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8일 오전 수협은행 서울 연희로지점 출입문에 안내표지가 붙어 있다. ⓒphoto 이한솔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2월 18일 오전 수협은행 서울 연희로지점 출입문에 안내표지가 붙어 있다. ⓒphoto 이한솔 영상미디어 기자

내년부터 정부의 아동수당 지급범위가 확대되면서 금융업계가 아동수당을 겨냥한 고금리 아동적금 상품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일부 금융상품은 출시되자마자 연일 완판 기록을 세울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인터넷 맘카페를 통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아동적금 상품은 이제 새벽부터 대기표를 받아야만 가입이 가능할 정도가 됐다. 가장 인기몰이 중인 상품은 Sh수협은행이 지난 9월 출시한 ‘Sh쑥쑥크는 아이적금’이다. 이 상품은 만 6세 미만 어린이를 가입 대상으로 하고 있다. 오는 12월 말까지 5년제 적금 가입고객에게 연 0.5%포인트 추가 특별금리를 제공해 최대 연 5.5% 금리가 가능한 상품이다. 시중은행의 적금 상품 금리가 주로 연 2%대임을 감안하면 금리혜택이 파격적인 수준이다.

새벽 2시부터 줄 서는 사람들

인터넷 맘카페에는 이 적금에 가입하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서 겨우 가입했다’는 식의 후기가 속속 올라오고 있다. “적금 드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 새벽 3시에 나와도 대기표 받기 힘들다는 소문 때문에 아예 새벽 1시 반에 집에서 나왔다. 새벽 2시에도 줄을 서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오전 7시 반에 직원분 안내로 대기 이름을 적고 겨우 가입할 수 있었다.” 지난 12월 3일 충남 천안지역 맘카페에 올라온 한 게시글의 내용이다.

돌쟁이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회사원 박모씨(38·서울 연희동) 역시 아동적금에 가입하기 위해 지난 일주일 동안 밤잠을 설쳤다. 지난 12월 18일 오전 Sh수협은행 서울 연희로지점에서 만난 박씨는 “뒤늦게 동료를 통해 아동적금에 대한 정보를 들어서 가입을 하려고 했는데 경쟁이 심했다. 아침 출근 전 회사에서 가까운 수협에 갔는데 몇 번 허탕을 쳤다”며 “오늘은 새벽 6시에 나와 집 근처 수협에 갔다. 일찍 도착한 편이라 직원을 통해 번호표를 받을 수 있었다. 세 번째 시도 끝에 (적금에) 가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수협 연희동지점 출입문에는 ‘쑥쑥 아이적금이 마감되었습니다’라고 적힌 안내 표지가 붙어 있었다.

이처럼 경쟁이 치열해진 까닭은 수협 측에서 해당 적금 판매 수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입자가 몰리자 수협은행은 특별금리 혜택을 제공하는 오는 12월 말까지 모든 영업점의 신규계좌 수를 하루 10계좌로 판매제한을 걸어둔 상태다. 이에 대해 수협은행 측은 “정부의 아동수당제도 시행에 맞춰 영유아 부모와 함께하기 위해 시중금리보다 높은 상품을 출시했으나 당초 예상한도를 크게 초과한 상황”이라며 “게다가 ‘쑥쑥적금’ 업무처리로 다른 고객의 업무처리도 지연돼 민원이 상당했다. 불가피하게 ‘쑥쑥적금’의 전담창구를 축소 운영하게 됐다”고 밝혔다.

최근 MG새마을금고중앙회(이하 새마을금고) 또한 아동수당을 겨냥한 고금리 적금 상품인 ‘우리아기첫걸음 정기적금’을 선보이면서 아동적금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 상품은 만 6세 이하 영유아 및 아동 등을 가입 대상으로 하고 있다.

‘우리아기첫걸음 정기적금’은 정액적립식 적금이며 아동 및 부모 중 1인 이상이 새마을금고와 거래하는 경우 파격적인 우대이율을 적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우대조건 충족 시 최대 연 3.0%의 우대이율이 적용된다. 기본이율에 모든 우대이율을 적용할 경우 지역에 따라 연 6%의 금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다른 은행들 역시 아동수당을 겨냥한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KEB하나은행은 지난 5월 최대 연 4.3%의 금리를 받을 수 있는 ‘아이 꿈하나 적금’을 출시했다. 출생 후 1년, 만 7세, 만 13세, 만 16세 등 연령대별로 특별금리를 더해준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 JB전북은행이 선보인 ‘우리아이 최고! 정기적금’은 5년 만기 월 10만원 한도로 연 최고 5.0% 이자를, BNK경남은행의 ‘아이행복두배드림’ 적금 상품은 3년 만기 최대 3.7% 금리를 제공한다.

이처럼 은행들이 아동수당을 겨냥한 고금리 상품 출시에 뛰어든 까닭은 내년부터 아동수당 지급 대상이 대폭 늘어나기 때문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12월 13일 소득과 관계없이 만 6세 미만 모든 아동에게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내용의 아동수당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만 6세 미만, 소득 수준 90% 이하 가정에 아동수당을 지급하도록 한 현행법보다 대상이 확대됐다.

개정안에 따르면 내년 1월부터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만 0~5세 아동에게는 월 10만원의 아동수당이 지급된다. 또 내년 9월부터는 아동수당 지급 대상을 기존 생후 72개월(만 6세 미만)에서 생후 84개월(만 7세 미만)로 확대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성남시는 지역 전용 체크카드로 수당 지급

아동수당 대상이 이렇게 확대되자 이 시장을 겨냥한 아동적금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이 적금에 가입하면 받게 되는 연 5~6%의 금리는 사실 현 상황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 고금리 혜택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11월 30일 1년 만에 기준금리 인상에 나섰지만 기존 금리에서 0.25%포인트 오른 1.75%에 머물렀다. 이에 금융기관들도 금리인상에 나서 2%대 예·적금 상품이 생겨났지만 이자율이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사실상 저금리 기조에 머물러 있다 보니 고금리 아동적금 상품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보편적 복지’ 확대를 위해 시행하고 있는 아동수당 자금이 ‘재테크 용도’로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 같은 우려를 감지해서였을까. 전국 지자체별로 아동수당을 현금이 아닌 방식으로 지급하거나, 지급 방식을 보완하기 위한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 가운데 경기도 성남시는 전국 최초로 아동수당 전액을 지역 상품권(체크카드)으로 지급해 주목을 받았다.

성남시는 지난 9월부터 취학 전 6세 미만 아동을 둔 지역 내 모든 가정에 소득·재산 규모와 관계없이 월 10만원에 인센티브 1만원을 더해 총 11만원을 체크카드로 지급해 지역 내에서만 사용하도록 했다. 또 지역경제 활성화 취지에 맞게 일부 대기업 계열 상점에선 사용을 제한했다. 시는 아동수당이 현금인출이 불가능한 체크카드 형태로 지급하면서 지역경제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성남시의 이 같은 ‘아동수당 플러스’ 정책은 도입 전 상당한 반발을 겪어야 했다. 왜 우리는 현금으로 지급하지 않느냐는 반발이 잇따랐다. 성남시와 비슷한 정책을 도입하려는 다른 지역에서도 반발은 여전하다. 전북 군산시 역시 지난 11월 17일 ‘군산시 아동수당에 관한 시민의견 수렴 공청회’를 열었다. 시는 이 자리에서 지역경제 침체와 소비 분위기 위축으로 지역 소상공인 및 골목상권 붕괴가 이어지고 있어 매월 지급되는 아동수당을 군산사랑상품권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민들의 반발이 상당했다. 군산시는 결국 지난 12월 11일 아동수당 지급방식을 기존의 현금 지급방식으로 유지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군산시는 “군산사랑상품권으로 지급방식을 전환하기에는 시민의 인지도가 아직 높지 않고, 보호자 선택에 따른 지급 시스템 구축안도 충분한 검토 과정이 필요하다”며 철회 배경을 밝혔다. 내년 아동수당의 확대 지급에 따른 제도 보완에 대한 고민은 당분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화성시에 살고 있는 워킹맘 김모씨는 “얼마 전 안성 지역 새마을금고에 아동수당 적금 상품으로 6%대 특판 적금이 나왔다고 해서 두 번이나 근무시간을 빼고 은행에 갔다”며 “돈을 더 많이 모아야겠다는 생각에 적금에 가입한 건 아니다. 아동수당이 아이 몫의 돈이라고 생각하니 당장 사용하기가 꺼려져 아이를 더 열심히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적금에) 가입했다”고 했다. 김씨의 말처럼 아동적금 열풍에는 가정살림이 팍팍해져도 아이를 위한 투자를 줄일 수 없다는 부모의 심정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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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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