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최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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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혁 박사는 대전 지질자원연구원의 지진지질학자(국토지질연구본부 지질연구센터 소속)다. 지난 8월 2일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연구원에서 만났을 때 최 박사는 “본가는 양산단층, 처가는 울산단층 근처에 산다”고 웃으며 말했다. 양산단층과 울산단층은 2016년 9월 12일 경주지진, 2017년 11월 포항지진 이후 알려진 활성단층으로, 지진 피해를 줄이기 위한 학술조사 필요성이 부각됐다.

그는 경주지진 이후 정부가 추진 중인 두 가지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행정안전부가 추진 중인 전국 활성단층 지도 제작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기술부가 벌이고 있는 경주지진 활성단층 조사다. 최 박사는 행안부 프로젝트의 지질자원연구원 내 책임자이고 과기부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양산단층과 같은 지진 관련 용어는 경주지진·포항지진 이후 국민 상식이 됐다. 단층이 순간적으로 움직이면 땅이 흔들리고, 이게 지진이다. 양산단층의 길이는 180㎞라고 최 박사는 말했다. 양산단층 전체가 지진 때 흔들리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그렇지 않다. 그 정도라면 규모 8 이상의 감당할 수 없는 지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양산단층의 일부가 파열음을 냈나? 최 박사는 인터뷰 장소에 있던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렸다. 그가 대각선으로 선을 긋는데, 중간 몇 곳이 끊겨 있다. “양산단층도 이 선처럼 분절화되어 있다. 그리고 분절마다 지진 특성이 다르다. 따라서 분절들의 지진 특성을 알아야 한다.”

그는 지난해 논문에서 양산단층은 최소 9개, 울산단층은 최소 3개의 분절로 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단층 분절이 몇 개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활성단층 지도를 만들어봐야 한다. 지진 규모와 재발 빈도가 크게 다를 수 있어, 분절들에 대한 구간별 조사가 필요하다.

최진혁 박사는 ‘활성단층 전문가’이다. 지진 중에서도 지표면을 찢어놓는 강력한 지진을 연구한다. 경주지진이나 포항지진은 지표를 파열시킬 강력한 지진은 아니었다. 활성단층이 움직여 지표면을 파열시키는 지진은 큰 재난으로 이어진다. 경주나 포항에서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향후 어떤 지진이 일어날지 모르며 이런 대형 지진 재해에 대비하기 위해 활성단층 연구가 필요하다.

최 박사처럼 고(古)지진으로 땅이 갈라지고 움직인 현장을 백팩을 메고 다니며 연구하는 분야를 ‘지진지질학’ 혹은 ‘고지진학’이라고 한다. 지진학자는 주로 지진계에 기록된 지진파 자료를 분석해 연구하고, 고지진학자는 지형 및 지표 지질 조사를 통해 지진을 연구한다. “지진학자가 단기 경보에 주력한다면, 지질학자인 나는 수천 년, 수만 년 만에 일어날 수 있는 대규모 지진을 연구한다. 장기 경보 쪽을 연구한다고 할 수 있다.”

역사에 기록된 지진 관련 기록은 고지진 연구의 중요한 자료 중 하나다. 예컨대 ‘삼국사기’는 779년 3월에 ‘경주에 지진이 발생해 민가가 무너지고 죽은 자가 100여명이었다’고 적고 있다. 이 기록은 유용하나 지진 관련 정보가 제한적이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자료가 지형 및 지표 자료다. 지표 지질은 과거에 일어난 지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최 박사가 미국 캘리포니아의 유명한 지진대인 샌안드레아스지진대에 있는 왈리스 크릭의 항공사진을 보여줬다. 개천인 왈리스 크릭이 산에서 흘러내려 오다가 물길이 끊어져 있다. 그리고 한참 아래쪽에 물길이 다시 이어져 있다. “원래 강이 지진으로 135m 이동했다. 지진으로 한 번에 움직일 수 있는 최대 폭은 12m 정도다. 그러니 왈리스 크릭에서는 최소 10번은 지진이 일어났다고 봐야 한다. 이처럼 반복해서 지진이 일어나는 곳이 활성단층이 지나가는 곳이다.”

최 박사의 방에 가보니 32인치 컴퓨터 모니터가 눈에 띄었다. 그는 이 모니터를 통해 한반도 남동부 지형을 들여다본다. 지표에 과거 지진이 일어나 파열된 흔적이 있는지를 찾는다. 지형 자료는 두 종류이다. 1950~1960년대 촬영한 한반도 항공사진과, 지난해부터 촬영에 들어간 항공라이다(LiDAR·Light Detection and Ranging) 영상이다. 항공라이다는 레이저를 항공기에서 지표에 쏘아 지표면의 굴곡 정보를 얻는 측량법이다. “과거 항공사진은 당시 도시 개발이 안 됐기에, 원래의 지형이 그대로 남아 있는 장점이 있다. 또 항공라이다 자료는 나무를 비롯한 지표장애물을 없애주기 때문에 지형의 민낯을 볼 수 있다. 최근 기술이다. 이 두 개의 장단점을 이용해 조사 지역의 지형을 분석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세계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항공라이다 기법은, 한국의 경우 경주지진 이후 활성단층 조사에 적용됐다. 최 박사는 “경주지진이 한국의 활성단층 연구에서 큰 변곡점”이라고 말했다. 라이다 항공사진 촬영에 행안부 활성단층 프로젝트 예산이 많이 들어간다.

경주 내남면에서 땅을 파 옛 지진 흔적을 조사하는 최진혁 박사(앉아 있는 이). ⓒphoto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경주 내남면에서 땅을 파 옛 지진 흔적을 조사하는 최진혁 박사(앉아 있는 이). ⓒphoto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경주지진 이후 한국 지진 연구 시작

최 박사가 경주 지역 항공라이다 이미지를 보여줬다. 신라시대의 큰 무덤 몇 개가 있는데 그 옆에 계단 모양 지형이 보인다. “단층 절벽일 수 있다. 단층선상에 하천이 틀어진 것을 발견했다.” 단층을 가로질러 흐르는 하천이 단층이 움직이면서 이동했다. 최 박사가 보여준 무덤은 유적지이다. 그는 단층 위치 관련 정보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고 했다. 주민의 민감한 반응 등 신경 써야 할 요소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신라시대 무덤 이름을 이 글에 쓰지 않기로 했다. 최 박사는 “활성단층 연구 결과는 사회적으로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 때문에 조사자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정확한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관련 정보를 어디까지 공개할지는 나중에 정책 담당자의 주도하에 함께 판단할 문제라고 했다.

최 박사는 “양산과 울산 단층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고 분절화를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갖고 있는 정보는 과거 지표 파열이 일어난 점, 사이트 정보뿐이다. “분절이 얼마나 이어지고, 어디서 끝나고, 어느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지점별 자료 또한 귀중하다. 이를 잘 활용하되, 현재의 ‘점’ 정보를 ‘선’ 형태의 지도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양산단층은 이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앞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활성단층 분절화와 대규모 지진의 상관관계가 최 박사의 연구 영역이다.

최 박사가 보여주는 양산단층과 울산단층 지질도를 보니 단층이 과거에 얼마나 움직였는지를 알 수 있었다. 양산단층의 지표자취는 낙동강 하구에서 울진까지 이어지는데, 육상에서만 180㎞에 이른다. 단층 양쪽의 암석을 보니 어긋난 게 보인다. 단층 양쪽의 중생대 백악기 퇴적암 기준으로 크게 어긋나 있다. 최 박사는 “백악기부터 지금까지 단층이 20㎞ 정도 어긋난 것으로 보고돼 있다”고 말했다. 울산단층은 울산 태화강 하구의 현대자동차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양산단층과 만난다. 지표자취는 50㎞이다. 두 단층 모두 그 끝이 어느 바다로 빠지는지도 모른다.

최 박사는 부산에 있는 부경대 지구환경과학과 2002학번이다. 학부 재학 시절인 2007년, 몽골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한 게 ‘활성단층 연구자’가 되는 계기가 됐다. 당시 몽골에서는 1957년에 발생한 고비-알타이 지진(규모 8.1)의 50주년 국제 학회가 열렸다. 지진 발생 후 50년간의 고비-알타이 지진 및 지진을 일으킨 보그드(Bogd) 단층에 대한 연구 성과를 나누는 자리였다. 그는 이곳에서 지표 파열 현장을 보고 매료돼 이를 석·박사 연구 주제로 삼았다. 부경대 지질구조재해연구실 김영석 교수의 지도를 받아 공부하며, 매년 여름마다 몽골을 찾았다. “몽골에서는 20세기에 규모 8 이상의 지진이 모두 4번 일어났다. 발생연도를 따라 1905a, 1905b, 1931, 1957라고 부른다. 건조한 기후로 인해 지진 지표 파열이 아직도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중 1957년 지진 당시 지표 파열을 연구해서 그 분절과 특성을 알아냈다. 지진 당시 이웃한 분절 세 개가 동시에 깨졌고, 분절 경계의 연결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 연구 결과를 2012년에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국내 지질학자 태부족

2013년 어느 날 프랑스의 파리지구물리연구소(IPGP)의 지구조(Tectonics) 연구실장인 얀 클링거(Yann Klinger) 박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당신의 1957년 몽골 지진 논문을 봤다. 대학원생이냐? 몽골에 어떻게 왔느냐?” 프랑스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큰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나라가 아니나 지진 연구의 선진국이다. 중국, 몽골, 네팔, 파키스탄, 아이티 지진 연구로 유명하다. 이 중 몽골 연구 그룹이 최 박사의 논문에 주목한 것이다. 그는 2014년 박사 논문을 쓰고 파리로 떠났다. 박사후연구원으로 그곳에서 몽골의 고지진을 파고들었다.

“몽골 출장을 한 번 가면 한 달 정도 머문다. 여름에만 조사가 가능하다. 그곳의 유목민처럼 연구진 5명 안팎이 천막을 치고 외딴 곳에서 지낸다. 지진 지표 파열을 따라 현장조사를 하고, 여건이 허락되면 굴착기로 지표 파열 지점의 땅을 판다. 단층선을 가로질러 크게는 길이 30m, 깊이 3m 정도 판다. 굴착 지점을 잘 선정하면 오래된 지층을 볼 수 있고, 오랜 시간 일어난 고지진 추적이 가능하다. 인근 마을의 굴착기를 부르면 이틀 사흘 걸려 온다. 보통은 현지 유목민과 함께 곡괭이와 삽을 들고 땅을 파는 게 일이다. 한 달 동안 한 번도 몸을 못 씻는 경우도 있고, 뜨거운 태양 아래 그늘을 만나기 어려워 가끔씩 구름이 드리우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얼굴이 까맣게 타면 몽골인이 되어버린다.”

프랑스에서 지진 연구를 계속하려 했지만 2016년 9월 경주지진이 그의 삶을 바꿨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활성단층을 연구한 지질학자를 찾았다. 최 박사는 지난해 2월 2년3개월간의 파리 생활을 접고 귀국했다.

활성단층 연구는 몇 단계로 진행된다. 우선 고해상도 지형영상 자료를 활용하여 고지진으로 인한 지표 파열의 흔적과 증거를 찾는다. 지형 분석을 통해 지형학적 ‘이상대’를 확인한다. 이어 그 이상대를 찾아가 야외조사를 하고 땅을 직접 파서 단층을 확인한다. 단층으로 지표지질이 어긋나 있는지 살피고, 구조지질 및 고지진학 관점에서 조사한다. 지난해 중부 및 남부 양산단층을 따라 10곳을 팠다. 다음으로 지표지질 퇴적층의 형성 시기를 연대분석하고, 이를 통해 고지진의 시간 정보를 추론한다.

현재 진행 중인 행안부 프로젝트만 해도 앞으로 20년이 소요된다. 지진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지질학자가 국내에 거의 없다고 지질자원연구원 측은 말했다. 30대 중반인 최 박사처럼 지진지질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더 나와야 한다고 했다. 그런 희소성 면에서도 최 박사는 연구자로서 운이 좋은 듯했다.

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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