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관악구에서 형, 누나와 함께 사는 직장인 강동준씨는 얼마 전 가입돼 있던 IPTV 서비스를 해지했다. 대신 그가 새로 가입한 것은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Over The Top) ‘넷플릭스’였다. 2016년 1월 한국에서도 서비스되기 시작한 ‘넷플릭스’는 TV는 물론 PC, 스마트폰을 통해 동영상을 볼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이다. 한 달에 9500~1만4500원을 내면 넷플릭스 내 모든 동영상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영화나 한국 예능 프로그램도 볼 수 있지만 넷플릭스에서 자체 제작하는 드라마도 유명하다. 다큐멘터리에 애니메이션까지 수많은 콘텐츠가 탑재돼 있기 때문에 하루 종일 넷플릭스를 틀어놓아도 볼 만한 동영상이 끊이지 않는다.

강동준씨가 TV를 끊고 넷플릭스를 가입한 이유는 강씨가 동영상을 보는 방식이 넷플릭스에 최적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TV 프로그램을 시간을 맞춰서 챙겨 보기란 매우 어려워요. 보다가 회사에서 전화가 오면 또 놓치고 자리를 떠야 하는 일도 생기고요. 자신의 타이밍에 맞게 작품을 보고 싶은데 TV에서 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그렇게 보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Btv, 올레tv, U+tv 같은 기존의 IPTV 서비스에서 별도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려면 콘텐츠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요즘은 IPTV에서도 외국 드라마를 볼 수 있지만 시즌제로 운영되는 외국 드라마의 특성상 한 시즌을 보기 위해서는 수만원이 들어간다. 하지만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는 한 달 요금만 지불하면 몰아보기가 가능하다. 시청자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동영상을 볼 수 있고 TV뿐 아니라 PC, 스마트폰으로도 이어 볼 수 있다. TV로 보기 위해서는 별도의 셋톱박스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최근 출시되는 TV는 대개 ‘스마트 TV’로 넷플릭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때문에 넷플릭스는 요즘 시대의 동영상 시청 방식에 적합한 서비스인 셈이다.

사실 외국에서는 케이블TV 대신 이런 OTT 서비스, 특히 넷플릭스에 가입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지난해 연말 넷플릭스가 밝힌 바에 따르면 전 세계 유료 가입자 수는 1억1700만명에 달한다. 특이할 만한 것은 넷플릭스를 보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PC나 스마트폰같은 휴대용 기기가 아니라 TV로 본다는 점이다. 넷플릭스는 가입자의 70%가 TV를 통해 넷플릭스의 동영상을 시청하고 스마트폰으로 보는 사람은 10%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것은 TV의 시청 양태가 완전히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더 이상 사람들은 방송국에서 제공되는 대로 편성표에 맞추어 TV를 보지 않는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본다. 신동희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시청자들의 ‘몰아보기’ 시청 행태가 전 세계 TV 시장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몰아보기’란 한자리에서 두 편 이상의 동영상을 집중해 보는 시청 행태를 말한다. 드라마를 한 회, 한 회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대로 보지 않고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완결된 형태로 보는 것이 몰아보기다. 늘 TV 리모컨을 붙잡고 지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날 때, 원하는 만큼 보는 것이 몰아보기다. 신 교수는 “몰아보기 같은 능동적인 시청자들의 시청 행태는 전통적인 미디어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장 경향을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 넘보는 왓챠플레이

그동안 한국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즉 OTT 서비스는 저렴하거나 무료로 회원가입을 하게 한 후 콘텐츠마다 돈을 지불하게 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옥수수’나 ‘티빙’ 같은 서비스가 그렇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한 달에 일정 금액을 지불하기만 하면 동영상 시청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원하는 콘텐츠만 많다면 가입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나 한국에 서비스를 론칭하고도 한동안 넷플릭스는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넷플릭스의 자체 제작 드라마를 제외하고는 한국 시청자들이 선호하는 영화나 다른 드라마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어서다. 한국에 처음 서비스될 당시 넷플릭스의 콘텐츠 수는 1000개가 채 되지 않았다. 서비스를 기대하며 기다린 사용자들이 실망했을 무렵 다른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가 영향력을 넓히기 시작했다. 토종 한국 서비스인 ‘왓챠플레이’다.

‘왓챠플레이’는 처음 ‘왓챠’라는 영화 추천 서비스에서 시작했다. 사용자가 자신이 본 영화의 평점을 매기면 좋아할 만한 영화를 추천해주는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러다가 넷플릭스와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확대했는데 월 4900~6500원이라는 비용으로 넷플릭스와 비슷한 시기에 서비스를 시작했다. 다만 넷플릭스가 상당수 콘텐츠를 TV에서도 볼 수 있는 것과 달리 왓챠플레이는 주로 PC나 스마트폰으로만 시청이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다. 왓챠플레이가 한국 영화와 일본 드라마 등 아시아 콘텐츠가 좀 더 풍부하게 갖춰져 있다면 넷플릭스는 자체 제작 드라마와 미국 영화, 드라마가 풍부하게 탑재돼 있다.

두 서비스 모두 정확한 가입자 수를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현재 업계에서는 왓챠플레이 가입자가 넷플릭스보다 많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왓챠플레이는 서비스를 시작하고 나서 1년 동안 가입자 수가 60만명을 넘었다고 발표한 바 있는데 넷플릭스의 한국 가입자 수는 30만~4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최근 들어서 넷플릭스와 왓챠플레이의 경쟁은 격화되는 양상이다. 서로 공격적으로 콘텐츠를 확보하고 시장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넷플릭스의 콘텐츠 수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고 한국 시청자들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도 증가하는 모양새다. 옛날 미국 드라마는 물론 한국 예능 프로그램이나 한국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수퍼히어로 영화를 중심으로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조선일보 등 언론 보도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서울 광화문 일대에 한국 사무소를 차리고 직원을 채용하고 있다. 한국 시장에 진출했을 때부터 넷플릭스의 한국 서비스 담당자는 싱가포르에 머물며 아시아 지역을 총괄하는 부서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서울에 사무소를 등록하고 본격적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왓챠플레이도 국내 시장에서는 넷플릭스의 대항마로 영향력을 잃지 않겠다는 각오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미국 케이블 채널 HBO의 유명 드라마들이 잇따라 업로드되고 있고 MBC 등 공중파의 옛날 드라마도 탑재됐다.

아직까지 한국 시장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지만 사실 OTT 서비스의 가장 큰 경쟁력 중 하나는 자체 제작 콘텐츠다.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한 인기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 4가 공개된 2016년 1분기, 미국에서 넷플릭스에 가입한 신규 가입자 수는 233만명이 넘었다. 최지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ICT 통계정보연구실 연구원에 따르면 이 중 일부는 이 콘텐츠만 보고 가입을 해지하지만 절반 이상은 가입 상태를 유지하며 다른 동영상까지 시청한다. 다시 말해 OTT 서비스는 단순히 동영상을 제공하는 유통업자를 넘어서 방송국을 위협하는 콘텐츠 제작자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넷플릭스와 왓챠플레이 같은 새로운 OTT 서비스는 TV 시청 행태뿐 아니라 콘텐츠산업을 완전히 바꾸어놓을 변화의 바람을 가져올 전망이다. 신동희 중앙대 교수는 “미디어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만큼 누가 시청자의 수요와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느냐가 앞으로의 시장 영향력을 키우는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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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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