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최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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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핵융합연구소의 홍석호(47) DEMO기술연구부장은 경희대 물리학과 석사과정 직후인 1999년 4월 9일, 노벨물리학상 수상자(1979년)인 스티븐 와인버그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와인버그는 미국 오스틴-텍사스대학 교수이며 핵물리학계 거물이다.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주인공인 핵물리학자 이휘소 박사의 절친이기도 하다. 홍 박사는 이메일을 받고 놀랐다. 석사 논문을 미국 국립로스앨러모스연구소 프리프린트 사이트(학술지에 게재되기 전에 미리 논문을 공개하는 사이트)에 올려놓았는데, 와인버그가 그걸 본 것이다. 와인버그는 “당신의 논문을 읽었다. 다음 주에 워싱턴에서 강연이 있는데, 그와 관련해 물어볼 게 있다”라고 했다.

지난 8월 28일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국가핵융합연구소에서 만난 홍석호 박사는, 탄소 핵융합 과정이 한때 물리학계의 이슈였다고 말했다. 탄소는 생물을 구성하는 기본 물질. 논란은 탄소가 매우 제한된 조건하에서만 헬륨으로부터 만들어지느냐 아니냐였다. 생명의 기본 물질인 탄소가 대단히 제한적인 조건에서만 만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일부 연구 성과를 두고 거기에서 ‘신의 손길’을 느낀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홍 박사가 ‘상대론적 평균장이론’으로 계산해 보니 탄소는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는 융합 조건이 까다롭지 않았다. 원자량 4인 헬륨핵 3개가 뭉쳐 원자량 12인 탄소를 만드는데, 3개 중 2개가 먼저 핵융합반응을 일으킨다. 이때 베릴륨이 만들어진다. 이 베릴륨에 헬륨 핵(알파입자)이 하나 더 붙으면 탄소가 된다. 홍 박사는 “당시까지 탄소가 어떤 방식으로 융합되는지를 정확히 몰랐다”면서 자신이 이석준 교수의 지도를 받아 세계 최초로 상대론적 평균장이론을 이용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그 과정을 알아냈다고 말했다. 홍 박사가 보여주는 와인버그 이메일 사본을 보니 ‘홍 박사에게’라고 쓰여 있었다.

무명의 한국 석사 학생에게 도착한 스티븐 와인버그의 이메일은 벼락과 같은 충격이었다. “노벨상 수상자가 관심을 보인 논문을 썼다고 생각하니, 더 어려운 분야에 도전해야겠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그래서 플라스마물리학으로 박사과정의 연구주제를 바꿨다.”

그로부터 29년이 지난 지금, 홍석호 박사는 국가핵융합연구소에서 차세대 원자로인 핵융합 원자로 설계와 기술 개발을 책임지고 있다. 그의 보직명인 ‘데모 기술 연구부’에서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데모 기술 연구부’ 중 ‘데모’는 핵융합 실증로를 가리킨다.

핵융합발전은 핵분열을 이용한 원전보다 효율이 좋고 안전하다. 그래서 차세대 에너지로 얘기된다. 핵융합반응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핵융합로 내부에 1억도의 플라스마를 만들어내야 한다. 1억도의 플라스마를 만들고, 24시간 살아있게 하고, 뜨거운 온도를 견딜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 누구도 이런 일은 해본 적이 없다. ‘극한 과학’이다. 때문에 한국의 경우 첫 단계로 국가핵융합연구소에 핵융합 실험로인 KSTAR를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 핵융합발전이 가능한가를 연구하는 실험장치다.

한국은 KSTAR를 만들고 운영한 경험을 인정받아, 국제 핵융합 실험로 프로젝트(ITER)에 참여하고 있다. 프랑스 카다라시에 8개국이 KSTAR보다 성능이 우수한 실험로를 짓고 있다. 한국은 KSTAR 운영을 통해 축적해가고 있는 데이터와, ITER에서 추가로 얻은 기술을 갖고 ‘핵융합 실증로’를 지을 계획이다. ITER는 2025~2045년에 운영된다. ITER는 전기 생산 바로 전까지를 실험하게 되는데 핵융합 실증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실제 발전을 하고 전력을 생산하게 된다. 핵융합발전이 완성되는 것이다. 한국은 2042년 핵융합 전기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핵융합 실증로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고, 핵융합 실증로를 설계하는 게 홍석호 박사가 이끄는 부서의 임무다.

“핵융합 실증로에서는 중성자 연구와 열 문제가 중요하다. 실증로를 만들기 위한 연구 개발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기술을 개발하면서 설계를 해야 한다.”

ITER의 목표는 플라스마를 400초 동안 살려놓는 것이다. 이는 KSTAR의 2016년 말 세계신기록인 70초보다 훨씬 긴 시간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핵융합발전을 할 수 없다. 플라스마를 최소 2시간, 길게는 24시간 계속 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융합하면 헬륨과 중성자가 나온다. 이 중 중성자는 14MeV라는 높은 운동에너지를 갖고 있다. 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중성자가 실증로 벽에 부딪히면서 열이 발생한다.” 발생하는 열은 ‘블랭킷’이라는 1m 두께의 차단벽 속을 지나는 물을 끓인다. 펄펄 끓는 물은 발전소 터빈을 돌리는 데 사용된다. 하지만 블랭킷에서 열교환되는 것 말고도, 추가로 열을 식혀줘야 한다.

스티븐 와인버그가 홍석호 박사에게 보낸 이메일.
스티븐 와인버그가 홍석호 박사에게 보낸 이메일.

경계 플라스마 연구자

핵융합 실증로에서 제기되는 중성자 문제는 운동에너지가 큰 진공용기 내 중성자를 차단벽이 견딜 수 있느냐 하는 재료의 문제이기도 하다. 홍 박사는 “중성자가 원자를 계속 때리면 원자 위치가 바뀐다. 그러면 내구성, 강도 등 재료의 물성이 변한다. 망가진다. 그게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느냐가 아직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이런 걸 포함해서 ‘데모 기술 연구부’에는 모두 35명이 차세대 토카막(핵융합로)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핵융합안전연구팀(3명), 토카막통합시스템연구팀(4명), 디버터시스템연구팀(9명), 초전도자석연구팀(5명), 진공극저온연구팀(8명)으로 나눠 일한다. 차세대 토카막을 설계하고, 핵융합장치에서 열속(heat flux)을 많이 받는 부품인 디버터를 만들고, 핵융합로에서 나오는 중성자로부터 어떻게 안전을 지킬 수 있는지가 연구의 일부다.

홍 박사는 자신을 ‘경계(edge) 플라스마’ 연구자라고 표현했다. 플라스마와, 플라스마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체와의 상호작용을 연구한다는 의미다. 그는 경희대에서 석사를 마친 후 독일 보쿰에 있는 루어(Rhur)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경계 플라스마를 공부하려니, 공부할 게 많았다. 플라스마를 알아야 하고, 플라스마 주변체의 재료를 알아야 하고, 두 개의 상호작용을 공부해야 했다. 원자핵물리학도 해야 했다.”

플라스마를 이용해 반도체산업에서는 회로를 새긴다. 그런데 플라스마 내부의 티끌 입자가 핵융합과 반도체산업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수㎛(마이크로미터) 크기인 이 고체 입자가 플라스마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생긴다. 이게 반도체 웨이퍼 기판에 떨어지면 반도체는 불량품이 될 수 있다. 핵융합 과정에서는 이 티끌 입자가 수소를 잡아먹는다고 홍 박사는 말했다. 유효단면적이 커서 핵융합의 재료인 삼중수소를 소비한다. 결과적으로 핵융합 플라스마의 질이 떨어진다. 홍 박사는 이런 티끌 입자 생성 과정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또 어떻게 티끌 입자를 제거할 수 있는지를 연구해 박사논문을 썼다. 2004년이었다.

“이론물리학자에서 실험물리학자가 되니, 처음에는 장비를 몰라 애먹었다. 장비를 이해하려고 처음에 노력했다. 실험실에서 살았다. 박막 두께와 광학상수를 측정하는 타원편광분석기라는 것이 있다. 필요한 데이터를 입력하면 원하는 값이 나온다. 나는 어떻게 해서 장치가 값을 내놓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기계가 계산하는 걸, 손으로 직접 수식을 유도해 풀었다. 파스칼 프로그래밍 언어로 소프트웨어를 짰다. 한 달여를 그러고 있으니, 지도교수(요르그 빈터)가 시간 낭비하는 거 아니냐, 뭐하는 거냐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 내가 이 장비를 이해했기에 훗날 연구실 사고 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홍 박사가 박사과정이 끝날 무렵의 일이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나가는 독일 학생이 자신의 연구를 특허 신청한다면서 연구실에 있던 나노입자 광특성 측정을 위한 타원편광분석기를 분해하고, 프로그램을 모두 지웠다. 이때 그가 6개월씩 걸려 프로그램을 새로 구성해 복구했다. 박사를 마치고 박사후연구원으로 2년간 더 루어대학에 머무를 때였다. 그가 모든 방정식을 손으로 풀어보았고, 타원편광분석기를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조속한 시일 내 복구가 가능했다. “교수님이 ‘석호, 네가 나를 살렸다(You saved me)’라고 말씀하셨다.” 이 사고는 그에게 ‘세계 최초’의 기록을 또 하나 만들어줬다. 플라스마 내부의 탄소나노 입자의 광(光)특성을 최초로 측정한 것이다.

“성운이 모여 별을 만든다. 성운을 이루는 게 플라스마 나노 입자이다. 성운에 상대적으로 많이 존재하는 게 탄소나노 입자다. 내가 알아낸 건 성운의 흡수계수다. 별이 있다고 하자. 별빛이 지구에 닿으려면 중간에 있는 성운을 통과한다. 이때 성운이 별빛을 일부 흡수한다. 천체까지의 거리와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운의 광(光)특성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천문학자는 성운이 얼마나 별빛을 흡수하는지를 그때까지는 정확히 몰랐다. 내가 탄소나노 입자의 크기에 따른 정확한 흡수율을 알아냈다. 천문학에 매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홍 박사는 독일에서 연구를 마친 후 프랑스로 갔다. 프랑스 국립원자력청의 플라스마연구소에서 다시 2년여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했다. 이 연구소가 지금 한국의 국가핵융합연구소 등 7개 국가가 짓고 있는 ITER 공사 현장에 있다. 카다라시다. 이곳에서 연구하고 있던 중 국가핵융합연구소의 제안을 받고 2008년 11월 한국에 돌아왔다.

2020 국제학회 제주도 유치

그는 국가핵융합연구소 측으로부터 “플라스마 표면상호작용 분야가 약하니 그 분야를 키워달라”는 얘기를 들었다. 플라스마에 의한 박막증착, 식각, 나노입자 분야가 플라스마 표면상호작용 분야라고 홍 박사는 말했다. 당시 국가핵융합연구소에는 핵융합 플라스마 표면상호작용 연구자가 없었다.

“처음 1~2년 고군분투했다. 연구 커뮤니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학생을 가르치고 대학교수들에게 핵융합 플라스마 표면상호작용 관련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그는 국가핵융합연구소에 근무하면서 한양대와 UST에서 가르쳤다. 핵융합연구소 내부 인력을 훈련시켜 ‘플라스마 내벽 물성 연구팀’을 2015년에 만들기도 했다. KSTAR 진공용기 내부에서 열속(단위면적당 에너지)을 가장 많이 받는 장치가 디버터인데 최적화된 디버터 형상도 개발했다. 진공용기 내 플라스마 단면 기준으로 보면 아랫부분이 ‘열속’이 가장 크다. 열에서 가장 강한 텅스텐을 쪼개 모노 블록으로 만든다. 디버터에 텅스텐 조각이 30만개 들어간다.

그는 2017년 현재의 보직인 DEMO기술연구부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최근에는 ‘2020년 핵융합 플라스마 표면상호작용 국제학회’를 제주도에 유치하는 성과도 올렸다.

당초 한국 정부의 핵융합진흥법상 계획은 핵융합 실증로를 건설해 2042년까지 전기 생산 여부를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홍 박사는 지연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ITER 사업이 10년 정도 지연됐기 때문이다. ITER에서 나오는 데이터와 연구 성과, 기술도 등이 한국의 핵융합 실증로, 즉 K-데모를 만드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핵융합 실증로를 설계하는 일은, 3단계로 진행된다. 설계개념을 연구하고(2021년까지), 이후 개념설계를 한 다음(2022~2026년), 정부의 허가를 받아 공학설계를 하게 된다. 홍 박사는 “은퇴 전, 공학설계까지 참여하게 될 듯하다”고 말했다. 핵융합발전 성패의 한 축이 그에게 달려 있는 듯이 보였다.

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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