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6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두 번째)이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방문 일정을 마친 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맨 오른쪽)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8월 6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두 번째)이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방문 일정을 마친 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맨 오른쪽)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투자의견 하향 조정으로 촉발된 D램 수퍼사이클(장기 호황) 종결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대만의 시장조사업체 D램 익스체인지도 내년 D램의 가격을 올해보다 15~25% 하락할 것으로 예측했고,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도 반도체 시장의 시장규모 성장률이 올해 15.7%에서 내년 5.2%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는 등 D램을 포함한 메모리반도체 업계가 그간 누려온 호황이 정체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의견이 전반적으로 힘을 얻고 있다. 반면 D램 공급이 증가하더라도 클라우드 사업의 발달로 인한 데이터센터 건립, 인공지능(AI) 산업 발전 등의 영향으로 D램 수요가 장기적으로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국내 증권사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는 매출액 기준으로 한국 수출액의 20%를 차지하는 주력 수출품이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코스피 상장사 중 시가총액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대기업이라는 점에서 D램의 수퍼사이클이 언제쯤 끝날 것인지에 대해 많은 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경기순환적인가 아닌가

현재 D램 가격 전망을 둘러싼 논란은 ‘D램을 포함한 메모리반도체 산업이 경기순환적(cyclical) 산업인가 아닌가’로 요약할 수 있다. 이전까지 반도체는 경기순환적 산업에 속했다. 글로벌 사업자 간에 벌어진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은 사업자들이 과점 시장을 형성하면서 호황을 누려왔다. 그런데 이 과점 시장과 수요가 계속 유지될 것인지가 관건이라는 설명이다.

반도체 산업이 경기순환적 산업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다르게 보면 이 산업이 자본집약적 산업인지 기술집약적 산업인지를 가리는 것과 같다. 일반적인 제조업은 대부분 경기순환적 특성을 지닌다. 쉽게 말해 경기순환 주기에 맞춰 매출액과 영업이익률이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본집약적 산업의 경우 후발주자더라도 대규모로 자본을 확충하면 선발주자를 따라잡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기술집약적 산업의 경우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더라도 기술 개발을 통해 품질을 따라잡지 못하면 선발주자를 따라갈 수 없는 구조다.

D램 시장의 경우 2016년까지 수십 년간 계속된 ‘치킨게임’으로 인해 대부분의 사업자가 고사했다. 현재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미국의 마이크론그룹 3사가 글로벌 시장을 3분 하면서 사실상 과점 시장을 형성했다. D램은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글로벌 시장 점유율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2세대 10나노급(1y) 공정을 적용한 16GB 모바일 D램을 양산하는 등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공정 효율화로 경쟁자들을 따돌려왔다.

D램 시장이 현재의 과점 시장의 형태를 띠게 된 데에는 공급을 늘릴수록 오히려 생산비용이 감소하는 D램 사업의 특성이 크게 작용했다. D램 시장은 특성상 공급을 늘릴수록 수익성도 개선되는 구조다. 앞서나가는 사업자가 향후 경쟁에서도 유리한 구조라 결과적으로는 승자가 시장을 독식하게 된다. D램 업계 글로벌 1위 사업자인 삼성전자는 2000년대 미세공정 한계를 꾸준히 극복하면서 수많은 경쟁자들을 거꾸러뜨려왔다.

여기에 최근까지 이어지는 미국 플랫폼 기업들의 성장 호조세가 D램의 수요를 높이면서 시장의 호황을 이끌어왔다.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로 대표되는 미국 플랫폼 기업들은 클라우드 서비스를 운용하는 특성상 대규모 데이터센터(IDC)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데이터센터에는 하나당 평균 1000만~2000만GB의 서버용 D램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구글, 아마존웹서비스(AWS),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데이터센터 추가 건립 계획을 발표하면서 서버용 D램 수요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중국도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를 중심으로 한 플랫폼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건립 계획을 밝히면서 서버용 D램의 수요는 당분간 유지되는 추세다.

서버용 D램은 일반적으로 PC용 D램에 비해 기능이 우수해 용량이 같더라도 20~30%가량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버용 D램으로 흔히 사용되는 16GB DDR4 제품의 평균가격은 2016년 말 95달러에서 2017년 말 145달러까지 약 52.6% 오른 것으로 추산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데이터센터를 건립하는 플랫폼 기업들은 가격이 비싸도 품질이 뛰어난 D램을 선호한다”며 “프리미엄급 D램일수록 전력을 적게 소모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비용이 적게 든다”고 말했다. 데이터센터를 운용하는 기업들에는 전력을 얼마나 절약하면서도 발열량을 감소시킬 수 있을지가 첫째 관심사다. D램은 전력 소모가 적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대용량 기억장치에 많이 사용된다.

완공 전 공장 가동할 정도로 물량 달려

이처럼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D램 수요가 늘어나면서 D램 사업자들은 공급을 대규모로 확충하는 추세다. 현재 평택캠퍼스에 반도체공장을 증설 중인 글로벌 1위 사업자 삼성전자는 신속한 공장 건설을 해나가면서 급증한 D램 수요를 따라가고 있다. 평택 고덕캠퍼스에는 삼성전자가 330만㎡(100만평) 규모의 부지를 갖고 있는데, 이 중 1차로 절반가량인 172만㎡(52만평) 부지에 4개 공장, 16개 라인을 2015년 말부터 증설하고 있다. 나머지 2차 부지에 공장을 증설할지 여부는 아직까지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수원 기흥과 화성에 기존 17~18라인 규모의 반도체공장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D램 공급이 워낙 달리다 보니 삼성전자는 공장 건물을 지으면서 바로 생산라인을 가동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평택공장 건설사업을 시행하는 삼성물산의 한 현장 관계자는 “D램 물량이 워낙 달리다 보니 공장을 지으면서 바로 생산라인을 돌리고 있다”며 “2019년 말까지 2개 공장이 완공될 예정”이라고 했다. 삼성전자 측은 앞서 지난 2분기 경영실적 컨퍼런스콜에서 “평택 반도체 산업단지 내 2기 라인을 위해 기반공사를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반도체 생산라인 가동을 위해서는 지금부터 2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글로벌 2위 사업자인 SK하이닉스도 중국 우시의 D램 공장 증설이 마무리되는 대로 곧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반도체 업계에서 D램 사업의 성장세가 둔화될 것으로 예측하는 시점은 내년 1~2분기다. 주요 반도체 관련 조사업체들이 이때를 반도체 시장이 본격적인 성장둔화 국면으로 접어드는 시점으로 보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수요를 이끌어온 스마트폰 시장이 이제 포화상태에 접어들었고, 미국 플랫폼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투자 붐도 주춤해지면서 폭발적인 반도체 수요 증가세가 꺾일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에 따라 메모리반도체 가격도 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D램 익스체인지는 최근 공개한 보고서에서 “내년 D램 가격은 올해 대비 15〜25%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지난 7월 23일 7.95달러로 8달러 선이 붕괴됐던 D램(DDR4 8GB 기준) 현물 가격은 한 달 만인 8월 20일 6.9달러까지 떨어졌다. 소매거래가격인 현물가는 통상 3개월 단위로 변동되는 고정거래가격(ASP)보다 빨리 시장 상황을 반영한다.

하지만 적어도 올해까지는 D램 공급 증가율이 수요 증가율을 따라가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 2분기 실적 발표에 이은 컨퍼런스콜에서 올해 연간 D램 비트그로스(비트 단위로 환산한 생산량 증가율)를 20% 수준으로 예상했다. 3위인 마이크론도 생산량을 늘려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는 올해 전 세계 D램 시장 매출이 총 1016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대비 39% 늘어난 수치다. IC인사이츠는 지난 3월 올해 D램 시장 규모를 996억달러로 추정했지만 예상보다 D램 수요가 계속 늘어나자 최근 이를 상향조정했다.

반도체 산업의 호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를 모두가 주목하는 이유는 반도체가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주력 산업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2개사의 영업이익은 439개 상장사 중 50.7%를 차지해 절반을 넘었다. 지난해 기준 수출 금액은 전체 수출 금액의 20%를 넘어섰다. 이처럼 한국 경제의 반도체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반도체 산업의 초호황이 끝난다면 우리 경제 전체가 경색 국면에 접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중국 반도체 굴기 영향은 제한적

장기적으로 볼 때 위협적인 요소로 꼽히는 것은 중국 기업들이다.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중국은 반도체 시장을 미래 먹거리로 삼고 국가 전체적으로 역량을 동원하고 있다. 중국 국영 칭화유니그룹의 자회사 양쯔메모리테크놀러지(YMTC)는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3D 낸드플래시 양산 시제품을 공개했다. 이는 중국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 내놓은 첫 메모리반도체다. YMTC는 “반도체 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며 내년부터 메모리반도체를 본격적으로 양산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중국 업체들의 업계 진입이 당장 시장에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는 분석은 아직까지 많지 않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기술력이 경쟁사보다 최소 3년 이상 앞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는 특성상 기술력이 뛰어날수록 소비전력이 적고 성능이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낸다. 또 생산비용이 낮기 때문에 후발사업자가 따라오기 어려운 구조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중국이 반도체 산업의 최대 변수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힘을 얻는다. 중국이 액정화면(LCD) 디스플레이에 본격적으로 투자한 지 10년이 지난 뒤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이 위기에 처한 것처럼 중국이 대규모 내수시장과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면 장기적으로는 우위를 장담할 수 없다는 시각이다.

현재 세계 반도체 산업에서 메모리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 수준이다.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는 우리 기업이 세계시장의 약 70%를 공급하고 있지만 시스템반도체를 포함한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6% 수준이다. 현재 글로벌 시스템반도체 시장은 미국의 인텔이 주도하고 있다. 특히 SK하이닉스의 경우 D램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도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야 할 측면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시스템반도체의 경우 소규모로 다양한 시장이 존재하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가 필요한 대기업보다 오히려 중소 규모의 기업이 참여하기에 용이한 시장”이라며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중소기업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시스템반도체 육성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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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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