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은 ‘재활용 폐기물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쏟아지는 폐기물을 수거해가던 중국이 폐기물 수입 금지 조치를 확대하면서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쓰레기 대란’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플라스틱(정확히 표현하면 플라스틱 중 페트)을 단 며칠 만에 분해할 수 있는 인공 효소가 개발됐다는 희소식이 전해져 화제다. 과연 이 분해 효소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돌연변이 효소 페트 분해 속도 20% 상승

지난 4월 16일 국제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는 영국 포츠머스대학 생명과학대의 존 맥기헌 교수팀이 밝혀낸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이하 페트)를 분해하는 효소 구조를 실었다. ‘플라스틱을 먹는 박테리아’ 구조를 연구하던 끝에 만들어낸 변종 효소다.

페트는 가장 많이 생산되는 플라스틱 중 하나다. 전 세계 물병 생산량의 30%를 차지한다. 세계의 과학자들은 그동안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하게 연구를 진행해왔다. 자연에서 생분해되는 최첨단 바이오플라스틱 소재를 개발해 보급도 했지만 가격이 너무 비싼 탓에 보급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과학자들조차 뾰족한 대안이 없던 상황에서 맥기헌 교수팀이 플라스틱을 높은 효율로 분해할 수 있는 변종 효소를 개발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미생물을 이용해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2016년 제기되었다. 그 주인공은 일본 교토섬유공예대학의 요시다 쇼스케 연구원 팀. 2년 전 그들은 사이언스저널에 ‘이데오넬라 사카이엔시스(Ideonella sakaiensis)’라는 박테리아가 페트 분해능력을 가진 효소 페타제(PETase)를 분비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항구도시 사카이 소재 페트병 재활용 공장에서 페트를 분해해 기본 식량으로 사용하는 박테리아를 우연히 발견하고, 두 종의 가수분해 효소가 페트 분자 결합을 깨뜨리는 데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 세계 과학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플라스틱은 생명체의 주 영양소인 탄소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어떤 미생물에게는 플라스틱이 좋은 먹이가 될 수도 있다고 쇼스케 연구진은 생각했던 것. 이에 쓰레기처리장에서 250개의 플라스틱 샘플을 채취해 5년간 연구를 했다. 그 결과 연구진의 생각대로 페트를 먹어치우는 박테리아가 발견되었다. 연구진이 섭씨 30도에서 이 박테리아를 페트병 샘플에 두고 관찰해 보니 6주 만에 페트병이 완벽히 분해되었다. 단 다른 플라스틱은 분해할 수 없고 페트만 분해할 수 있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맥기헌 교수팀은 박테리아 ‘이데오넬라 사카이엔시스’가 분비하는 효소 ‘페타제’가 특별하게 페트 분해능력이 높은 원인을 분석했다. 먼저 단백질 결정학으로 효소의 구조를 파악했다. 결정학이란 분자 결정에 X선을 쪼여 분자 구조의 상세한 그림을 얻어내는 기술이다. 교수팀은 태양 빛보다 100억배 밝기를 가진 강력한 X선을 쪼여 페타제의 3차원 단백질 결정 구조를 0.15㎚(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수준의 원자 단위까지 밝혔다.

이후 교수팀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페타제가 페트와 결합해 분해하는 과정을 재현했다. 페트의 분자가 효소의 활성 부위와 어떤 식으로 접합(도킹)하는지 들여다보기 위함이다. 활성 부위는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화학반응이 실제로 일어나는 곳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교수팀은 정확히 밝혀낸 페타제 결정 구조를 바탕으로 유전자 구조를 조금씩 바꾸는 유전자 조작을 실시했다. 그 결과 원래보다 플라스틱 분해능력이 20% 더 향상된 돌연변이 효소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 것. 활성 부위에 직결되는, 다시 말해 활성 부위에서 ‘아귀가 더 꼭 맞게’ 플라스틱 분자를 붙잡는 유전자 돌연변이 효소를 개발해 분해능력을 더욱 높인 것이다. 20% 빨라진 분해 속도를 대수롭지 않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효소의 분해능력이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이고, 효소 능력이 개선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전 세계의 플라스틱 양을 줄일 수 있는 놀라운 발견이라고 맥기헌 교수는 설명한다.

이번에 개발된 돌연변이 효소가 페트를 분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며칠. 석유·석탄·천연가스 등을 원료로 한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자연분해되는 데 최소 20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이 걸리는 것에 비하면 놀라운 속도다. 속도만 빨라진 게 아니다. 대체 플라스틱으로 알려진 저탄소 플라스틱 ‘폴리에틸렌 퓨란디카르복실레이트(PEF)’까지 분해하는 능력도 갖췄다. 이러한 돌연변이 효소에 대해 호주 로열멜버른공과대(RMIT) 올리버 존스 교수는 ‘플라스틱 쓰레기와의 전쟁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향하는 하나의 발걸음’이라고 호평하고 있다.

효소 능력 끌어올리는 게 관건

맥기헌 교수에 따르면 이 돌연변이 효소는 페트 폐기물을 원래의 구성 요소로 되돌리는 ‘완전 재활용 시대’를 가능케 한다. 현재 페트병의 재활용 비율은 약 14%. 이마저도 재활용 처리되면 질이 나빠져 의류나 카페트용의 불투명 섬유로만 쓸 수 있다. 하지만 교수팀의 새로운 돌연변이 효소를 활용할 경우 단순히 페트병을 먹어치우는 게 아니라 분해하여 다시 원료 상태로 되돌리기 때문에 똑같은 투명 플라스틱을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 그야말로 완벽하게 재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제 남은 과제는 상용화할 수 있도록 돌연변이 효소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일이다. 실제로 페타제를 재활용 산업에 활용하려면 이 효소를 값싸게 대량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교수팀이 발견한 돌연변이 효소 1L가 하루에 분해할 수 있는 플라스틱 양은 2~3㎎에 불과하다. 플라스틱 소화 능력이 상업적으로 쓸모 있으려면 이보다 100배 이상 강화되어야 한다.

앞으로 교수팀은 플라스틱을 대규모로 분해할 수 있도록 몇 년 안에 상용화 과정을 밟아나갈 계획이다. 효소의 대량 생산과 함께 분해 속도를 높이는 개발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돌연변이 효소를 섭씨 약 70도의 온도에서 작동하도록 설계하면 한층 개선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맥기헌 교수는 설명한다. 페트가 70도에서 고무처럼 힘을 잃고 너덜거리기 때문에 더 쉽게 소화될 수 있다는 말이다.

돌연변이 효소의 상용화가 시작되면 플라스틱 재활용률 또한 크게 높아진다. 그렇게 되면 플라스틱을 새로 만들기 위한 원유(석유) 사용을 줄일 수 있고 플라스틱 양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환경오염 문제도 줄일 수 있다. 플라스틱 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 또한 가능해질 전망이다. 더욱 개선된 돌연변이 페타제가 등장하여 플라스틱 쓰레기라는 골칫거리를 해결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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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전 ‘뉴턴(NEWTON)’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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