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망한 1위 한국투자밸류자산도 고작 -13.94%
현대인베스트먼트·NH·삼성·하나·신한 하위권
 ⓒ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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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한국 주식시장은 처참했다. 현대자동차와 포스코(POSCO), 삼성물산 등 주요 기업들은 물론, 지난 수년간 세계 반도체 시장의 초호황을 타고 한국 주식시장을 이끌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까지 속절없이 폭락했다. 무너진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의 성적표도 참담했다. 2018년 암울한 투자 성적표를 받아든 대표적 투자자는 익히 알려졌듯이 ‘개미’라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이다. 그런데 개미투자자에 버금갈 만큼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든 투자자들이 있다. 바로 ‘자산운용사들’이다. 자산운용사들의 주식 투자 성적은 그저 ‘못했다’ 수준을 넘어 “투자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못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심각한 ‘낙제’였다.

주간조선은 2018년 자산운용사들의 주식 투자 실태와 투자수익률 분석을 위해 펀드평가사 ‘KG제로인’에 자료 조사를 요청했고, 이렇게 확보한 자료를 기자가 다시 분석했다. 분석 대상 자산운용사들은 토종과 외국계 45곳으로, 이들이 국내 주식 투자를 위해 직접 운영하고 있는 총 808개의 ‘주식형 펀드’와 ‘ETF’의 수익률을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중소형 주식, 배당형 주식, 코스피200 인덱스, 일반형 주식’ 등 4가지 유형의 투자수익률과, 이 4가지 유형의 투자 성적을 모두 더한 ‘주식 투자 종합성적표’를 비교 분석했다. 주식 투자에 실제 사용된 운용 순자산이 10억원 이상이고 최소 2주 이상 한국 주식에 투자한 것들만 분석 대상으로 삼았고, 2018년 주식시장이 개장한 1월 2일부터 폐장한 12월 28일까지 딱 1년간 투자한 결과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는 참담했다. 45개 자산운용사 중 2018년 한 해 동안 0.1%라도 플러스 수익을 낸 자산운용사가 단 한 곳도 없었다. 놀랍게도 45개나 되는 자산운용사 모두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45개 자산운용사의 평균 성적(수익률)은 -18.92%에 불과했다. 수익률이 -10% 이내인 곳조차 단 하나도 없을 만큼 참담했다. 이것은 지난 1년 코스피 지수 하락률인 -17.69%보다 1.23%포인트나 더 낮은 것이다. 수익률 1위가 -13.94%에 불과했고, 수익률이 -20% 이상인 자산운용사가 무려 7곳에 이르렀다.

45개 자산운용사 수익률 모두 ‘마이너스’

이 같은 수익률이 얼마나 저조한지 알 수 있는 비교 지표가 있다. 한국에서 가장 안전한 투자지만 극단적 안정성으로 인해 수익률이 매우 낮은 ‘정기예금’이다. 기자는 KB국민·신한 등 시중은행과 KDB산업 등 국책은행, 한국씨티 등 외국계 은행, BMK부산·광주 등 지방은행과 카카오뱅크, 케이뱅크까지 총 18개 은행의 정기예금 평균 금리(이자)를 확인해봤다.

이들 18개 은행의 지난해 정기예금 평균 이자는 1.92%(세전·전국은행연합회)였다. 2018년 내내 ‘너무 낮다’는 비판을 받았던 은행들의 정기예금 평균 이자가 자산운용사들의 평균 수익률보다 무려 20.84%포인트나 높은 황당한 상황까지 벌어진 것이다.

45개 자산운용사의 성적표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45개 운용사 중 수익률 1위는 장기투자 펀드를 주로 팔고 있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이다. 1위라고 하지만 수익률은 민망하게도 -13.94%였다. 2위는 수익률 -14.48%의 멀티에셋자산운용. 멀티에셋자산운용은 한국 주식에 투자하는 운용순자산이 불과 90억원(2018년 12월 28일 기준)밖에 안 될 만큼 규모가 매우 작다.

3위는 미국계인 프랭클린템플턴자산운용(-14.54%)이었고 4위는 수익률 -15.14%를 기록한 미국계 라자드코리아자산운용이었다. 이어 5위는 동부자산운용으로 더 알려진 DB자산운용(-15.16%), 6위는 한국 주식에 투자하는 운용순자산이 180억원에 불과한 유경PSG자산운용(-15.41%), 7위는 태광그룹 계열인 흥국자산운용(-15.45%) 순이었다. 8~10위는 트러스톤자산운용(-15.52%), BNK자산운용(-15.61%), 동양자산운용(-15.64%)이 차지했다. 11위부터는 투자수익률이 -16%대 아래로 더 깊게 추락했다.

수익률 상위 10위권 이내 자산운용사 중 한국 주식에 투자한 운용순자산이 1조원 이상인 곳은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단 1곳뿐이라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45개 자산운용사 중 운용순자산 1000억원 이상인 곳도 4곳에 불과했다.

하위권 자산운용사들의 수익률은 더 참담하다. 토종과 외국계 자산운용사를 통틀어 수익률 꼴등은 범현대가 보험사인 현대해상화재보험이 지분 100%를 갖고 있는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이다. 지난 한 해 수익률이 -27.42%에 이른다. 이 수치대로라면 2018년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은 국내 주식에 투자한 돈 4분의 1 이상을 날렸다는 말이 된다.

현대인베스트먼트·NH 최악의 수익률

최악의 수익률 2위는 NH농협 계열인 NH-Amundi자산운용(NH-아문디자산운용). NH-아문디자산운용이 한국 주식에 투자한 펀드의 운용순자산 규모는 1조9965억원으로 45개 자산운용사 중 투자 규모가 7위다. 하지만 수익률은 -25.96%로, 지난해 한국 주식에 투자한 돈 중 4분의 1 이상을 까먹었다.

최악의 수익률 3위와 4위는 호주계 맥쿼리투자신탁운용(-23.04%)과 기업은행 계열 IBK자산운용(-21.60%)이었고, 5위는 한국 최대 자산운용사인 삼성자산운용이 차지했다.

삼성자산운용이 국내 주식형 펀드와 ETF를 통해 한국 주식에만 투자한 운용 순자산 규모는 무려 18조2957억원(2018년 12월 28일 기준)에 이른다. 규모 2위인 미래에셋자산운용(9조2696억원)보다 두 배 가까이 크다. 하지만 한국 최대 규모 자산운용사라는 외형과 달리 수익률은 -21.28%로 참담했다. 한국 주식에 투자한 돈 중 5분의 1 이상 손실을 봤다는 뜻이 된다. 규모 면에서 자산운용시장 2위인 미래에셋금융그룹의 주력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수익률도 엉망이긴 마찬가지다. 지난 한 해 수익률이 -18.79%로, 45개 자산운용사 중 최악의 수익률 16위에 불과했다.

최악의 수익률 6~7위는 유리자산운용(-21.04%)과 범현대가인 HDC그룹(현대산업개발)이 지배하고 있는 HDC자산운용(-20.45%)이, 8위는 대신금융그룹이 지배하고 있는 대신자산운용(-19.62%)이 각각 차지했다. 이어 최악의 수익률 9~10위는 하나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 계열사인 하나UBS자산운용(-19.55%)과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19.49%) 순이었다.

삼성자산·미래에셋도 수익률 처참

수익률이 -20% 아래로 추락한 자산운용사들의 면면은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악의 수익률 10개사 중 자신들이 만들어 운용한 국내 주식형 펀드와 ETF를 통해 한국 주식에만 1조원 이상을 투자한 자산운용사가 4곳에 이른다. 또 수익률 최하위 10개사 중 무려 8곳은 운용순자산이 1000억원을 넘는다. 이것은 개인투자자들의 돈을 중소형 자산운용사보다 더 많이 빨아들인 대형 자산운용사들의 수익률이 더 엉망이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분석의 시야를 더 확대해보자. 시장수익률보다 더 큰 폭으로 추락한 삼성자산·미래에셋자산·NH-아문디자산·하나UBS자산·신한BNP파리바자산 등 대형 자산운용사들의 처참한 수익률은 결국, 소속 투자 전문가들이 직접 운용한다는 주식형 펀드에 돈을 맡겼던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더 큰 손실을 봤다는 분석도 가능케 한다.

자산운용사들과 이곳에 소속된 펀드매너저들은 흔히 ‘주식 투자 전문가’로 홍보된다. 투자 전문가 집단인 자산운용사들은 2018년 왜 한국 주식시장에서 투자 전문가라는 말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저조한 성적을 거뒀을까.

일단 주식시장 상황이 좋지 못했던 영향이 있다. 코스피와 코스피200 등 주요 지수가 17% 넘게 떨어진 결과 이들 지수와 수익률이 흡사하게 움직이도록 설계·운용되는 인덱스펀드(인덱스ETF 포함)의 수익률이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삼성전자의 주가 폭락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한국 주식에 투자하는 자산운용사들과 펀드매니저들은 수익 추구 혹은 방어를 위해 좋든 싫든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한 기업의 코스피 시장 비중이 전체의 20%에 이르고, 코스피200에서는 그 비중이 25% 이상이다. 즉 삼성전자 하나가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분의 1 이상이라는 말이다. 인덱스펀드는 물론 공격적 성향의 액티브펀드들까지 삼성전자 주식을 대거 보유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2018년 1년 동안 삼성전자의 주가가 24% 넘게 폭락했다.

삼성전자의 주가가 이렇게 떨어지게 되면 국내 주식형 펀드 수익률과 자산운용사의 국내 주식 투자 수익률이 시장 평균보다 더 추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갖고 있다.

삼성전자의 주가 폭락에 따른 자산운용사의 수익률 추락을 최대한 줄이려면 펀드매니저들의 시장 대응력과 분석력, 투자 능력과 매매 감각이 필요하다. 하지만 고객들에게 돈을 받아 대신 운용하는 자산운용사 소속 펀드매니저들은 시장 분석과 대응력은 물론 거래 시점 선정과 같은 투자 기술 면에서도 작년 한 해 상당히 부족한 모습을 그대로 노출했다. ‘투자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못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심각하게 추락한 자산운용사들의 주식 투자 수익률이 이런 실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자산운용사들은 자신들에게 거액의 돈을 맡긴 개인과 연기금 등 고객들에게 ‘투자 전문가가 대신 주식 투자를 해준다’는 이유를 내세워 엄청난 투자 손실이 난 상황에서도 수수료를 무조건 챙겨간다. 자산운용사들은 그렇게 매년 개인투자자들을 상대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2018년 자산운용사의 한국 주식 투자는 ‘낙제’ 수준이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자산운용사들이 깊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산운용사들의 투자 구조

외국계 투자금과 주식시장 양분… 수익률 공개 일부에 그쳐

한국 주식시장에서 ‘큰손’으로 불리는 자산운용사들은 외국계 투자금과 함께 사실상 한국 주식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주식시장에서 흔히 ‘기관투자자’로 불리는 대형 투자자가 자산운용사들로 이들은 주식 투자를 위해 ‘주식형 펀드’와 ‘ETF(상장지수펀드)’ 등을 만들어 직접 운용한다.

자산운용사는 자신들 돈으로도 주식 투자를 하지만 이것은 극히 일부다. 주식에 투자하는 거액의 투자금 대부분을 국민연금 등 연기금과 평범한 개인들로부터 끌어모아 투자를 한다. 쉽게 말하면 개인(투자자)이 증권사·은행·보험사(금융상품 판매사)에서 주식형 펀드에 가입해 돈을 내면, 이 돈이 자산운용사로 들어가는 구조다. 바로 이 돈으로 자산운용사가 주식형 펀드를 통해 주식 투자를 하는 것이다. 이들은 국민연금 등 연기금으로부터 거액을 위탁받아 대신 주식에 투자하기도 한다. 이런 구조이기 때문에 자산운용사의 ‘주식 투자 수익률’은 사실상 이들이 운용하는 ‘주식형 펀드(ETF 포함)’의 수익률과 같다.

연말·연초면 많은 언론에서 자산운용사와 이들이 운용하는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과 순위를 내놓는다. 그런데 언론이 공개하는 수익률과 순위는 한국 주식에 투자하는 모든 자산운용사의 주식(형) 펀드와 ETF를 대상으로 조사하고 분석한 것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운용사의 자산과 설정액 규모, 운용 중인 펀드 수 등 몇몇 기준을 미리 정해두고 이 조건에 맞는 규모 이상의 자산운용사들과 이들이 운영하는 일부 주식형 펀드들만을 조사해 수익률 등을 공개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마저도 대부분은 여러 이유로 조사 대상 전체가 아닌 일부만 공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주간조선이 분석한 2018년 자산운용사 투자수익률은 정확한 실태와 투자 정보를 위해 한국 주식에 투자한 거의 모든 자산운용사의 수익률을 1위부터 최하위까지 모두 공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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