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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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한 미소와 매너로 ‘필드의 신사’로 불리던 톰 왓슨(69·미국)은 디오픈(브리티시오픈)이 사랑한 골퍼였다. 디오픈은 황량한 바닷가 링크스 코스에서 예측불허의 강풍과 폭우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열려 골퍼의 인내심을 극한까지 시험하는 대회로 악명 높다. 왓슨은 PGA투어에서 메이저 대회 8승을 포함해 39번 우승했다. 메이저 8승 중 5승을 카누스티(1975), 턴베리(1977), 뮤어필드(1980), 로열트룬(1982), 로열버크데일(1983)에서 열린 디오픈에서 거뒀다. 2009년 턴베리에서 열렸던 디오픈에서는 59세의 나이로 아쉽게 준우승해 놀라움을 안겼다.

이런 왓슨을 지난 6월 영국왕립골프협회(R&A)는 디오픈 사상 최초의 글로벌 앰배서더로 임명했다. 그는 2015년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린 디오픈에서 은퇴했다. 올해 디오픈은 7월 19일부터 왓슨이 처음 우승했던 카누스티에서 열린다.

그는 어떻게 디오픈에서 유달리 강했던 걸까. 질문을 바꾸면 답이 보인다. 그 심술궂은 디오픈이 어려운 상황에 빠지면 오히려 미소 짓던 사내에게 약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왓슨은 처음에는 링크스 코스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는 “나는 공을 높은 탄도로 날리는 편인데 링크스 코스에서는 공이 어디로 튈지 몰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끝없는 노력이 필요한 링크스 코스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고 말했다. 링크스는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세계다.

언제든 잘 친 샷이 불운으로 연결될 수 있다. 골프도 인생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묵묵히 참고 미소 지으며 앞으로 나가야 하는 게임이라는 걸 왓슨은 깨달았다고 한다.

퓰리처상을 3차례 받은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책 ‘늦어서 고마워(Thank You for Being Late)’에서 골프의 예를 들어 역경이나 외부의 중대한 도전을 마주했을 때 대응하는 문화적 차이를 비교한다. 왓슨은 드라이버로 친 공이 페어웨이의 ‘디보트(devot·잔디에 팬 자국)’에 빠졌을 때 “내가 어떻게 디보트에서 공을 쳐내는지 잘 봐!”라고 캐디에게 말한다. 반면 실력에 비해 숱한 역전패를 당했던 호주의 그렉 노먼은 “난 오늘 왜 이렇게 운이 나쁘지?”라고 불평한다는 것이다. 이는 왓슨과 노먼의 캐디를 모두 경험했던 고(故) 브루스 에드워즈(1954~2004)가 골프다이제스트와 했던 인터뷰를 인용한 것이다. 프리드먼은 왓슨 같은 태도를 지닌 이들이 변화에 적응하는 반면 불운을 한탄하거나 남 탓하는 노먼 같은 태도를 지닌 이들은 변화에 뒤처진다고 평가했다.

심리학에 ‘안면 피드백 이론’이라는 게 있다. 표정에 따라 감정 상태가 달라진다는 이론이다. ‘지금 웃을 일이 없더라도 일단 웃으면 앞으로 웃을 일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선후(先後)를 바꾼 궤변 같지만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는 뇌의 감정중추가 표정을 관장하는 운동중추와 인접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기 때문이다. 표정에 따라 감정 상태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근대 심리학의 창시자 미국의 윌리엄 제임스가 “사람은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왓슨이 디오픈에서 깨달았던 것도 ‘웃어야 웃을 일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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