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힐링을 소재로 숱한 그림을 그려내고 있는 김영화 작가. ⓒphoto 민학수
골프와 힐링을 소재로 숱한 그림을 그려내고 있는 김영화 작가. ⓒphoto 민학수

설레는 마음으로 골프장을 찾아가면서도 주말골퍼의 마음 한구석에는 짙은 불안감이 고개를 치켜든다. ‘공은 제대로 맞을까’ ‘망신은 당하지 않을까’…. 사실 골퍼의 불안은 실체가 있는 것이다. 드라이버 샷을 200m 이상 날린다고 하면 티잉 구역에서 휘두른 스윙의 작은 오차로도 공은 목표점에서 크게 벗어나는 결과가 빚어진다. 천하의 타이거 우즈도 “내 이름이 우즈가 아니고 페어웨이였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농담으로 티샷 실수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할 정도다.

‘골프 화가’라는 애칭이 있는 김영화(55) 작가의 그림을 보면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즐겁게 공놀이 하는 골퍼들 모습을 보게 된다. 때론 페어웨이를 의인화하거나 남녀의 성(性)과 유희(遊戱)가 익살스럽게 드러난다. 골프를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런 그림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골프장의 사계(四季)를 담은 화폭에서는 스코어에 빠져 놓쳐버린 풍광이 담겨 있다.

김 작가는 30대 중반에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데 좋다”는 친언니 조언으로 골프를 접했다고 한다. 라운드를 나가니 불안감을 이겨내지 않으면 오히려 골프가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딴짓하기’다. 동반 플레이어들이 샷을 하는 모습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풍경을 만나거나 영감이 떠오르면 쓱싹쓱싹~. 그는 한창때 베스트 스코어 77타로 싱글 수준까지 올라갔다. “‘마음을 비워야 골프를 잘 칠 수 있다’고 하죠. 저는 그걸 ‘눈앞의 지금 이 순간을 느끼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해석해요. 뭘 잘해보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니까요. 순간순간 그림을 그리는 방법으로 걱정 대신 ‘지금 이 순간’을 찾을 수 있었어요. 그림이든 음악이든 아니면 작은 손동작이든 자신만의 딴짓하기를 만들어보세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골프 힐링서라고 해도 좋을 ‘내 인생을 바꾼 일주일 golf’s sacred journey’(데이비드 L. 쿡·민음인)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골프는 기억력을 이용한 게임이지. 홀을 바라본 다음 홀에서 시선을 떼고 스윙을 해야 하지. 골프는 공에서 시작하는 게임이라네. 하지만 우리는 골프를 칠 때 우리의 기억, 즉 우리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는 그림에 맞게 공을 이동시키려고 노력하지. 그래서 우리가 그리는 그림이 너무도 중요한 것이지.’

동양화와 서양화의 기법을 접목하고 화려한 색채를 쓰는 그의 골프 그림은 국내외 골프장으로 퍼져나갔다.

그는 만나는 이들의 얼굴을 즉석에서 골프공에 그려 선물한다. 1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 선물 습관이 국가공인 표준영정 제99호인 백제 무령왕 영정을 그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김 작가는 도예가 집안에서 자랐다. 한국 도자기의 전통을 복원한 선친 김윤태 선생의 뒤를 이어 동생 김영길씨가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김 작가는 “골프 그림 그리기를 통해 예술의 힐링 효과가 무한하다는 걸 확신할 수 있게 됐죠. 오늘 나만의 그림 한 폭을 그려내자는 색다른 접근으로 골프장을 간다면 더 멋지지 않을까요”라고 했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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