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8월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최저임금제도 개선 촉구 국민대회’에 참가한 소상공인들이 비옷을 입은 채 최저임금 인상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photo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한국 경제가 길을 잃고 망망대해에서 헤매고 있다. 지금 한국 경제를 둘러싸고 있는 대내외적 환경은 ‘3중 쓰나미’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미·중(美中) 패권전쟁이다. 무역전쟁, 통화전쟁, 과학기술전쟁 등 여러 표현이 나오고 있지만 모두 곁가지일 뿐, 핵심은 세계질서의 운영자 역할을 누가 할 것인가 하는 패권 쟁탈전이다. 중국의 도전에 미국이 응전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촉발한 전쟁처럼 보이지만,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도 중국 때리기에 있어서는 별 차이가 없어 초당적·거국적 대오를 형성하고 있다. 일시적인 타협이나 봉합은 있을 수 있으나 최종 승자가 확연히 가려지기까지 물러설 수 없는 혈전은 지속될 것이다. 가히 신(新)냉전이라 부를 만하다. 최근 5G를 둘러싼 미·중 갈등에서 나타났듯이,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한국의 기존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될 것이다.
   
   둘째,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다. 인공지능(AI)이 창출하는 변화는 삶의 구석구석에 침투하면서 세계의 산업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빨리 가자”는 국민적 콘센서스는 한국을 ‘제3 물결’의 승자, IT강국으로 만들었다. 그 비결은 빠름에 있었다. 반도체, 휴대폰 등에서 일본을 제칠 수 있었던 것은 제품수명 단축 추세 속에서의 신제품 개발 능력이었다. 빠름은 자유로운 환경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의 앞길 도처에 구시대의 문지기가 버티고 있다. 원격진료, 카풀 택시, 드론 택배, 자율주행차 운행, 빅데이터 활용 등 낡은 규제로 인해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후발국이었던 중국에 추월당한 지 이미 오래다.
   
   
   ‘연령 지진’의 충격
   
   셋째, 초고속·압축 고령화가 몰고 오는 ‘연령지진(agequake)’이다. 고령화 속도 세계 챔피언이었던 일본을 가볍게 제칠 정도로 한국의 고령화는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2018년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초로 1.0을 밑돌았다. 인구구조가 경제에 보탬이 되는 인구보너스기는 이미 2012년에 종료되었다. 압축성장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던 한국 경제는 성숙을 넘어 조로하고 있다. 복지지출 비중이 OECD 국가 중 낮은 편에 속한다는 지적은 한가한 얘기다. 현재의 복지 수준이 유지된다 하더라도 초고속·압축 고령화로 인해 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은 머지않아 복지 선진국 수준으로 접근해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심성 퍼주기 공약이 난무하고 있어 한국 경제의 강점인 재정건전성은 악화일로에 있다. 최근 국민연금 개편 논란에서 나타났듯이, 이러한 기류는 현역세대와 미래세대 사이의 세대 모순을 격화시킬 뿐이다. 미래세대는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3중 쓰나미는 그 하나하나가 엄청난 도전이어서 정확한 응전이 쉽지 않다. 새로운 문제의식, 새로운 접근, 새로운 발상으로 지도에 없는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 그런데 매너리즘에 빠진 한국 정치는 당리당략을 위한 권력투쟁에 몰입하고 있을 뿐 국가적 난제 해결에는 사실상 사보타주(sabotage)하고 있다.
   
3중 쓰나미가 설상(雪上)이라면,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가상(加霜)이다. 3중 쓰나미 속에서 수년 전부터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유사한 장기복합불황의 징조가 나타났는데, 현 정부는 그것을 멈추거나 늦추기는커녕 가속화시키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28일 내놓은 ‘11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현재의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인 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전월보다 0.2포인트 떨어져 2001년 이후 17년 만에 8개월 연속 하락세를 나타냈다. 3.0%를 호언했던 2018년 성장률은 2.6~2.7%에, 32만명을 목표로 했던 취업자 증가는 10만명 수준에 머문 것으로 추정된다. 생산과 투자는 현상유지도 못하고 쪼그라들었다. 2만달러 벽을 넘은 지 12년 만에
   
   1인당 국민총소득(GNI) 3만달러를 달성했지만 체감경기는 싸늘하기만 하다.
   
   현 정부는 성장 중심 경제정책을 낡은 패러다임으로 규정하며 ‘사람 중심 경제’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포용국가와 소득주도성장이다. 담론 차원에서는 크게 흠잡을 데가 없어 보였지만, 구체적 처방으로 나온 과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경직적 근로시간 단축 등은 무수한 부작용을 양산하면서 우리 경제를 침체의 늪에 빠트렸다.
   
   지난해 16.4%의 최저임금 인상은 무인화, 가족노동으로의 대체, 영업시간 단축, 폐업으로 이어지면서 취업자 수를 32만명 늘리겠다는 계획을 파탄시키고 고용한파를 불러왔다. 정부는 최근까지 2조4500억원의 일자리안정자금을 집행했지만 2018년 취업자 증가폭은 전년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올해 주휴시간을 근로시간에 포함시킨 최저임금의 강제화는 10.9% 추가인상과 맞물려 소상공인들의 생계를 직격할 것이 자명하다.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곳이 많았던 소상공인·자영업계에서는 주휴수당이 강제화될 경우 최저임금 인상률이 33%를 웃돌아 한계상황을 넘어선다. 직원 5인 미만 소상공인이 300만명에 이르는데, 이들이 가장 먼저 도산 또는 폐업의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쪼개는 수밖에 없다. 주휴수당은 주당 15시간 근무를 채운 근로자에게만 주기 때문에 하루 2~3시간 단위로 근무하는 초단기 아르바이트생을 여럿 고용하는 편법이 동원될 것이다. 이는 다시 이른바 ‘알바생’들의 고용의 질 악화로 이어진다.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의 본래 의미는 성장의 과실이 경제주체들에게 골고루 퍼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대체로 중산층에 해당하는 영세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을 압사시켜 하층으로 전락시키는 양극화 촉진책으로 기능하고 있다. 실제 현 정부 들어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 선한 의도가 참담한 결과를 낳고 있는 전형적인 아마추어형 오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소비자물가지수 중 석유류·농산물 제외 지수(근원물가)는 전년 대비 1.2% 상승했다. 1999년 0.3%를 기록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통계청이 근원물가를 산출하기 시작한 1976년 이후, 1999년만 제외하면 최저일 정도로 이례적이다. 물가는 한 경제가 얼마나 안정돼 있는지를 나타낸다. 한국은행은 물가안정 차원에서 근원물가 흐름을 유심히 관찰한다. 한국은행 통화정책상 물가 목표치는 2.0%다. 1.2% 수치는 내수가 얼어붙어 경제가 활력을 잃고 있다는 방증이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몰락, 최저임금 발 고용한파, 금리인상으로 인한 가계부채 원리상환금 증가, 갭 투자 실패로 인한 깡통주택 속출 등으로 2019년 내수는 더욱 쪼그라들 것으로 전망된다.
   
   고혈압(인플레이션)보다 더 괴로운 것이 어지럼증과 무기력증을 유발하는 저혈압(디플레이션)이다.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 실패와 초고속 고령화로 인해 수년 전부터 한국 경제는 역대 최저수준의 금리와 물가에도 불구하고 투자와 소비가 꽁꽁 얼어붙는 저금리·저물가·저투자·저소비라는 ‘4저 불황’에 빠져 있다. 현 정부의 아마추어 정책은 우리 경제를 점점 더 헤어나기 힘든 깊은 늪으로 밀어넣고 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주범인 디플레이션이 언젠가 우리를 엄습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미·중 무역전쟁의 와중에서도 수출은 호조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2018년 우리나라 연간 수출은 사상 처음으로 6000억달러를 돌파했다. 미국, 독일, 중국, 일본, 네덜란드, 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7번째다. 지난해 수출 증가율은 정부 전망치(4%)를 훨씬 웃도는 5.5%로 주요 지표 중 유일하게 초과 달성하였다. 수출 순위는 세계 6위로 우리나라 수출이 세계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역대 최고치인 3.4%를 기록했다. 무역수지는 10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디커플링을 리커플링으로 전환시켜야
   
   현 단계 우리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난제는 수출 호조-내수 침체라는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이다. 낙수효과의 약화로 수출은 따뜻한 남녘으로 가는데 내수는 시베리아를 향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포용국가, 소득주도성장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고민의 산물로 여겨진다. 안타까운 것은 “문제의식은 건전하지만, 해법은 엉터리”라는 점이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양산함으로써 기업가정신은 물론 사회 구성원의 경제하려는 의지(will to economize)를 약화시키고 있다. 디커플링 현상의 해법은 낙수효과의 복원이지 개념조차 불명확한 분수효과의 창출이 아니다. 현 정부의 J노믹스는 경로를 이탈하였다.
   
   낙수효과의 복원은 제조업-대기업-수출이라는 기존의 성장공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새로운 시장, 새로운 생태계를 창출하여야 한다. 그래야 디커플링 경제가 리커플링(recoupling) 경제로 전환될 수 있다. 이하 현 상황에서 실행 가능한 처방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내수의 세계화’ 전략이다. 초고속 고령화와 수출과 내수의 디커플링 속에서 내국인 소비만으로 내수를 활성화하려는 것은 무모하다. 이제 우리는 수출과 내수라는 전통적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수출과 내수의 쌍끌이 전략 역시 이분법적 사고의 소산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국내에 와서 소비하면 내수로 잡힌다.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생산된 반도체를 1억원어치 수출하는 것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국내에서
   
   1억원 소비하는 것이 내수활성화에 더 큰 도움이 된다. 고용유발 효과도 훨씬 높다.
   
   일본 중부에 위치한 다카야마(高山)시는 인구 8만8000명의 소도시다. 급속한 고령화로 소멸 위기에 있던 이 산골마을이 관광으로 부활하고 있다. 2017년 외국인 투숙객은 51만3000명을 기록했다. 다카야마 시청 관계자는 “주민 1명이 줄면 이들이 쓰던 연간 120만엔도 없어지지만 1인당 15만~16만엔씩 쓰는 외국인 관광객 8명을 유치하면 거주자 1명을 유치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조선일보 2018년 10월 17일) 이 계산법으로 환산하면 다카야마의 내수인구는 15만명을 훌쩍 넘어선다.
   
   젊은 인구의 감소로 속절없이 추락하던 일본의 대표적 화장품 기업 시세이도(資生堂)가 화려하게 부활한 것도 외국인 관광객 급증 덕분이다. 6개였던 생산공장을 3개로 줄였던 시세이도는 최근 도치기현과 이바라키시에 새 공장을 짓고 있다. 1000엔대까지 추락했던 주가는 8000엔대까지 치솟았다. 매출은 2012년 6823억엔에서 2017년 1조51억엔으로 점프했다.
   
   2014년까지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일본보다 많았다.(한국 1420만명, 일본 1342만명) 그러나 2015년 역전된 이래 갈수록 격차가 벌어져 2018년의 경우 한국 1500만명으로 3000만명을 넘어선 일본의 반토막 수준이었다. 1600만명을 기록한 베트남에도 추월당했다. 연초 평창 동계올림픽이 있었다는 사실을 무색게 한다.
   
▲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마포구 계절밥상 공덕해링턴점 매장에 12월 31일 영업종료한다는 안내문구가 세워져 있다. photo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일본의 관광입국에서 배워야
   
   관광입국을 내건 일본은 총리가 20여명의 장관들과 함께 회의를 수시로 열어 신속한 대응책을 내놓는다.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 4000만명, 2030년 6000만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대통령 산하기구로 추진된 국가관광전략회의가 총리 산하로 격하되었다. 그나마 현 정부 들어 두 번밖에 개최되지 않았다. 외국인 관광객 감소를 사드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무책임하다. 한국은 컨트롤타워(Control tower), 편리함(Convenience), 콘텐츠(Contents), 3C 모두에서 일본에 밀린다. 지난 정부에서 역점 시책으로 추진되었던 한식 세계화는 적폐로 몰려 종적을 감추었다. 한마디로 전략의 부재로 한국 관광은 신음하고 있다.
   
   둘째, 신산업 육성 전략을 범정부 차원에서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일자리는 일거리의 파생상품이다. 일거리가 없는데 일자리를 억지로 늘릴 수 없다. 기존 산업에서 일자리를 늘리는 데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야 한다. 조선일보 1월 1일자 기사에 의하면, 1861년 개교 이래 반도체, PC, 모바일 혁명 등을 선도해온 미국 MIT대학은 올 9월 AI칼리지를 신설한다. AI를 이공계는 물론 인문사회계 학생이 사용해야 할 ‘미래의 언어’로 규정하고, AI를 모든 학생에게 가르치고 다른 학문과 융합하는 단과대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MIT’라 불리는 KAIST는 2017년 3월, 4차 산업혁명 시대 융합 인재 양성을 위해 4년간 무(無)학과로 학문을 배우는 ‘융합기초학부’를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에 제출하였으나 아직까지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박사급 인공지능 전문가가 180명으로 1위인 미국의 1만2027명에 크게 뒤지는데도 관계부처가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는 바이오헬스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이 분야 일자리는 2013년 11만3000명에서 2017년 14만4000명으로 연평균 5.6% 늘어났을 정도로 고용유발 효과가 높다.(동 기간 제조업 연평균 고용증가율 0.8%) 성장-고용-복지의 확대 선순환을 이룰 수 있다. AI, 유전정보 등과 접목하면 새로운 시장 창출이 가능한 잠재력이 큰 미개척 분야다. 국내 3700여개 바이오헬스 기업 중 연매출 800억원 이상의 대기업은 2%(75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중소벤처기업이라는 점도 동반성장, 포용적 성장의 취지에 부합된다. 그런데 국내 대학 바이오 관련학과 졸업생들은 취업 후 부분 재교육이 아니라 원점 재교육을 시켜야 할 정도로 교육이 산업현장의 수요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부분에 과감하고 대담한 지원을 해야 한다. 하나뿐인 바이오마이스터고도 증설해야 하고, 아일랜드의 국립바이오공정연구교육센터(NIBRT)와 같은 인재양성기관도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줄기세포 치료를 가로막는 낡은 규제도 철폐해야 한다. 엄청난 자원과 기술 그리고 경험을 축적한 대학병원이 의료기술 회사나 바이오벤처를 출범시키지 못하게 막아놓은 규제의 벽도 허물어야 한다. 미국, 유럽, 일본에서 가능한데 한국에선 불가능한 것들이 이 분야에 너무 많다.
   
   정부는 자영업자 등 영세사업자를 지원하기 위해 새해부터 2021년까지 추가로 2조원에 육박하는 부실 채무를 인수해 5만7000명을 구제하겠다고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그런데 엎질러진 물이라면, 채무 소각을 관광산업과 바이오헬스산업 등에 필요한 인재양성 프로그램과 연계하는 방안을 강구했으면 한다. 직업 재훈련 및 재도전과 연계되지 않는 사회안전망 제공은 도덕적 해이를 부르기 십상이다. 복지는 고용과 연계된 일하는 복지(workfare)로 가야 한다. 현 정부는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라는 비전을 내걸었다. 그러나 내 삶은 국가가 책임져주지 못한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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