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일 새벽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멜리아호텔 회견장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photo EPA·연합
지난 3월 1일 새벽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멜리아호텔 회견장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photo EPA·연합

세계인의 이목이 쏠린 베트남 하노이에서의 2·28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북한을 협상장으로 불러낸 유엔(UN) 안보리의 대북 경제제재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협상이 결렬됐지만 대북 경제제재의 효과는 여전하다”며 “철저한 한·미 공조를 통해 북한이 다시 비핵화에 임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노이에서의 협상이 결렬된 뒤 곧바로 주목받은 것은 비핵화 대가로 주어질 경제제재 완화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설명이 서로 달랐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결렬 직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전면적인 경제제재 완화를 요구했다”고 말한 반면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구체적으로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채택된 5건을 얘기했고, 그중에서도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경제제재 완화를 두고 한쪽은 “전면적” 다른 한쪽은 “부분적”이라고 하는 등 양측의 설명이 다른 것이다.

리용호 외무상이 말한 5건의 경제제재는 어떤 것일까. 우선 주목받은 경제재재는 2016년부터 2017년까지의 UN 안보리 제재 5개다. 2016년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한 뒤 채택된 2270호를 비롯한 2321호, 2371호, 2375호, 2397호 5개라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북한의 제재 완화 요구 조항에 대해 “정확히 어떤 제재를 가리키는지가 특정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손꼽히는 북한 경제 전문가인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 3월 4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북한이 미국에 5개 제재를 말했다고 했는데, 2016년 이후 5개 제재 모두를 말하는 건지, 아니면 그중에서도 민생용 제재 일부만을 말하는 건지가 확실하지 않다”며 “마지막 12월 것(2397호)까지 5개라고 볼 수도 있지만 다른 5개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중 일부분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단순히 2016년 이후 5개라고 말하는 건 언론들의 추정일 뿐”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북한이 요구하는 대로 민생용 조항을 삽입해 제재를 풀어줄 경우 제재의 실효성이 급락한다”고 설명했다. “예전에 발효된 2270호 제재에 ‘민생용’ 조항이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민생용을 빼주니까 그쪽(민생용 명목)으로 광물 수출을 다 빼돌려서 제재 실효성이 없었다. 이전의 제재 실효성지수가 40~50점대였다면 그때의 제재 실효성지수는 10점대로 급락했었다. 왜냐하면 민생용이란 걸 북한이 증명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미국 편”

그렇다면 UN 안보리 제재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제재이기에 미국과 북한의 얘기가 달랐던 것일까. 앞서 말했듯 UN 안보리의 대북 제재들은 2016년 3월의 2270호를 기점으로 구분된다. 이전까지의 제재와는 성격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2270호 이후의 5개 제재는 모두 ‘간접제재(indirect sanctions)’에 속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간접제재는 북한 경제에 타격을 가함으로써 핵과 미사일 개발을 저지하는 제재를 말한다. 이전까지의 UN 안보리 대북 제재는 핵과 탄도미사일과 관련된 부품 등의 수출을 금지하고 이와 관련된 선박 수색을 중심으로 한 ‘직접제재(direct sanctions)’였다. 직접제재는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직접 연관된 물품 교역을 통제하지만, 간접제재는 북한의 주요 수출품 교역을 통제함으로써 북한 경제를 옥죈다는 측면에서 북한 경제에 전반적인 타격을 준다.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자. 2270호는 민생 목적 이외의 대북 무연탄 및 철광석 수입을 금지했고, 2321호에서는 민생 목적 등 유보 조항을 삭제하고 무연탄 수출쿼터 제재를 금지했다. 2371호는 북한으로부터의 무연탄, 철, 철광석, 납, 납광석,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했고, 2375호에서는 직물 및 의류 완제품 수입도 금지했으며, 2397호에서는 더 나아가 식품, 농산물, 기계류, 전자기기, 목재, 선박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이 제재는 무역 이외에 북한의 노동자 파견 및 경협 금지 등 북한의 외화획득 통로를 차단하는 조항들도 포함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UN 안보리 제재 이외에도 북한에 대한 독자적 제재를 추가로 이행해오고 있다.

이러한 ‘간접제재’는 북한 경제에 확실한 충격을 주고 있다는 점이 여러 경로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한국은행의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치에 따르면 2017년 북한의 GDP 성장률은 -3.5%를 기록했다. 더 강한 대북 제재의 영향을 받은 2018년에는 -5%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7년 북한의 대중국 수출은 대폭(37.3%) 감소한 반면, 수입은 오히려 늘어(4.3%) 상품수지 적자가 1년 만에 200%나 확대됐다. 이석 KDI 수석연구위원은 ‘북한경제리뷰’ 2월호에서 “2017년부터 침체 상태를 보인 북한의 거시경제 추이는 2018년 들어 전반적으로 더욱 악화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국책 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이와 관련해 최근 주목할 만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 2월 28일 정형곤 선임연구위원이 내놓은 ‘비핵화에 따른 대북 경제제재 해제: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다. 총 262쪽에 달한다. 이 보고서에서 정 연구위원은 대북 경제제재의 실효성지수를 ‘1. 무역 실효성지수, 2. 시장 실효성지수, 3. 외화 가득성지수, 4. 종합지수’의 4개 지수로 나눠 평가했다. 각각의 가중치는 무역 35%, 시장 30%, 외화 35%이다. 정 연구위원은 무역과 외화 부문의 가중치가 시장 부문에 비해 5%포인트 높은 이유에 대해 “두 부문이 경제제재의 효과가 직접 전달되는 부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민생용 풀면 제재 효과 급감

이에 대한 김병연 교수의 부연설명에 따르면 대북 경제제재는 무역경로와 외화획득경로를 통해 마지막으로 시장에 충격을 주는 경로로 움직인다. 경제제재는 무역과 외화획득에 직접 충격을 주고, 이 충격이 시장에 전해지면서 북한 경제에 전반적인 타격을 준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김 교수는 “2017년 말까지의 대북 경제제재 효과를 학점으로 본다면 B0에서 B-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100점 만점으로 볼 때 60점 안팎의 점수를 줄 수 있다는 얘기다. B0에서 B-라는 점수는 종합해서 가중평균을 낸 점수다. “제재가 효과가 있었다. B가 나쁜 학점은 아니지 않느냐. 하지만 아직까지 결정적 효과는 없다. 2017년 말까지 제재가 고통을 주는 기간이 길어졌는데, 2018년 들어 특히 시진핑을 만나면서 제재 효과가 약해졌다.”

북한의 ICBM 개발과 핵실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등 갈등으로 치닫던 남·북·미 간의 관계가 급속히 해빙무드로 들어선 것은 2018년 1월부터다. 이때부터 북한이 전향적인 자세로 나왔다. 대북 제재의 관점에서 보면 이 기간 동안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가 궁금하다.

2018년 들어 대북 제재의 효과가 낮아지는 것은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관련 남북 훈풍 영향도 있지만 제일 큰 건 1월에 있었던 북·중 정상회담이라는 것이 북한 경제 문제에 정통한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김병연 교수는 “80점 이상 될 때까지 몰아붙였어야 북한이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할 유인이 생기는데 한 번 동력을 잃었다”며 “우리 정부가 평창 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이 참가하도록 결정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그는 “미·북 각각이 지닌 패가 있는데 이 패를 내놓기엔 아직까지 충격이 덜하다”며 “미국과 북한이 구조적으로 각이 안 맞기 때문에 협상이 결렬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의 제재가 먹히고 있다. UN 안보리 제재 중 5개 모두를 말하든 민생용만 추려서 5개라 하든 북한이 이번에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이라며 “제재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영변과 5개 제재를 바꾸는 건 부등가교환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대북 제재를 ‘강도×기간’으로 설명한다. 제재 강도가 강해지지 않아도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북한 경제에 주는 충격이 커진다는 설명이다. 김병연 교수는 “지금은 기간의 싸움에 접어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 연구위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대북 제재의 실효성지수는 2017년 12월 59.5점으로 최고점을 찍은 뒤 2018년 들어 내려갔지만 후반 들어 다시 50점대 후반으로 올라선 상황이다. 김 교수는 “무역 실효성지수는 높아진 반면 시장 실효성지수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점은 밀수나 밀거래 등 제재 위반 사례들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음을 암시한다”고 분석했다. 김병연 교수는 “시간은 미국 편이다. 급하게 해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미국이 알고 있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이 꼽는 대북 제재의 핵심은 수출 제재다. 수출 관련 제재의 주요 대상은 광물, 의류·섬유, 수산물 등이다. 그중에서도 광물이 핵심이다. 광물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뿐 아니라 외화 수입 면에서도 가장 중요한 수출품이다. 제재 회피가 어렵다는 장점도 있다. 부피와 무게 때문에 밀수가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 광물은 석탄과 철광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특히 석탄이 80% 가까이 되는 비중을 차지해 압도적으로 많다.

북한 내부를 볼 때 현재 대북 제재로 인해 가장 고통받는 것은 북한 내부의 권력층이다. 흔히 북한을 김정은 1인만이 지배하는 독재로 생각하지만 그 내부에도 권력층이 있고 여론이 있다. 김정은도 그 여론을 의식한다는 것이 북한 경제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병연 교수는 “대북 제재는 2018년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에서 시작된 남북 화해 분위기와 남북 정상회담, 북·중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그리고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비핵화 협상을 이끌어낸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며 “이는 비핵화의 가장 중요한 레버리지인 경제제재를 비핵화 이전에 해제하는 것은 결코 현명하지 않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지난 2월 27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메트로폴 호텔에서 만찬을 하고 있다. 회담 분위기는 이때만 해도 긍정적이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photo AFP·연합
지난 2월 27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메트로폴 호텔에서 만찬을 하고 있다. 회담 분위기는 이때만 해도 긍정적이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photo AFP·연합

변수는 중국

대북 제재의 키를 쥐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2017년 이전까지 UN 안보리의 대북 제재에 소극적으로 대응해왔고, 제재 이후 2~3개월이 지나면 제재를 완화하는 패턴을 반복해왔다. 하지만 2016년 11월 채택된 2321호, 그리고 후속 제재인 2371호, 2375호에는 중국이 적극 동참해 북한의 주요 수출품 교역을 전면 금지했다. 그 결과 UN 안보리 대북 제재가 실질적으로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제재 실효성지수가 높아진 것도 이 시점부터다.

전문가들은 남·북·미 간 해빙무드가 유지되고 있지만 제재 역시 아직 실효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제재 위반은 객관적인 통계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중국이 이를 위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노이에서의 협상이 결렬되자 미국은 다시 경제제재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수퍼매파’로 통하는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 앞장서고 있다. 볼턴 보좌관은 3월 3일부터 5일까지 미국 내 여러 방송에 연거푸 출연해 “‘최대압박(maximum pressure)’은 계속될 것이며, 김정은에게 큰 충격을 안길 것”이라고 했다.

한편에서는 대북 제재의 공조가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를 지낸 다니엘 러셀 아시아 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 부소장은 최근 뉴욕에서 열린 전문가 대담에서 “북한이 미국과의 비핵화 합의를 원하도록 만든 것은 대북 제재의 강제적 효과”라면서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 이행이 있었더라면 이번 2차 미·북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진전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북한이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대북 불법 무역이 급증한 가운데, 한국은 남북 경제협력 사업에 대한 대북 제재 면제를 요청했고 중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공식적으로 대북 제재 완화를 촉구하는 등 대북 제제에 대한 국제적 결속이 무너졌다”고 우려했다.

여기에 제재가 지나치게 길어질 경우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시간이 길어지면 북한도 대북 제재를 회피하는 기법을 발전시키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대북 제재에 대한 UN안보리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중국도 차츰 제재를 풀어줄 가능성이 높다. 김병연 교수는 “특히 이례적으로 작년 6월 미·북 정상회담 전후로 3차에 걸쳐 이어진 북·중 정상회담 개최는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하노이 협상이 결렬된 이후 북한과 중국이 다시 정상회담을 열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다시 임하게 하기 위해서는 한·미 간 공조를 통해 대북 제재를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병연 교수는 “제재에서 발을 뺄 때는 얼마나 빠른 속도로 제재에서 발을 뺄지, 얼마나 보폭을 크게 할지에 관해 한·미가 철저히 공조해야 한다”며 “미국이 핵은 잘 알아도 북한 내부 경제는 우리가 더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북 제재를 효과적으로 하려면 제재와 인센티브가 함께 가야 한다”며 “CVID를 하면 고통·제재가 풀림과 동시에 인센티브까지 주어져야 효과가 더 세다”고 말했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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