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민 전 주중 한국대사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낙점돼 2개월간 비어있던 ‘중화인민공화국 주재 대한민국 대통령 특명 전권대사’ 자리에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내정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야당의 비판이 쏟아졌다. 노영민 비서실장 역시 주중 대사로 일하던 지난해 6월 김정은의 3차 방중이 있던 날 자신의 지역구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돼 야당들로부터 쓴소리를 들은 바 있다. 비서실장으로 내정돼 귀국한 지난 1월 8일에는 김정은이 4차 방중을 위해 베이징(北京)에 도착한 것으로 확인돼 주중 한국대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인 북한 관련 정보 수집과 판단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3월 5일 논평을 통해 “장 전 실장은 소득주도성장 실험 강행 등 문재인 정부의 정책 폭정과 경제 파탄의 주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라며 주중대사 임명에 반대를 표했다. 이양수 원내대변인은 “주중대사는 주미대사에 버금갈 정도로 한국 외교의 중책을 수행해야 하는 자리”라며 “장 전 실장의 외교 전문성을 논하기 이전에, 주중대사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바른미래당의 김정화 대변인 역시 지난 3월 5일 논평을 내 “실패한 인사의 자리까지 보존해주는 문재인 정권의 의리가 눈물겹다”며 “끼리끼리 인력풀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장 전 실장은 소득 격차와 실업률을 재난 수준으로 만들고 경질됐다”며 “경제를 망친 것도 모자라 외교도 망치려고 작정한 모양”이라고 했다. 김 대변인은 “제발, 염치 있는 대통령이 돼라, 지금이라도 중국 외교전문가를 찾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지난 3월 6일 ‘무지개를 좇는 주중 대사’라는 제목의 정치부 기자 칼럼을 통해 “장 전 실장은 외교·안보 경험이 전무한 경제·경영 학자로, 중국어 능력은 의문이고 중국 전문성도 검증된 바가 없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장 전 실장이 작년 11월 청와대를 나와 두문불출 하다가 지난 2월 26일 고려대 교수 정년퇴임식에 나와 자신은 이상주의자로 무지개를 좇는 소년으로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무지개를 좇는 소년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장 전 실장의 전문성 논란과 관련해 지난 3월 5일 청와대 참모들과의 티타임에서 “과거 중국에서 두 번이나 교환교수를 했고, 최근에 저서가 중국어로 출판되는 등 중국통”이라고 말하며 장 전 실장이 주중대사로 가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고 보도됐다. 장 전 실장은 2017년 6월 30일 문 대통령 취임 후 첫 한·미 정상회담에 배석한 자리에서 “제 저서가 중국어로 출판될 예정이었는데 사드 때문에 중단됐다”고 중국과 자신의 인연을 소개한 것으로 보도됐다. 문 대통령이 장 전 실장의 중국 대사 내정의 가장 중요한 근거로 저서의 중국어 출간을 언급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장 전 실장이 중국어로 쓴 게 아니고, 중국에 대해 쓴 것도 아니며, 중국과 밀접한 관련이 없는 책이 중국어로 번역된 건데 무슨 중국통?”이라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장 전 실장의 저서는 중국어로 ‘韓國式 資本主義(한국 자본주의)’라는 제목이 붙은 서적으로, 중국 상하이(上海) 푸단(復旦)대학 국제문제연구소 한반도연구센터의 싱리쥐(邢麗菊) 교수가 번역한 책이다. 현재도 온라인 중국 도서시장에서 ‘2014년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은 도서’라는 소개글과 함께 66위안(元), 우리 돈으로 약 1만원에 팔리고 있다. 싱리쥐 교수는 서울 성균관대에서 한국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로, 한국어에 능통해서 많은 한국 서적을 번역한 업적이 있는 한국통 학자이다. 장 전 실장의 저서에는 ‘경제민주화에서 경제정의로’라는 부제와 함께 “한국의 좌파와 우파 사이에 ‘반(反)자본주의’와 ‘반시장경제’를 놓고 대립하고 있는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한 책”이라는 광고글귀가 붙어있다.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는 한국의 좌·우파 대결의 핵심을 분석한 책이라는 광고인 것이다.

청와대 정책실장 시절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함께 회의에 들어가고 있는 장하성 주중 한국대사 내정자. ⓒphoto 뉴시스
청와대 정책실장 시절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함께 회의에 들어가고 있는 장하성 주중 한국대사 내정자. ⓒphoto 뉴시스

중국어도 못 하는 주중대사들

1992년 8월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이래 27년간 베이징에 부임한 주중 한국대사는 모두 12명이었다. 초대 노재원(작고), 2대 황병태, 3대 정종욱, 4대 권병현, 5대 홍순영(작고), 6대 김하중, 7대 신정승, 8대 류우익, 9대 이규형, 10대 권영세, 11대 김장수, 12대 노영민으로, 이 가운데 노재원·권병현·홍순영·김하중·신정승·이규형 등 6명의 대사들은 정통 외교관 출신이었다. 2대 황병태 전 대사는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지만 재학 중에 고등고시 외교과에 합격해서 외교부 3등서기관으로 근무한 전력이 있는 데다가 미 캘리포니아 대 버클리에서 ‘한·중·일 유교와 현대화 비교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아 주중대사로 근무하던 중 이 박사논문이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중국어 번역본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3대 정종욱 전 대사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미 예일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정통 국제정치학자 출신이다. 황 전 대사와 정 전 대사는 고위 외교관 출신은 아니었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발탁해서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12명의 전임 주중 대사들 가운데 정통 외교관 출신이거나 중국 전문 학자가 아닌 경우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류우익 전 대사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권영세·김장수 전 대사, 그리고 문재인 현 대통령이 임명한 노영민 전 대사 등 4명이다. 이들은 모두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점이 발탁 배경으로 중국 외교부 등에 설명됐다.

이번 장하성 전 실장의 경우도 역시 중국 외교부에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설명이 첨부될 것으로 판단된다. 1988년부터 조선일보 베이징 주재 특파원과 홍콩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로 31년째 중국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필자의 판단으로, 12명의 전임 주중 대사들 가운데 중국어 구사가 가능한 대사는 6대 김하중 대사가 유일했다. 김하중 대사는 베이징 TV에 출연해서 중국어로 인터뷰를 할 정도의 중국어를 구사했고, 중국 외교관들로부터 “우아한 중국어를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베이징에 주재하는 외국 대사들 가운데 특히 주중 미국대사들은 내로라하는 미국의 중국 전문가들이 부임하는 것이 베이징 외교가의 상식으로 돼 있다. 만주 출생으로 리제밍(李潔明)이라는 중국어 이름까지 갖고 있던 제임스 릴리(James Lilly) 전 대사가 대표적이다. 테리 브랜스태드(Terry Branstad) 현 주중 미대사는 옥수수와 콩의 주산지인 아이오와 주지사를 16년간 지낸 인물로, 1983년부터 중국을 드나들며 많은 중국인과 관계를 쌓아왔다. 1985년 시진핑(習近平) 현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중국 동남부의 푸젠(福建)성 샤먼(廈門)시 부시장 시절 미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사귀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35년간 ‘라오 펑여우(老朋友·오랜 친구)’로 서로가 공인하는 사이다. 브랜스태드 대사의 전임 맥스 보커스(Max Baucus) 대사는 1978년부터 2013년까지 미 하원의원을 지내면서 하원 재정위원장 재직 기간 한국을 비롯한 11개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통과시킨 국제무역 전문가다. 특히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협정(WTO) 가입을 통과시키자는 의견을 제시해 중국인들로부터 ‘우리 경제발전에 중요한 도움을 준 친구’로 통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과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 테리 브랜스태드 주중 미국대사(왼쪽). 그는 시진핑 주석의 ‘오랜 친구’로 통한다. ⓒphoto 뉴시스
시진핑 국가주석과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 테리 브랜스태드 주중 미국대사(왼쪽). 그는 시진핑 주석의 ‘오랜 친구’로 통한다. ⓒphoto 뉴시스

보커스 대사의 전임인 게리 록(Gary Locke) 대사는 아예 할아버지가 미 워싱턴주로 이민한, 이른바 중국 외교부가 ‘화인(華人)’으로 분류한 인물이다. 검은 머리의 중국인 외모로, 중국인들 사이에서 뤄자후이(駱家輝)라는 중국어 이름으로 호칭됐다.

이들 미 대사들은 대부분 3년 정도의 주중 대사 재임 기간 동안 중국과 출신 주 사이의 무역거래액을 보통 10여배 이상씩 올린 실적을 쌓았다.

주중 미국대사뿐 아니라 현 중국 외교를 총지휘하는 양제츠(楊潔篪) 정치국원은 거꾸로 미국통으로 통한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베이징에서 CIA지국장을 하던 시절 베이징에 놀러온 대학생 아들 부시와 인연을 쌓았다. 갓 외교부에 입부한 양제츠가 아들 부시를 데리로 만리장성을 안내해서 구경시켜줬다. 그 인연으로 주미 중국대사, 중국 외교부장을 거치며 여러 차례의 중·미 충돌 위기를 해소한 경력으로 유명하다.

미국 외교관뿐만이 아니다. 중국 외교관들 사이에 “가장 중국어를 잘 구사하는 서양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케빈 러드(Kevin Rudd) 전 호주 총리는 호주국립대학(ANU)에서 중국 문학과 역사학을 공부한 이래 끊임없이 중국어를 공부했다. 그는 외무장관 시절 중국 외교관들과 접촉하면서 원어민과 다름없는 중국어를 구사해서 중국인들 사이에 ‘오랜 친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케빈 러드라는 영어식 이름보다는 루커원(陸克文)이라는 중국어 이름으로 중국 내에서 더 유명하다. 그는 지금도 중국 TV의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중국인들에게 ‘호주는 중국의 영원한 친구’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푸단대학의 한국통 중국인 교수가 ‘한국 자본주의’라는 서적을 번역 출판했다고 장 전 실장을 ‘중국통’이라고 언급한 문재인 대통령이 인지해야 할 것은, 한국에서 근무하는 중국대사관 외교관들이 거의 예외 없이 한국어에 능통한 외교관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한국인들과 폭탄주를 마시고 쓰러지면서도 한국어로 중얼거리는 투철한 외교관 정신을 갖고 있다.

그러나 주중 한국대사관에서는 주한 중국대사관에 근무하는 중국 외교관의 한국어 실력만 한 중국어 실력을 갖춘 외교관을 찾아보기 힘들다. 북핵 문제를 비롯,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중국에 대사를 파견하면서 국내 중국통들 사이에서는 ‘설마’ 하던 인물을 선택한 무모함이 놀랍다. 제대로 확인도 되지 않는 두 번의 중국 대학 교환교수 경력과 중국 증권감독위원회 자문위원 경력의 장하성 전 실장에게 ‘중국통’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대통령의 그 무모함에 국내의 수많은 중국통들이 가슴 아파하고 있다는 점도 아울러 전하고 싶다.

박승준 아시아 리스크 모니터 중국전략분석가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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