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조현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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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호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은 “어제 고흥우주센터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지난 4월 18일 대전 대덕연구기술특구 내 항공우주연구원 본관 2층 원장실에서 주간조선과 만난 임 원장은 “한국형 발사체 10월 발사를 앞두고 이번주부터 인증모델(QM·Qualification Model) 시험을 시작한다”면서 “앞으로 두 달간 한다”고 말했다. 인증모델이 성공하면 최종 비행모델을 제작, 발사하게 된다. 이번에 쏠 시험발사체는 한국 독자기술로 개발한 것. 75t 엔진을 1단에, 7t 엔진이 2단에 들어간다. 2022년에는 75t 추력의 엔진 4개를 묶은 3단 로켓을 쏠 예정이다.

임 원장은 지난 1월 취임했다. 3년 임기 중 작은 위성까지 포함하면 12번의 발사가 있다. 올해만 해도 한국형시험발사체 발사와 천리안 2A호 정지궤도 위성 발사가 예정돼 있다.

임 원장은 한국형발사체 발사 준비와 관련 “일정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면서도 “고정환 한국형발사체 개발사업본부장이 부담을 많이 느끼는 게 사실이다. 이미 한 차례 발사 일정을 연기한 바 있어, 현재 일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원장의 방 벽면에는 몇 개의 대형 사진과 이미지가 붙어 있었다. 나로호 발사(2013년 1월) 성공 장면, 아리랑위성 3A호(2015년 발사) 등이 눈에 띈다. 그중에서도 출입문 쪽에 걸려 있는 태극기가 꽂힌 달 착륙선 가상 이미지가 눈에 들어왔다. 임 원장은 “전임 원장 때부터 붙어 있던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달 탐사선을 보내겠다고 한 바 있다. 당시 로켓기술도 없는 나라가 달에 우주선을 보내고, 탐사선을 내려보낸다고 해서 많은 이가 어처구니없어 했다. 대통령 당선 뒤에도 관련 예산이 항우연에 주어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대통령 선거용이었다”며 ‘먹튀’ 비판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우주위원회는 ‘달 탐사 계획’을 현실성 있게 조정했다. 2020년까지 미국 로켓을 이용해 달 궤도에 우주선을 보내고, 2030년까지 달 표면에 착륙선을 내려보내기로 했다. 이 중 달 궤도선은 임 원장 임기 중에 날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항우연 위성연구본부 안에 달 탐사사업단이 구성돼 있다. 임 원장은 “달 궤도선을 보내는 건 그리 어려운 기술은 아니다”라며 자신감을 표시했다.

“항우연 연 예산이 6000억원이다.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2조원을 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0조원을 쓴다. 우주선진국과 한국 수준을 비교할 수가 없다. 일본만 해도 우주인을 항상 5명 정도는 양성한다. 한국은 한 명 만들어내고 끝났다. 그게 한국의 현주소다.”

그럼에도 항우연은 30년 가까이 한국 우주항공산업을 이끌어왔다는 긍지를 갖고 있다. “어제 고흥에 미국 대리대사를 모시고 다녀왔다. 그는 한국 우주산업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전임 리퍼트 대사도 고흥에 여러 번 갔었다. ‘한·미 우주포럼’이 가을에 열릴지도 모르겠다.”

임 원장은 4월 초 프랑스에서 열린 ‘한·불 우주포럼’에 참석한 바 있다. 지난해에는 한국에서 열렸고, 올해는 프랑스의 항우연에 해당하는 프랑스국립우주연구센터(CNES)와 항우연이 프랑스에서 공동주최했다. “그간에는 우주선진국이 한국의 기술수준을 낮게 평가해, 포럼 개최 등 협력을 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번 파리 행사에서는 프랑스 과학기술장관이 참석했고 국회의원도 3명이 참석해 한국 우주산업에 관심을 보였다.”

이번 포럼에는 프랑스 기업 10여곳과, AP위성 등 한국 기업 20여곳이 참가했다. 각기 자신들이 무엇을 개발하는지 5분씩 발표했다. 그런 뒤 프랑스의 항공우주산업도시 툴루즈에 갔다. “드골 대통령은 1960년대 지방분권 정책 차원에서 지방의 5개 도시를 특정 산업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툴루즈는 항공우주산업으로 육성했다. 관련 연구소, 기업, 대학을 몽땅 그곳으로 보냈다. 이밖에도 원자력은 마르세유, 생명공학은 리옹 하는 식으로 육성한 것으로 안다.”

임철호 원장은 프랑스에서 유학했다. 서울대 항공공학과 71학번으로 석사까지 마친 뒤 프랑스로 가서 공학 박사 학위를 1986년 툴루즈 제3대학에서 받았다. 임 원장은 “프랑스는 우주강국이다. 한국의 위성도 대부분 프랑스 발사체를 이용해 지구궤도에 올린다”면서 “툴루즈 CNES연구소가 크다. 연구자가 2000명 있다. 이번에 가 보니 NASA의 화성 표면 탐사선 큐리오시티 운영을 그곳에서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임 원장은 프랑스에서 지금은 에어버스에 통합된 아스트리움이 위성을 자동차 양산하듯 만들고 있는 걸 보았다. 미국 업체 원웹(OneWeb)은 고도 1200㎞ 상공에 700~800개 위성을 띄워 전 세계에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위성 납품업체를 찾았고, 프랑스 업체 아스트리움이 낙찰받았다는 것. “이렇게 대량생산하면 위성 생산가격이 10분의 1로 떨어진다. 예컨대 테스트도 전에는 모든 위성을 대상으로 해야 하나, 이제는 5~6개만 하고 이후는 무작위 표본 테스트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항우연의 미래 고민

우주산업 후발국인 한국은 항우연이 제품설계를 하면 물건은 협력업체에서 납품하게 하고 이후 항우연이 성능검사까지 한다. 우주선진국은 다르다. 가령 NASA가 위성이나 발사체를 직접 생산하지 않는 식이다. 발사체는 보잉이나 록히드마틴이 한다. NASA는 우주정거장이나 화성탐사 사업을 세우고 그 프로젝트에 필요한 장비를 시중 업체를 대상으로 발주할 뿐이다. “선진국은 로켓 개발하는 거 없다. 하드웨어는 다 민간이 하고 있다”고 임 원장은 말했다. 일론 머스크의 우주개발 업체인 스페이스X가 재활용이 가능한 로켓 개발에 성공한 것도 선진국 우주산업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 일본 JAXA가 발사하는 로켓도 민간 업체인 미쓰비시가 다 만든다고 임 원장은 말했다.

여기에 임 원장의 고민이 있다. “한국도 몇 년 지나면 하드웨어는 민간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항우연은 뭘 할 것인가?”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40대 연구원 15명으로 ‘KARI(한국항공우주연구원) 미래비전탐색’팀을 만든 것도 항우연의 미래를 고민하기 위한 노력이다. “앞으로 20년 이상 항우연에서 일할 젊은 인력이다.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전권을 줬다. 지속가능한 미래 비전을 찾아내길 기대한다.”

항우연은 젊은 조직이다. 총 인원 953명 중 77%를 차지하는 연구직(666명)의 평균 나이가 43세다. 임 원장이 4월 초 대규모 조직개편과 인사를 한 것도 같은 맥락. “팀이 너무 많았다. 팀장만 100명이었다. 조직을 슬림화했다. 연구직과 관리직을 분리, 보직자는 연구에는 개입하지 않고, 연구자는 해당 엔지니어링 분야의 대가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

항우연은 기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우주와 항공 두 축이 중요하다. 우주의 비중은 지난 29년간 말할 수 없이 커져 두 분야의 예산 비중이 9 대 1에 접근했다. ‘항공’ 분야에서는 스마트무인기 사업, 드론 개발, 고고도무인기 사업 등이 있다. 이 분야도 할 일이 많다. 항우연은 내년에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항우연의 미래가 임철호 원장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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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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