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전경 ⓒphoto 이덕훈 조선일보 기자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전경 ⓒphoto 이덕훈 조선일보 기자

치솟는 서울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한 재건축 규제에 목동이 유탄을 맞았다. 올해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부활에 이어 재건축 가능연한을 30년에서 상향조정할 움직임을 보이면서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월 18일, 서울 서대문구 가좌지구 행복주택에서 열린 ‘주거복지 협의체’ 회의에서 “재건축은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순기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구조안전성의 문제가 없음에도 사업이익을 얻기 위해 사회적 자원을 낭비한다는 문제제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건축물의 구조적 안전성이나 내구연한 등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준공 후 30년인 현행 재건축 가능연한이 노무현 정부 때 기준인 40년으로 원상복귀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강남 재건축을 잡기 위한 규제강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은 정작 목동이다.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아파트 소유주들은 2018년만 오매불망 기다려왔다. 재건축이 가능한 준공 후 30년을 채우는 해라서다. 목동아파트는 가장 빠른 1단지가 1985년, 가장 늦은 11~12 단지가 1988년 준공됐다. 관할 양천구청 역시 목동 1~14단지가 모두 재건축이 가능해지는 2018년을 목표로, 지구단위계획 수립을 위한 합동보고회 등을 지난해 말까지 열어왔다. 현재 5~20층인 중저층 단지를 최고 35층까지 높이고, 현행 2만6629가구를 5만가구로 늘리는 내용이었다. 공원녹지를 21.7% 늘리고, 학교를 2곳 신설하는 계획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목동 지구단위계획’ 주민설명회는 ‘제2 강남’ 기대에 부푼 목동아파트 소유주들로 성황을 이뤘다.

하지만 김현미 장관의 시사처럼 재건축 연한이 만약 30년에서 40년으로 강화되면, 10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재건축에 수반되는 안전진단, 정비계획수립, 추진위구성, 조합설립,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 등 복잡한 절차를 다 마치려면 20년 이상 걸릴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와중에 노무현 정부 때 ‘버블세븐’(강남·서초·송파·목동·분당·평촌·용인)으로 불리며 서울 서부권 최선호 주거지로 꼽힌 목동아파트는 노후화로 점차 매력을 잃고 있다. 목동아파트는 1991년 지하주차장 설치 의무화전에 준공한 아파트라 8단지와 14단지 일부를 제외하고는 지하주차장이 없어 가구당 주차면적 부족으로 인한 주차난이 심각하다. 양천구청 역시 주차민원으로 오후 9시부터 오전 7시까지는 아파트 인근 주차단속을 완화하는 형편이다.

목동아파트는 단지구성, 평면설계, 층간소음, 보안, 조경, 커뮤니티시설 유무에서는 2000년대 이후 신축한 아파트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중저층 아파트로 동 간격만 비교적 여유가 있다 뿐이지, 아파트 자체만 놓고 보면 인근 마곡보다 못한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부동산 정보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신흥 주거지인 강서구 마곡동의 3.3㎡당 아파트 매매가는 2195만원으로 목동(2736만원)을 급격히 따라붙고 있다. 목동신시가지(목동+신정동)의 양 축으로 목동 8~14단지가 속한 신정동은 3.3㎡당 매매가가 2211만원으로 마곡(2195만원)과 별반 차이가 없다.

강화되는 재건축 규제에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에 이미 재건축을 끝마친 단지 소유주들은 반사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 때 집중개발된 강남3구는 압구정지구를 제외하고는 재건축이 이미 상당히 진행됐다. 잠실지구는 잠실주공 5단지를 제외한 주공 1~4단지, 잠실시영은 2007~2008년 재건축을 모두 끝마쳤다. 반포지구의 최대 단지인 반포주공 1단지(1·2·4주구)도 모든 행정절차를 끝마치고 준공만 기다리고 있다. 재건축 규제에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 아파트인 잠실 5단지와 은마아파트의 경우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는 벗어나지 못해도, 연한을 40년으로 강화해도 해당사항이 없다. 잠실 5단지와 은마의 준공연도는 각각 1978년, 1979년으로 40년을 채웠거나 내년에 도달한다.

목동은 1980년대 전두환 정부 때 개발된 주거지다. ‘주택 500만호’ 건설을 공언한 전두환 정부는 택지개발에 필요한 행정절차를 간소화하는 ‘택지개발촉진법’을 국보위 입법으로 도입해 목동지구에 적용했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둔 전두환 정부로서는 김포공항에서 잠실주경기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던 안양천변의 무허가 판자촌이 눈엣가시였다. 김성배 당시 서울시장은 당대의 건축가 김수근, 김형만, 강병기에게 자문을 구해 지구 내 일방통행과 국내 첫 지역난방이 공급되는 신흥 주거지를 조성했다. 430만㎡ 부지 위에 조성한 목동 1~14단지는 2만6629가구로 당시만 해도 국내 최대 아파트 단지였다. 잠실주공 1~5단지(1만9180가구)를 능가하는 국내 최대 규모였다. 비슷한 시기 조성된 노원 상계지구(371만㎡), 강동 고덕지구(314만㎡), 강남 개포지구(242만㎡)보다도 컸다. 목동신시가지 조성과 함께 강서구에 속했던 목동 일대도 1988년 양천구로 분리독립했다.

세입자에서 소유주 투쟁으로

최근 재건축 규제 강화가 ‘제2 목동사태’로 비화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목동사태는 1985년 목동신시가지 개발 와중에 쫓겨날 위기에 처한 안양천변 뚝방마을 철거민과 세입자들이 아파트 입주권 등을 요구하면서 일으킨 소요사태다. 여기에 도시빈민선교사업을 하던 김수환 추기경, 제정구 의원, 정일우 신부 등 소위 활동가들이 가세해 사태가 커졌다. 당시 철거민들은 경인고속도로 점거는 물론 강서구 부구청장을 감금하고 현장사무소를 불태우는 등 광주대단지사태(1971년) 이후 최악의 철거민사태로 비화됐다. 제정구 의원이 정일우 신부와 함께 1986년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면서 ‘빈민운동의 대부’라는 유명세를 얻은 것도 목동사태 덕분이다.

다만 이번에는 세입자가 아닌 아파트 소유주들이 집단 반발할 태세다. 김현미 장관의 재건축 규제 강화 시사 직후부터 양천구청 홈페이지에도 재건축 관련 민원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한 민원인은 “강남이 오르면 규제는 목동이 맞으니 안 억울하게 생겼습니까”라고 적었다. 다른 민원인은 “부동산 정책이 팥죽 끓듯이 변덕스러워 평온한 삶을 유지하기 어려운 때”라며 “재건축연한이 도래하여 기지개를 켜며 준비하려는 목동 단지가 기간연장, 안전진단강화 등의 정책 예고로 혼란스럽다”는 글을 남겼다. 목동아파트 1~14단지 소유주들은 지역구 의원(양천갑)이자 민주당 주거복지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황희 의원(초선)에게 항의서한도 보낼 예정으로 알려진다.

목동사태 여파로 공무원들이 몸을 사리면서 서울에서 공영개발 방식의 대규모 택지개발은 종지부를 찍었다. ‘주택 200만호’ 건설을 공약으로 내건 노태우 정부 때 ‘1기 신도시’(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를 조성하면서 서울 도심에서 20㎞ 떨어진 경기도와 서울의 접경에서 자리를 구한 것은 이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때는 서울 도심에서 최대 40㎞ 거리에 ‘2기 신도시’(화성동탄·파주운정·인천검단·평택고덕 등)를 조성했다. 신규 택지가 전무한 서울의 유일한 새 아파트 공급원은 재건축이다. 이제 양질의 새 아파트를 구하기 위해 얼마나 더 멀리까지 나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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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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