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다이아몬드가 다이아몬드 산업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인공 다이아몬드는 육안으로는 천연 다이아몬드와 구별이 어려울 만큼 기술이 수준급에 도달한 상태다. 가격 또한 자연산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저렴하다. 값싸고 품질까지 뛰어난 인공 다이아몬드가 보석 시장에 미칠 파장에 세계 유수의 보석 업체들이 긴장하고 있다.

자연산만 고집하던 기업도 진출

세계에서 다이아몬드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기업은 어디일까.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약 85조원 규모)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영국의 드비어스(De Beers)그룹이다. 이 기업의 특색은 유독 자연산 다이아몬드만을 고집해왔다는 것. 다이아몬드생산자협회(DPA)까지 만들어 천연 다이아몬드의 매력을 부각시키고 있을 정도다.

그런 드비어스가 놀랍게도 최근 인공 합성 다이아몬드 시장에 진출했다. 지난 9월 27일부터 인공 다이아몬드 브랜드 ‘라이트박스’를 처음 출시해 판매를 시작한 것. 천연 다이아몬드에 버금가는 보석용 인공 다이아몬드다. ‘광산에서 채굴한 다이아몬드만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고 여겼던 드비어스가 왜 갑자기 인공 다이아몬드를 판매하기 시작한 것일까.

한마디로 수요의 변화 때문이다. 세계적 스타트업 기업인 미국의 ‘다이아몬드 파운드리’와 러시아의 ‘뉴 다이아몬드 테크놀러지’ 등이 천연 다이아몬드 시장의 가치를 훼손할 만큼 순도 높은 인공 다이아몬드를 실험실에서 만들어내기 시작하자, 여기에 자극받은 드비어스가 수요 변화를 예상하고 인공 합성 다이아몬드의 생산에 직접 뛰어든 것이다. 정교하면서도 저렴한 인공 다이아몬드가 20~30대 실속파들에게 인기가 높아질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 미국의 20~30대는 다이아몬드 구매의 3분의 2를 주도하는 핵심층이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인공 다이아몬드의 가격은 천연 다이아몬드보다 최대 30%까지 저렴하다. 드비어스의 라이트박스는 이보다 훨씬 더 가격을 낮췄다. 1캐럿(질량 200㎎) 인공 다이아몬드의 값이 약 90만원. 천연 다이아몬드(최대 800만원)의 9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업계 최저 수준이다.

드비어스가 이처럼 가격을 완전히 낮춘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천연 다이아몬드와의 차별화 전략을 통해 천연 다이아몬드의 희소성을 높이려는 의도라고 보고 있다. 드비어스가 실험실에서 인공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내는 데는 2주면 충분하다. 그만큼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현재 다이아몬드 시장에서 인공 다이아몬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2%로 크지 않지만 2030년이면 10% 수준까지 증가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드비어스의 계획은 2020년까지 인공 다이아몬드 생산량을 연 50만캐럿 수준으로 높이는 것이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값싼 재료를 사용하여 값비싼 보석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처음 시작은 납(Pb)에서 금(Au)을 만드는 연금술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보석 합성이 시작됐다. 채굴의 어려움과 산지의 제한성으로 희귀했던 다이아몬드도 예외는 아니다.

인공 합성 다이아몬드는 크게 2가지 방법으로 만든다. 하나는 초고온·초고압 방법이다. 1955년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사가 개발한 방법으로, 흑연 분말을 1400~2000도에 이르는 초고온과 5만~10만의 초고압을 가해 만든다. 현재 공업적으로 사용되는 다이아몬드의 제작법이다.

또 하나는 플라스마를 이용한 화학기상증착법(CVD)이다. 메탄 등 탄소화합물의 기체를 열이나 마이크로파로 분해해 제4의 물질 상태인 고온 플라스마로 만든 뒤 3000도 이상으로 가열한 진공용기 안에 뿜어 다이아몬드로 자라게 한다. 드비어스의 라이트박스는 이 방법을 써서 만든 다이아몬드다. 1시간에 다이아몬드를 0.006㎜씩 자라게 할 만큼 속도가 빨라 요즘 많이 활용되고 있는 방법이다. 중요한 사실은 어떤 과정을 거치든 탄소원자 1개를 중심으로 주변에 4개의 탄소원자가 결합해 3차원의 사면체를 이루는 다이아몬드가 나온다는 것이다.

살짝 들어간 불순물이 최고를 만든다

다이아몬드가 보석계의 왕자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 하지만 알고 보면 참으로 단순한 보석이다. 흑연 같은 탄소 하나의 재료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니 말이다. 숯과 흑연, 다이아몬드는 그 원소가 똑같은 탄소다. 하지만 생성조건(온도와 압력)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탄소가 땅속 깊은 곳에서 높은 온도와 엄청난 압력을 견뎌내면 단단한 다이아몬드가 되고 그냥 타버리면 무른 숯이 된다.

다이아몬드와 흑연은 탄소로 이뤄져 있지만 원자의 배열이 달라 서로 다른 물질이 됐다. 하지만 인공적으로 빠르게 성장시킨 인공 다이아몬드는 화학적 구조나 물성이 천연 다이아몬드와 똑같다. 단지 결정구조가 다를 뿐이다. 천연 다이아몬드는 지표 아래에서 수억 년 동안 성장하기 때문에 불순물이 끼어 들어간다. 반면 인공 다이아몬드는 밀폐된 곳에서 탄소만을 이용해 빠르게 만들어지기 때문에 불순물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바로 이 이물질의 존재 여부가 천연과 인공 둘 사이의 유일한 차이점이다.

탄소 이외의 원소인 이물질은 다이아몬드의 은은한 색을 결정한다. 이를테면 탄소 자리에 질소가 1개 들어가면 짙고 아름다운 노란색을 띤 다이아몬드가 된다. 다이아몬드 결정이 만들어질 때 땅속에 풍부한 질소가 탄소 대신 쉽게 끼어든다. 보석용 다이아몬드의 98%가 질소 원자를 함유하고 있다.

탄소 대신 붕소가 들어가면 파란색이 된다. ‘가진 자는 죽음에 이른다’는 저주로 유명한 ‘호프 다이아몬드’의 푸른색은 붕소 때문이다. 붕소는 땅속에 적게 분포해 다이아몬드 결정에 드물게 포함되기 때문에 값이 엄청 비싸다.

반면 순수한 탄소로만 이뤄진 인공 다이아몬드는 빛을 100% 반사해 무색으로 보인다. 너무 맑은 물엔 물고기가 놀지 않듯, 불순물이 전혀 없는 완벽한 다이아몬드는 은은한 멋이 없어 가치가 떨어진다. 불순물이 아주 살짝 들어갔을 때 최고 다이아몬드의 빛을 발한다. 최고의 다이아몬드 기업 드비어스도 화학적 조절을 통해 은은한 빛이 감도는 최적의 다이아몬드를 상품화한다는 각오다.

이 세상에 영원한 강자는 없는 법. 가장 단단한 물질로 인정받아온 천연 다이아몬드가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인 인공 다이아몬드를 만나 보석의 왕좌 자리를 내놓을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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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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