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카드수수료 인하 규모를 두고 카드업계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상당한 수준의 실질적 카드수수료 인하가 이뤄지도록 개선책을 강구할 것”이라며 굳은 의지를 드러내면서부터다. 업계에선 이번 카드수수료 인하 규모가 역대 최고치가 될 것이란 전망과 함께 이번에 발표될 수수료 인하 총액이 1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업계·전문가들로 구성된 관계기관 태스크포스(TF)는 그동안 작업해온 카드수수료 적격비용(원가) 산정 결과를 바탕으로 11월 중 내년 1월부터 적용될 카드수수료율을 발표할 계획이다.

카드수수료율은 2012년 여신금융전문법 개정으로 3년마다 재산정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카드 결제에 수반되는 적격비용을 산정해 수수료율을 조정하는데, 이번 원가 산정의 핵심은 마케팅비 축소에 있다.(카드수수료 원가에는 자금조달비·위험관리비·마케팅비 등이 포함된다.) 당국은 ‘과도한 마케팅비’를 손질해 수수료 인하 여력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금융당국은 카드사들이 해마다 지출하는 마케팅 비용만 아껴도 수수료 인하 여력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신한·삼성·KB국민·현대·하나·롯데·우리·비씨 등 8개 전업카드사의 마케팅 비용은 2014년 4조1142억원에서 지난해 6조724억원으로 급증했다. 카드사 총수익 대비 마케팅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도 2014년 21.5%에서 지난해 29%로 올라갔다. 마케팅 비용에는 부가서비스·무이자할부·광고비 등이 포함돼 있는데 이 가운데 제휴카드 할인, 캐시백, 적립, 리볼빙 등과 같은 부가서비스 비용이 74%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현대카드 창사 이래 첫 감원 추진

카드업계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당장 내년도 사업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의 카드가맹점 수수료 인하 조치로 인해 업계에 ‘구조조정’ 바람이 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우려는 일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카드가 2001년 창사 이후 17년 만에 처음으로 대규모 인력 감축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카드는 올해 상반기 미래경영전략에 대한 진단을 받기 위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컨설팅을 의뢰했고 그 결과 인력을 감축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감축 규모는 현대카드 200명, 현대캐피탈과 현대커머셜에서 각각 10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 상반기 기준 현대카드·캐피탈·커머셜의 정규직 인원은 각각 1775명, 1855명, 469명이다. 인력 감축 규모로 거론되는 400명은 전체 4099명 중 9.7%에 이른다.

현대카드의 인력 감축 조치는 수익성 저하로 인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현대카드의 올 상반기 당기순이익(연결 기준)은 77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08억원)보다 40.9%(535억원) 감소한 수준이다. 현대카드의 인력 감축은 업계의 구조조정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카드사와 업계종사자들은 정부의 카드수수료 인하 계획이 과도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이미 7000억원대 수수료 인하 조치를 취한 상황에서 추가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는 것이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업계에 따르면 온라인 판매업자와 개인사업자에 대한 우대수수료율 적용, 소규모 신규 가맹점 수수료 환급제 등이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로 인한 수수료 인하액이 이미 7000억원 수준에 이른다. 이와 별개로 1조원을 더 줄이면 최대 수수료 인하 규모는 총 1조7000억원대에 다다를 수 있다. 1조7000억원은 지난해 8개 전업카드사의 가맹점 수수료 수익(11조6784억원)의 14.6%에 해당하는 규모다.

수수료 인하로 소상공인과 카드사 모두가 공멸 위기에 처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 소속 금융노조, 사무금융노조 및 카드사 노동조합협의회(이하 국내 카드사 노조)는 지난 11월 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의 카드수수료 인하 정책으로 소상공인과 카드산업 모두가 공멸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내 카드사 노조는 이날 “정부와 여당은 근본적 해법을 모색하기는커녕 카드수수료를 희생양으로 삼아 가짜 굿판을 계속하고 있다”면서 “카드수수료를 공공의 적으로 모는 것은 정부가 소상공인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생색을 내기 위한 마녀사냥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카드사의 마케팅 비용은 ‘소비자 후생’의 다른 이름”이라며 “마케팅 비용의 90% 이상은 카드 소비자들의 포인트적립, 할인, 무이자할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케팅 비용을 줄여 카드수수료를 낮추라는 것은 카드 소비자의 후생을 카드 가맹점으로 이전하라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 6월 26일 서울 종로 금융위 대회의실에서 카드사 CEO와 카드수수료 산정체계 개편 등 업계 현안 논의를 위한 간담회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 6월 26일 서울 종로 금융위 대회의실에서 카드사 CEO와 카드수수료 산정체계 개편 등 업계 현안 논의를 위한 간담회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국내 카드수수료 정말로 높은가?

카드수수료는 어쩌다 ‘공공의 적’이 되었을까. 국내 카드수수료율이 정말로 높은 수준인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따른다. 정부는 2007년부터 11차례에 걸쳐 꾸준히 가맹점 카드수수료를 인하해왔다. 다른 나라에 비해 수수료율이 그리 높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007년 8월 신용카드 수수료율 상한은 기존 4.5%에서 연매출 4800만원 미만과 그 이상인 가맹점에 대해 각각 2.3%, 3.6%로 인하됐다.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현재 연매출 3억원 이하, 3억~5억원, 5억원 초과의 일반 가맹점의 신용카드 수수료율 상한이 각각 0.8%, 1.3%, 2.3%로 조정됐다.

2017년 기준 신용카드 평균 수수료율은 2.08%로 한국과 같은 방식의 수수료 형태(카드사, 카드회원으로 구성된 ‘가맹점 3당사자’ 방식)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의 아메리칸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 카드사의 평균 수수료율(2.43%)보다 낮다.

게다가 카드수수료 인하로 인한 부담은 소비자에게도 전가될 수 있다. 업계가 마케팅 비용을 쥐어짜게 되면 결국 부가서비스의 질 하락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카드업계는 정부가 줄이라는 마케팅비의 핵심이 바로 부가서비스라는 점을 들어 부가서비스의 축소를 쉽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카드사가 부가서비스를 축소하려면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 여신전문금융업 감독규정 25조에 따르면 카드사나 서비스 제휴업체가 휴업·도산·경영위기 등을 겪거나, 카드 신규 출시 이후 3년이 지났고 서비스를 유지하면 상품 수익성 유지가 어려운 경우에만 부가서비스를 변경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업계는 부가서비스 의무 유지 기간을 3년에서 1년으로 줄여주거나 이에 준하는 수준으로 조건을 완화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신용카드 부가서비스를 줄이는 것을 허용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앞서 신용카드 부가서비스를 줄여 소송에 휘말린 카드사들이 모두 법원에서 졌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부가서비스 변경 약관을 승인해줘도 정작 법원에서 패소할 수 있는 상황이란 의미다.

실제로 한국씨티은행은 2011년 ‘아시아나클럽 마스타카드’의 마일리지 혜택을 줄였다가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한 바 있다. 감독규정을 지켰지만 법원은 핵심 부가서비스 변경이나 폐지에 대해 꼼꼼히 설명하지 않는 한 카드 유효기간(5년)이 끝날 때까지 유지해야 한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신한카드도 합병 전 옛 엘지(LG)카드 시절인 2002년 출시한 카드의 마일리지 적립비율을 2005년 축소했다가 소송에서 2심까지 패소한 뒤 상고를 포기해, 10억마일리지를 토해냈다.

과도한 규제로 시장 자체 축소 우려도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카드수수료 인하와 관련해 외국의 사례를 보면 카드수수료가 인하한 만큼 연회비가 오르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실제 스페인과 호주의 경우에도 정부에서 카드수수료의 일부인 정산수수료 상한을 낮추자 연회비가 50% 이상 인상되는 결과를 낳았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일방적인 수수료 조정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윤종문 여신금융연구소 연구원은 “카드수수료 인하 정책은 정말 세심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이런 주장을 폈다. “신용카드사의 경우 일종의 플랫폼 사업자라고 볼 수 있다. 수수료에 포함된 적격비용을 통해 가맹점에서 수수료를 받아서 카드회원이 누리게 혜택을 주고 이를 통해 플랫폼을 확장하는 구조다. 적격비용을 과도하게 규제하다 보면 플랫폼 자체가 클 수 없는 한계가 발생하게 된다.”

그는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가 높은 편인지 비교를 하려면 우리나라와 유사한 시스템을 가진 곳과 비교를 해야 하는데 지금은 비교 대상 자체가 잘못된 경우가 많다”며 “다른 나라의 경우 사실 가맹점 수수료가 아니라 (카드) 발급은행이 가져가는 수수료 등을 규제하는 편”이라고 주장했다.

윤 연구원은 카드수수료 규제 방향과 관련해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카드시장의 규모를 더 확대해 단위당 수수료를 낮추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의 일방적인 수수료 조정이 아닌 보다 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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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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