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민정수석이 지난 4월 8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신임 장관 환담에 참석해 있다. ⓒphoto 뉴시스
조국 민정수석이 지난 4월 8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신임 장관 환담에 참석해 있다. ⓒphoto 뉴시스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의 내년 총선 차출론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여당 내에서는 PK 지역 민심이 점점 악화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조 수석이 구원투수로 등판해주길 바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계속해서 군불을 때고 있고, 부산시당 위원장인 전재수 의원은 아예 공개적으로 영입의사를 나타냈다. 조 수석 본인은 출마를 고사하고 있지만, 아직 선거가 1년 가까이 남은 상황이어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반면 야당은 조 수석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여가며 예봉을 꺾으려 하고 있다.

민주당의 경우 최근 몇 번의 전국 단위 선거에서 PK 지역에 공을 들여왔다. 최근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 등 이 지역 SOC 사업에 대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늘어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선거 자체로만 보면 민주당에서 지명도 높은 인물 내지 상징적 의미가 큰 사람을 내세워 바람을 일으키면 그 효과가 어느 정도 먹혔다. 2016년 총선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그 역할을 했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비슷한 일을 했다. 현 여권에서는 내년 총선에 조 수석이 이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눈치다.

그런데 과연 조 수석이 문 대통령이나 김 지사와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당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회의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 부산·경남 지역 특유의 정서가 조 수석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란 지적을 한다.

부산·경남 지역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오랜 기간 지역 기반을 닦았다는 점이다. 지역구에 출마하려는 의원들 중 지역 기반을 닦지 않은 의원이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이들은 최소 10년 이상 이 지역에 뿌리를 두고 활동했다. ‘지역 기반을 오래 닦았다’는 문장에는 단순한 시간적 의미 이상의 함의가 담겨 있다. 이들에게 지역 기반을 닦았다는 말은 곧 ‘선거에서 여러 차례 쓴맛을 봤지만 이를 딛고 일어섰다’란 의미이기도 하다.

지역 기반 없으면 다들 고배

대표적 인물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20대 국회의원 중 더불어민주당 출신 PK 의원 6명의 이력만 봐도 이런 공통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부산 남구을 박재호 의원은 17대부터 내리 3번 김무성·서용교 의원에게 밀려 낙선하다가 20대 때 처음 배지를 달았다. 부산진갑 김영춘 의원은 16·17대 때 서울 광진갑에서 재선까지 성공할 정도로 각광받는 젊은 정치인이었으나 고향 부산에 내려와서는 연거푸 쓴잔을 마셔야 했다. 18대 때는 총선 불출마, 19대 때는 낙선,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부산시장에 출마했다 야권 무소속 오거돈 후보에게 양보했다. 그리고 20대가 돼서야 다시 국회에 입성했다.

부산 강서갑 전재수 의원도 총선과 지방선거 3번의 패배 끝에 20대 국회에서 처음 배지를 달았고, 최인호 의원(사하구갑)과 윤준호 의원(해운대구을)도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 김해영 의원(연제) 정도가 첫 선거(20대)에서 배지를 달았는데, 그 역시 사법시험 합격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부산 지역에 뿌리를 내려왔다. 이들이 대거 20대 총선을 통해서 국회에 입성한 이유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출마해 이 지역에 바람을 불러일으킨 측면도 컸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아무리 중앙정치의 바람이 세게 불어도 오랜 기간 지역 기반을 닦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쉽게 마음을 내주지 않는다는 것이 이 지역 특유의 정서라는 말이 많다. 즉 부산·경남에 공을 들이지 않은 인물이면 아무리 중앙정치 프리미엄을 업고 내려와도 당선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8년 총선에서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2개월 뒤에 치러진 총선에 친박계 정치인들에게 공천을 주지 않고 친이계 정치인들을 대거 PK 지역에 공천했다. 당시 김무성 의원을 비롯한 현역들이 무소속 내지 친박연대로 출마를 강행했고, 한나라당은 따로 공천을 줬다. 당의 공천을 받은 사람들도 거의 부산에서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었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대부분 중앙정치 무대에서 활동했다. 결과는 무소속 내지 친박연대의 압도적 승리였다. 낙선한 한나라당 후보들은 30% 득표율을 넘기기도 힘들었다.

경계선에 있는 조국

당시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부산 출신 한 중앙지 기자는 “부산이 고향이라고 해도 사회생활을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서 하다가 선거 때 부산에 출마한다고 하면 지역 유권자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서울 뜨내기는 안 된다’란 정서가 강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대구는 아무리 노력해도 민주당 출신들에게 박한 측면이 있는데, 부산은 고생하면 하는 대로 표가 나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며 “민주당 후보로 계속 출마하고 있는 김비오씨의 경우 언제 누구랑 붙어도 박빙까지 갈 정도로 지역에서는 인정해준다”고 말했다.

이런 기준으로 조 수석을 평가한다면 그는 경계선에 있는 사람이다. 조 수석은 부산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했고, 고등학교(혜광고)까지 나왔다. 이후 서울대 법대에 진학해 줄곧 서울을 기반으로 생활해왔다. 고교 졸업 이후 이 지역에서 조 수석이 활동을 한 것이라고는 1992년부터 1999년까지 울산대 전임강사와 조교수를 한 경력이 전부다. 유학 시절 이외에는 서울대 교수, 참여연대 소장 등 주로 중앙무대에서 활동해왔다. 조 수석의 부모가 여전히 창원 등에서 학교법인을 운영하고 있지만, 부산 정서로 보면 조 수석은 ‘서울 사람’에 가깝고 이 이미지를 벗기는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부산 경남에서는 인지도가 높은 것과 부산 사람이라는 걸 분리해서 보는 측면이 있다”며 “부산 출신 민주당 이철희 의원의 경우 JTBC ‘썰전’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만 부산에서 그를 ‘부산 사람’이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반대로 조 수석이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조 수석이 이전 ‘서울 뜨내기’들과는 다르게 대중적 호감도가 높은 정권 실세란 강점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PK 지역의 더불어민주당 출신 한 지자체장은 “부산 혜광고 출신 조국 수석은 엘리트지만 정의롭고 반듯한 이미지를 갖고 있고, 대중적 인지도도 높은 편”이라며 “부산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 당의 판단인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 출신 중앙지 기자는 “조 수석의 경우 상대편 후보가 누가 되느냐, 어느 지역에 나오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며 “교육열이 높은 해운대에 나올 경우 경쟁력이 있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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