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 바이오게놈 프로젝트 홍보물. photo the Life Science Cluster
인간의 게놈(유전체)을 모두 분석한 지 15년. 이제는 세상 모든 생물의 게놈을 완전 해독해보자는 대담한 도전이 시작되고 있다. 인간 중심의 유전체에서 비인간의 유전체로 이동한 거대 과학 프로젝트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 때 사용했던 전략을 활용해 모든 생명체의 DNA 정보를 기록하겠다는 것.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유전체 분석’에 뛰어들었다.
   
   
   5조원 투입되는 역대급 과학 컨소시엄
   
   지난 11월 1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에서 ‘지구 바이오게놈 프로젝트(Earth Biogenome Project·EBP)’가 공식 출범되었다. 미생물에서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지구 생물의 유전체 염기서열을 분석하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체의 유전자 지도를 만드는 게 최종 목표다.
   
   유전체란 한 개체 유전자의 총 염기서열을 말한다. DNA 염기서열은 A, C, G, T의 네 종류 염기가 배열돼 이루어진다. DNA 염기서열이 글자이고, 유전자가 한 장의 종이라면 유전체는 한 권의 책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이 ‘책’ 속에는 한 개체, 예를 들어 인간이라는 종과 고유한 생명인 ‘나’에 대한 모든 비밀이 들어 있다. 과학자들이 지구 생물 유전체 분석에 나서는 이유는 DNA라는 유전자에 오롯이 담긴 그 특성을 알아내 인간에게 유용하게 활용하기 위함이다.
   
   EBP는 한국·미국·영국·중국 등 전 세계 10개국의 과학자 60여명으로 구성된, 2003년 종료된 ‘인간 게놈 프로젝트’ 이후 ‘역대급’ 과학 컨소시엄이다. 국내에서는 바이오벤처 기업 디엔에이링크(DNAlink)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연구소인 극지연구소가 참가해 남극생물과 국내 고유생물 유전체 분석을 진행한다. EBP에 투입되는 예산은 10년간 5조원. 세계경제포럼(WEF)과 중국과학원 등이 후원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다. 당연히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는 한두 국가나 단체가 주도하기 어렵다.
   
   이처럼 거대 프로젝트의 추진이 가능했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저렴한 비용이다. DNA 시퀀싱(DNA의 염기가 어떤 순서로 늘어서 있는지 분석하는 일)의 기술 발전으로 전체 유전자를 해독하는 비용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 인간의 유전자만을 시퀀싱했던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경우 10여년간(1990~2003년) 27억달러(오늘날의 48억달러에 해당)의 비용이 들었는 데 비해 EBP는 그보다 유전자를 해독할 종의 수가 150만배나 많음에도 불구하고 기간이나 예산 면에서 비슷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EBP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연구가 진행될까? 과학자들이 분석하려는 유전체 대상은 지구상의 진핵생물(세포에 막으로 싸인 핵을 가진 생물) 150만종. 진핵생물은 DNA를 가진 세포핵이 있는 식물과 동물 등의 유기체를 말한다. 박테리아나 고세균(단세포로 되어 있는 미생물)을 제외한 개, 코뿔소, 곰팡이, 벼룩을 비롯해 개나리, 진달래와 같은 식물들이다. 사실상 세상에 알려진 진핵생물이 거의 포함된다. 지금까지 유전체 분석을 통해 유전자 배열에 성공한 진핵생물은 2500여종. 전체의 0.2%도 되지 않는 수준이다.
   
   
   10억기가바이트의 유전정보 축적
   
   그렇다고 처음부터 한꺼번에 150만종을 정밀 분석할 수는 없을 터. 과학자들은 단계별로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다. 첫 번째 단계로 진핵생물의 ‘과(family)’에 속하는 9000여종의 생물 유전체 염기서열을 인간 게놈 프로젝트 수준으로 정밀하게 분석한다. 그 뒤 15만~20만종에 달하는 모든 속(genus)의 유전체를 인간 유전체보다 조금 덜 정밀하게 분석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종(150만종)의 대략적인 유전체(DNA) 염기서열 정보를 분석할 방침이다.
   
   EBP가 계획대로 진행되면 10억기가바이트 이상의 방대한 유전정보가 축적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EBP의 목표는 생물체의 유전자 가계도를 완성해 인간에게 유용한 유전자 자원을 찾는 것. 지구 생명체 역사에 대한 통찰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완료된다고 해도 이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진화 과정을 추적하거나 또는 유전자의 기능을 이해하는 데는 또다시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유전체 연구는 많은 자원과 인력이 필요한 ‘빅 사이언스’다. 유전체를 해독할 때는 수십 개에서 100여개에 이르는 짧은 염기 단위로 잘라(단위 염기서열) 각각 읽어낸 뒤 이를 이어 붙여 전체 유전자를 완성한다. EBP도 이런 방식으로 150만종이라는 방대한 생물 유전체를 해독한다. EBP에 참여하는 과학자들만으로 이를 해독하기엔 말처럼 쉽지 않다. 온전한 DNA 샘플을 수집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EBP는 작업을 원활히 하기 위해 여러 나라의 참여를 이끌어낼 생각이다. 이를테면 전 세계의 박물관이나 생물은행에 보존되어 있는 생물체의 DNA 염기서열 표본 등을 일부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을 예정이다. 또 이미 진행되고 있는 ‘1만 식물 게놈 프로젝트’ ‘세계 게놈 다양성 네트워크’ ‘척추동물 게놈 프로젝트’ 등 여러 게놈 프로젝트들과 협력 연구를 통해 EBP의 목표를 달성할 방침이다.
   
   EBP 결과물은 무료로 공개돼 의료, 농업, 유전학, 생태계 보전 등 다양한 분야에 귀중한 자원으로 활용된다. 이 유전자 지도만 보면 ‘어떤 동식물이 어디에 문제가 있어서 유전병을 가졌는지, 어디를 고치면 되는지’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이를 통해 의학자들은 고혈압, 심장병 등에 더 효과적인 의약품을 개발하고, 농업 분야에서는 병충해나 가혹한 기후에 내성을 가진 식물을 만들어 수확을 늘릴 수 있다. 한편으론 바이오 연료 생산에 이용되는 유기체 등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궁극적으로 인류 전체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EBP를 이끄는 해리스 르윈 캘리포니아대(UC) 교수는 설명한다.
   
   2003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료된 뒤 시작된 유전정보 혁명은 대단했다. 인간 의료뿐 아니라 바이오기술, 환경과학, 재생에너지 등 산업 전 분야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불과 몇 시간이면 분석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수많은 신약과 신물질 개발로 이어졌다. 2013년 미국 바텔연구소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로 미국이 얻은 경제적 가치가 1조달러에 이른다고 추산했을 정도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광범위하게 활용될 업적이다.
   
   EBP의 결과물은 인간 게놈 프로젝트보다 훨씬 더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세계 각국이 EBP에 도움을 주려고 자국민 데이터 모으는 데 공을 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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