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자 골프의 전설 낸시 로페즈(왼쪽)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권서연. ⓒphoto 오거스타내셔널
미국 여자 골프의 전설 낸시 로페즈(왼쪽)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권서연. ⓒphoto 오거스타내셔널

국가대표 출신 골프 유망주 권서연(18·대전방통고)은 2001년생이다. 박세리(42)가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맨발 투혼’을 하고 3년 뒤에 태어났다. 그런데 스스로 ‘세리 키즈’라고 생각할 정도로 박세리와 깊은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년간 박세리장학생에 선발된 데다 이번엔 올해 창설된 ‘오거스타내셔널 위민스 아마추어(ANWA)’ 무대에 같이 서는 영광을 안았다. 권서연은 “여러 기회에 자주 만나서 골프를 하는 마음가짐과 경기운영 방법 등에 대한 조언을 받았다”며 “박세리 프로님처럼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골퍼가 되고 싶다”고 한다.

지난 4월 6일(미국 현지시각) 제1회 ‘오거스타내셔널 위민스 아마추어’ 최종 3라운드가 미국 골프의 심장부 오거스타내셔널 골프클럽(조지아주)에서 열렸다.

세계 상위랭커 25개국 72명이 1~2라운드를 인근 챔피언스 리트리트골프장에서 치른 뒤 상위 30명만 오거스타내셔널을 밟을 수 있었다.

박세리(42), 로레나 오초아(37·멕시코), 낸시 로페즈(62·미국), 아니카 소렌스탐(49·스웨덴) 등 여자 골프의 전설 네 명이 ‘역사적인 날’을 기념해 시타를 했다. 아마추어 대회이긴 하지만 오거스타내셔널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상징성이 있었다.

권서연은 긴장한 듯 실력 발휘를 못 하다 2라운드 마지막 18번홀(파5)에서 기적 같은 샷 이글을 기록한 데 이어 플레이오프를 거쳐 30명 안에 들었다. 그의 스코어는 1언더파71타. 3라운드 합계로는 공동 12위(2오버파)의 성적이었다.

그동안 세상에는 두 종류의 골퍼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오거스타내셔널에서 매년 4월 열리는 마스터스에 출전해본 골퍼와 그러지 못한 골퍼.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할 때 여성 골퍼들은 아예 꿈의 무대에 서볼 기회가 없었다는 것을 남성들은 잊고 있었을지 모른다.

테니스는 4차례 메이저대회에 남녀가 같은 시기 대회를 치러 똑같은 상금을 받는다. 골프는 같은 브리티시오픈이라도 남녀 대회가 다른 시기에 열린다. 지난해 남자 우승자 프란체스코 몰리나리(이탈리아)는 상금 189만달러를 받았다. 여자 우승자 조지아 홀(잉글랜드)은 49만달러를 받았다. 마스터스는 아예 여자 대회를 열지 않았다. 2012년 전 미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등 두 명의 여성 회원을 받을 때까지는 아예 ‘금녀(禁女)의 공간’이었다.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한 권서연에게 소감을 물었다. “유튜브에서 타이거 우즈가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연습했어요. 실제 해보니 감격스럽기도 하고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앞으로 어디서든 떨 이유가 없다는 걸 배웠지요.”

권서연은 2017년 한국여자아마추어골프선수권과 호심배, 그리고 캐나다에서 열린 월드주니어걸스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하지만 지난해엔 우승이 없었다. “계속 더 좋은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욕심이 오히려 공격적으로 자신 있게 못 치는 결과로 이어졌어요. 이제 마음껏 칠래요.”

사람은 정말 큰 무대를 경험해봐야 한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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