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쑤저우허변의 벨라지오호텔(오른쪽)과 불가리호텔(왼쪽 끝).
상하이 쑤저우허변의 벨라지오호텔(오른쪽)과 불가리호텔(왼쪽 끝).

상하이는 글로벌 호텔 브랜드의 격전장이다. 올해와 지난해 새로운 호텔들이 상하이에 줄줄이 첫선을 보였다. 세계 최대 호텔그룹인 메리어트 계열의 불가리, 에디션, 세인트레지스, W 등이다. 미국 MGM 계열의 벨라지오도 상하이에 호텔을 열었다. 이 밖에 동남아의 고급 휴양지에서나 보이던 아만, 카펠라, 수코타이도 상하이에 문을 열었다. 이 중 지난해 한국에서 철수한 W호텔을 제외하면 모두 한국 시장에는 아직 선보이지 않은 호텔들이다. 카펠라와 세인트레지스는 지난 6월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 간의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때 각각 정상회담장과 김정은 숙소로 선정돼 한국에도 제법 알려진 호텔 브랜드다.

상하이의 신규 럭셔리 호텔 붐은 2010년 상하이 엑스포 전후로 고급 호텔들이 대거 선보인 후 다시 나타난 현상이다. 새로 지어진 호텔들은 상하이 호텔시장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황푸강변과 난징루(南京路) 일대에 즐비한 전통의 명문 호텔들을 제치고 상하이 최고가 호텔에 줄줄이 이름을 올리면서다. 가장 저렴한 방을 기준으로 주말 기준 하룻밤 객실료가 아만호텔은 7000위안(약 114만원), 불가리호텔은 4000위안을 훌쩍 뛰어넘는다. 숙박료만 놓고 보면 이미 전통의 명문 호텔들을 압도한다.

사실 상하이의 호텔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다. 전 세계 유명 호텔들은 모두 상하이에서 피 터지는 숙박 경쟁을 벌이고 있다. 메리어트, 힐튼, 하얏트 등 글로벌 고급 체인호텔들의 최상위 브랜드인 리츠칼튼(메리어트), 월도프아스토리아(힐튼), 파크하얏트(하얏트) 등도 모두 간판을 내걸고 있다. 샹그릴라, 만다린오리엔탈, 페닌슐라 등 중화권 명문 호텔과 일본계 오쿠라-닛코까지 들어와 있다. 여기에 중국 최대 호텔그룹인 진장(錦江)호텔의 본거지도 상하이다. 전통의 명문 호텔은 상하이 도심의 목 좋은 곳은 모두 차지하고 있는 데 반해 도심에는 더 이상 신규 호텔을 새로 지어올릴 만한 공터가 남아 있지 않다.

반면 상하이의 호텔시장을 뒤흔드는 신흥 럭셔리 호텔들은 상하이의 도심 재개발과 재건축, 노후빌딩 리모델링을 통해 공급되고 있다. 쑤저우허(蘇州河) 변에 새로 들어선 불가리호텔과 벨라지오호텔이 대표적이다. 우송강(吳淞江)이라고도 불리는 쑤저우허는 황푸강의 지류다. 과거에는 대략 쑤저우허를 경계로 남쪽의 서양 열강들의 조계지와 북쪽의 중국인 거류지로 나뉘었다. 지금도 하천 변을 따라 빨랫대가 삐죽삐죽 삐져 나온 노후주택과 창고들이 즐비한 곳이다.

지난 6월 개관한 불가리호텔은 선전의 대형 개발상(디벨로퍼)인 화교성그룹이 쑤저우허 북안(北岸) 일대를 재개발해 고급 아파트와 별장들을 지으면서 같이 들여왔다. 불가리호텔과 멀지 않은 벨라지오호텔은 중국 최대 가전 유통그룹인 쑤닝이 기존 건물을 헐어내고 재건축해 지난 1월 문을 열었다.

지난 7월 개관한 에디션호텔은 상하이 최대 번화가인 난징동루에 있던 노후빌딩인 화동전력빌딩을 리모델링해 고급 호텔로 변신시켰다. 이 밖에 지난 9월 개관한 카펠라호텔은 상하이의 전통 양식 건축물인 스쿠먼(石庫門)주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초특급 호텔로 탈바꿈시킨 경우다.

대신 이들 호텔들은 조금 떨어지는 입지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희소성을 가진 유명 브랜드를 입히고 고가의 가격정책으로 근사하게 포장했다. 불가리호텔은 전 세계 6곳밖에 없는데 중국에서는 베이징에 이어 두 번째다. 영화 ‘오션스 일레븐’의 무대인 벨라지오는 화려한 분수쇼로 유명한 호텔인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이어 전 세계 두 번째로 상하이에 들어섰다. 카펠라는 전 세계 8곳 중 하나고, 에디션은 전 세계 10 곳 중에 하나다. 카펠라와 에디션 모두 중국 최대 휴양지 하이난다오 싼야에 이어 상하이에 들어왔다.

새로 지어진 럭셔리 호텔들은 상하이의 근대 건축물에도 새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서양 열강들의 조계로 출범한 상하이의 도심지 곳곳은 만국 건축 박람회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근대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근대 건축물은 도시에 품격을 더하는 존재지만 도심 재개발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헐어버릴 수도 없는 ‘계륵(鷄肋)’ 같은 존재다.

불가리호텔이 들어선 자리는 중국 최초의 상공회의소였던 상하이총상회(상공회의소)가 있던 곳이다. 하지만 1949년 중국공산당의 상하이 점령 후에는 공장과 연구소 등으로 방치됐었다. 상하이총상회 자리를 고급 호텔로 재개발하면서 다 쓰러져가던 총상회 건물과 석조 대문을 복원해 재단장을 마쳤다. 상하이총상회는 지난 6월 호텔 개관과 함께 상하이총상회 100년 전시회도 개최 중이다.

한국서는 속속 철수

벨라지오호텔 역시 상하이의 초창기 서양식 병원인 공제의원 터로, 해방 후에는 상하이 제1인민의원으로 바뀌어 줄곧 상하이 공공의료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병원이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슬럼화됐고 벨라지오호텔을 지으면서 후일 증축된 부분을 헐어내고 초창기 병원 건물을 호텔의 일부로 포함시켜 재단장했다.

에디션호텔이 입주한 옛 화동전력빌딩 역시 1980년대 신축 당시만 해도 높이 100m가 넘는 대표적 마천루였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노후화가 심했다. 슬럼화된 끝에 헐렸을 근대 건축물들이 자본의 힘을 빌려 자본주의 건축의 꽃인 특급 호텔로 재탄생한 것이다.

상하이의 럭셔리 호텔 붐을 ‘거품’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세계적 브랜드의 호텔도 중국 시장에만 들어오면 이상하게 이름값을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한때 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 하이난항공, 진장호텔, 안방보험 등 중국 기업들이 인수하려고 했던 옛 스타우드 계열의 호텔들은 거품이 심하다.

상하이 푸둥의 한 호텔은 옛 스타우드의 최고급 브랜드인 세인트레지스로 출범했다가 지금은 ‘럭셔리컬렉션’을 달고 있다. 럭셔리컬렉션 역시 옛 스타우드의 최고급 브랜드 중 하나다. 하지만 지금은 4성급 호텔과 비슷한 가격에 객실을 판매하고 있어 ‘럭셔리’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다. 이들 옛 스타우드 계열 호텔은 메리어트가 인수한 이후에는 모두 메리어트 계열로 편입됐다.

하지만 세계적 럭셔리 호텔들의 지속적인 상하이 진출은 중국 경제수도 상하이의 역동적인 경제력과 왕성한 소비 수준을 반영한다. 그만큼 5성급 호텔조차 성에 차지 않아 한 단계 위의 호사(豪奢)를 누리려는 신흥 부자들이 넘쳐난다는 방증이다.

반면 한국 시장에서는 지난해 메리어트의 최고급 호텔 브랜드인 리츠칼튼과 W 등이 모두 철수했다. 서울 강남구의 리츠칼튼은 르메르디앙으로 한 단계 격하됐고, 광진구의 W는 비스타워커힐이란 토종 브랜드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롯데와 신라 등 토종 호텔들이 호텔시장을 주도하는 순기능도 있지만 해외 호텔시장 트렌드 변화와 괴리되는 역기능도 이에 못지않다. 갈수록 중국에 비해 변방으로 밀려나는 한국의 경제력을 보는 것 같아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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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춘미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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