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최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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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냄새를 식별할 수 있는 나노 전자코, 주사로 암을 진단할 수 있는 암인자 검출센서, 초미세먼지를 잡는 나노 마스크, 신선육이 상했는지 알아내는 나노 센서, 말라리아 진단 나노 키트….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권오석 박사가 개발했거나 개발 중인 장비다. 1979년생이니 39세. 지난 8월 20일 대전 대덕의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만난 권 박사 자리 위 벽면에는 논문 표지가 15개 이상 붙어 있었다. “작년과 올해 쓴 논문이다. 젊었을 때 논문을 많이 쓰려고 노력한다”고 그는 말했다.

권 박사는 자신을 “질병과, 미세먼지와 같은 위해요소 나노(Nano) 소재 기반 진단기기를 개발하는 과학자”라고 설명했다. 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나노융복합연구센터 소속이다. 권 박사는 생명연에 들어간 2017년 미국 빌게이츠(빌&멀린다게이츠)재단으로부터 말라리아 진단키트 개발을 의뢰받아 주목받았다. 빌게이츠재단이 한국인에게 연구비를 지원한 건 권 박사가 처음이다. 연구비는 총 370만달러였고, 다른 세 명의 연구자와 함께 받았다. 빌게이츠재단은 2020년까지 말라리아 박멸을 위해 자금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나노 물질의 형광 특성을 이용하려 했다. 형광 입자에 말라리아 항체를 붙이면 이게 항원, 즉 말라리아 병원균을 찾아간다. 형광 입자는 빛을 쪼이면 빛을 내기 때문에 병원균이 있는지 없는지를 진단할 수 있다.”

연구는 실패했다. 1년여 해보니, 현재 기술로는 개발할 수 없겠다 싶었다. 2017년 재단에 개발이 안 되겠다고 말했다. 재단 측은 그 얘기를 듣고 권 박사를 질책하지 않았다. “되면 되고 안 되면 안 된다고 얘기해달라고 그간 말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의 연구자금 지원 기관들은 연구가 실패하면 책임을 묻는다. 빌게이츠재단은 우리와는 달랐다.”

빌게이츠재단이 당초 의뢰한 것은 2년 계획의 말라리아 진단키트 개발 프로젝트였다. 미국 동부의 한국계 바이오 기업이 권 박사를 빌게이츠재단에 소개했다. “말라리아는 한국에도 흔하다. 휴전선 지역에서 감염자가 매년 수백 명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보균자 찾기가 힘들다. 피 한 방울 속에서 말라리아 인자를 찾아내기란 모래 한 알을 집어내는 것과 같다.” 권 박사는 “빌게이츠재단과의 연구가 편해, 다시 다른 연구를 갖고 연구비 지원 프로그램에 지원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자코’는 그가 석·박사 과정 때부터 지금까지 붙잡고 있는 주제. 냄새를 맡고 그걸 식별하는 나노 구조체의 완성도를 계속 높여가고 있다. 나노는 10억분의 1m라는 나노미터 크기를 가리키는 용어이고, 나노 기술은 1~100나노미터 범위인 재료나 대상에 대한 기술을 가리킨다. 나노 크기 물질은 전기, 광학 등 다양한 성질을 갖고 있다. 말라리아 진단키트에 사용된 나노 물질의 특성이 형광 특성이었다면, ‘전자코’ 개발에 사용된 나노 물질 특성은 전기적 특성이다.

권 박사는 박사논문(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지도교수 장정식)을 그래핀을 이용한 나노 바이오 센서 제작으로 썼다. 그래핀은, 나노 물질로 주목받은 나노 탄소튜브 이후의 꿈의 신소재라고 얘기된다. 전자코 제작은 융복합 연구의 산물이다. 권 박사는 서울대 은사인 장정식 교수, 박선주 박사와 함께 나노 쪽(바이오 나노 센서)을 담당하고, 바이오 쪽(후각 수용체 센서 개발)은 기초지원연구원 송현석 박사와, 송 박사의 스승인 박태현 서울대 교수가 맡았다. 전자코 연구 성과는 2015년 10월에 나왔다.

당시 생명공학연구원은 “사람 코(후각기능)보다 정확한 바이오나노전자코 기술을 개발했다”며 보도자료를 내고 자랑했다. 고성능 바이오나노전자코(Bionano-electronic Nose)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소개됐다. 기존의 바이오나노전자코는 여러 가지 냄새를 한 번에 알아내는 데 한계가 있었던 반면, 권 박사 팀이 만든 전자코는 여러 가지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진전을 이뤄냈다. “사람의 코를 대체할 기술”이라고 화제가 됐다.

권 박사는 “바이오와 나노가 융합하면 새로운 현상과 기능이 생긴다. 이걸 이용하면 새로운 개념의 센서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전자코는 마약 찾아내기, 부패 감지 기능을 이용한 시체 찾아내기, 향수 제조 등의 일을 할 수 있다. 권 박사는 앞으로 “냄새를 컴퓨터 코드로 만들어 저장하려고 한다. 냄새, 아니 향기 저장장치를 개발해 TV에 붙이면 ‘향기 나는 TV’가 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향기 나는 TV를 개발 중인 것으로 안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삼성과 같은 기업보다 연구 성과가 빨리 나올 수도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미세먼지 나노 필터 개발

권 박사의 가장 최근의 연구 성과는 ‘미세먼지 나노 필터’ 개발이다. 고분자 나노섬유막을 이용해 초미세먼지(PM 2.5)를 효율적으로 걸러낼 필터 제조기술을 지난 3월에 내놓았다. “표면적이 넓어지는 나노 물질의 성질을 이용했다. 표면적이 넓으면 미세먼지 포집 효율이 올라간다. 이번 제품은 25% 정도 필터 성능을 향상시켰다.” 그의 책상 위에 검은색 플라스틱 상자 안에 미세먼지 나노 필터가 들어 있었다. 권 박사는 사진 촬영은 못 하게 했다. 기술이전을 앞두고 있어 해당 업체가 정보 유출을 꺼릴 것이라고 했다.

권 박사는 현재 고기가 상했는지 여부를 가려내는 ‘전자코’ 연구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이 선정하는 식품안전 관련 3.6년짜리 프로젝트 연구에 응모했다. “신선육이 부패하면 가스(암모니아, 황화수소, 질소 등)가 나온다. 냄새 분자를 포착하는 센서가 아직 한국에서는 개발되지 않았다. 서울대와 기계연구원과 함께 개발하려고 한다.”

이 프로젝트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된다. 현재 각기 다른 주제로 모두 4개의 프로젝트가 연구비를 놓고 경합하고 있다. 다른 한 팀과 1라운드를 겨루고, 이기면 2라운드에서 다른 팀과 또 대결하는 식이다. 1라운드는 8월부터 내년 2월까지 6개월간 진행된다.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연구자의 선행연구는 어떤지가 판정 기준이다. 여기서 승자가 된 연구자가 2019년 2월부터 2년간 연구비를 지원받는다. 2라운드 대결에서 승리하면 연구비를 추가로 1년간 더 지원받아 3.6년에 걸친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다.

권 박사는 대구 성광고 출신. 영남대 화학과(98학번)에 진학했으나, 당초 공부하려 했던 ‘합성’이 어렵고 졸업 후 취업 전망도 밝지 않아 ‘공대’로 옮겼다고 했다.

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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