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7년 3월 핵무기 연구부문 과학자·기술자들을 만나 핵탄두 기폭장치 추정 물체를 살펴보고 있다. photo 연합
만일 북한이 미국의 요구대로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로 간다면, 그 과정에서 북한의 핵 과학자들뿐 아니라 핵 제조기술을 보유한 기술자, 기업에 대해서도 선제적 관리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핵 문제 전문가들은 “핵무기 기술에서는 인적자원이 핵심이고, 비핵화 과정에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가 인적자원의 처리”라며 핵 협상 과정에서 ‘인적 비핵화’를 반드시 관철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여러 차례 북한 핵 사찰을 다녀온 올리 하이노넨 국제원자력기구(IAEA) 전 사무차장은 최근 미국의 소리(VOA) 방송 인터뷰에서 “비핵화의 가장 중요한 단계는 핵심기술을 보유한 핵심인력을 규명하고, 이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이들이 가진 기술을 함부로 확산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핵물리학 과학자들은 물론 관련 기계를 다루는 기술자들과 핵 제조 참여 기업들까지 폭넓게 관리할 방법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며 “핵 개발 과정에 참여한 기술자들은 우라늄 농축에 대해선 모를지 몰라도 원심분리기를 사용할 줄 안다. 이런 엔지니어들과 그들이 속한 기업들에 대한 관리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이노넨은 과거 각국 비핵화 과정에서 과학자들만 신경 쓰고 기술자들은 관리하지 않아 핵 확산에 치명적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남아공의 경우 비핵화 검증이 확실했고 과학자들에 대한 관리도 철저했지만, 제조회사들에 대한 관리는 없었다”면서 “통제가 느슨한 틈을 타 제조회사 두 곳이 파키스탄의 압둘 카디르 칸 박사 측에 기술을 제공했고, 국제사회는 그 사실을 10년 동안 몰랐었다”고 했다.
   
   
   북핵 기술자 최대 1만5000명 추정
   
   미국은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1차 미·북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부터 북한의 핵무기와 시설뿐 아니라 개발인력도 비핵화 대상이란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난해 5월 10일자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미국은 미·북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사전 협상에서 북한에 핵실험 관련 데이터를 폐기하고 수천 명에 달하는 북한 핵 기술자들을 해외로 이주시킬 것을 요구했다. 당시 미국 측은 북한이 실시한 6차례의 핵실험과 영변 핵시설 관련 데이터를 폐기하라고 요구했는데 “북한이 데이터 폐기 요구에는 모호한 태도를 취했고 기술자 이주에는 난색을 표했다”는 것이 아사히신문의 보도 내용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핵 개발 데이터 폐기와 기술자 해외 이주는 구체적인 핵 폐기 방법에 관한 것이다. 북한이 데이터와 기술자가 남아 있으면 언제든지 핵 개발을 재개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 미국의 우려다.
   
   실제로 구소련의 핵 기술자들은 1992년 연방 붕괴 이후 흩어져 다른 나라의 핵 개발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경우도 핵 개발의 태두인 도상록(서울대 교수 역임)을 비롯, 한인석(연세대 교수 역임), 리승기(서울대 교수 역임) 등 월북 과학자들이 핵 개발 1세대라면, 2세대는 정근(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후 소련에서 핵반응로 물리학 연구), 최학근(원자력공업부장 역임), 서상국(김일성대 물리학부 강좌장) 등 소련 유학파들이었다.
   
   북한은 1950년대부터 중국의 핵물리학자 왕간창(王淦昌) 등이 연수한 러시아 두브나시의 ‘연합 핵연구소’에 유학생을 보내 250여명의 핵 전문 인력들을 길러왔다. 1962년 평북 영변에 원자력연구소를 세워 핵물리학 연구진을 본격적으로 양성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 본격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위한 기술자들을 양성했다.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는 북한의 핵무기 연구·개발·실험에 직접 관여하는 인력이 약 9000~1만5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현재 북한의 핵 연구 인력은 가장 우수한 인재들로 채워지고 있으며 높은 대우와 급여를 받기 때문에 자부심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핵물리학 분야의 핵심 교육기관은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대학, 평성이과대학 등이다. 특히 평성이과대학은 핵 기술자 양성의 요람으로 핵물리학, 화학, 수학 등 다섯 개 학과로만 구성된 특수대학이다. 전국 고등학생 과학경연대회에서 5등 안에 입상한 최우수 인재들만이 진학할 수 있고, 각 학과는 다섯 명만 뽑아 6년제 교육을 실시한다. 이밖에도 평양고등물리학교, 김일성고등물리학교 등도 핵 기술자를 배출하는 기관이다.
   
   1989년 소련 해체 뒤의 혼란기를 틈 타 북한은 국제 핵 암시장을 통해 핵물질과 장치들을 입수하고, 러시아의 핵 과학자들을 북한에 초청해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그 와중에 러시아의 저지로 불발된 시도도 있었다. 미 일간지 보스턴글로브(Boston Globe) 1992년 12월 20일자에 의하면, 1992년 12월 북한은 구소련의 로켓과 핵 분야 전문기술자 36명을 월 1000달러 이상의 고임금으로 매수해 데려오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의 북한행은 러시아 정보기관에 사전 포착돼 셰레메티예보공항에서 이륙하려던 핵 기술자들을 저지할 수 있었다.
   
   북한은 구소련 이외에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남아공, 파키스탄, 중국 등의 핵 기술인력과 국제 핵 암시장을 통해 접촉했다.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의 자서전 ‘사선에서(In The Line of Fire)’를 보면, 칸 박사가 1990년대에 북한에 20여기의 우라늄 농축 원심분리기를 팔았으며 북한을 직접 방문해 원심분리기 설치 등을 가르쳐주었다. 당시 칸 박사는 구형인 p-1과 신형인 p-2 등 두 종류의 원심분리기를 북한에 제공했다. 1999년 북한의 핵 과학자가 신분을 숨긴 채 파키스탄 핵연구소에 와서 우라늄 농축 관련 기술을 배우고 간 일도 있다.
   
   
▲ 2017년 9월 2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 속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 과학기술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photo EPA·연합

   미국의 넌-루거 프로그램 가동
   
   국내외 핵 문제 전문가들은 북한 비핵화의 핵심인 북한 핵 기술자들의 관리를 위해서는 ‘협력적 위협 감소 프로그램(CTR·Cooperative Threat Reduction)’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협력적 위협 감소 프로그램’, 일명 ‘넌-루거 프로그램’은 1990년대 초 구소련이 붕괴될 당시 통제가 어려워지고 있는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를 관리하고 감축하는 데 필요한 비용과 기술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자금 및 기술 지원 등을 통해 핵보유국의 핵 포기를 유도하고 핵 기술자 재교육까지 지원하는 평화적 핵 폐기 방안이다. 한국도 발족 당시 10만달러를 출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프로그램은 1991년 11월 미 상원의원 샘 넌과 리처드 루거 의원이 발의한 ‘소련의 핵위협 제거 법안’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이 법안에 기초해 미국 정부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등 4개 공화국에 대해 매년 약 10억달러의 비용을 지출했으며,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1991년 넌-루거 법안 채택 이듬해인 1992년 CTR 프로그램에 4억달러의 국방부 예산이 최초로 할당된 이래, CTR 프로그램은 국방부와 국무부, 에너지부가 예산을 분담하며 핵무기뿐만 아니라 화학·세균무기, 핵무기 제조에 관여한 과학자들의 평화적 임무로의 전환 역할까지 그 영역을 확대해왔다.
   
   특히 국무부가 운영하고 있는 대량살상무기 전문가 유출방지사업은 우리의 벤치마킹 대상이어서 눈길을 끈다. 과거 핵무기 제조에 관여했던 과학자들에게 비군사적이고 평화적인 목적으로 자신들의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이를 위해 미 국무부는 구소련과 미국 과학자들 간의 실험실 차원의 교류 협력 필요성에 따라 모스크바 키예프에 국제과학기술센터(ISTC)와 우크라이나 과학기술센터(STCU)를 설립했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국제과학기술센터와 우크라이나 과학기술센터는 구소련의 핵무기 제조·개발에 관여했던 과학자들로 하여금 평화적인 분야에서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다국적 연구기관”이라며 “두 연구센터는 구소련 과학자들에게 시장경제의 원리를 교육시키기도 하며, 이들이 국제과학커뮤니티에 동참하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국제과학기술센터는 1992년 설립 이래 2000년 11월까지 러시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등의 400여개 연구소에서 선정된 3만여명의 과학자들을 1156개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시켰고, 그 예산으로 3억달러가 넘게 소요됐다. 1995년 키예프에 설립된 과학기술센터에서는 2000년 중반까지 4개의 구소련 공화국 출신 과학자 6700여명이 290개 연구과제에 종사했고, 당시 예산은 4200만달러였다. 이 프로그램은 지금도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2008년 CTR 프로그램을 북한에 적용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2008 국방수권법(the 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 for Fiscal Year 2008)에 CTR 프로그램을 북핵 폐기에 확대 적용할 수 있다고 명시한 것이다. 법안은 아시아와 중동 지역을 위협감축 협력 프로그램 확대 적용 대상으로 꼽았지만, 구체적으로 국가명을 언급한 것은 북한이 유일했다.
   
   2008년 2월 당시 한국의 6자회담 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현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위협감축 협력 프로그램’을 북한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처음으로 밝혔다. 지난 2월 21일 통일연구원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와 협력적 위협감소(CTR)’를 주제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나왔다. 이 토론회에서 안진수 전 원자력통제기술원 책임연구원은 “핵 개발에 사용된 시설의 용도를 전환하는 게 중요하다”며 “미국이 소련 해체 후 러시아 등에 적용한 CTR 프로그램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안 전 연구원은 “우라늄 광산과 정련시설, 원자로, 원심분리기와 원자로 부품 생산설비 등을 평화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끔 용도를 변경해야 한다”며 “핵심 연구인력은 직업훈련을 거쳐 개성공단 등에 재취업시키거나, 평화적 목적의 연구소를 세워 이곳에서 일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 미·북 회담 불발로 북한이 이란과 핵거래를 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맨 앞)이 2008년 4월 수도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322㎞ 떨어진 나탄즈 우라늄 농축시설을 둘러보는 모습. photo 뉴시스

   YS정부, 경수로 건설 때 CTR 프로그램 고려
   
   1994년 5월 북한이 영변의 5MW 원자로에서 연료봉을 인출하면서 촉발한 제1차 북핵위기는 그해 10월 미·북 제네바합의로 봉합되면서 북한에 핵시설 동결 대가로 2003년까지 1000MW 경수로 2기를 함경남도 신포(금호)지구에 지어주고 매년 중유 50만t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1995년 3월, 한·미·일 3국은 대북 경수로 제공을 위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설립해 한국이 사업비의 70%를 부담하기로 했었다. 북한은 부족한 전기를 경수로로 충당하고, 핵물질을 얻는 ‘꿩 먹고 알 먹기’식의 협상이었다.
   
   당시 실무에 참여했던 한국원자력연구원 출신 고위 관계자는 “김영삼 대통령은 당시 미국이 소련 붕괴 때 가동했던 CTR 프로그램을 북한 핵폐기에 대비해 북한에 적용하자고 했었다”며 “북한의 핵 과학자·기술자를 2만명으로 추산하고, 신포(금호)지구에 건설하는 1000MW 경수로 2기 발전소에 투입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미국과 협의했었다”고 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일 북한이 앞으로 핵폐기 수순에 들어간다면 CTR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전혀 낯설지 않다. 이미 2001~2002년 당시 KEDO와 북한의 합의에 따라 북한의 핵 안전 규제요원 25명을 대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 세 차례나 파견해 3주 과정의 안전규제 교육을 시킨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02년 7월 2일 방한한 김영일 핵안전감독위원회 국장을 단장으로 한 북한 안전요원들은 대전 대덕연구단지 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서 7월 26일까지 머물며 KEDO가 주관하는 핵 관련 안전교육을 받았고, 시운전팀은 울진 원자력발전소를 시찰하기도 했다. 남북 원자력 과학자들의 교류는 2002년 10월 북한이 미 국무부 제임스 켈리 차관보에게 고농축우라늄(HEU) 개발계획 추진을 시인하면서 핵시설을 가동하고 2006년 6월 KEDO가 경수로 사업 종료를 결정하면서 막을 내렸다.
   
   
   북한과 이란의 핵 거래 가능성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지난 3월 1일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과 관련해 숙소인 멜리아호텔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미국의 반응을 보면서 우리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앞으로 조·미 거래에 대해 의욕을 잃지 않으실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는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는 북한의 의도에 대해 “첫째는 시간을 벌고, 둘째는 제재 해제를 얻어내는 것”이라며 “최종적으로는 핵보유국 지위를 원한다”고 주장했다. 태 공사는 “김정은이 생존을 위해서 핵기술을 판매할 수도 있다”며 “(북한 핵기술에 대한) 많은 잠재적 구매자들이 있다”는 지적도 했다.
   
   한국 원자력계의 한 관계자도 “북한이 현재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이기 때문에 이란을 상대로 핵물질을 팔거나 과학자들을 파견하는 비즈니스를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결국 소련연방이 망한 후 발생한 기술, 인력, 핵물질의 유출 현상이 지금 북한에서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핵물질 유출도 생각보다 쉽다”며 “암시장을 통한 플루토늄 핵물질의 구입은 일반적으로 방사선과 무게 때문에 운반과 취급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다르다”고 했다. 알려진 것과 달리 플루토늄 핵물질도 쉽게 은닉이 가능하고 보통차량으로 운반이 가능하며 일반사람이 아무런 불편 없이 휴대할 수도 있어 핵물질의 암거래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례로 1992년부터 1994년 사이에 러시아로부터 수많은 핵물질이 유출됐다. 러시아에서 핵물질 유출의 출처로 손꼽히는 곳은 아르자마스, 첼리아빈스크, 예카테린부르크 등의 도시로,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채 핵 개발과 연구를 하던 비밀도시들이었다. 러시아와 독일의 시사잡지들이 구 KGB보고서를 인용해 이곳으로부터 56㎏의 플루토늄이 북한에 밀반입되었다고 보도한 적도 있다. 1998년 무렵, 러시아에는 핵무기에 쓰일 수 있는 플루토늄이 약 200t, 고농축 우라늄이 800~1200t 정도가 허술하게 보관돼 있었다고 한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북한이 핵을 폐기한다면, 핵물질과 핵탄두 제조에 관련된 핵심인력을 우선관리대상으로 삼는 북한 관리 전략이 필요하다”며 “이들이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국경을 철저히 통제하고 안정된 직업을 보장해줘서 자신들의 지식을 평화적 목적에 쓸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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