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 4일 이란 테헤란 옛 미국대사관 앞에서 반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이란 국민들. photo 뉴시스
미국이 이란의 심장 동맥에 커다란 집게를 물렸다. 미국은 지난 11월 5일 이란산 원유 거래 등을 전면 금지하는 대(對)이란 에너지·금융 제재에 돌입했다. 원유 수출은 이란 연 수출액의 63%, 세수의 80%(2016년 기준)를 차지한다. 인구 8000만명의 대국 이란을 움직이는 ‘피’ 같은 존재인 ‘오일’의 수출 통로가 막힌 것이다.
   
   미 국무부·재무부는 이날 이란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과 테러 지원 의혹에 책임을 물어 2016년 1월부로 중단했던 대이란 제재를 2년10개월 만에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지난 5월 도널드 트럼프 미 정부는 전임 오바마 정부가 체결한 이란핵협정(JCPOA)을 “최악의 협정”이라 평가하며 JCPOA에서 전격 탈퇴했다. 이로부터 90일 뒤인 지난 8월 이란의 달러화·자동차·귀금속 거래를 금지하는 1차 제재를 시행한 데 이어 다시 90일이 지난 이번에 2차로 핵심 제재를 풀가동하기로 한 것이다.
   
   제재는 이란 경제·산업 혈맥의 정곡을 찔렀다. 이들의 대표적 수출품인 석유와 천연가스, 석유화학 제품의 국제 거래를 차단하고, 이란의 에너지·선박·조선 관련 회사, 이란중앙은행(CBI) 등 금융기관과의 거래를 금지한 것이다. 제재 리스트에 오른 이란 기업·개인은 총 700곳이 넘는다. 이들과 거래하는 외국 정부나 기업, 개인은 미 정부의 벌금을 부과받고, 미국과 금융·실물 거래가 금지되며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된다. 대북(對北) 제재처럼 ‘세컨더리 보이콧(제재 대상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개인까지 제재)’이 적용되는 것이다. 다만 미 정부는 “한국 등 8개국에 대해선 일시적 제재 면제 자격을 줬다”면서 앞으로 180일이란 제한된 기간만큼은 이번 제재와 상관없이 이란산 원유를 수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란 처벌이 주목적인데, 부수적으로 이란산 원유에 의존도가 높은 다른 나라들이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보는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한 조치다.
   
   
   70% 폭락한 리알화
   
   제재로 나라의 ‘혈관’이 꽉 막히면서 이란인들의 삶은 나락으로 빠지고 있다. 트럼프가 제재를 재개할 것이란 우려로 일찌감치 이란 리알(Rial)화 가치가 최근 1년 새 70% 폭락한 데 이어, 제재가 실제 발표된 뒤 화폐가치가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달러당 4만5000리알이던 리알화 환율이 올 10월 말 14만5000리알까지 치솟은 데 이어 11월 5일 제재 시행 직후엔 14만8000리알을 찍었다. 2년 만에 화폐가치가 반 토막도 아닌 3분의 1토막 났다. 1998년 ‘IMF 시기’ 한국 원화가치가 반 토막이 나 달러당 1900원대가 됐을 때 기업 부도가 속출하고 대량 실업 사태로 멀쩡한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앉았던 상황을 생각하면 현재 이란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할 수 있다.
   
   리알화가 ‘똥값’이 되면서 덩달아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치매를 앓는 아버지를 둔 모슬렘씨는 BBC 방송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쓰는) 요실금 팬티가 올해 3월에는 한 묶음에 20만리알이었지만 지금은 50만리알(약 4000원)을 줘야 살 수 있다”고 했다. 생리대, 의약품 등 기초 생활필수품 가격이 2~3배 폭등했다. 외화 유출을 저지하기 위해 올 들어 이란 정부는 외화로 수입 물품값을 지급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수입 허가제’를 실시하는 극약 처방을 도입했다. 이 때문에 생필품 수입이 중단되거나 수입하더라도 통관에 지나치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테헤란에서 47년간 공구점을 운영해온 헤이다르 페크리(70)씨의 가게 진열장은 거의 텅 비었다. 지난 8월 미국이 이란에 대해 1차 경제제재를 재개한 이후 수입선이 끊겨 물건을 가져다놓지 못해서다. 페크리씨는 AFP 인터뷰에서 “반년 사이 매출이 90% 줄었다”면서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생계형 장기매매 속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도 속출하고 있다. 일본 아사히신문 테헤란특파원에 따르면, 최근 테헤란의 병원 앞 벽이나 병원 내 화장실 등에는 “내 장기를 사달라”는 벽보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생활고가 심해지자 장기(臟器)를 팔아서라도 가족 생계를 책임지려는 사람들이 느는 것이다. ‘이란 신장재단’에 등록해 이식 허가를 받으면 신장 제공자에게 기증 후 1억8000만리알(약 140만원)이 지급된다. 하지만 신장이식 적절성 검사를 하는 데 시일이 오래 걸리고 이 검사를 통과하기도 쉽지 않아, 장기 암시장을 찾으려는 사람이 많다. 벽보 같은 쪽지 광고나 인터넷을 통해 장기를 밀거래하면 별다른 검사 없이 속전속결로 장기를 팔 수 있어 여기에 돈이 급한 사람들이 우르르 몰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수술 중 목숨을 잃고 피해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장기이식 전문병원에서 근무하는 자파드 밀살림(23)씨는 “병원 안팎에 나붙은 장기판매 쪽지를 매일 떼는데도 다음날이면 다시 덕지덕지 나붙는다”고 했다. 최근 ‘3억리알에 신장을 팔겠다’는 광고를 스스로 냈다는 전기판매상 베블스 아흐마디(44)씨는 “수입이 줄어 고리로 돈을 빌렸다가 빚더미에 올라앉았다”면서 “11월 말까지 원금을 갚지 못하면 기소돼 철창 신세가 될 것”이라고 했다.
   
   외국 기업들은 서둘러 이란을 떠나고 있다. 독일의 지멘스·다임러와 프랑스 알스톰·토탈 등 유럽계 대기업들이 이란에서 사업을 중단했다. 에어버스는 이란에 더 이상 여객기를 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페르시아제국의 후예 이란은 ‘제재 쇼크’로 아픈 가슴을 부여잡으면서도 목에 핏대를 세우며 미국을 비난하고 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미국의 제재 발표가 나오자 수도 테헤란에서 각료회의를 열고 “미국은 제재로 우리를 말려죽이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란은 미국이 일으킨 ‘경제 전쟁’을 극복해낼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정부는 전임 오바마 정부가 이란과 타결한 핵합의는 “최악”이라면서 지난 5월 이를 파기했다. 오바마가 맺은 합의로는 이란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제한할 수 없고, 합의 만료 시점인 2025년 이후엔 이란이 다시 군사 목적으로 핵 개발을 할 우려가 있다는 걸 문제 삼았다. 이에 트럼프는 이란에 다시 협상을 하자고 했지만, 이란은 이를 단칼에 거부했다. 다시 제재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굴욕적인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결기를 보인 것이다.
   
   테헤란 시내에서는 1979년 이슬람혁명이 일어났을 때를 방불케 할 만큼 대규모의 반미(反美)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들은 “마르그 바르 아메리카(미국에 죽음을)” 구호를 외치고 성조기와 트럼프 모양 허수아비를 불태우고 발로 밟았다. 고위 권력자인 무함마드 알리 자파리 혁명수비대 사령관은 집회 연사로 나섰다. 그는 “미국 군인은 이란 병사를 만나면 겁에 질린다. 미국의 경제 제재는 통하지 않는다”고 외쳤다.
   
   초강도 제재에도 이란이 미국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이란은 원유 수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폐쇄 경제 체제인 북한에 비해 제재에 충격이 크다. 그럼에도 이란이 버틸 수 있는 건 지난 30여년간 구축해놓은 자립 경제 시스템인 ‘저항 경제’ 때문이다. 이쑤시개부터 컴퓨터까지 웬만한 물건을 자체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는 시장을 갖추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물건을 들여오지 않아도 필요한 건 이란 내에서 만들어 쓸 수 있기 때문에 외화가 부족해도 당장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 이란 테헤란 중심가에 있는 한 환전소. 미국의 제재 부활 후 이란의 리알화는 70% 폭락했다. photo 뉴시스

   ‘저항 경제’와 제국의 자부심
   
   이란이 그동안 제재를 피해 원유 수출 통로를 만들어놓은 것도 이들이 미국에 큰소리를 칠 수 있는 이유다. 이란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미국의 제재와 상관없이 중국과 러시아 등에 원유를 계속 팔아왔다. 공식 확인되진 않았지만, 북한 또한 중국을 거쳐 이란산 원유를 들여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1980년대 이란이 이라크와 8년간 전쟁을 치를 때 이란에 군사 지원을 해주며 ‘혈맹’을 맺었다. 어차피 중국·러시아·북한 등은 미국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듣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제재도 크게 개의치 않고 암암리에 이란산 원유를 싼값에 수입하며 잇속을 챙긴다는 것이다.
   
   이란 특유의 민족적 자존심도 큰 몫을 한다. 이란은 한때 중동의 패권을 거머쥐고 번영을 이룩한 페르시아제국의 후예다. 또 이들은 오늘날 이슬람 양대 종파 중 하나인 시아파의 맹주다. 현 이란의 정권을 쥔 ‘이슬람혁명 세력’들에겐 미국에 무릎을 꿇는다는 건 죽기보다 싫은 일이다. 페르시아제국은 기원전 6세기 아케메네스 왕조 시절 동(東)으로는 인더스강 유역, 서(西)로는 북아프리카의 리비아, 북으로는 흑해와 카스피해, 남으로는 페르시아만에 이르는 중동 전역을 200년간 지배했다. 이후 기원후 3세기에는 아케메네스 왕조를 부흥시키려는 사산 왕조가 부상해 7세기 중엽까지 중동 지역을 통치했다. 사산 왕조는 특히 비단길을 통해 중앙아시아는 물론 중국, 더 나아가 한반도까지 교역을 활발히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의 국교인 조로아스터교는 중국은 물론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전파됐다. 7세기 이슬람교가 생기고 이란 지역이 이슬람교의 양대 종파인 시아파의 본거지가 되면서 현대 이란은 시아파의 맹주로 자리매김했다.
   
   또 하나 이들의 정신세계를 뒷받침하는 게 있다. 1979년 이슬람혁명이다. 이 혁명은 단순히 친미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렸다는 의미를 넘어 이슬람 정교(政敎)일치의 국가를 실현했다는 정치·종교적 상징성을 지닌다.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는 친미 팔레비 왕조를 타락한 세속주의 왕정이라며 강력 비난하며 이슬람 율법을 근간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이슬람 법치 국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이란은 이러한 호메이니의 사상과 이상이 실제로 이뤄진 ‘기적 같은’ 나라로 인식한다. 이란 정권의 결집력이 남다른 이유다. 이들에게 미국은 ‘사탄의 국가’이며 미국에 굴복하는 것은 신을 배신하는 것과 다름없는 금기 중의 금기라 할 수 있다.
   
   1980년 9월부터 1988년 8월까지 이어진 이란·이라크전쟁 또한 이란의 저항의지를 강화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화학무기까지 동원하며 이란을 공격했지만, 이란의 혁명 정부는 죽기 살기로 싸우며 전쟁을 버텨냈다. 이란 혁명 정권은 이라크가 자신들의 침공한 배경엔 미국의 지원이 있었을 것으로 의심한다.
   
   지금도 테헤란뿐 아니라 지방도시인 이스파한이나 야즈드 등에 가면 이라크전쟁 전사자의 사진이 곳곳에 걸려 있다. 이들이 이 전쟁을 얼마나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려 노력하는지 엿볼 수 있다. 이란 정부는 국민에게 이라크와의 군사 전쟁도 이겨냈는데, 미국과의 경제 전쟁은 왜 못 이기겠느냐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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