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전 세계 오프라인 신문 시장에 중국 미디어 그룹들이 쇼핑을 하러 나서는 날도 머지않았다. 문제는 중국 매체들이 여전히 마오쩌둥의 ‘창간쯔와 비간쯔에 관한 교시’에 묶여 있다는 점이다. 어떤 경우에도 중국공산당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재 중국 미디어의 현실이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자신의 소설 ‘1Q84’의 제목에 대해 이런 취지의 설명을 한 적이 있다. “일본에서 벌어진 오옴진리교 사건이나 적군파(赤軍派) 사건은 조지 오웰의 ‘1984년’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1984’와 비슷한 ‘1Q84’를 붙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에 따르면 책 제목에서 Q는 ‘Question(의문)’의 뜻이라고 했다. 마침 Q가 일본어 9(규)의 발음과 비슷하기 때문에 9의 자리에 Q를 갖다놓은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일본의 일부 문학비평가들과 중국 지식인들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빅브라더가 나오는 자신의 소설 제목을 ‘1Q84’라고 붙인 것은 1949년 1월생인 자신과 같은 해 10월 탄생한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는 풀이도 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앞날에 빅브라더의 그림자가 보인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1Q84’의 Q는 ‘의문’이라는 뜻이 아니라 중국 근대 작가 루쉰(魯迅)의 ‘아Q정전(阿Q正傳)’에서 따온 것이라는 해석도 하고 있다. 나라가 망해가는데도 헛된 자존심만 앞세우는 무기력한 청 말 지식인의 표상인 아Q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아버지와 삼촌이 모두 중국 전투에서 전사한 일본군 병사였다는 점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정신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주장도 편다.

LA타임스 인수한 중국계 거물

지난 2월 8일 미국에서는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과 함께 3대 유력지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LA타임스가 천쑹시웅(陳頌雄)이라는 중국계 미국 부자에게 넘어갔다는 뉴스가 미국 지식인들의 마음을 미묘하게 만들어놓았다. 당초 LA타임스를 인수한 중국인은 ‘황신상(黃馨祥)’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나 두 이름의 영어 표기가 모두 ‘Patrick Soon-Shiong(패트릭 순시웅)’인 것으로 밝혀져 결국 한 인물인 것으로 확인됐다.

LA타임스는 1881년 미 서부 로스앤젤레스를 근거지로 창간된 유력지로, 창간 137년 만에 주인이 중국계 미국인으로 바뀌었다. 매매가격은 5억달러로, 2013년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할 때 들인 가격의 2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LA타임스의 새 주인 패트릭 순시웅은 이번에 직원들 연금 축적액 9000만달러를 끌어안고 LA타임스를 구매했으며, 미 서부의 또 다른 유력지 샌디에이고 유니언 트리뷴(San Diego Union Tribune)도 함께 사들였다고 한다.

순시웅은 2012년 미 포브스 평가로 73억달러의 재산을 보유, 400대 부호 가운데 47위를 기록한 인물이다. 그는 1952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출생한 중국인으로, 부모는 광둥(廣東)성 타이산(台山) 사람이라고 중국 최대의 검색엔진 바이두(百度)는 전한다. 본인은 천쑹시웅이든 황신상이든 중국어 이름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고, 자신은 중국말을 할 줄도 모르며, 중국어 이름에 대해서는 “중국 매체들이 잘못 번역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인들의 상식은 “이 세상에 만다린(Mandarin·표준어)이든 칸토니즈(Cantonese·남부지방 광둥어)든 중국어를 못 하는 중국인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부모 세대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패트릭 순시웅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16세에 고교를 졸업하고 23세에 현지 의대를 졸업했다. 이후 부모가 LA로 이주했고 순시웅은 캐나다 컬럼비아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신약 개발에 관심이 많은 순시웅은 이후 미국에서 제약회사를 설립했고, 미 FDA의 허가를 받은 유방암 치료약과 당뇨병 치료약, 다른 항암치료제 등을 개발해서 단기간에 자신의 제약회사 매출을 연 2억9000만달러로 올려놓았다. 2012년 9월에는 저명한 금융서비스 회사 ‘구겐하임’그룹의 일원이 됐고, 스포츠와 부동산 거래를 겸업하는 ‘AEG’라는 회사를 사들여 전 세계 120개 스포츠 오락관을 보유한 다국적 기업인으로 성장했다.

(좌) 패트릭 순시웅 photo 블룸버그 (우) 마윈 photo 바이두
(좌) 패트릭 순시웅 photo 블룸버그 (우) 마윈 photo 바이두

전 세계 발언권 갈구해온 중국공산당

순시웅의 부모가 중국인이라고 해서 순시웅의 정신세계가 중국인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구나 LA타임스를 사들인 순시웅의 뒤에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손길이 미쳤는지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손길을 완전히 배제하기도 석연치 않다. LA타임스는 전통적 유력지이긴 하지만 직원 숫자가 1999년 1만3000명에서 지금은 400명 선으로 쪼그라들었다. 사양길을 걷는 오프라인 신문을 의약계의 중국계 거물이 사들인 진짜 배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전 세계에 대한 발언권을 애타게 갈구하는 중국 정부와 중국공산당의 입장이 순시웅의 LA타임스 인수에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의 중심인물인 마오쩌둥(毛澤東)은 “창간쯔(槍杆子·총)와 비간쯔(筆杆子)를 양손에 쥐고 있어야 사회주의혁명에 성공할 수 있다”고 교시를 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중국공산당은 현재도 정치 권력과 언론 권력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자신들을 대변할 미디어로 인민일보(人民日報)와 신화(新華)통신, 그리고 중앙TV(China Central TV) 등을 보유하고 있으나 이들 매체의 전 세계에 대한 영향력은 미미한 실정이다.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G2국가로서 전 세계에 대한 발언권을 확대하는 데에는 무기력하다. 최근 중국은 CGN(China Global Network)이라는 위성TV 채널을 열어 미 CNN처럼 서양 남녀 앵커들을 등장시켜 전 세계 문제에 대한 보도와 해설을 24시간 영어로 진행한다. 하지만 이 역시 시청률이 미미해 고민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중국 유일의 세계적 온라인 네트워크의 강자 마윈(馬云)은 2014년 미국 뉴욕 증시에 알리바바를 상장하면서 쓰라린 경험을 한 바 있다. 당시 미국의 유력지 뉴욕타임스가 “알리바바의 뉴욕 증시 상장에 훙얼다이(紅二代·중국공산당 거물의 아들)가 개입했다”는 보도를 한 이후 주가가 50%나 떨어졌다. 알리바바는 미국의 경제잡지 포브스가 알리바바의 배후를 파헤친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들’이라는 장편 추적 보도를 한 이후에는 주가가 25%까지 빠진 일도 있었다. 마윈은 그때마다 이를 깨물며 “세계적 발언권을 사들여야 한다”는 말을 해왔다고 한다.

LA타임스 ⓒphoto LA타임스
LA타임스 ⓒphoto LA타임스

알리바바 인수한 SCMP의 변신

실제 알리바바그룹은 3년 전인 2015년 12월 11일 홍콩의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중국어명 南華早報)의 소유권을 20억홍콩달러(약 2억500만달러)에 사들였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903년에 창간된 영자지. 영국 언론인들이 만든 신문답게 중국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감시견(워치도그) 역할을 꾸준히 해왔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1989년 천안문사태 때 세계적인 대특종을 해 유명해졌다. 뉴욕타임스와 AP통신을 비롯한 전 세계 언론들이 ‘대학생, 시민들이 지지하던 자오쯔양(趙紫陽) 전 당 총서기가 군부 강경파 지도자인 덩샤오핑(鄧小平) 중앙군사위 주석과 보수파 리펑(李鵬) 총리를 누르고 새롭고 민주화된 중국이 건설되는 쪽으로 움직여갈 것’이라는 보도를 한창 하고 있을 때 “미스터 덩(鄧)이 자오(趙)를 배반자라고 비난했다”라는 1면 배너 컷 뉴스를 조간에 터뜨려 중국 내 흐름을 덩샤오핑이 장악하고 있음을 알렸다.

SCMP는 1976년 허베이(河北)성 탕산(唐山)에서 대지진이 났을 때도 “탕산 대지진 사망자가 20만명이 넘는다”는 획기적인 보도를 해서 피해 규모를 숨기던 중국 정부를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 보도들은 세계 최고의 중국 전문 기자라는 평가를 받는 데이비드 첸이 이 신문의 차이나 데스크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데이비드 첸은 대륙에서 넘어온 홍콩의 비판적 중국 지식인이었다.

그러던 SCMP의 중국 관련 비판 보도는 주인이 알리바바로 바뀐 후 근본이 달라졌다. 지난해 10월 18일 중국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가 개막된 이후 전 세계의 미디어들은 시진핑(習近平)이 ‘황제’ 자리에 오르기 위해 지난 30여년간 잘 지켜오던 ‘칠상팔하(七上八下·67세까지는 당과 정부의 요직에 오를 수 있지만 68세부터는 불가)’ 원칙을 깰 것이라는 추측 보도를 했다. 시진핑이 자신의 오른팔인 왕치산(王岐山)이 69세에 이르렀는데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유임시키고 자신의 연설문 비서 출신의 천민얼(陳敏尔·58) 충칭(重慶)시 당 서기를 중앙위원에서 곧바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발탁해서 자신의 후계자로 포진시킬 것이라는 추측도 했다. 당시 전 세계 여론은 중국공산당 1중전회를 앞두고 시진핑이 칠상팔하뿐만 아니라 격대지정(隔代指定) 원칙(최고지도자가 권력을 물려주면서 그 권력자의 후임자를 미리 결정해주는 것)까지 무너뜨릴 것으로 내다봤다. 시진핑의 이미지가 나빠질 대로 나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알리바바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를 사들인 효과가 번쩍하고 나타났다.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7인의 명단은 2017년 10월 25일 제19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1중전회)가 열려야 알 수 있다는 것이 중국공산당의 철칙이었다.

그런데 이 원칙이 SCMP에 의해 깨졌다. 이 신문은 지난해 10월 22일 “사흘 뒤의 1중전회에서 발표될 7인의 정치국 상무위원 명단은 시진핑·리커창(李克强)·리잔수(栗戰書)·왕양(汪洋)·왕후닝(王滬寧)·자오러지(趙樂際)·한정(韓正)의 7인으로, 왕치산은 칠상팔하에 따라 은퇴할 것이며 중앙위원인 천민얼이 두 단계를 뛰어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임명돼 시진핑의 후계자로 지목되는 일도 없을 것”이라는 세계적인 특종 보도를 했다.

SCMP의 이 특종 보도에 긴가민가 하던 전 세계 유력 미디어들은 10월 25일 오전 10시 시진핑 총서기가 SCMP가 보도한 명단과 꼭 같은 정치국 상무위원단 7명의 선두에 서서 인민대회당에 등장하는 것을 보고야 절실히 깨달았다. 홍콩의 유력 영자지 SCMP의 주인이 알리바바의 마윈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또한 마윈이 사들인 SCMP의 정보가 얼마나 깊숙이 중국공산당 최고지도자 시진핑에게 닿아 있는지도 절감했다. 앞으로 중국공산당 권력의 변화를 알려면 꼼짝없이 SCMP를 봐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마윈은 상술로서도 훌륭한 특종을 한 셈이었다.

마오쩌둥 시대(1949~1976) 중국 헌법은 중국 당과 정부의 매체 지원을 합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덩샤오핑 시대(1978~현재)가 열린 이후에 제정된 1982년 헌법에는 당과 정부의 매체 지원을 삭제하고 각 매체들이 자체적으로 이익을 창출해서 운영하도록 바꾸어놓았다. 덩샤오핑은 생전에 신문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보도에 제한이 있었으나 앞으로는 없앨 것이며, 각 보도기관들은 정보 자원을 개발해서 현대화 건설에 도움이 되도록 하라”는 교시를 했다.

그때부터 베이징 청년보를 비롯한 중국 오프라인 신문들은 편집을 화려하게 해서 가판에 내놓는 비율을 늘렸다. 또 각 대도시별로 신문과 방송, 온라인 매체를 결합하는 그룹화를 진행했다. 현재 중국 각 대도시의 미디어 그룹들은 시장경제화된 중국 광고시장을 거의 독점해서 여유 있는 경영을 하고 있다. 여전히 가판을 내놓지 않고 답답한 문자 위주의 편집을 하는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조차도 국제 문제를 주로 다루는 환구시보(環球時報)를 창간해서 광고 수입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현재 미국의 뉴욕타임스뿐만 아니라 영국의 더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는 물론 한국의 전통적인 유력지들도 인터넷 시대의 파도에 휩쓸려 생존이 어려운 상황에 몰려 있다. 그런 상황은 핀란드 같은 인터넷 강국에서는 더 빨리 진행되고 있다. 이 흐름에 전통적인 오프라인 신문들은 전 세계적으로 퇴조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중국의 오프라인 신문들만 그룹화의 주역으로 자리를 잡아 권위와 수입을 누리고 있다.

앞으로 전 세계 오프라인 신문 시장에 중국 미디어 그룹들이 쇼핑을 하러 나서는 날도 머지않았다. 문제는 중국 매체들이 여전히 마오쩌둥의 ‘창간쯔와 비간쯔에 관한 교시’에 묶여 있다는 점이다. 어떤 경우에도 중국공산당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재 중국 미디어의 현실이다. 만약 중국 미디어 그룹들이 전 세계의 유력 미디어를 장악하는 때가 온다면 중국공산당은 전 세계의 빅브라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에게도 비판받지 않고 권력을 마음 놓고 행사하는 빅브라더. 무라카미 하루키가 걱정하던 ‘1Q84’의 세상이 앞으로 전개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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