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푸둥의 쇼핑몰 지하주차장 전용 충전소에서 충전 중인 녹색번호판을 단 테슬라 전기차.
상하이 푸둥의 쇼핑몰 지하주차장 전용 충전소에서 충전 중인 녹색번호판을 단 테슬라 전기차.

중국 상하이 푸둥(浦東)신구의 한 대형 쇼핑몰. 이곳 지하주차장으로는 늘 가격이 억대에 이르는 테슬라(Tesla) 전기차가 쉴 새 없이 드나든다. 1층에 테슬라 쇼룸이 있는 이 쇼핑몰 지하주차장에는 테슬라의 세계 최대 전용 충전소가 있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전기차 충전소로 50대의 테슬라 전기차를 동시 충전할 수 있는 시설이다. 서울로 치면 강남에 해당하는 상하이 푸둥에서 50면의 지하주차장을 테슬라만을 위해 온전히 할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테슬라 차주들은 전용주차장에서 전기차를 충전하는 동안 쇼핑을 하고 고급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테슬라 관계자는 “테슬라 차주들만 충전소를 이용할 수 있다”며 “충전비는 무료”라고 했다.

미국산 전기차인 테슬라는 전기차의 편견을 깬 자동차다. 잘빠진 디자인에 소량 생산하는 억대의 수퍼카임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시대의 상징처럼 됐다. 테슬라 창업자이자 CEO인 일론 머스크가 ‘아이언맨’의 실제 모델이란 입소문도 테슬라의 유명세를 끌어올리는 데 단단히 한몫했다. 하지만 100% 전기로 달리는 자동차라서 충전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나라나 도시의 운전자들로서는 디자인과 성능만 보고 쉽사리 구매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아직 상하이보다 1인당 소득이 앞서는 서울에서 테슬라를 좀처럼 볼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2017년 초에야 한국에 뒤늦게 진출한 테슬라는 지금까지 누적판매대수도 한국 전체를 통틀어 360여대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이 조현민 전 전무에게 제공한 차가 테슬라로 특혜 논란을 일으켰다.

중국이 전 세계 테슬라 판매량 20% 차지

반면 상하이 푸둥, 특히 고급 외국주재원들이 많이 모여 사는 롄양(聯洋) 지역에서는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테슬라가 흔하다. 가로변에 미세먼지를 뒤집어쓴 채 주차된 테슬라도 쉽게 볼 수 있다. 상하이에서 테슬라 열풍은 숫자로 드러난다. 지난해 중국에서 판매된 테슬라는 2만여대. 전 세계에서 판매한 테슬라(10만대)의 20%가량이 중국에서 팔렸다. 이 중 지난해 상하이에서 팔린 테슬라는 모두 4471대로 중국 내 1위를 기록했다. 상하이의 뒤를 광둥성(3919대), 베이징(3827대), 저장성(1881대) 순으로 이었다. 상하이는 테슬라의 차종별 판매순위에서도 고급 스포츠세단인 ‘모델S’, 고급 SUV인 ‘모델X’를 막론하고 모두 중국 내 1위 판매도시에 올랐다.

이 같은 여세를 몰아 테슬라는 지난해 상하이에서 팔린 친환경차(신능원차) 판매순위에서 중국 현지 업체인 로위(ROEWE), 비야디(BYD) 다음에 이름을 올렸다. 로위는 중국 최대 자동차 회사인 상하이차 산하의 독자 브랜드이고, 비야디는 광둥성 선전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다. 로위나 비야디는 주로 순수전기차(EV)나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를 생산해 비교적 저가에 판매해왔다. 이에 반해 억대가 넘는 수퍼카인 테슬라가 상하이 친환경차 판매순위 3위에 오른 것은 엄청난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 2013년 12월 테슬라가 중국 시장에 진출한 지 불과 4년여 만에 거둔 실로 놀라운 성과다.

상하이에서 테슬라의 질주는 상하이시의 전기차 보급정책에 상하이 신흥부자들의 경제력이 합쳐진 결과로 풀이된다. 전기차 구매 시에는 상하이의 약칭인 ‘호(沪)’ 자로 시작하는 녹색번호판이 무료로 제공된다. 매년 발급하는 번호판 개수를 정해놓고 경매제로 발급하는 상하이에서 번호판 가격은 소형차 한 대 가격에 맞먹는다. 부자들로서는 엔진이 달린 내연기관 차를 사서 취등록세를 내고 번호판값까지 얹어줄 바에야 화끈하게 테슬라를 뽑아서 전기차 구매에 따른 취등록세 면제에다 번호판값까지 아낄 수 있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계산을 하는 셈이다. 과시욕도 만족시킬 수 있어서 상하이에서는 테슬라 중고차 거래도 활발하다.

상하이의 전기차 인프라도 차주들이 충전 걱정 없이 순수전기차인 테슬라를 몰고 다닐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상하이는 차량 급증을 막기 위해 철저한 차고지 증명제를 실시한다. 공동주택인 아파트 주차장도 예외가 아니다. 지정된 위치에 지정된 차량만 주차할 수 있다. 자연히 차주들로서는 고정된 주차장에 전기차 충전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 또 어지간한 대형마트와 쇼핑몰 주차장은 전기차 충전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차주들은 쇼핑이나 식사를 하는 1~2시간 동안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다. 일론 머스크가 지난 2월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선진인프라에서 중국의 발전은 미국보다 100배 이상 빠르다”는 말은 이런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국 정부와 현지 공장 진출 협상

덕분에 본국인 미국에서 ‘파산’ 운운할 정도로 수익성 논란에 시달리는 테슬라가 중국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지고 있다. 2015년 테슬라 전체 판매에서 7%가량이던 중국 시장의 비중은 2016년 14%, 2017년 20%까지 급상승했다. 테슬라는 이미 상하이 푸둥에 현지 생산공장 설립을 계획하고 상하이시 측과 밀고 당기는 협상을 진행 중이다. 현재 테슬라는 25%에 달하는 수입관세를 물고 중국에서 판매하고 있다. 향후 테슬라가 자유무역시험구(FTZ)로 지정된 상하이 푸둥에 현지 공장을 설립하고 현지부품 조달을 40%까지 끌어올릴 경우 25%의 수입관세가 면제된다. 테슬라로서는 관세인하에 따른 추가적인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현재 협상은 기존 관례대로 외국 기업의 지분율을 50% 제한하려는 중국 정부와 100% 독자 진출을 고집하는 테슬라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교착 상태에 있다. 하지만 테슬라의 상하이 현지 공장 설립은 시간문제로 받아들여진다. 상하이시로서도 지분율 때문에 테슬라 같은 외국 기업 유치를 놓칠 수도 없는 처지다. 상하이시 측은 “테슬라 중국 공장 설립은 여전히 공동의 목표”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최근 미·중 무역전쟁을 선포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자국 자동차 기업인 테슬라를 우회지원하며 중국 측에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9일 자신의 트위터에 “자동차 한 대가 중국에서 미국으로 올 때는 2.5%의 관세가 부과되는데 미국에서 중국으로 갈 때는 25%의 관세가 부과된다. 과연 이것이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인가. 수년간 계속되는 바보 같은 무역”이란 글을 남겼다.

그간 중국 당국은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을 자국 자동차 기업을 육성할 절호의 기회로 봐왔다. 가전업계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될 때 삼성, LG와 같은 한국 기업이 전통의 강호 일본 기업을 추월한 것을 눈여겨보면서다. 전기차 시대가 열리자 전기차 보급 촉진을 내걸고 비야디나 로위 같은 자국 자동차 기업들에 사실상 각종 지원정책들을 집중해왔고 실제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당초 의도와 달리 중국 부자들의 테슬라 사랑에 미국 기업인 테슬라까지 어부지리를 얻는 모양새다. 쿨(Cool)한 제품은 정책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테슬라는 잘 보여준다.

백춘미 통신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