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판, 이제 망한 거 아닌가요?”

이런 질문이 이상하지 않을 날들이 계속됐다. 11월 15일은 암호화폐 ‘패닉셀(panic sell)’의 기점이 됐다. 15일 자정이 지나면서 떨어지던 비트코인 가격은 불과 몇 시간 뒤 700만원이 깨졌다. 19일에는 600만원이 무너지더니 21일 오전에는 500만원 선을 겨우 지키며 위태롭게 버텼다.

대장 격인 비트코인이 추락하자 암호화폐 시장도 폭락했다. 암호화폐 통계사이트인 코인마켓캡 기준 글로벌 암호화폐 시가총액은 하락장에 접어들기 직전인 11월 14일 약 2100억달러(약 237조3000억원) 규모를 유지했지만 불과 일주일 뒤에는 3분의 2 수준인 1470억달러(약 166조1000억원)로 축소됐다. 일주일 만에 630억달러가 공중으로 사라졌다. 우리 돈으로 따지면 71조원이 넘는다.

암호화폐 투자전문펀드인 BKCM의 브라이언 켈리 CEO는 CNBC의 ‘패스트머니(Fast Money)’에 출연해서 하락의 원인을 비트코인캐시(BCH)에서 찾았다. “그동안 비트코인 역사상 가장 낮은 변동성을 유지했는데 갑자기 큰 폭으로 떨어졌다. 무슨 변화 때문일까. 지난해 비트코인에서 분리된 비트코인캐시는 지금 하드포크를 진행하고 있다. 보통은 하드포크를 할 때, 동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번처럼 동의하지 않는 특별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암호화폐 내부에 분쟁이 있었고 시장 참여자들은 우려하고 있다.”

비트코인캐시 둘러싼 ABC-SV의 해시전쟁

우리가 컴퓨터 운영체제를 업데이트하듯이 암호화폐도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때로는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고 기능을 개선해야 하며 보안도 신경 써야 한다. 이런 업데이트를 ‘포크(Fork)’라고 부른다.

포크도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이전 시스템에 호환이 되는 소프트포크(Soft Fork)와 호환되지 않는 하드포크(Hard Fork)로 구분한다. 소프트포크는 간단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정도로 생각하면 좋다. 호환이 가능해 기존 블록체인 시스템을 이용하는 데 업데이트 여부가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노트북의 윈도를 업데이트해도 우리가 업무를 보는 데 지장 없는 것과 같다.

반면 하드포크는 호환이 되지 않으며 이전 버전의 블록체인 시스템을 사용할 수 없다. 암호화폐를 채굴하거나 이용하던 사람들은 새로운 시스템을 활용해야 한다. 블록체인에서는 체인이 분리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기존 블록체인과는 다른 블록체인이 등장하는 셈이다.

중앙집권적인 프로그램이라면 소프트웨어 배포자가 “이렇게 업데이트하지 않으면 이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없다”며 일방적으로 업데이트를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은 ‘탈중앙화’가 핵심 가치다. 그래서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결정하지 못하면 시스템을 함부로 바꿀 수 없다. 블록체인 시스템 참가자 대부분이 찬성하는 하드포크라면 괜찮다. 하지만 업데이트 방향이 다르거나 기존의 것을 그대로 고수하려는 세력이 강하게 반대할 경우 하드포크는 난관에 부딪힌다. 반대하는 세력이 강할수록 꾀하던 변화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암호화폐는 결국 쪼개진다.

그럼 이번 BCH의 하드포크는 뭐가 달랐던 걸까. 시스템 업그레이드에서 의견이 갈렸고 ‘비트코인캐시ABC(BCHABC)’와 ‘비트코인캐시SV (BCHSV)’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BCHABC는 신규 프로토콜을 추가해 BCH의 처리속도를 개선하자고 주장했다. 반면 BCHSV는 BCH의 기존 프로토콜을 유지한 채 블록 크기를 확대하길 원했다.

한국시각 11월 16일 새벽 1시40분에 이뤄진 BCH의 하드포크 전까지 양쪽 진영은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두 개의 암호화폐로 분리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한쪽이 공격적으로 나왔다. BCHSV 진영을 이끌던 크레이그 라이트는 “BCHABC가 무너질 때까지 레이스를 이어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만약 비트코인(BTC) 채굴자가 BCHABC 채굴로 옮겨간다면 내가 보유한 BTC를 투매해 암호화폐 시장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자신이 비트코인을 만든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주장했지만 믿는 사람은 드물다. 게다가 과거 약 100만개의 비트코인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했던 적이 있다. 그가 지닌 BTC의 양을 정확히 가늠하지 못하기에 그의 경고를 허풍으로 볼 수만은 없었다.

그가 BCHABC를 고사시키면 얻는 것은 무엇일까. 전쟁의 승자는 BCH를 더 효율적으로 채굴하는 법을 파악할 수 있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주도할 수 있다. 더 훌륭한 개발자를 자신의 진영으로 끌어들이고 더 많은 채굴자들이 BCHSV에 합류하도록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통제력은 곧 주요 암호화폐 중 하나인 BCH의 가격을 좌우할 수 있고 결국 권력이 된다.

SV가 도발하고 ABC가 응수하면서 이른바 ‘해시전쟁(Hash War)’이 시작됐다. 암호화폐 채굴능력인 ‘해시파워’를 더 많이 가져가는 쪽이 쪼개진 BCH의 적자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양측은 더 많은 컴퓨팅 능력을 끌어모으는 데 집중했다. 초반에는 BCHSV의 해시파워가 앞섰다. 하지만 ‘비트코인 예수’로 불리는 로저 버(Roger Ver)가 자신의 채굴 풀인 ‘비트코인닷컴’을 동원했다. 그는 “24시간 동안 비트코인을 채굴하던 모든 해시파워를 비트코인캐시로 옮긴다”고 알리며 BCHABC를 지원했고 상황은 바로 역전됐다. ABC 측 우위는 시간이 갈수록 확고해졌고 11월 20일(현지시각) 드디어 휴전의 시그널이 떴다. 크레이그와 함께 BCHSV 진영을 이끌던 암호화폐 전문미디어 코인긱은 “양자(ABC와 SV)는 서로의 체인을 공격하지 않으며 시장에서 서로 다른 암호화폐로 경쟁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비트코인 ETF 기대감 무너뜨려

BCH 내부에서 이뤄진 그들만의 전쟁은 암호화폐 시장을 뒤흔들었다. 일단 해시파워의 상당량이 비트코인에서 비트코인캐시로 옮겨가면서 가격 하락의 원인이 됐다. 암호화폐 전문 헤지펀드인 이키가이의 트레비스클링 창립자는 “만약 해시레이트(채굴용 컴퓨터 자원)가 줄어들 경우 본질적으로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덜 안전해지고 비트코인의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게다가 암호화폐의 주요 플레이어들이 전쟁에 참여하면서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대한 불안감이 시장을 뒤덮었다. 특히 블록체인 생태계가 소수의 치킨게임에 뿌리째 흔들렸고 하락을 이끌었다. 이런 상황을 만든 타이밍도 나빴다. 숙원사업인 비트코인 ETF(상장지수펀드) 출시 가능성이 높아진 때였다. 그간 수많은 ETF 상품이 미국 증권위원회(SEC)의 심사를 넘지 못했다. 하지만 출시를 준비 중이던 반에크-솔리드엑스(VanEck-SolidX) ETF에 대한 기대감은 무척 컸다. 약점을 많이 보완한 이 상품에 대해 SEC는 결정을 연기했다. 그런데 이번 치킨게임은 암호화폐의 휘발성이 여전히 강하다는 증거만 SEC에 제시한 꼴이 됐다. 반전의 기회도, 활황의 재현도 모두 놓쳤다는 비관론이 암호화폐 커뮤니티에 퍼지는 이유다.

김회권 코인와이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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