미국만큼이나 지정학적 차원에서 바라지 않는 나라가 중국이라는 사실이다.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은 중국의 안보에 세 가지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본다. 첫째 북한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을 중국이 역내 리더로서 자신들에게 강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해왔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중국은 북한의 핵 개발이 중국의 리더십을 원치 않는 주변 국가들로 핵도미노를 확산시키는 것이 아닌지 우려해왔다. 그래서 베이징에서는 2017년 북한에 친중 정권을 세우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담론이 제기되기도 했다고 영국의 동아시아 전문가 험프리 혹슬리의 저서 ‘아시아의 바다’는 전한다.

두 번째는 북한이 핵 개발에 이어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에 성공함에 따라 중국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역내 군사 패권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미 항모와 구축함, 스텔스 전투기 등의 접근을 막기 위한 ‘반접근과 지역거부(A2AD)’ 전략을 추진해왔다. 그런데 미국이 북한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한 명분으로 2016년 7월 주한미군 기지에 사드(THH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면서 이 전략이 흔들리게 됐다. 사드에 딸린 X밴드 레이더가 중국의 탄도미사일 기지를 포착할 수 있게 되면서 유사시 미 항모와 구축함의 남중국해 접근을 견제하는 것이 어려워진 것이다.

세 번째로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숙적인 일본의 핵무장으로 이어질까 우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일본이 핵무장을 하게 될 경우 동아시아와 서태평양 지역에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자신들의 전략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중국의 처지에서는 일본의 핵무장 저지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북한의 핵 보유를 차단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30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코스타살구로센터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렸다. (왼쪽부터)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모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나란히 서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11월 30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코스타살구로센터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렸다. (왼쪽부터)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모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나란히 서 있다. ⓒphoto 뉴시스

일본과 북한, 핵보유국 같은 배 타나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을 둘러싸고 역내 국가들 간 동아시아 질서 결정전이 본격화함에 따라 기존의 동맹과 적국 경계선도 무너지고 있다. 북한의 핵 보유를 막아야 한다는 목표를 공유하는 미국과 중국, 한국이 오히려 같은 편에 선 반면 핵보유국 지위를 어떻게든 달성하려는 북한과 자신들의 핵무장을 위해 북한의 핵 보유를 속으로 바란다는 의혹을 받아온 일본이 같은 배를 탄 형국이다. 과거 적국 간에 동맹관계가 형성되고 과거 동맹이 적국관계가 되는 이른바 ‘이종교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시진핑, 김정은, 그리고 아베 중 누구의 전략 또는 구상이 하노이 회담의 향배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인지에 따라 어느 이종교배 팀이 승리를 거둘지가 결정될 것이다.

관건은 트럼프와 시진핑이 북한의 핵 보유 저지를 위해 한시적 동맹체제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가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하노이 회담에서 김정은이 끝까지 구체적인 비핵화 이행 로드맵에 합의하길 거부하고 심지어 대륙간 탄도미사일 능력 폐기마저 주저할 때 결정적 위기가 올 것이다. 그럴 경우 트럼프는 나쁜 합의에 대한 유혹을 느낄 개연성이 적지 않다. 시진핑이 전략적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내려면 하노이 회담에서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이를 위해서는 김정은에게 ‘빅딜에 나서겠다’는 확실한 다짐을 받아야 한다. 하노이 회담이 빅딜로 끝나느냐 마느냐는 시진핑이 김정은의 다짐을 받아냄으로써 트럼프가 나쁜 합의 유혹에 넘어가는 상황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김정은은 트럼프와 시진핑의 전략을 모두 들여다보고 하노이에 도착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로부터 핵 개발의 목적 중에는 중국에 대한 견제도 있다는 점을 배웠을 것이다. 김정은이 하노이에 도착하기 전까지 풀고 있을 문제는 한 가지다. 즉 트럼프와 시진핑 두 사람을 어떻게 기만해야 제재 해제와 함께 한반도평화협정이라는 선물을 챙기면서 핵 동결이라는 양보를 끌어낼 수 있느냐는 문제에 골몰할 것이다. 그가 이 문제의 정답을 갖고 하노이에 올 것이냐 여부가 어쩌면 회담의 운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아베는 시진핑의 우려대로 핵 동결 시나리오가 적중하길 내심 바라고 있을 개연성이 적지 않다. 북한의 핵 보유를 빌미로 핵무장에 나설 명분을 얻음과 동시에 자위대를 정규군으로 전환시켜 미국을 대신해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겠다는 것이 아베의 구상일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납북 일본인 문제를 1차 미·북 정상회담 때 의제로 넣어달라고 아베가 트럼프에게 ‘떼를 쓴’ 배경을 이해하기 어렵다. 아베가 위험한 야심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이 하노이 회담을 위험하게 만들 보이지 않는 변수로 등장할 수 있다. 미 브루킹스연구소의 로버트 케이건도 같은 관점의 전망을 내놓는다. 그는 지난해 나온 책 ‘정글의 귀환’에서 “미국이 세계경찰관 역할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면 일본이 미국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 아베의 한 측근이 말했다”고 전한다. 일본은 중국과의 충돌 가능성이 높은 민족주의적인 노선을 취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인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하나다. 하노이 회담을 시작으로 본격화하고 있는 동아시아 질서 결정전에 어떤 대전략으로 ‘참전’해야만 중국과 일본 간 패권 구도를 막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역내 자유주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리더십을 계속 발휘하게끔 워싱턴 조야를 설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주한미군의 주둔비를 다 부담할 수 있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 이와 함께 중국과 일본에 밀리지 않는 군사력과 경제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이는 진보 정권과 그 진영에 맡겨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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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 전략국가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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