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격자 시계
광격자 시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전파탑인 도쿄 ‘스카이트리’ 전망대에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검증 실험이 시작되었다. ‘중력의 세기에 따라 시간의 흐름이 달라진다’는 이론을 직접 확인하기 위한 실험이다. 중력이 강한 곳일수록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과연 지상보다 중력이 약한 수백 미터 전망대에서는 시간이 빨리 흐르는 현상이 증명될 수 있을까?

日 연구팀, 450m 높이서 시간 차이 확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지구의 중심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즉 해발고도가 높아질수록 중력이 조금씩 약해져 시간이 더 빨리 간다. 상공에 있는 시계와 지표면에 있는 시계를 비교하면 지표면에 있는 시계가 천천히 흐른다는 얘기다.

물론 우리의 생활공간에서는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시간 차이가 극히 작다. 그렇기에 실제로 그 차이를 계측하는 일 또한 매우 어렵다. 그런데 일본 도쿄(東京)대학 가토리 히데토시(香取秀俊) 교수팀이 일상생활에서 그 실험을 실행하고자 나섰다.

지난 10월 2일 밤부터 3일 새벽, 연구팀은 도쿄의 관광명소로 유명한 450m 높이의 도쿄 스카이트리 전망대와 지상의 1층 회의실에 각각 초정밀 ‘광격자 시계’를 설치했다. 광격자 시계를 통해 두 곳의 시간 흐름 차이를 측정하기 위함이다. 이는 해발고도에 따라 변화하는 미세한 중력의 차이가 시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2005년 교수팀이 만든 광격자 시계는 최고 수준의 정확도를 지녔다.

가토리 교수는 수십 년간 광격자 시계를 연구해온 이 분야 최고의 대가. 그는 2015년 스트론튬(Sr) 원자를 사용한 두 대의 광격자 시계를 광케이블로 연결해 약 1개월간 작동시킨 후 두 대의 오차가 1초 발생하는 데 160억년이 걸린다는 결과를 얻어냈다. 이 때문에 그는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우주 탄생 138억년 전부터 현재까지 시계가 계속 작동했다고 가정하면 오차는 1초 미만이 되는 셈이다. 수학적으로는 1경분(10의 16승)의 1초의 정확도를 갖는다.

중력의 세기에 따라 시간 흐름이 달라진다는 사실은 1972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로켓을 발사해 고도 1만㎞ 상공과 지상과의 시간 차이를 측정하면서 밝혀진 바 있다. 이때 사용한 시계는 세슘(Cs) 원자시계. 우주선에 이 시계를 싣고 지구 한 바퀴를 도는 20시간의 비행을 통해 지상에 둔 원자시계와 우주선에 실린 원자시계 사이의 시간 차이를 알아본 것. 실험 결과는 일반상대성이론의 예언과 일치해 높은 곳에서의 시간이 더 빨리 흘렀다.

하지만 이번처럼 ‘광격자 시계’를 이용해 500m도 안 되는 짧은 해발고도에서의 중력에 따른 시간 흐름 차이를 측정하는 실험은 일본이 처음이다. 더구나 연구실 밖의 생활공간에서 시간의 흐름을 측정하는 시도도 최초다. 그동안 연구실 내부에만 있던 거대한 광격자 시계가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시계의 크기를 소형화했기 때문이다. 광격자 시계는 높이가 1㎝ 차이 나는 곳의 시간 흐름의 차이도 검출해낼 수 있다.

가토리 교수팀은 앞으로 2개월 후 450m 높이의 스카이트리 전망대와 1층 회의실에 각각 설치한 광격자 시계의 시간 차이를 비교할 계획이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라 그가 계산한 두 곳의 시간 차이는 1개월에 약 1억분의 13초. 스카이트리 전망대에 설치한 시계가 1층 회의실에 설치한 시계보다 그만큼 빨리 간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인다는 것이다. 스카이트리 전망대와 1층 사이에 나타나는 1초의 시간 차이를 사람이 직접 재려면 70만년 정도가 걸리지만, 광격자 시계로는 길어야 몇 개월이면 알 수 있다는 게 가토리 교수의 설명이다.

이번 스카이트리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날 경우, 다음 목표는 후지산(富士山)이다. 후지산은 해발 3776m로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스카이트리 전망대 같은 낮은 곳에서 후지산처럼 높은 곳으로 시간의 흐름 차이를 계속 계산해가다 보면, 높이에 따른 시간 차이를 산출할 수도 있다는 것이 가토리 교수의 설명이다. 이는 초정밀 시계를 통한 원거리 지역의 측량 기술 개발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차세대 표준시계로 주목

도쿄 스카이트리 건물 ⓒphoto 뉴시스
도쿄 스카이트리 건물 ⓒphoto 뉴시스

현재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1초의 정의’는 세슘 133(133Cs) 원자가 내놓는 고유의 진동수다. 진공 상태에서 지구나 주변 물질이 만드는 자기장, 전자파 등을 완벽히 차단한 후 세슘 원자가 스스로 진동하는 고유 진동수(91억9263만1770번)를 1초로 정의한 것이다. 세슘은 원자량 112~151 사이에 총 40개의 동위원소가 알려져 있는데, 안정 동위원소는 133Cs 하나뿐이다.

세슘 원자시계는 3000만년이 지날 때마다 1초의 오차밖에 나지 않는 정확도를 나타낸다. 오차가 생기는 이유는 세슘 원자끼리 충돌이 일어나 원자 상태가 바뀌어 시간 변화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 광격자 시계도 원자시계의 일종이지만 세슘 원자시계와는 사용하는 원자나 측정 방식이 다르다.

광격자 시계는 레이저광선을 사방(전후, 상하, 좌우 6개 방향)에서 쏘아 레이저로 가상의 빛 상자(10만분의 2㎜)를 만들어 그 속에 원자를 가두는 기술이다. 그런 뒤 다른 종류의 강한 레이저빔을 원자에 쏘아 고유의 진동수를 측정한다. 레이저를 쏘는 방향이 격자 모양을 이룬다고 해서 ‘광격자’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 광격자 시계에는 보통 스트론튬이나 이터븀(Yb) 원자가 쓰인다. 이들 원자는 같은 시간 동안 세슘보다 훨씬 더 많이 진동한다. 이터븀의 경우 1초당 약 518조번 진동한다. 시계는 해당 원자가 1초 동안 얼마나 많이 움직이는지를 나타내는 고유 진동수가 커질수록 정확도도 높아진다. 자의 눈금이 촘촘할수록 더 정확하게 길이를 잴 수 있는 것과 같다. 이론적으로 광격자 시계는 300억년 동안 1초 이내의 오차를 나타내는 게 가능하다.

광격자 시계의 개념은 가토리 교수가 처음 고안했다. 하지만 실제 정확한 광격자 시계를 최초로 제작한 것은 미국 실험천체물리학합동연구소(JILA) 연구팀으로, 2015년 50억년에 1초 이내의 오차를 나타내는 초정밀도의 광격자 시계를 개발하기도 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도 2014년 미국, 일본에 이어 3번째로 ‘이터븀’ 원자로 만든 광격자 시계를 개발했지만 오차가 1억년에 1초 정도로 다른 나라의 50분의 1 수준이다.

광격자 시계는 차세대 표준시계로 주목받고 있다. 세계 표준시로 지정되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2020년쯤이면 세슘 원자시계를 대체하고 표준시계로 채택될 것이라는 게 물리학계의 전망이다. 전 세계 지구촌에서 새로운 1초의 개념이 확립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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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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