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치회에서 발견된 고래회충. ⓒphoto 위키피디아
참치회에서 발견된 고래회충. ⓒphoto 위키피디아

날씨가 제법 추워졌다. 날씨가 추워졌다는 것은 ‘생선회’의 계절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특히 연말을 맞아 송년회로 횟집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 국민이 먹는 생선회의 80% 이상은 ‘우럭’과 ‘광어’. 맛 좋은 생선회를 먹다 고래회충을 보고 질겁하는 일도 잦다. ‘고래회충 파동’은 매년 되풀이되는 단골 뉴스 중 하나다.

기상청이 발표한 ‘2010 이상기후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로 한반도는 1912년부터 2010년까지 약 100년간 평균기온이 1.7도 올랐다. 세계 평균인 0.74도의 2배 이상이다. 문제는 온난화가 단순히 기온을 높이는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기생충이나 곰팡이의 생장에도 영향을 미쳐 먹거리 안전을 위협한다는 것. 가장 대표적인 위협이 기생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위생 상태가 좋아지면서 일반적인 기생충 감염자는 꾸준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생선회로 인한 기생충 감염자는 오히려 늘고 있다. 특히 해수 온도가 높은 7월과 난류 유입이 본격화되는 10월에 오징어, 붕장어 등의 어류가 고래회충에 감염될 빈도가 높다. 따뜻한 수온으로 물고기의 먹이활동이 왕성해지면 기생충이 본격적으로 수를 늘리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겨울을 지나고 따뜻해지는 봄철, 여름철이면 고래회충 기사가 보도되는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알로 떠돌다 먹이사슬 거쳐 고래까지

흔히 기생충은 여름에만 발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고래회충의 경우 겨울에도 발견된다. 수온이 낮은 겨울에는 개체수가 적고 활성도가 약한 것뿐이다. 발생 빈도가 가장 높은 시기는 역시 여름(6~9월)이나, 고래회충은 겨울(12~1월)에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

고래회충은 생선 기생충으로 가장 유명하다. 사실 바다에 사는 물고기라면 대부분 고래회충의 유충을 가지고 있다. ‘아니사키스(Anisakis)’란 학명을 가진 고래회충은 알 형태로 떠다니다가 새우에게 먹히고 이를 다시 오징어나 고등어가 잡아먹는 등의 먹이사슬을 거쳐 최종적으로 고래에 도달하기 때문에 ‘고래회충’이라고 불린다. 아니사키스는 네덜란드에서 처음 발견되어 학계에 알려졌다.

그런데 최종 숙주인 고래에 기생하기 전 단계에서 고래회충에 감염된 방어·고등어·대구·청어·갈치·연어·조기·오징어 등의 생선을 날것으로 섭취하면 인간에게 감염된다. 생선 속에 있던 고래회충이 사람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보통 고등어 1마리당 적게는 2~3마리, 많게는 10~20마리까지의 고래회충이 기생한다. 대부분의 기생충이 그렇듯 고래회충 또한 먹이사슬에 의해 계속 잡아먹히면서 유충(몸길이 1~2㎝)에서 성충으로 성장한다. 성충의 몸길이는 약 5~20㎝. 최종적으로 고래의 위장에 기생해 알을 낳고 이후 배설에 의해 알이 다시 바다로 나가는 일이 반복되는 삶이다.

보통 회를 먹을 때 기생충은 회의 신선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고래회충은 원래 생선이 살아있을 때 내장 속에 기생하다가 생선이 죽은 뒤 살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그런데 왜 우리는 고래회충에 잘 감염되지 않는 것일까. 회를 뜨는 데 숙련된 분들이 살아있는 생선회를 뜰 때는 내장을 바로 제거하기 때문이다. 즉 기생충이 살 속으로 파고들어 갈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다. 내장을 제거한 후 칼과 도마를 깨끗이 씻지 않은 채 그대로 회를 썰면 칼과 도마에 묻었던 회충이 그대로 생선회에 묻을 수 있지만 제대로 관리가 이루어지면 걱정 없다. 또 고래회충은 익히거나 냉동시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선을 영하 20도 이하에서 하루 이상 냉동하거나 70도 이상에서 가열하면 기생충이 죽기 때문에 감염 예방이 가능하다.

고래회충 성충의 몸 길이는 약 5~20㎝다. ⓒphoto fishparasite
고래회충 성충의 몸 길이는 약 5~20㎝다. ⓒphoto fishparasite

복통과 구토 일으킬 수도

고래회충은 숙주인 고래 몸에 있어야 편하게 살 수 있다. 사람은 원래 고래회충의 숙주가 아니기 때문에 기생 활동이 어렵다. 일반회충은 인체 내에서 산란을 통해 번식하지만 고래회충은 체내에서 번식이 불가하다. 고래 배 속과 환경이 많이 다른, 특히 위산이 많이 분비되는 사람의 위장에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회충이 체내에서 10년 이상 기생하는 반면 고래회충은 인체 환경에 적응을 못해 2주 이후 스스로 사멸한다.

문제는 죽기 전에 이 작은 녀석이 고통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인체로 길을 잘못 찾아 들어온 고래회충 입장에서는 ‘여기가 아닌데’ 하며 오히려 황당해할 것이다. 그 순간 고래회충은 위산을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사람의 위벽에 머리를 박고 뚫고 나가려고 발악을 한다. 이 녀석은 머리가 뾰족하고 날카로워 위벽을 뚫고 복강 내로 들어가기에 최적화된 구조다. 감염자의 몸에 통증이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때다.

생선회를 먹은 지 1~12시간 이내에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격한 복통과 구토 증상이 일어나면 고래회충을 의심해 봐야 한다. 고래회충이 위벽을 공격하고 쉬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통증이 가라앉았다 극심해졌다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드물게는 기생충의 효소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발작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출혈과 설사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고래회충은 자연산 생선에 흔하다. 그렇다면 양식은 왜 고래회충에 감염되지 않을까. 양식산 물고기는 배합사료와 생물사료를 먹여 키운다. 배합사료는 물고기를 말려서 잘게 빻은 가루에 몇 가지 성분을 혼합하여 분유처럼 가루로 만든 후 알갱이로 뭉친 먹이다. 생물사료는 정어리나 꽁치 같은 어류를 일단 냉동한 후 분쇄기에 갈아서 먹이로 사용한다. 따라서 양식산 어류에는 고래회충이 몸속으로 들어갈 경로가 없다. 그렇더라도 회를 뜰 땐 바로 내장을 제거해야 안전하다.

넓은 바다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기생충이 지금까지 밝혀진 기생충보다 더 많다. 고래회충과 달리 처음부터 살 속에 기생하는 방어 사상충(Philometroides seriolae)도 그중의 하나다. 방어 사상충은 방어가 살아있는 동안에도 살 속에서 피를 빨아먹고 산다. 봄부터 여름까지 자란 뒤 생선의 몸을 뚫고 밖으로 나가는 성향이 있다. 여름 방어는 기생충의 위험이 높아 회로 잘 먹지 않는다.

고래회충에 감염되면 구충제로도 치료 효과가 신통찮다. 약이 잘 듣지 않을 뿐 아니라 효과가 있다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따라서 통증이 심할 경우 내시경으로 회충을 적출해 제거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흔치 않은 경우지만 유충이 소장으로 넘어가 깊게 박혀 있어서 위내시경으로 뽑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회는 맛있는 음식이지만, 그 맛에는 분명 위험이 따르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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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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