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임종석, 이해찬, 양정철
(왼쪽부터) 임종석, 이해찬, 양정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가장 즐겨 쓰는 단어는 ‘집권’이다. 2017년 대선 때 문재인캠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었던 그는 4월 30일 충남 공주대학교에서 열린 유세에서 “이번에 우리가 집권하면 극우 보수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18년 8월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출마하면서 이른바 ‘20년 집권’을 주장했고, 급기야 올해 초에는 100년 집권론까지 이야기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3월 13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게 해달라”는 표현으로 논란을 일으킬 때도 이 대표는 ”저런 의식과 저런 망언을 하는 사람들은 집권할 일이 결코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말에는 생각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이 대표를 잘 아는 인사들은 그가 틈만 나면 ‘장기집권’을 이야기하는 것이 결코 빈말이 아니라고 말한다. 민주당 수도권 한 중진 의원은 “이해찬 대표의 최근 일정이나 당내 인사를 보면 초점은 내년 총선에 맞춰져 있다”며 “재집권을 위해서는 내년 총선 승리가 필수적이라고 보는 것은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의원은 “그러나 빠른 총선 준비가 오히려 당내 숨겨져 있던 계파 갈등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전반적으로 보면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했다. 이 중진 의원은 대표적 비문계 의원이다.

고질적 계파갈등으로 인해 누더기가 된 당은 자유한국당이지만, 사실 민주당 역시 2016년 총선에서 친문과 비문 간 계파갈등으로 인해 난파선이 될 뻔했다. 그런데 이 대표가 준비하고 있는 일련의 총선 준비 작업이 한때 ‘비문계’로 불렸던 민주당 내 비주류 입장에서는 달갑지만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이해찬, 임종석 대신 양정철을 총선 파트너로?

실제로 이 대표의 총선 준비는 청와대와 보조를 맞추는 가운데 철저하게 친노 내지 친문 위주로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널리 알려진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당 복귀설이 도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 해석된다. 양 전 비서관은 민주연구원장에 내정된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연구원은 당 싱크탱크로 전략기획과 여론조사, 정책 연구, 중장기 비전 연구 등을 수행한다. 양 전 비서관은 민주연구원장을 맡을 경우 역할을 좁혀 총선 관련 전략기획과 인재영입, 당정청 간 정무적 소통에 치중할 가능성이 높다.

양 전 비서관에게 민주연구원장을 제안한 건 다름 아닌 이해찬 대표로 알려져 있다. 이는 지난 전당대회를 생각하면 상당히 의외의 제안이다. 전당대회에서 친문계가 밀었던 것은 김진표 의원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압도적 차이로 대표가 됐다. 친문계 핵심인 양 전 비서관과 관계가 소원해질 법도 하지만 이 대표가 양 전 비서관에게 손을 내민 셈이다. 두 사람은 여권에서도 손꼽히는 선거전략가로 통한다. 이 대표의 경우 자신부터가 본선에 진출한 모든 선거에서 승리함은 물론 1997년 대선에서는 대선기획본부 부본부장을, 2002년 대선에서는 선거대책반을 맡아 정권 창출에 기여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양 전 비서관은 본인이 출마한 선거에서는 미끄러진 경험이 있지만 두 번의 대선을 겪으면서 선거 전략에 있어서는 나름 일가견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2년 대선에서는 비록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졌지만, 선거 막판 여론조사에서 골든크로스까지 이끌어낼 정도로 격차를 좁히는 데 기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천주교계와 중도층이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하도록 양 전 비서관이 가교 역할을 했다.

세 사람 사이의 구원들

양 전 비서관의 복귀를 즈음해 이뤄진 개각은 비문계로 하여금 여러 계산을 하게 만들고 있다. 일단 비문계 중에서 가장 강한 전투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박영선 의원이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으로 입각하고, 이에 따른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비문계의 구심점 하나가 없어졌다는 평가가 많다. 또 다른 비문계인 진영 의원이 행정안전부 장관에 지명되면서 불출마 가능성이 높은 서울 용산에는 친문계인 권혁기 전 춘추관장이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비문계의 세력 약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색안경을 끼고 보면 비문계의 힘을 빼려는 의도를 가진 포석으로도 읽힌다. 아직 선거가 1년 이상 남았고 정권에 힘이 남아 있기 때문에 비문계도 섣부른 대응을 자제하고 있지만,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면 비문계도 이런 움직임에 맞서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임종석 전 비서실장의 복귀는 변수가 될 수 있다. 일단 임 전 실장은 이 대표와 관계가 썩 원만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이 대표가 불러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식사 자리까지 함께 가졌지만, 두 사람에게는 구원(舊怨)이 있다. 민주당은 2007년 12월 대선 패배 직후 당내에서 누군가 중진이 책임을 지고 2선으로 후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 이해찬, 김원기, 정대철 등이 대상으로 꼽혔다. 당시 당 쇄신위원이었던 임종석 전 실장은 “최대한 염치와 반성에 바탕을 둔 합의가 나와야 한다”고 했다. 중진들에게 ‘염치’를 거론한 것에 대해 이 대표가 상당히 불쾌해했다는 후문이다.

2012년 총선에서는 상황이 바뀌었다. 이 대표가 참여한 ‘혁신과 통합’은 “불법비리전력 후보들에게 온정을 베풀지 말고 확정판결 이전이라도 사실관계 확인 후 배제”라는 낙천 기준을 발표했다. 결국 보좌관이 저축은행에서 1억원을 받은 건으로 1심에서 집행유예 1년형을 받은 임종석 당시 민주통합당 사무총장이 사무총장직을 사퇴했고 공천을 반납했다. 임 전 실장은 이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두 사람의 현재 관계가 어떤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이 대표 입장에서는 임 전 실장보다는 양 전 비서관과 손을 잡고 총선을 준비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양 전 비서관과 임 전 실장 사이도 갈등요소가 잠복해 있다. 2017년 5월 대선 후 양 전 비서관은 모든 공직을 맡지 않겠다며 해외로 나갔다. 그러면서 자기와 함께 일했던 캠프 멤버들을 청와대에 추천했다. 하지만 양 전 비서관이 밀었던 인사들은 대부분 청와대에 입성하지 못했고, 이 자리에 서울시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대거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임 전 실장은 서울시 정무부시장 출신이다. 최근 탁현민 전 행정관이 두 사람이 도쿄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하는 등 원만한 관계를 강조하지만, 언제 잠복해 있던 갈등이 곪아터질지 모른다는 분석이다. 자유한국당 한 친박계 의원은 “(민주당이) 갈등요소들을 최대한 억눌러가며 선거 준비에 들어간 것처럼 보이지만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공천과정에서 계파 간 갈등이 본격화되면 당내 역학구도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며 “그게 권력의 속성”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그런 해석은 임 전 실장과 양 전 비서관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아니냐”며 “이 대표는 7선 의원으로 두 사람과 계파 싸움을 벌일 위치에 있지 않다”고 평가절하했다.

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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